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란 그늘 아래서/담론들

발치(發峙)는 죽령과 계립령을 잇는 고갯길이다.

산골어부 2013. 3. 18. 12:10

 

 

청계천은 청계천 복원공사로 서울시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되었으나, 충주천 하천정비사업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충주시 직동에서 살미면 재오개리를 잇는 발치재에는 재오개 도수로 터널이 만들어져서 충주호의 남한강물을 충주천으로 흘려보내는 수로공사가 완료되었지만, 현재까지도 충주천 복원사업과 재오개 도수로 통수가 언제까지 이루어질지 알 수가 없다. 또한 충주시 직동과 살미면 재오개리를 잇는 도로공사도 발치재 구간을 착공하지 못하고 있으며, 충주를 둘러싼 계명지맥의 충주시경계 종주코스(계명산-남산-발치봉-대림산)도 남산에서 발치봉 구간이 개설되지않아 재오개길로 우회하거나, 계명산과 남산, 대림산과 발치봉 코스로 분리되어 산행이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 광업소의 채석장으로 인하여 계명지맥을 종주하는 산행코스가 단절되었을 뿐만 아니라, 산행안전에도 위협이 되고 있다. 따라서 채석장 주위에 우회 산책로를 개설하여 등산객의 안전조치가 필요한 실정이다. 또한 계명지맥 산행후기를 보다가 보면 발티재 주변의 석축과 토취 흔적을 산성의 석축과 토루로 오인하는 글들을 볼 수 있었는데, 이는 산성이나 차단성(영액)의 흔적이 아니라, 산사태와 채석으로 훼손된 산사면을 복구한 석축으로 산성이나 유적지와 관련이 없으며 발치현(發峙峴)의 석축과 토취 흔적은 심항현(心項峴)의 영액(차단성)과는 다른 것이다.

 

 

 

발치(發峙)는 충주에서 죽령과 계립령을 잇는 고갯길이다.

 

발치봉과 발치재는 치(峙)를 티로 발음하여 발티봉과 발티재라고도 부른다. 치(티)는 오현봉수가 있는 수산면 오티리(오치리)와 유사한 지명유래로 크고 가파른 고개나 봉우리(峰)를 의미한다. 계명산과 남산 사이에는 마즈막재라고 불리는 심항현(心項峴)이 있고, 남산과 발치봉 사이에는 발치(發峙)가 있다. 심항현(心項峴)도 충청북도 각군읍지의 지도에는 심항현(心項峴)이 아니라, 심항치(心項峙)로 나타난다. 발치(발티고개)는 충주시 살미면 재오개리 도선동과  충주시 직동 발티마을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충주에서 죽령과 계립령을 잇는 첫고개알려진다. 발티(발티고개)는 문경새재로 통하는 육로가 개설되기 전까지 남한강과 낙동강을 잇는 고개인 죽령(봉화대로)과 계립령(동래대로)로 통하는 중요한 고개였으며, 북쪽에는 금봉산(남산)의 금봉산성(남산성)이 있고, 남쪽에는 대림산 대림산성이 마주하는 협곡에 위치한다. 

 

삼국사기에는 벡두대간인 죽령과 계립령을 신라의 아달라왕이 개척한 것으로 기록되며 발티재도 비슷한 시기에 생겨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조선시대의 각종 지리지와 지도에서는 발치현에 대한 기록은 없지만, 근세 향토자료지인 충청북도 각군읍지에 발치(發峙)가 표기되어 있으며, 1872년 지도에서는 대림산과 금봉산 사잇길이 영남대로인 동래대로와 봉화대로가 살미면 신당역에서 서로 연계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는 대림산 서편의 달천강변의 육로(동래대로)와 마즈막재(심항현)에서 남한강으로 이어지는 육로(봉화대로)가 홍수 인하여 범람하거나 유실되면 발티로 우회하여 활용한 것이 아닌가한다. 발치현(發峙峴)이 쇠락하고 심항현(心項峴)이 생겨난 것은 수로와 육로에 따른 군사의 관방체계와 교통체계의 변화에 따른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살미면 신당은 충주댐의 건설로 충주호에 수몰되어있다. 충주목의 진포(辰浦)와 동창(東倉), 신당진(新塘津)과 동악성(桐岳城), 광반석부곡(廣反石部曲)과 사을미부곡(沙乙未部谷) 등의 옛지명과 역사가 충주호에 사라져 발치현(發峙峴)도 그 역사와 함께 충주의 역사에서 사라졌다.

