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 들/물길 따라서

탄금대 샛강

산골어부 2010. 3. 10. 22:46

유송리 놀골에서 바라본 탄금대 제방 

 

4대강 사업이 진행 중인 목행지구 생태공원 

 

탄금대 샛강과 탄금제방

 

탄금대 샛강과 섬뜰 

 

능암에서 섬뜰로 이어지는 다리 

 

능암마을 앞 탄금대 샛강 

 

 능암마을 앞 탄금대 샛강 

 

 능암마을 앞 탄금대 샛강 

 

칠지마을 앞 섬뜰 

 

 섬뜰의 소나무와 플라타나스

 

 유엔평화 공원으로 막혀버린 탄금대 샛강(구 쓰래기 매립장)

 

 탄금대 샛강에 조성된 체육공원과 유엔평화공원

 

탄금대 야구장 아래의 배수지 (구 MBC 중계소 근처)

 

 탄금대 배수지와  비닐하우스 채소단지

 

 

탄금대 지형도

 

 

 

칠금동(漆琴洞)

 

▣ 칠금-동(漆琴洞)【동】본래 충주군 북변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금대리(琴臺里), 신촌리(新村里), 칠지동(漆枝洞), 능암동(陵岩洞), 봉계동(鳳溪洞)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칠지와 금대의 이름을 따서 칠금리라 해서 읍내면(충주시)에 편입됨.

●개내-모퉁이【들】새말 뒤에 있는 들. 근처에 개울이 있음.

●그란-이【내】새말 앞에 있는 내.

●금-대(琴臺)【마을】옻갓 서쪽에 있는 마을. 탄금대가 있음.

●금제-교(金堤橋)【다리】→ 새말다리.

●낙수당-거리【늪】탄금대 앞 개울에 있는 늪. 낚시터가 됨.

●대문-산(大門山) [견문산]【산】금대 북쪽에 있는 산. 반송산(盤松山)의 줄기로 남한강이 견문산으로 흘러 여름 장마 때면 달천평야가 물에 잠기어 농사에 피해가 크므로, 김생(金生)이 이를 근심하여 하룻밤이 도술을 부려 반송산의 중허리를 끊어 남한강 물을 견문산 북쪽으로 흐르게 하고, 견문산 서쪽에서 달천강과 한강 상류와 합류하게 만들었다 함. 속설에 의하면 개벽 때 달천강 상류인 보은 속리산으로부터 개 모양의 산이 흘러 와서 들어누었다 하여 견문산이라 하며, 그 후 잘못 읽어 지금은 흔히 대문산이라 함.

●동산-너메【들】탄금대 뒤 동산 너머에 있는 들.

●똥골-모텡이【모롱이】탄금대 북쪽 강가에 있는 벼랑 모퉁이. 골짜기가 으슥함.

●멍에-배이【논】옻갓 남쪽 앞에 있는 논. 멍에 모양으로 굽었음.

●물못-거리【길】중간모텡이에 있는 길. 지대가 낮아서 장마 때면 마을의 물이 모임.

●물방통-거리【터】새말에 있는 터. 물레방아가 있었음.

●밭-가운데【마을】옻갓에 딸린 마을. 전에 밭 가운데다 마을을 이루었음.

●새-말 [신촌]【마을】옻갓 서남쪽에 새로 된 마을.
●새말-다리 [금제교]【다리】새말에 있는 다리. 금릉동의 금제에서 흘러오는 내에 놓임.

●새봇-들【들】금제교 좌우에 있는 들.

●서낭-댕이【길】아래모퉁이에 있는 길. 서낭당이 있음.

●섬-들【마을】옻갓 북쪽 내 건너에 있는 마을. 삼면이 물로 둘러싸여 있었으나 제방축조후 잔디구장건설등으로 옻갓과 연결되었음.

●세월-교 [회다리]【다리】새말과 탄금대 중간 지점에 있는 양회 다리로 잔디구장과 도로건설시 그대로 매몰되었다함.

●소시랑-배미【논】옻갓 앞에 있는 논. 지형이 쇠시랑처럼 생겼다 함.

●아래-모텡이【마을】옻갓 아래, 모퉁이에 있는 마을.

