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담소/추억과 생각

얼음배와 나이롱 바지의 추억

산골어부 2010. 2. 22. 14:20

 

 (얼음배-자료사진)

 

산골어부가 어렸을때에는

얼음배라는 것을 타고 놀았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해빙기에는

두껍게 얼었던 얼음이 녹으면서 

개울 가장자리의 얼음들이 남는다.

썰매를 하루 종일 타는 것도 지겹고,

녹아 내리는 얼음판에서 썰매를 타다가 보면

썰매의 칼날이 얼음에 박히기도 하고,

약한 부위에서 물이 올라와 옷을 버리기 일쑤다.

그래도 잘 얼은 얼음판에서 노는 것보다도

더 재미있고 신나는 일이다.

또한 약해진 얼음들을 깨서 타고 노는 것이 얼음배 타기다.

 

1974년 2월 압춘 무렵일 것이다.

어머니께서 초등학교 졸업과 설빔으로

멋있는 나이롱 바지를 사 주셨다.

오랜만에 얻어 입은 옷이라서 무척 아끼던 바지였다.

그러던 어느날 동네 아이들과 얼음배를 타러 갔다.

얼음배를 띄우기 위해 도끼와 장대로 얼음을 깨다가 보면

얼음 밑으로 놀란 고기들이  돌아 다닌다.

고기도 잡으며 얼음배를 타다가 보면은

옷을 버리는 것은 흔한 일이다.

 

추운 날씨에 얼음배를 타기 위해서는

불장난을 빼어 놓을 수가 없다.

물가에는 모닥불을 피워놓고

손발도 녹이고, 옷도 말리고,

고기도 구워먹고, 고구마도 구워먹는 것이 재미다.

얼음배는 얼음판 밖으로 장대를 밀기도 하지만

얼음배 한 가운데에 구멍을 뚥어서

그 구멍에 막대기를 꼭아서 움직이기도 한다.

 

내가 타고 놀던 얼음배가

두 동강이 나면서 물에 빠지고 말았다.

물어 빠진 생쥐가 되어 오돌오돌 떨면서도

집에 들어가서 어머니께 혼나지 않기 위해서는

모닥불에서 옷을 말려야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은 바보같은 일이지만은

어린 마음에 추운 것보다는 혼나는 것이

더 무섭기 때문이다.

 

나이론 바지를 입은채 옷을 말리다가

바지가 모닥불 열기에 녹아서 오그라 들었다.

그래서,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무척 혼이 났다.

그리고, 얼마 후에

그 망가진 바지를 입고

큰형님 대학 졸업식에 가야만 했다.

그 당시만 해도 시골촌놈이

충주시내를 구경하는 것도 무척 힘이 들었다.

지나는 사람들이 내 바지를 쳐다보는 것도 아닌데,

창피한 마음에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조심조심 걸어 다녀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