흐름과 머무름 속에서

역사의 뒤안길에서/옛날 지명들

지명유래 - 사리면 사담과 싸리재

산골어부 2010. 3. 6. 11:16

 지난 설날에 눈 이야기를 하다가

어머니께서 6,25 때 피난하던 이야기를 꺼내셨다.

중공군이 밀려 내려오는 1.4 후퇴 때 이야기였다.

 

그 해 겨울에는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렸다고 한다.

6.25 때는 동락전투에서 포탄소리가 들려도

피난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지만,

1.4 후퇴 때는 인민군에게 혼이 난 기억 때문에

마을 사람들이 대부분 피난을 떠났다고 한다.

 

음성 소이를 지나 "용고개"라는 곳을 넘어서

괴산 사리면 "모래무"라는 마을까지 피난을 가셨는데, 

그 곳을 다시 가보고 싶다고 말하셨다.

팔순을 넘기신 어머님이 가고 싶다기에

사리면 모래무를 검색하다가보니,

사담(모래못)이라는 곳이 사리면에 있었다.

 

어부가 산악자전거를 타는 덕분에

한남금북정맥의 백마산-좌구산 줄기는

손바닥을 보듯이 알고있는 지형이었다.

 

사리면(沙梨面) 싸리재는

전부터 알고있는 지명이지만

사담(모래못)이란 지명이 흥미로웠다.

 

미호천 유역은 마사토가 많아서

모래가 지천이지만 보광산 산골짜기 마을에

모래가 많아서 사담(沙潭)은 아닐 것이고,

이무기가 살았던 이담(潭) 또는 사담(蛇潭)이나

용이 승천했다는 용담(龍潭)도 아닐 것이고,

새로 생긴 마을을 부르는 신촌(新村)도 아닐 것이고,

새들이 모여사는 곳이라는 새터도 아닌 것 같았다.

 

괴산군 사리면 지명유래에서는

모래가 많고 큰 못이 있으므로 모래못, 사담이라고 소개하지만

신증동국여지승람 제16권  청안현에는 사현(蛇峴)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하지만 인근 지역인 청안면이나 도안면의 지명에서

사(沙)를 고대지명의 차자표기법(이두)에 따라 해석하면

사(沙)나 살(薩)은  청(靑) 또는 청(淸)으로 읽고 풀이하기에

청안현 또는 청천면이나 도살성과 무관하다고 할 수가 없다.

 

살매(薩買)-청천(淸川)

사열이(沙熱伊)-청풍(淸風)

살수(薩水)-청천(淸川)

 

지금은 청주-충주간 국도가 백마령 터널을 따라 증평으로 지나지만,

옛날에는 사현을 지나 청안현을 지나가야 했었다.

청안의 칠보재와 사리의 싸리재는 한남금북정맥을 넘는 곳.

한남금북정맥을 따라 꾸불꾸불거리는 길을 따라서 ~~~~

 

 

 

 

(한남금북정맥지도)

 

(참고자료-사리면 사담리의 지명유래)

 

  사담리
본래 괴산군 사면의 지역으로서 모래가 많고 큰 못이 있으므로 모래못, 사담 또는 사역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진암리와 국사당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사담리라 해서 사리면에 편입되었다.

(가) 원사담리(모래못)

○사담
○고래울 : 모래못 서남쪽에 있는 마을.
○새터 : 모래못 서남쪽에 새로 형성된 마을. 원래 가전부락이라 불렀다.

(나) 하도

○웃말 : 위쪽에 있는 마을
○아랫말 : 아래쪽에 있는 마을
 
 
(참고자료-신증동국여지승람 제16권 : 청안현) 
 
충청도(忠淸道)
청안현(淸安縣)

