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란 그늘 아래서/흔적을 찾아서

[스크랩] 아홉 번 뛴 장군의 한 서려 있거니 / 九超將軍恨

산골어부 2014. 2. 6. 05:55

 

향산집 제1권

 

권함길에게 시로 편지를 써서 주다〔與權涵吉詩札〕


밝은 시절 성무 이에 열렸거니와 / 明時聖廡闢
사문의 도 울연하게 전모 있었네 / 文猷蔚典謨
선비들이 구름처럼 많이 모여서 / 多士集如雲
상소 안고 대궐에다 하소연했네 / 抱章籲天都
이러한 때 옛 친구의 서신이 오매 / 是時故人書
고향 산이 그림인 양 눈에 선하네 / 鄕山入畫圖
스산스러운 나의 자취 홀로 달래며 / 慰我冷散跡
향화 받아 받들고서 창오에 갔네 / 香火奉蒼梧
거북 뼈로 제사하매 부끄럽거니 / 祀骨還堪恥
내가 지닌 자질 본디 호련 아니네 / 器使本非瑚
아득 멀리 생각하니 송대 아래엔 / 遙憶松臺下
백일 아래 구불구불 길이 났으리 / 白日路崎嶇
대로께선 몸 건강해 지팡이 짚고 / 大老筇屨健
신선들이 먹는 창포 먹고 계시리 / 仙餌服靈蒲
어찌하여 효도하며 집에만 있고 / 如何入孝地
처음 먹은 봉호의 맘 게을러졌나 / 初心倦蓬弧
병이 아니 들고서도 병 핑계 대며 / 不病以爲病
잠심하여 관호 위로 거슬러 갔네 / 潛心溯關湖
스스로가 산촌의 낙 잘 보전하며 / 自全山埜樂
편안하게 칠 척의 몸 보전하였네 / 安保七尺軀
나의 이번 걸음 진정 우습거니와 / 可笑今我行
문 나서서 세 번이나 말 바꿔 탔네 / 出門三易駒
다행히도 황강에서 배를 타고는 / 幸登黃江船
사흘 동안 물오리와 함께 짝했네 / 三日伴浮鳧
마암에다 철관 몹시 험난하거니 / 磨巖鐵串險
천험인 이 탄금대서 산 등졌다네 / 天設是負隅
아홉 번 뛴 장군의 한 서려 있거니 / 九超將軍恨
오열하는 소리 배에 들리어오네 / 嗚咽聞餘桴
맑은 유람 별천지의 위에 오르니 / 淸遊別天上
풍류와 흥 애당초의 생각과 맞네 / 風興夙計符
해는 장안 하늘 위를 비치거니와 / 日下長安上
번화함은 그 옛날에 없던 바이네 / 繁華昔日無
상전벽해 뒤바뀜에 마고 울었고 / 桑海麻姑泣
세월 빨라 운당포서 맘 느꺼웠네 / 歲色感簹鋪
맘속으로 계획하긴 남지 지난 뒤 / 準擬南至後
몸 돌려서 온 길 다시 가려고 하네 / 擡頭復初途
이미 집의 아이에게 고해 주어서 / 已告舍中兒
겨울철 옷 보내오지 말게 하였네 / 冬衣莫役奴
늦고 빠름 관계없는 것이지마는 / 久速無關係
감정 많아 구구한 맘 일어나누나 / 多感念區區
남지에서 묵은 회포 말을 하거니 / 南枝說宿懷
북산에서 죄 돌리지 아니하리라 / 北山不歸辜
나의 밭에 농사 내가 지었거니와 / 我田有我稼
바라건대 가뭄 없어 풍년 들기를 / 願豐無旱枯
돌아가는 사람 서서 재촉을 하매 / 歸人方立促
새벽녘에 화로 낀 채 언 붓 녹이네 / 呵凍擁晨爐
한스러운 건 북당 편지 없는 것이니 / 恨闕北堂書
효오께서 대신 알려 주길 바라네 / 代報望孝烏


 