 

조선 고종 때 제작된 1872년 충주목 고지도에는 호암천은 사천, 교현천은 염해천으로 나타난다. 충주천의 옛 지명인 사천(호암천)은 발치봉 발치현(발티고개)에서 발원하여 직동(고든골)을 지나 계명산 자락의 지류(염해천)와 합류하여 남한강과 달천이 만나는 탄금대로 흘러간다. 충주에서 문경에 이르는 지역의 옛 지명인 사열이현(沙熱伊縣), 사을미부곡(沙乙未部谷), 그리고 문경의 고사갈이현(高思葛伊城)과  연풍의 상모현(上芼縣)과 고사리현(古沙里縣) 등에서 충주의 옛지명인 사천(모래내)와 사천성이 떠오른다. 충주와 청풍과 문경 사이에 위치하는 살미면의 옛지명은 사을미부곡 또는 고사리현으로 전해지는데, 이는 고구려의 옛지명인 사열이현(청풍현)과 고사갈이현(문경현.관문현)이 충주천의 옛지명인 사천과 신라의 사천성과 연관되어 잔존하는 것은 아닐까 ? 충주의 역사에서 고구려의 국원성과 신라의 중원경 역사가 천 년이고, 고려 부터 현재에 이르는 충주목의 역사가 천 년이다. 국원성과 중원경의 역사가 진행되는 천 년 동안에 충주읍성지역의 고대사는 무엇일까 ? 사열이현(沙熱伊縣)과 고사갈이현(高思葛伊城)이 신라의 사천성으로 변형된 것은 아닐까 ? 충주목과 충주읍성 지역의 잃어버린 고대사를 찾는 것은 남한강이 아니라, 백두대간인 소백산맥의 월악산과 주흘산 속에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

 

보련산성과 장미산성 일대에 있던 고구려의 국원성과 신라의 중원경이 고려의 충주읍성이 있는 남산성(금봉산성)과 대림산성 지역으로 이전하기 전에 존재한 지명이 사천성으로 추정하지만, 사천성에 관한 이야기는 민담으로 전해질 뿐이다. 사천와 사천개와 사천성의 유래로 이어지는 발치봉(發峙峰)원래 성사산(聖寺山)으로 불렀으나 충주시에서 지명을 변경하면서 발치와 발치현의 이름을 빌려 발치봉으로 개명을 했다고도 하지만 성사산(聖寺山)에서 성(聖)은 근래에 나타나는 것으로 성사산은 고유지명이 아니라 근래에 와전된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성사산(聖寺山)은 사찰 또는 선원에 관계된 지명이지만 성사산(聖寺山) 주변에는 그에 관한 유적지가 나타나질 않으며, 남산(금봉산) 자락의 창룡사와 탑대(현재 석종사) 부근에 오래된 사찰이 있었다고 전해질 뿐이다. 그리고, 충주천(사천 또는 호암천)은 발원지인 발치봉에서 시작하여 발치재에서 이어지는 협곡을 따라 흘러내리기에 발티고개는 충주천(사천)의 시발점이라 수 있다.

 

발치봉과 발치현을 답사하면서 채석과 산불로 훼손된 현장에서 자연생태복원을 떠올려본다. 발치재의 재오개 도수로는 충주댐의 남한강물을 충주천으로 흘려보내서 죽어가던 충주천을 되살리는 생태복원공사이다. 아직은 충주천 하천정비사업이 진행 중이지만  재오개 도수로가 아니더라도 충주천이 자생하는 하천이 되어 더 좋은 모습으로 충주의 역사에 남기를 바래본다. 그리고 발치현(발티고개)에 새로운 길이 개설되더라도 자연환경을 보존하면서 추진했으면 한다. 또한, 심항현(마즈막재))에 개설된 도로에 남산(금봉산)과 계명산을 잇는 생태통로를 조성하여 야생 동식물 뿐만 아니라 충주시민이 공감하는 역사문화 공간인 관문성(차단성)과  심항산봉수를 재현하여 계명산과 남산을 찾는 사람들에게 충주의 미래를 여는 좋은 공간을 조성했으면한다.

