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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창경원과 창경궁

산골어부 2009. 8. 3. 16:24

서울대학교 병원에 갔다가 창경궁을 둘러 보았습니다.

어부가 어렸을때, 가고 싶었던 곳 중에 하나가

창경원과 어린이 대공원이었습니다.

두 곳 모두 동물원과 식물원이 있던 곳으로

충주 촌놈에게는 동경의 대상이었습니다.

 

어부가 창경원을 구경해본 것도

창경원이 서울대공원으로 이전하기

직전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이제는 창경궁으로 다시 복원되어

시민의 휴식처로 변해 있지만,

아직도 식물원은 초라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창경궁이 복원되었다기 보다는

동물원과 식물원으로 쓰이던 시설물들만 철거되어 있을 뿐 입니다.

창경궁을 둘러 보다가 어부가 좋아하는 창덕궁과 종묘를 갈려고 했는데,

창경궁과 창덕궁의 관람구역이 달라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말로만 외치는 연계관광이 서울 한복판에서도

이루어지질 않는 것에 실망을 했습니다.

창경궁에서 덕수궁까지는 어렵더라도

창경궁에서 경복궁까지는 ~~~~

 

 

창 경 궁 

 

종 목 사적  제123호
명 칭 창경궁(昌慶宮)
분 류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궁궐·관아/ 궁궐
수량/면적 218,148㎡
지 정 일 1963.01.18
소 재 지 서울 종로구  와룡동 2-1
시 대 조선시대
소 유 자 국유
관 리 자 창경궁
일반설명 | 전문설명

조선시대 궁궐로 태종이 거처하던 수강궁터에 지어진 건물이다.

성종 14년(1483)에 정희왕후, 소혜왕후, 안순왕후를 위해 창경궁을 지었다. 처음 지을 당시의 건물은 명정전·문정전의 정전과 수령전·환경전·경춘전·인양전·통명전들의 침전이 있었으며, 양화당·여휘당·사성각 들이 있었다. 조선시대의 궁궐중에서는 유일하게 동쪽을 향해 지어졌다.

처음에는 별로 사용되지 않다가 임진왜란 때에 경복궁·창덕궁과 함께 불에 탄 이후, 창덕궁과 같이 다시 지어져 조선왕조 역사의 중심 무대가 되었다. 숙종의 사랑을 받던 장희빈이 인현왕후를 독살하려는 못된 행동을 저지르다가 처형을 당했는데, 당시 희빈은 주로 취선당에서 생활하였다. 또한 영조는 아들인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죽이는 일을 저질렀는데, 세자가 갇힌 뒤주를 궁궐 안의 선인문 안뜰에 8일간이나 두었었다.

창경궁은 순종이 즉위한 후부터 많은 변화가 있었다. 1909년 궁궐 안의 건물들을 헐어내고 동물원과 식물원을 설치하였으며, 궁의 이름을 창경원으로 낮추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1984년 궁궐 복원사업이 시작되어 원래의 이름인 창경궁을 되찾게 되었고, 궐 안의 동물들을 서울대공원으로 옮기면서 벚나무 역시 없애버렸다.

장조·정조·순조·헌종을 비롯한 많은 왕들이 태어난 궁으로, 광해군 때 다시 지어진 정문·정전들이 보존되어 있으며, 옆에 있는 창덕궁과 함께 조선시대 궁궐의 역사를 살피는데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유적이다.

 

 

 

 

 

 

 

출처 : 충주호 산길 따라 이어지는 MTB 여행
글쓴이 : 산골어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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