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름과 머무름 속에서

산과 들/물길 따라서

금가면 두무소

산골어부 2007. 2. 11. 12:21

 

 

 


 

금가면 하담리와 목계리 사이에 걸쳐 있는 큰 규모의 웅덩이로 상류 조정지댐에서 대량으로 방류를 하면 상류 쪽에서 물이 넘쳐 들어오면서 자원이 유입된다. 물이 맑고 주변경관이 뛰어나 가족 나들이터로도 적격인데, 특히 올해는 최하류에서 신목계대교 공사가 진행되고 있어 다리 밑의 시원한 그늘까지 덤으로 생긴 상태다.

현재는 평균 6~7치 급의 토종붕어가 낚이지만 큰비가 와서 남한강의 물의 넘쳐흐르면 대량의 어자원이 유입될 것으로 보인다. 이때는 월척급 이상도 노려볼 만 한데, 해뜰 무렵과 해질 무렵이 가장 입질이 잦다. 또 낮낚시와 밤낚시는 잘 안되는 편이니 피하는 것이 좋겠다.

그 외에도 조정지댐의 방류가 조과에 영향을 미치는데, 방류가 시작되어서 수위가 올라가면 호조황을 기대할 수 있다. 만약 방류량이 늘어서 물이 많이 흐르게 되면 찌맞춤을 약간 무겁게 해서 흐르지 않게 잡아주는 것이 좋다.

미끼는 지렁이가 단연 우세한데, 새우가루가 많이 첨가된 떡밥과 함께 짝밥으로 써주면 마리수에서 다소 앞선다. 갈수위 때는 보통 3칸 대 이하를 쓰지만, 수위가 많이 올라가면 3칸 대 이상의 긴대를 써주는 것이 좋겠다.

▶교통편- 가금면에서 금가면 방면으로 조정지댐을 건너 좌측으로 진행한다. 3km 가량 진행하다 좌측에 ‘두담마을’ 돌푯말이 있는 곳에서 좌회전한다. 1.5km가량 더 진행하면 두모소에 다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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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담리(荷潭里)

⊙ 하담-리(荷潭里)[하담, 하소]【리】금가면 법정리동의 하나. 본래 충주군 가차면(加次面)의 지역으로서 하소(荷沼)가 있었으므로 하소 또는 하담(荷潭)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두담리(斗潭里), 상잠리(上岑里), 사랑동(沙浪洞), 사천리(沙川里)의 각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하담리라 해서 금가면에 편입됨. 현재 행정리동으로 하소, 두담이 있음.

* 하소(荷沼)

●하-소(荷沼)【마을】하담리 행정리동의 하나. 19번 도로에서 좌회전하여 25번 군도를 따라 3.5㎞ 지점 잠병리 서쪽에 위치 함. 서쪽으로 남한강에 접하고 북쪽은 엄정면에 접함. 1997년 8월 조사시 127호, 414명의 주민이 살고 있으며, 자연마을로 씨름터거리, 새마을, 오미, 사거리, 웃말, 아랫말이 있음.

●개-터【들】사거리 남서쪽의 들. 장마때 침수 후 가는 흙이 많이 쌓여 붙여진 이름.

●뒷골 공동-묘지【공동묘지】새마을과 씨름터거리 사이에 있는 공동묘지. 일제 때부터 공동묘지로 쓰이고 있음.

●모현-정(慕賢亭)【정자】사후봉에 있는 정자. 조선조 선조때의 선비 모당(慕堂) 홍이상(洪履祥)을 추모하여 유림이 세운 정자.

●사-거리【마을】하소에 속한 자연마을의 하나. 과거 금가면 소재지로 면사무소, 지서, 금가 초등학교가 있었으나, 군사시설로 인해 다른 지역으로 이주했음.

●사휴-봉(四休奉)【산】하소 아랫말 서쪽에 있는 남한강가에 있는 산. 높이 85.2m 산 정상에 모현정이 있음.

●새-마을(새말)【마을】하소에 속한 자연마을의 하나. 오미와 씨름터 거리 사이에 위치함. 1972년 수해 이후 조성된 마을.

●씨름터-거리【마을】사암리 기곡 마을 서편에 있는 하소에 속한 자연마을. 옛날 씨름터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 함.

●하강-서원(荷江書院)【서원】홍이상선생의 덕을 기리기위해 정조10년(1786) 건립하였다가 고종1년 서원 철폐령에 따라 문을 닫음. 그후 1974년 5월 유림에 의하여 중건됨. 홍이상선생의 위패가 모셔져 있음.