동쪽은 청주 경계까지 30리이고, 남쪽은 청주 경계까지 12리이고, 서쪽은 청주 경계까지 22리이며, 북쪽은 괴산군(槐山郡) 경계까지 9리이고, 또 음성현(陰城縣) 경계까지 19리에 이르며, 서울과의 거리는 2백 93리이다.
【건치연혁】 청당현(淸塘縣)이요, 또 한 가지 이름은 청연(淸淵)이다. 고려 초년에 청주에 소속시켰고 뒤에 감무를 두어 도안(道安)을 겸임하게 하였다. 도안현(道安縣)은 본래 고구려(高句麗)의 도서현(道西縣)인데, 신라 때 도서(都西)로 고쳐서 흑양군(黑壤郡)의 영현(領縣)으로 삼았다. 고려 초년에 도안(道安)으로 고쳐서 현종(顯宗) 9년에 청주에 소속시켰으며 본조 태종 5년 두 고을이 백성이 적고 땅이 좁다 해서 합치고 지금 이름으로 고쳐서 감무를 두었다가 13년에 전례에 의하여 현감을 두었다.
【관원】 현감(縣監)ㆍ훈도(訓導) 각 1인.
【군명】 청당(靑塘)ㆍ청연(淸淵)ㆍ도서(道西)ㆍ도서(都西)ㆍ도안(道安).
【성씨】 청당(靑塘) 한(韓)ㆍ신(申)ㆍ갈(葛)ㆍ신(辛)ㆍ박(朴)ㆍ이(李)ㆍ김(金) 모두 속성(續姓)이다.
도안(道安) 함(咸)ㆍ최(崔)ㆍ백(白)ㆍ이(李)ㆍ신(申)ㆍ차(車) 속성(續姓)이다. 난곡(薍谷) 신(辛). 염곡(念谷) 신(申)ㆍ신(辛).
【풍속】 검소하고 인색한 것을 숭상한다 《지지(地志)》
【산천】 두타산(頭陀山) 고을 서쪽 20리에 있다. 또 진천현조(鎭川縣條)에 보인다. 좌구산(坐龜山) 고을 남쪽 10리에 있다. 칠보산(七寶山) 고을 동쪽 6리에 있다. 추성산(杻城山) 고을 서쪽 20리에 있다. 송현(松峴) 고을 동쪽 7리에 있다. 사현(蛇峴) 고을 북쪽 15리에 있다. 초현(椒峴) 고을 남쪽 15리에 있다. 구자은현(仇自隱峴) 고을 동쪽 7리에 있다. 반탄천(磻灘川) 고을 서쪽 27리에 있다. 그 근원이 셋이 있는데, 하나는 진천현(鎭川縣) 북쪽에서 나왔고, 하나는 음성현(陰城縣) 박이현(朴伊峴)에서 나왔으며, 하나는 좌구산에서 나와서, 청주 오근진(吳根津)으로 들어간다.
【토산】 백옥(白玉) 고을 동쪽 사산리(蛇山里)에서 생산된다. 꿀[蜂蜜]ㆍ지치[紫草]ㆍ인삼(人蔘)ㆍ지황(地黃)ㆍ복령(茯苓).
【학교】 향교(鄕校) 고을 동쪽 2리에 있다.
【역원】 시화역(時和驛) 고을 서쪽 17리에 있다. 백모로원(白毛老院) 고을 북쪽 18리에 있다. 수정천원(水精遷院) 고을 동쪽 30리에 있다. 장후원(長候院) 고을 서쪽 15리에 있다.
【불우】 구석사(龜石寺) 좌구산(坐龜山)에 있다. 세상에서 전하는 말에, 이 고을을 세웠을 적에 이산(離山)이 높은 것을 꺼려서 이 절을 세우고 수족(水族)의 신(神)인 거북의 이름을 따서 구석(龜石)이라고 했는데, 이에 대한 조회(曺繪)의 기문이 있다. 장갑사(長岬寺) 좌구산에 있다. 연천사(連天寺) 추성산(杻城山)에 있다. 수암사(水菴寺) 칠보산(七寶山)에 있다.
【사묘】 사직단(社稷壇) 고을 서쪽에 있다. 문묘 향교(鄕校)에 있다. 성황사 고을 서쪽 5리에 있다. 여단 고을 북쪽에 있다.
【고적】 고도안(古道安) 고을 서쪽 15리에 있다. 정안부곡(靜安部曲) 도안현(道安縣)에 있다. 곡은곡소(谷銀谷所)ㆍ염곡소(念谷所)ㆍ유통소(游筒所) 모두 청당현(靑塘縣)에 있다. 난곡소(薍谷所) 고을 동쪽 12리에 있다.
 
(참고자료-지명유래 - 모래내와 싸릿재 )

모래내와 싸릿재, 언뜻 생각하기에는 이 두가지 지명은 전혀 상관관계가 없는 말로 보인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하면 이 두개의 지명은 서로 밀접한 관계 아니 서로 같은 의미를 지닌 말임을 알수 있다.

모래내와 싸릿재를 현재의 글자대로 해석을 하면 모래와 싸리나무라는 의미가 되는데, 우리나라의 지명에 이러한 이름이 들어가는 지명이 여러곳 나온다.

첫째, 모래라는 내용의 지명의 예를들면 모래내나 모래재, 사리리, 사곡, 사천 등 여러 가지 종류로 부르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단순하게 모래가 많아서 그러한 이름이 생겼을 것이라고 가볍게 넘어가기가 쉬운데 이것은 그러한 것을 의미하는 지명이 아니라는 것이다.

만약에 이것이 모래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다음과 같은 의문점이 생긴다. 일반적으로 모래는 하천의 하류 또는 강가나 바닷가 등에 많은데 이러한 지명이 나오는 곳의 대부분은 그와는 거리가 먼 산등성 또는 골짜기 등이 대부분이 아닌가?

둘째, 싸리나무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해도 그렇다. 이러한 내용을 의미하는 지명에는 싸릿재 이외에 싸릿골 등이 있으며 이것은 싸리나무가 많아서 생긴것이라고 하는데 싸리나무는 우리나라 전국에 고루 분포되어 있는 나무로 어느 특정한 곳에만 집중 분포되어있는 나무도 아니며, 만약 이러한 의미로 지명이 생겼다고 하면 다른종류의 나무의 이름을 딴 지명도 생겨나 모든산이나 골짜기, 고개가 나무와 관련된 지명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리고 어떠한 특산물과 지명이 서로 연관이 되는 경우는 없다고 본다.

예를들어 우리나라에는 농산물과 임산물, 광산물 등 특산물로 유명한 지명이 많은데 과연 지명과 특산물이 서로 연관이 되는곳이 있는가?

따라서 필자는 모래내와 사릿재가 모래와 사리나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소나 말의 고삐인 사리 또는 뱀의 형상을 말하는 것을 모래로 잘못 해석한 것이라는 주장을 하는 것이며 이러한 해석을 하는 근본은 풍수지리학에 있음을 밝혀둔다.

즉 모래내는 뱀을 의미하는 사(蛇) 또는 고삐인 사리의 사를 모래로 잘못 해석한 것이며, 싸릿재는 사리의 발음이 변하여 싸리가 된것이라는 주장을 하는 것이며 이러한 지명이 나오는 곳의 예를 들어보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