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충북 괴산 백마산 백운사
백마산 백운사를 어떻케 설명해야하나,
백운사 입구의 부도들을 바라 보면서
고민에 빠진다.
사찰에서 풍겨 나오는 정감은 아니더라도
부처님의 자비와 깨달음을
느끼게하는 가람배치라도 ~~~
하지만 백마산 백운사는 과욕 때문에
흉물로 변해버린 중창불사들 ~~~~
부처님의 가르침은 무엇일까 ?
카메라에 담아야 하나.
사진 속에 숨겨진 의미를 ~~~
충북 괴산 백마산 백운사
백운사
백운사의 역사는 1967년 향토사가인 윤병준(尹秉俊)이 지은 『백운사지』가 절에 남아 있어 참조가 된다. 이 책은 필사본 형태로 1967년에 지었다가 1979년에 다시 펴낸 것으로 그 때까지 전해오는 절의 연혁을 모으고 나름대로 고증해서 절의 역사를 역은 책이다.
사지에 의하면 절은 고려시대인 1321년(충숙왕 8)에 대흥사(大興寺)라는 이름으로 창건되었는데 조선 영조 때 폐사되어 오랫동안 폐허가 되었다가 1930년에 이르러 하장우(河長雨)스님이 옛 대흥사 터에 초암을 짓고 백운사라 불렀다고 전한다. 이후 1933년에는 충청남도 아산 봉국사(奉國寺)의 송제윤(宋齊潤)스님이 이곳으로 와 대흥사터에서 약 200m 가량 올라온 지금의 자리에 법당을 새로 지었으며, 1956년에는 법당을 보수 단청하였다. 그 뒤 1960년에 화재로 절이 소실되었으나 송제윤스님의 제자인 강명현(姜明鉉)스님에 의해 곧 중건된다.
이후 백운사는 10여 년 전 효각(曉覺)스님이 주석하면서 대규모의 중창불사가 있었다. 1990년에 도로 포장 및 확장이 이루어졌고, 1994년에 약사전, 산령각, 용왕궁, 108계단을 조성하고 관음보살을 봉안했다고 한다. 또한 나한전을 비롯해 선방, 한방병원 등을 지을 계획이었으나 불사가 그만 중단되고 말았다.
최근에는 2005년 2월에 징관(澄觀)스님이 주지로 부임하여 임시법당을 짓고 석가, 관음, 지장의 삼존불상을 봉안하여 법등을 이어가고 있다.
백운사 찾아가는 길
중부고속도로 증평IC로 진입한 후 510번 지방도로를 이용하여 증평읍으로 들어온 다음 36번 국도를 이용해 음성으로 약 5km 정도를 가다보면 화성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우회전하여 괴산으로 가는 34번 국도에 들어서면 충북어린이집이 있고, 맞은편으로 천변길이 나온다. 이 천변길을 따라가면 그 끝머리에 소매저수지가 나오는데, 저수지 입구에서 산길을 따라 약 3km정도를 올라가면 백운사가 자리한다.
중앙내륙고속도로를 이용할 경우에는 수안보IC나 연풍IC에서 빠져나온 다음 괴산읍을 거쳐 34번 국도를 이용할 수 있다.
어! 법당에 부처님이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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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부가 풍년농사를 위해 논밭을 갈고 씨를 뿌리듯 사람의 마음도 갈고 닦아야 복을 짓고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
ⓒ2006 임윤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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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운사엘 가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사시사철 애절한 눈빛으로 기도를 하고 있는 보살상을 만날 수 있습니다. | |
ⓒ2006 임윤수 |
땅 일궈 씨 뿌리고, 잘 가꾼 농부가 좋은 결실을 거두듯, 삶의 과정에서 항시 뿌리고 가꿔야 거둬들일 수 있는 생의 열매가 바로 복입니다. 씨앗을 뿌리더라도 시간이 흘러야 결실을 거둘 수 있듯 복이란 것도 짓기를 하고 얼마간의 시간이 흘러야 거둘 수 있는 숙성된 결실입니다.
황금열매를 맺는 귀한 씨앗도 싹트고 뿌리내릴 수 없는 척박한 땅에 뿌려지면 아무것도 거둘 수 없습니다. 복이란 것도 역시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복이란 사람들이 일구는 심성의 밭에서 뿌리내리고 자랄 수 있는 오묘한 결실입니다.