 

 

 

 

발티 마을비 

 

 발티 마을 전경

 

 발티 고개(본래 고개보다 절취된 상태)

 

 발티 고개(본래 고개보다 절취된 상태)

 

 발치봉 등산로(토루가 아니라 근래에 절취된 절개지)

 

 발치봉 등산로(토루가 아니라 근래에 절취된 절개지)

 

발치봉 등산로(토루가 아니라 근래에 절취된 절개지)

 

 발티 고개(도선동길)

 

 충주호와 도선동

 

 산사태 복구용 석축

 

 산사태 복구용 석축

 

 산사태 복구용 석축

 

 산사태 복구용 석축

 

 산사태 복구용 석축

 

 채석장

 

 채석장길

 

 발티 일대의 산불 흔적

 

발치봉에서 바라본 충주시

 

발티

 

  • [정의]

충청북도 충주시 직동살미면 재오개리 사이에 있는 고개.

  • [개설]

재오개리 발티마을 뒤에 있는 고개로서, 옛날 삼남대로로 통하는 대로의 첫 고개가 이곳이었다고 한다.

  • [자연환경]

충주의 진산인 남산대림산 사이에 위치하며, 남·북 산줄기가 동·서로 자르는 구조선을 따라 풍화, 침식되면서 낮아진 능선부가 고개로 활용된 것이다. 주변 산지와 함께 흑운모석영편마암(계명산층)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인접한 마즈막재와는 달리 비교적 고도도 높고 험한 편이다. 충주소백산지차령산지로 둘러싸인 산간분지이지만, 이러한 동·서 구조선들이 지역 전반에 걸쳐 발달하고 있어 주변 지역과의 교통이 비교적 원활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동쪽에는 다리재·느릅재·마즈막재·발티·지릅재(수안보면 미륵리) 등을 통해 제천-단양-영남 지방으로 연결되고, 서쪽으로는 이문고개·솔고개·못고개 등을 넘어 여주~진천으로 통한다. 발티충주분지 남동쪽에 있어 예부터 지방 중심지였던 충주와 동쪽 소백산지 사이의 동·서 교통로로 이용되었다.

  • [현황]

발티를 넘어가는 방법은 도로가 없어 차량으로 갈 수는 없고, 등산로처럼 도보로만 가야 한다. 이 길은 유서 깊은 옛길로 충주에서 영남으로 뻗은 길로 조선 말기 제천의병이 충주성을 치려고 넘어오던 길이라고도 한다. 이 고개도 비교적 높은 고개로 옛길의 정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다. 현재는 등산로로 남아 있으나 지나는 사람은 극히 적고 잘 알려지지 않은 길이다. 부근에 재오개가 인접해 있다.

[참고문헌]
 
• 『한국지명총람』3-충북편(한글학회, 1970)
• 서영일, 『신라 육상교통로 연구』(학연문화사, 1999)


[충주지명유래] 직동(直洞)▣ 직-동(直洞) [곧은골, 직곡]【동】본래 충주군 남변면의 지역으로서 곧은 골짜기로 되었으므로 곧은골 또는 직곡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구운리(九雲里)와 발티(發峙)를 병합하여 직동이라 해서 읍내면(충주시)에 편입됨.●곧은-골【마을】→ 직동.
●구리미[구운리(九雲里), 구루미]【마을】자래바우 남쪽에 있는 마을. 지대가 높아서 마치 구름이 뜬 형국이라 함.
●구엉-말【마을】발티에 딸린 마을. 지대가 좀 낮은 곳에 있음.
●금봉산(錦鳳山)[남산(南山)]【산】안림동(安林洞)과 직동(直洞), 살미면(乷味面)과의 경계에 있는 산. 높이 636m. 죽림(竹林)이 울창해서 큰 날짐승이 많이 깃든다고 금봉산(錦鳳山)이라고 했는데 약 140년전에는 죽정사(竹亭寺)라는 절이 있었음. 산 정상에는 성터가 있고, 남산 3봉 밑에 창룡사가 있음.
난영이-고개 [난영이재]【고개】곧은골에서 살미면 난영이로 넘어가는 고개

