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련산성 화전민터에서
얼마 전에 보련산 보련산성을 답사하면서
보련산에 대한 기억을 회상해 보았다.
내가 어릴 적에는 보련산에서 산불이 자주 발생했다.
보련산에 산불이 발생하면 하루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산세가 험하고 큰 산이라서 2~3일 동안 계속되었다.
그리고, 동네 어른들은 산불의 발생원인을
마른 번개 때문이라고도 하고, 바위돌이 굴러 떨어져서라고도 하고,
바람에 나무끼리 부딪치는 마찰에 의한 것이라고도 했다.
물론 산불이 자연발화로 발생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 빈도수는 적으며 대부분이 사람에 의한 발화에서 기인한다.
내가 처음 보련산에 올랐을 때의 기억으로도
보련산에는 잦은 산불로 암릉지대를 제외하고는
잡목과 억새들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요즈음 억새밭으로 유명한 산들이 등산객들을 유혹하지만,
그 산은 산불로 인하여 민둥산이 되었거나,
화전민들이 살던 산구릉지의 농경지들이다.
하지만 억새밭은 천이과정을 거치면서 사라져간다.
산불이 지나고난 곳에는 고사리밭이 생겨나고,
그 다음은 억새밭 또 그 다음은 갈참나무.
그리고 마지막에는 소나무숲이 되어 버린다.
예전에도 어른들은 산불이 나뭇꾼이나 산나물을 채취하러 간
사람들의 소행인걸 알면서도 그 허물을 감추어주기 위해서
자연발화로 묵인해 준 것이 아닐까 ?
보련산 정상 동측 기슭에는 화전민들이 살았다고 한다.
그 험한 산중에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일까 ?
강원도 산골짜기는 첩첩 산중이라서 그에 적응하며 산다지만,
보련산 산기슭에서는 산 아래 마을들이 보이고
남한강변의 목계장터와 가흥장터는 물론이고
멀리 충주시내가 바라다 보이는데,
산 중에 사는 서러움이 얼마나 심했을까 ?
어릴 적에는 보련산성이라는 것을 몰랐다.
그리고 보련이와 장미의 성 쌓는 이야기도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전설따라 삼천리"로 알고,
보련산에 있는 돌무더기가 화전민들의 집터와
밭에서 골라낸 돌무기와 밭둑 정도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태어난 중원의 역사를 알면서 부터는
보련산의 돌무더기가 점점 사라져가는 것이 아쉽고,
성돌을 훼손한 화전민들이 원망스럽기까지 했었다.
지난 몇 년 동안 남한강 주변의 산성들을 돌아보면서
산성에 대한 시각도 변하여 이제는 복원에 대한 회의를 느낀다.
처음에는 조선시대의 성곽들이 좋아 보이다가
그 다음에는 잘 복원된 산성들이 눈에 들어오더니,
이제는 허물어져 사라져가는 성들이 더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엉터리로 복원된 유적지와 산성들을 보면은
차라리 복원하지 말고 자연상태로 보존했으면하는 바램과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을 역행하여 파괴하고
역사를 왜곡하는 것은 아닌지 ~~~~~
보련산 등산로 입구
보련산 등산로 입구 안내판
보련산 등산로 입구 등산로 안내판
보련산 재고개 사거리 이정표
보련산 정상의 전망대
보련산 정상 표지석
보련산 정상의 묘지
보련산 정상에서 바라본 충주기업도시현장
보련산 정상에서 바라본 국망산 줄기
보련산 정상에서 바라본 보련산성 남측치성터
보련산 정상에서 바라본 가섭산
보련산성 내 묘지
보련산성 내 묘지
보련산성 내 화전민 집터
보련산성 내 화전민 집터
보련산성 내 화전민 집터
보련산성 내 화전민 집터
보련산성 내 화전민 집터
보련산성 내 화전민 집터
보련산성 내 화전민 집터
보련산성 내 화전민 집터
보련산성 내 화전민 집터 부근의 단풍나무
보련산성 내 화전민 집터 부근의 단풍나무
보련산성 내 화전민 집터 부근의 농경지
보련산성 내 화전민 집터 부근의 농경지
보련산성 내 화전민 집터 부근의 농경지
보련산성 내 화전민 집터 부근의 농경지
보련산성 내 화전민 집터 부근의 농경지
보련산성 내 화전민 집터 부근의 농경지
보련산성 내 화전민 집터 부근의 농경지
보련산성 내 화전민 집터 부근의 농경지
보련산성 내 화전민 집터 부근의 농경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