'선' 심은데 '복' 나고, '악' 심은데 '벌' 난다
인간의 심성은 땅과 흡사합니다. 당장은 척박한 황무지일지라도 끊임없이 갈아주고 가꿔주면 차츰차츰 옥토가 되듯 사람들의 마음도 갈고 닦으면 선심(善心)이 됩니다. 복이란 것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는 박복하다고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지만 물지게를 져 나르고 돌을 골라내듯 그렇게 복을 짓다보면 언젠가는 그렇게 힘들이지 않아도 자연초처럼 꽃 피우고 열매를 맺어주는 복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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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세음보살상 뒤로 약사전이 보이고 그 약사전 뒤로 마음에 병조차도 치료해 준다는 마애약사여래부처님이 보입니다 |
ⓒ2006 임윤수 |
착하고 열심히 살지만 박복한 사람은 전생의 업보에 따른 삶을 살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니 현세동안 좋은 일로 공덕 많이 쌓고 참회하다 보면 전생의 업장이 모두 소멸되니 다음 생엔 분명 그 복이라고 하는 결실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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팥을 심었는데 콩 싹이 돋았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을 겁니다. 콩이나 팥이나 그 떡잎이 비슷하니 떡잎만을 보고 콩을 심었는데 팥이 돋았다고 착각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분명 콩 심은 데는 콩 나고 팥 심은 데는 팥이 납니다. 이게 윤회의 진리며 법계의 순리입니다.
사람들이 절을 찾아 복전함(福田函)에 보시금을 넣거나 공양물을 올리는 건 부처님에 대한 예경이기도 하지만 육바라밀의 으뜸이라고 하는 보시를 실천하는 것으로 말 그대로 복을 짓는 씨 뿌림이며 가꾸기입니다.
이렇듯 눈에 보이게 복전함에 보시금을 넣는 것만이 보시가 아닙니다. 낯선 사람이 길을 물을 때 친절하게 길 안내를 해 주거나, 휴대전화 한통을 빌려주는 것도 보시가 되니 복을 짓는다는 것이 그렇게 어렵거나 거창한 일만은 아닙니다.
백마가 나타났었다는 예사롭지 않은 절터 백운사
세속인의 혼잡한 심산만큼이나 구불구불한 산길을 올라가니 저만치 백운사가 보입니다. 일주문도 없고 사천왕문도 없지만 예사 터가 아닌 듯합니다. 굳이 풍수지리를 들먹이지 않아도 절터로는 명당이라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백마산은 해발 464m의 야트막한 산이지만, 조선 인조 27년에 백마가 나타나서 이 산기슭 일대를 돌아다니다 일생을 마쳤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는 산입니다. 또한 금강과 한강을 가르는 준령으로 백마산을 기준으로 백운사쪽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은 금강으로, 정상 뒤쪽으로 떨어지는 물줄기는 한강으로 흘러드는 경계의 산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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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구월심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한다는 것은 비토를 옥토로 가꾸는 과정일지도 모릅니다. 대리석으로 된 108 계단을 올라가면 마애약사여래부처님 앞으로 가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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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의 백운사는 삭막하기 그지없습니다. 버리지 못하는 삼독(三毒)의 끝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려는 듯, 한 스님의 무리한 불사가 우매함과 욕심의 상흔으로 흉하게 남아있습니다.
다행스럽게 2005년 초부터 주석하기 시작한 징관(澄觀)스님이 주변을 정비하고 있으니 머지않아 입구에 있는 5기의 부도에 걸 맞는 좋은 도량으로 다시 그 모습을 갖추게 되리라 기대됩니다.
부도 밭을 지나 조금 더 올라가면 백운사 경내입니다. 백운사 경내는 가파른 경사를 이루고 있습니다. 전각들과 불보살상 그리고 석물들이 높낮이를 달리하며 조화롭게 위치해 있습니다.
오른쪽으로 세워진 5층 석탑과 범종각을 지나면 정면으로 용왕궁이 보이고 그 좌측으로 흡사 배처럼 생긴 커다란 바위를 대하게 되니, 피안의 세계로 들게 하는 '반야의 용선'이라고 합니다.
용왕궁을 지나고 배바위를 지나면 저 아래서부터 보였던 관세음보살상 앞이 되고 관세음보살상 뒤쪽으로 약사전이 보입니다.
병든 마음까지 보듬어 주는 의사부처님, 마애약사여래불
관세음보살상을 지나 올라가는 약사전은 누각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계단을 올라 들어서게 되는 2층의 약사전엔 불상이 보이질 않습니다. 여느 절들의 적멸보궁처럼 법당 내 어디에도 모셔진 불상이 보이질 않습니다. 불상이 봉안되어있어야 할 정면은 통유리로 되어있고 불단엔 공양물들만 올려져 있을 뿐 당연이 모셔져 있어야 할 약사여래부처님이 보이질 않습니다.