●열두-대 [십이대]【바위】탄금대 북쪽 절벽에 딸린 바위. 임진왜란 때 신립(申砬)장군이 왜병을 만나 격전을 벌였을 때, 군사들을 격려하기 위해서 100여 척이나 되는 이 절벽을 열두 번이나 오르내렸다 함.

●옻-갓 [漆枝]【마을】칠금리에서 으뜸되는 마을. 옛날 근처에 옻나무가 무성하였다 함.

●옻갓-늪 [칠지소]【늪】옻갓에 있는 늪.

●웃-모텡이【마을】옻갓 위쪽, 모퉁이에 있는 마을.

●육각-정(六角亭) [천운정]【정】금대 뒷동산에 있는 육각의 정자. 조선조 고종(高宗) 광무(光武) 7년(1903)에 충청북도 관찰사 김석규(金錫圭)가 그 할아버지가 충주목사로 있을 때, 현 교육청 터에 있던 상련당(上蓮塘) 가운데다 석가산(石假山)을 모으고 모정(茅亭) 네 칸 반을 짓고 삼현육각의 풍악을 벌이면서 즐겁게 놀았으므로, 그 뜻을 이어받아 육각정을 신축하고 정자 이름을 '밝은 하늘빛과 구름의 그림자가 함께 감돈다(天光雲影共徘徊)'는 뜻에서 천운정(天雲亭)이라 하였다 함. 그 후 광무 10년(1906)에 현 충주시교육청 자리에 공립 보통학교를 건축한 후, 운동장을 만들기 위해서 연당을 메울 때, 현판을 일인들이 훔쳐 가고, 천운정만은 사직산으로 옮겨 임시 사정(射亭)으로 쓰다가, 1955년에 읍장 박승두(朴勝斗)가 탄금대로 옮겨 세우고 그후 2충 정자로 새로 세웠음.

●정자-모텡이【모롱이】영호정이 있는 모롱이.

●조개섬-들【들】얹힌바우 아래에 있는 들. 전에 조개가 많았다 함.

●중간-모텡이【모롱이】옻갓 중간에 있는 마을.

●지덕-너메【터】대문사 앞에 있는 터.

●지등-개【내】탄금대 동쪽에 있는 개울. 빨래터가 있음.

●참나무-거리【터】아래모텡이에 있는 터. 전에 참나무가 서 있었음.

●충혼-탑(忠魂塔)【탑】탄금대 위에 있는 충혼탑. 1955년 10월에 대한 상의군인회 충북지부 충주분회와 대한민국 제대 장병 보도회에서 해방 이후에 전몰한 장병과 경찰관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서 세우고, 해마다 현충일에 제사를 지냄.

●칠-지(漆枝)【마을】→옻갓.

●칠지-소(漆枝沼)【소】→옻갓늪.

●탄금-대(彈琴臺)【고적】대문산 위에 있는 대. 신라 진흥왕 때 가야국의 우륵(于勒) 악사가 신라에 귀화하여 이곳에서 신라의 악사 법지(法知), 계고(階古), 만덕(萬德)의 세 제자에게 가야금을 가르쳤으며, 늘 대문산의 풍취를 상미하고 산상 대석에 앉아서 가야금을 탔다 함. 또한 이곳은 임진왜란 때, 순변사 신립(申砬)장군이 휘하에 8,000여 병사를 거느리고 배수진을 치고 왜장 가등청정과 소서행장을 맞아 분전하였으나 참패하자, 천추의 한을 품고 장강백파에 투신, 장결한 고전장의 유적이기도 함. 석기 시대의 토기, 고리돌(環石), 숫돌 들이 나왔음. 현재 충주시의 명승지로 관광객이 끊임없이 찾아들고 있음.

●합수-나루터[합수진, 합수머리]【나루터】탄금대 서쪽 밑에 있는 나루터. 북쪽에서 흘러오는 남한강 본류와 서쪽에서 흘러오는 달천(達川)이 서로 합수하는 목이 됨.

●합수-머리【나루터】→ 합수나루.

●회다리-목【목】회다리 근처에 있는 목. 탄금대(彈琴臺) 옻갓 서쪽 대문산(大門山) 기슭으로 늘어선 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