●남산1-봉(南山一峰)[동그란남산]【산】원호암 동쪽에 보이는 봉우리. 제일 가까운 봉이 제1봉 두 번째가 제2봉, 세 번째가 제3봉으로 불리우고 있음. 일명 동그란남산이라고도 부름.
●남산-성(南山城)[마고성, 한미산성]【고적】남산에 있는 성터. 백제 구이신왕(久爾辛王) 때 축성하여 당시 국원성(國原城)이라 일컬어 오다가 신라 진흥왕(眞興王) 때 범장성(范 城)으로 고쳤다 하며, 조선사략에는 백제 개로왕 21년(475)에 이 산성을 쌓아 적을 막았다 하였으며, 비문에는 고려 때 자칭 국왕이라고 하는 자가 점거하고 있었다 하였으며 혹은 삼한 때 마고선녀가 7일 만에 축성하였다고도 하며, '마고성', '한미산성(漢美山城'이라고 함.
●매봉-재【산】대림산(大林山) 줄기에 딸린 산. 매사냥 때 망을 보던 산이라고 함.
●발-티(發峙)【마을】곧은골 동쪽에 있는 마을. 발티재 아래에 있음.
●발티-재 [발티현]【고개】발티 뒤에 있는 고개. 옛날 삼남대로로 통하는 대로의 첫 고개라 함.
●뱀-골【골짜기】자라바우에서 구루미로 가다가 오른쪽으로 들어간 골짜기. 뱀처럼 길게 뻗침.
●봉화-터【터】대림산 정상에 있는 봉수터. 남쪽은 연풍 주정산, 서쪽은 이류면 마산에 응하였다함.
●성-재【고개】곧은골 북쪽으로 있는 고개. 산성으로 통하는 고개임.
●아래-뱀골【산】뱀골 아래쪽에 있는 산.
●웃-뱀골【산】뱀골 위쪽에 있는 산.
●자라-바우 [별암]【마을】직동교(直洞橋)가 있는 삼거리 부근의 마을. 묘역에 자라등처럼 생긴 자라바위가 있음.
●자라바우-들【들】자라바우 서북방의 들판.
●장자-골【골짜기】발티에서 남북으로 뻗친 골짜기.
●장자-번데기【고개】발티에서 향산리로 넘어가는 고개.
●죽정사-지【터】탑대마을에 현재 탑의 부재가 남아있으며 큰 절이 있었음.
●창룡-사(蒼龍寺)【절】곧은골 북쪽 남산에 있는 절. 약 1,100년 전에 창건하였으며, 그 뒤 여러번 중수하여 현재에 이름.
●탑-대(塔垈)【마을】발티 북쪽에 위치한 마을. 예전에 큰 절(竹精寺)이 있었고 현재 석탑이 2층까지 남아있음.
 
[충주지명유래] 재오개(才五介)
⊙ 재오-개(才五介)【리】살미면 법정리동의 하나. 본래 충주군 살미면 지역으로서, 다섯개의 고개 밑에 있으므로 재오개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도선동, 동막동을 병합하여 재오개라 하였다가 1937년 법정리동을 자연마을 단위로 분구할 때, 상재오개, 하재오개, 도선동, 동막동으로 분리됨. 동쪽은 매내미재를 넘어 신매리와 접하고, 서쪽은 발티 능선을 경계로 발티골과 접하고, 북쪽은 하느골재를 넘어 목벌동과 접하며, 남쪽은 신매리 매남과 접함.●골-말【골짜기】초매내미재를 넘어 첫 번째 마을이었으나 마을은 없어지고 골짜기만 남음.
●도선-동(道仙洞)【마을】흑석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양지말, 음달말, 개경주가 있음.
●동막-골【마을】동막골 골짜기 막바지에 있는 마을로 주변에 동광산이 있었음.
●마그니-골【마을】양지말 앞에서 남서쪽으로 직동 마그니골과 연결됨.
●발-티(發峙)【고개】도선동과 호앙동 발티마을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옛날에는 충주에서 영남지방으로 통하는 첫 번째 고개임.
●상재오-개【마을】큰구정골 안에 있는 마을로 양지말, 음달말, 웃말이 있음.
●서낭-당【당】성재에 있는 느티나무, 소나무를 모심.
●음달-말1【마을】상재오개 중 음지쪽에 있는 마을.
●음달-말2【마을】초매내미재를 넘어 첫 번째 마을로 충주호 수몰선 부근에 위치함.
●진의실-재【고개】상재오개 안골을 거쳐 목벌리 진의실로 넘어가는 고개.
●큰-재[성재]【고개】성재라고도 하며, 상재오개와 직동을 연결함.
●태박-골【골짜기】하재오개 마을 옆(북쪽)에 있는 골짜기.
●태-봉【산】하재오개 마을 옆(북쪽)에 있는 산(212.9m)으로 태가 묻혔다고 함.
●하재오-개【마을】재오개 마을 아랫쪽에 있는 마을로 4호가 충주호 주변에 거주함.
●할미-골【골짜기】도선동 마을 왼쪽(남쪽)에 있는 마을.
●흑-석(黑石)【마을】하재오개 남동쪽, 근처에 검은돌이 많았던 마을로 수몰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