[주D-001]전모(典謨) : 옛 성현(聖賢)들의 훈계(訓戒)하던 말로, 《서경》의 〈요전(堯典)〉, 〈순전(舜典)〉, 〈대우모(大禹謨)〉, 〈고요모(皐陶謨)〉, 〈익직(益稷)〉 등의 편을 가리키는데, 전하여 성인의 가르침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주D-002]향화(香火) …… 갔네 : 임금의 능에 가서 제사를 지냈다는 뜻으로, 여기서는 향산이 1883년(고종20) 겨울에 현종(顯宗)의 능인 숭릉(崇陵)의 헌관(獻官)이 되어 제사 지낸 것을 말한다. 향산은 이 제사를 마친 뒤 곧바로 시골로 돌아갔다. 창오(蒼梧)는 중국 구의산(九疑山)의 별칭으로, 순(舜) 임금이 남쪽으로 순수(巡狩)하다가 이곳에서 붕어하여 장사를 지냈던 곳이다. 전하여 돌아간 임금의 능소(陵所)를 가리킨다.
[주D-003]거북 …… 부끄럽거니 : 조정에서 벼슬하고 있는 것이 부끄럽다는 뜻인 듯하다. 반악(潘岳)의 〈추흥부(秋興賦)〉에 “종묘에다가 거북 뼈로 제사를 지냄이여, 푸른 물로 몸 돌아가길 생각하누나.〔龜祀骨于宗祧兮 思返身于綠水〕”라고 하였다.
[주D-004]호련(瑚璉) : 종묘에서 제사를 지낼 적에 쓰는 예기(禮器)로, 나라를 다스릴 만한 훌륭한 인재를 뜻한다. 자공(子貢)이 공자에게 자신은 어떤 그릇이냐고 묻자, 공자가 “너는 호련이다.” 하였다. 《論語 公冶長》
[주D-005]송대(松臺) : 봉화군 봉화읍 유곡리 닭실 마을에 있는 송암정(松巖亭) 일대의 솔숲을 말하는 듯하다. 송암정은 충재(冲齋) 권벌(權橃)의 둘째 아들인 권동미(權東美)가 창건하였다.
[주D-006]筇屨健 : 《향산전서》 상(上) 권2에는 ‘筇鳩健’으로 되어 있다.
[주D-007]봉호(蓬弧)의 맘 : 천하를 유람하고자 하는 큰 뜻을 말한다. 봉호는 뽕나무로 만든 활과 쑥대로 만든 화살을 말한다. 고대(古代)에 아들이 태어나면 뽕나무로 활을 만들고 쑥대로 화살을 만들어서 천지 사방에 활을 쏘아, 남아로 태어났으면 응당 사방을 돌아다닐 뜻을 품어야 함을 표상하였다. 《禮記 內則》
[주D-008]관호(關湖) : 염락관민(濂洛關閩)과 같은 말로, 흔히 송나라의 이학(理學)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주D-009]황강(黃江) : 단양에 있는 역(驛)의 이름이다. 이곳에는 한강으로 통하는 나루가 있다. 향산이 숭릉 헌관이 되어 올라갈 때 이곳에서 배를 타고 간 듯하다.
[주D-010]마암(磨巖)에다 …… 험난하거니 : 충주 탄금대(彈琴臺)의 지세가 험난하다는 뜻이다. 마암은 탄금대의 열두대 아래에 있는 바위를 말하는 듯하다. 철관(鐵串)은 달천강과 남한강이 합류하는 합수머리에 있는 지명으로, 현지에서는 쇠곳이, 쇠곶이, 쇠꼬지 등으로 불리는데, 이곳에 쇠를 보관해 두는 ‘쇠곳〔金倉〕’이 있었다고 전한다.
[주D-011]천험인 …… 등졌다네 : 임진왜란 때 신립(申砬) 장군이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친 것을 말한다. 신립 장군은 왜적들을 조령에서 막자는 부하들의 권유를 뿌리치고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쳤다가 전군이 몰살당하였다.