두리번거리다 보면 통유리를 통해 산상 쪽에 마애약사여래입불이 보입니다. 약사여래불의 웅장함과 그 호상에 저절로 두 손 모아 합장하며 "나무약사여래불"을 되뇌게 됩니다. 약사전을 내려와 배바위 앞에서 시작되는 108 돌계단을 올라서면 약사전에서 합장예배를 올렸던 마애약사여래불 앞으로 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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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애불을 모시라고 일부러 이런 바위가 솟았고, 저런 바위들이 놓여 진 모양입니다. 약사여래불이 조성된 그 바위를 주불바위라고 하면 그 바위 위로는 비바람 막아줄 삿갓형태의 바위가 놓여있고, 좌우로 협시불 바위가 있습니다. |
ⓒ2006 임윤수 |
태고에 산세가 형성되면서 이곳에 마애불을 모시라고 이런 바위가 솟았고, 저런 바위들이 놓여 진 모양입니다. 약사여래불이 조성된 그 바위를 주불바위라고 하면 그 바위 위로는 비바람 막아줄 삿갓형태의 바위가 놓여있고, 좌우로 협시불 바위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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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사여래부처님의 왼손에 들고 있는 약병에는 인간들의 육신에 병 분 아니라 마음에 병까지도 보듬어 주는 효험이 들어있다고 합니다. | |
약사여래불은 보통 왼손에 약병을 들고 있고, 큰 연화(蓮花)에 올려진 모습으로 조성되며 일명 '대의왕불(大醫王佛)'이라고도 부릅니다. 백운사 마애약사여래불 또한 전형적인 그 모습, 연꽃 받침에 왼손에 약병을 든 그런 모습입니다.
전국방방곡곡에 산재한 많은 마애불들이 대개는 미륵불이거나 아미타불입니다, 간혹 관세음보살상도 있지만 약사여래입불상은 흔치않으니 거의 볼 수가 없습니다. 더더구나 이 정도의 규모라면 그 크기 면에서도 국내 마애불 중 손꼽을 수 있는 숫자에 들듯합니다.
동방의 정유리세계(淨瑠璃世界)에 있다고 하는 약사여래부처님은 일찍이 보살행을 행하였고, 12 대원(大願)을 세워 그것을 완성하였으니 사바세계의 중생들이 겪고 있는 온갖 고통과 소원을 들어준다는 부처님입니다.
고통과 괴롬의 바다라고도 하는 사바세계에 사는 중생들이 감내해야 하는 심신의 고통을 덜어주고 위안을 주며 치료를 해준다고 합니다. 속세의 중생들에게 부과되는 고통은 몸을 병들게 하는 육체적 고통도 있지만 갈등과 번민에서 오는 정신적 고통도 있습니다.
사지가 뒤틀어지고 오장육부에 병마가 드는 것도 병이지만, 잃음에서 오는 상실감, 이루지 못함에서 오는 박탈감, 자만심에서 오는 교만함 등도 마음을 상하게 하니 이 또한 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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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위틈으로 비추는 약사여래불상이 마치 어둠을 밝히는 광명처럼 보입니다. |
ⓒ2006 임윤수 |
옛날, 전설에 등장하는 그런 스님과 석공들이 살아가던 시대, 역사책에서나 배우고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하였던 마애부처님이 현대사에 조성되었다고 하니 새삼 마음가짐이 달라집니다. 안동제비원 마애불이나 파주 용미리 마애불에서처럼 애틋한 전설은 들을 수 없었지만 바위부처님에 대한 경이로움과 경배로움은 더함도 덜함도 없었습니다.
석가탄신일을 찾아 뚜벅뚜벅 찾아가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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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바세계, 생로병사의 괴롬바다에서 고통의 풍랑을 막아주고 근심걱정 덜어 줄 지혜와 건강이 달릴 그런 복씨를 심어 주리니 복 짓고 복 받으라 합니다.
속세의 구불구불한 번뇌만큼이나 이리 굽고 저리 굽은 산길을 벗어나니 약사여래불 모셔진 백마산 정산이 저 만치 높게 보입니다. 구름은 흘러가고 바람은 불어옵니다.
그 오고감에도 깨달음이 실렸으니 백운사 가는 길은 복을 짓기 위한 밭갈이 걸음인 듯합니다. 며칠 남지 않은 석가탄신일에 밝혀질 자비의 등불하나 밝히러 뚜벅뚜벅 백운사를 찾아 가렵니다.
/임윤수 기자
덧붙이는 글 백운사 찾아가는 길
중부고속도로 증평IC → 510번지방도(증평) → 6Km(연탄 4거리) → 34번국도 → 화성교차로(IC로부터 10Km) → 도안3거리 → 괴산방향(34번국도) → 사리면소재지(IC로부터 18Km) → 음성방향(36번국도) → (구)백마초등학교 (이정표 IC로부터 21Km)) → 우회전(소매저수지) → 백운사367-821 충청북도 괴산군 사리면 소매리 (043)836-8813석가탄신일이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이럴 때 조용한 산사를 찾아 자비의 등불하나 밝혀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필자가 쓴 책 < 걸망에 담아온 산사이야기 >
에 실린 글에 사진을 더한 것입니다. - ⓒ 2006 오마이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