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귀래의 경순왕 경천묘와 연천의 경순왕릉
신라 - 경순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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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순왕(敬順王, 927~935; 재위)은 신라의 마지막 왕으로, 성은 김(金), 이름은 부(傅)이며 신라 문성왕의 후손이다. 경순왕이 경애왕의 뒤를 이어 즉위할 당시에는 각처에서 군웅이 할거하여 국력이 쇠퇴하고, 특히 후백제 견훤의 침략으로 영토는 날로 줄어들고 있었다. 이에 민심도 신흥 고려로 기울어지자 경순왕은 무고한 백성들이 더 이상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막고자 신하들과 큰아들 마의태자의 반대를 무릅쓰고 고려 왕건에게 평화적으로 나라를 넘겨 준 후, 왕위에서 물러났다. 이때 마의태자는 금강산으로 들어가고 막내아들 범공은 화엄사에 들어가 스님이 되었다. 귀부한 후, 경순왕은 태자의 지위인 정승공에 봉해지는 한편 유화궁을 하사받고 경주를 식읍으로 받아 최초의 사심관으로 임명되기도 하였다. 태조 왕 건의 딸 낙랑공주와 결혼하여 여러 자녀를 두었으며 43년 후인 고려 경종 3년(978년) 세상을 떠났다. 고려 경종 3년(978)에 승하한 후, 신라 유민들에 의해 경주로 모시고자 하였으나 고려 조정에서 “왕의 구(柩)는 백리 밖으로는 나갈 수 없다”하여 이곳 장단 고랑포 성거산에 왕의 예에 준하여 장례를 모셨다. 그 후 임진왜란 등으로 실전(失傳)되었다가 영조 23년(1747)에 후손에 의해 발견되었으나,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을 거치면서 또 다시 실전된 것을 1973년 이곳을 방어하던 육군장병에 의해 발견되어, 수차례의 정비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비각과 재실은 1987년 다시 건립 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