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남한강 두무소
금가면 하담리「목계나루」에서 올려다 보이는 섬이 있는데 그 바위 밑이 깊게 파여「두무소」라고 불리우고 있다.
이곳은 낚시터로도 알려진 곳이며 주민들 말에 의하면 그 소의 깊이는 명주실 한 꾸리가 플리고도 모자랄 만큼 깊다는 것이며 가금면「장자늪」으로 통하고 있는데 말에는 용구새만한 물지네가 가끔 바위에 나온다는 공포의 소 이기도 하다.
임진왜란때 조선의 원군으로 들어온 이여송은 그의 참모에 두사충이라는 모사를 대동하고 다녔다. 그들은 항상 명산 대천에 대한 비혈을 연구 탐색하는 특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중국 대륙에 있을 때도 명당을 발견하기 위해서 탐사를 일삼았는데 소문에 해동 조선 땅에 그 지세가 신묘해서 호걸인재가 많이 배출된다는 말을 듣고 항상 조선 땅을 밟아 보고자 하던 차에 사실 조선에 나와 보니 발길닿는 데 마다 명당 대지가 아닌 곳이 없었다.
그때 그들은 조선 원조보다는 장차 조선땅에서 왕후장상이 배출되지 않도록 명혈을 계획적으로 끊어 놓는 것을 우선하고 돌아 다녔으며 자기들이 조선땅에서 죽을 경우 자기들 묻힐 명당을 찾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이럴무렵 두사충이 금가「두담」에서 강심에 있는 섬자리에 올라 그 자체의 경승에 매혹되어 사방을 전망 하다가 서편을 바라 보더니 눈을 뗄줄 몰랐다.
자기가 이때까지 찾아 다니던 비션혈이 강건너「장미산」기슭에서 발견되었던 것이다. 두사충이 몇번을 확인해 보아도 그곳은 분명 학비등천형으로 잡고 지필을 들어 산세도를 그린다음 너무도 기뻐서 춤을 덩실덩실 추었다고 한다.
그래서 두사충이 춤을 추던곳 이라고 해서 [두무소]라고 부르고 있다. 그런데 두사충은 배를 타고 강을 건너 현장으로 달려가 보고 실망을 했다고 한다. 그것은 그토록 좋아 보이던 명당이 아무것도 아닌 평지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두사충은 몇번이고 두담에 와서 보고 또 현장에 가서 보고 하더니 마침내 그 스스로가 그와 같은 대지가 조선 사람 아닌 자기에게는 운이 안 닿는다고 깨닫고 본국 에 묻힐 것을 결심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