●하소-나루터【나루터】하소에서 가금면 장천리 저우내로 건너던 나루터. 주로 하소 주민들이 저우내들 벌터구니에 농사를 짓기 위하여 사용하였으나 현재는 쓰이지 않고 있음.

* 두담(斗潭)

●두-담(斗潭)[두무소]【마을】하담리 행정리동의 하나. 원래 하소 북쪽에 위치하며, 안말, 바같말, 건너말, 웃거리등의 자연마을이 있었으나 가금면 장천리 저우내들에 공군 사격장이 들어서면서 현재의 위치 즉, 하소에서 24번 군도를 따라 가다가 206번 도로로 좌회전 0.5㎞ 지점으로 집단 이주함.

●됫-산【산】두담 안말 서쪽 강가에 있는 산. 높이81.4m.

●두무-소【소】두담마을 앞 남한강가에 있는 소(沼).
●두무소-고개【고개】두무소 마을에서 엄정면 목계로 넘어 다니던 고개.

●안-산【산】두담, 안말 동쪽에 있는 산.
●웃-거리【마을】두담에 속했던 자연마을의 하나. 바랑골 동편에 위치함.

●장대산(將臺山)【산】→ 장태산.

●장태-산(將台山)[장대산]【산】두담 북쪽에 위치한 산. 높이132.9m. 옛날 장대(將臺)가 있었다고 함.

 

 

 

 

 명당 찾던 두무소 (금가면)

 
  
조선 땅에 그 지세가 신묘해서
  호걸인재가 많이 배출된다는 말을 듣고
    항상 조선 땅을 밟아 보고자 하던 차에..


금가면 하담리 "목계나루"에서 올려다 보이는 섬이 있는데 그 바위 밑이 깊게 파여 "두무소"라고 불리우고 있다. 이 곳은 낚시터로도 알려진 곳이며 주민들 말에 의하면 그 소의 깊이는 명주실 한 꾸리가 풀리고도 모자랄 만큼 깊다는 것이며 가금면 "장자늪"으로 통하고 있는데 말에는 용구새 만한 물지네가 가끔 바위에 나온다는 공포의 소이기도 하다.
 임진왜란때 조선의 원군으로 들어온 이 여송은 그의 참모에 두사충이라는 모사를 대동하고 다녔다. 그들은 항상 명산대천에 대한 비혈을 연구탐색하는 특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중국대륙에 있을 때도 명당을 발견하기 위해서 탐사를 많이 했는데 소문에 해동 조선땅에 그 지세가 신묘해서 호걸인재가 많이 배출된다는 말을 듣고 항상 조선땅을 밟아 보고자하던 차에 사실 조선에 나와보니 발길 닿는 데마다 명당이 아닌 곳이 없었다. 그때 그들은 조선원조 보다는 장차 조선 땅에서 왕후장상이 배출되지 않도록 명혈을 계획적으로 끊어 놓는 것을 우선으로 하고 돌아다녔으며 자기들이 조선 땅에서 죽을 경우 자기들 묻힐 명당을 찾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이 무렵 두사충이 금가"부담"에서 강심에 있는 섬자리에 올라 그 자체의 경승에 매혹되어 사방을 전망하다가 서편을 바라보더니 눈을 뗄 줄 몰랐다.


   
두사충이 춤을 추던 곳이라 해서 두무소

 자기가 이때까지 찾아 다니던 비선혈이 강 건너 장미산 기슭에서 발견되었던 것이다. 두사충이 몇 번을 확인해 보아도 그곳은 분명 학비등천형(鶴飛登天形)으로 잡고 지필을 들어 산세도를 그린 다음 너무 기뻐서 춤을 덩실덩실 추었다고 한다. 그래서 두사충이 춤을 추던 곳이라고 해서 두무소라고 부르고 있다. 그런데 두사충은 배를 타고 강을 건너 현장으로 달려가 보고 실망을 했다고 한다. 그것은 그토록 좋아 보이던 명당이 아무 것도 아닌 평지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두사충은 몇 번이고 두담에 와서 보고 또 현장에 가서 보고 하더니 마침내 그 스스로가 그와 같은 대지가 조선사람이 아닌 자기에게는 운이 닿지 않음을 깨닫고 본국에 묻힐 것을 결심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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