[주D-012]아홉 …… 있거니 : 신립 장군의 한이 서려 있다는 뜻이다. 전설에 의하면 신립 장군이 이곳에서 왜적들과 싸울 때 활을 너무 많이 쏘아 활이 열을 받아서 화살이 나가지 않으므로 열두 번이나 남한강으로 내려와 활을 강물에 식힌 뒤 올라가서 다시 싸웠다고 한다. 지금 탄금대에는 열두대라는 험난한 바위가 있다. 향산은 이곳을 아홉 번 내려왔다가 올라간 것으로 본 것이다.
[주D-013]상전벽해(桑田碧海) …… 울었고 : 오랜 세월이 지나 옛날의 자취가 다 사라졌다는 뜻이다. 마고(麻姑)는 선녀 이름으로, 마고산에 살며, 손톱과 발톱이 새의 발톱처럼 생겼다고 하는데, 아주 오래 살아 3천 년마다 한 번 변하는 동해(東海)가 세 번이나 뽕밭으로 변한 것을 보았다고 한다. 흔히 장수하는 여인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神仙傳 王遠》
[주D-014]세월 …… 느꺼웠네 : 지난 일을 생각함에 감개가 인다는 뜻이다. 주희(朱熹)가 젊은 시절에 운당포(篔簹鋪)에서 쉬다가 그 벽간(壁間)에 “빛나는 영지는 일 년에 꽃이 세 번이나 피는데, 나는 유독 어찌하여 뜻만 있고 그것을 이루지 못하는고.〔煌煌靈芝 一年三秀 予獨何爲 有志不就〕”라는 글이 씌어 있는 것을 보고는 마음속으로 무척 동감하였다. 그런데 40여 년이 지난 뒤에 우연히 다시 둘러보니, 그 글은 이미 없어졌으나, 지난 일에 감회가 일어나므로, “언뜻 지나는 백년 세월 그것이 얼마나 되랴. 세 번 꽃피는 영지는 무엇을 하려는고. 나이 늦도록 금단을 이룬 소식이 없으니, 운당포 벽 위의 시가 거듭 한탄스럽네.〔鼎鼎百年能幾時 靈芝三秀欲何爲 金丹歲晩無消息 重歎篔簹壁上詩〕”라고 읊으면서 슬퍼하였다. 《朱子大全 卷84 題袁機仲所校參同契後》
[주D-015]歲色 : 《향산전서》 상(上) 권2에는 ‘暮色’으로 되어 있다.
[주D-016]남지(南至) : 동지(冬至)를 남지라 칭한다. 《춘추좌씨전》 희공(僖公) 5년 기사에 “춘왕정월(春王正月) 신해(辛亥)에 해가 남지하였다.” 하였다.
[주D-017]남지(南枝) : 무명씨(無名氏)의 〈고시(古詩)〉에 “호지의 말은 북풍에 몸을 의지하고, 월지의 새는 남쪽 가지에 둥지를 짓네.〔胡馬依北風 越鳥巢南枝〕”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고향을 그리는 정을 말할 때 끌어다가 쓴다.
[주D-018]북산(北山) : 중국 강소성(江蘇省) 남경시(南京市) 동쪽에 있는 산인 종산(鍾山)으로, 육조(六朝) 송(宋)나라 때 주옹(周顒)과 공치규(孔稚圭)가 은거하던 곳이다. 주옹은 나중에 세상에 나가 회계군(會稽郡)의 해염 현령(海鹽縣令)으로 있다가 임기가 만료되어 도성으로 가는 길에 종산에 들르려고 하자, 공치규가 종산의 산신령의 뜻을 가탁(假託)하여 “여러 동학(洞壑)이 비웃고, 많은 산봉우리가 꾸짖는다.”라는 등의 내용으로 〈북산이문(北山移文)〉을 지어,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고 조롱하였다.
[주D-019]北山不歸辜 : 《향산전서》 상(上) 권2에는 이 구절 아래에 ‘臥龍何事起 苦涉五月瀘’라는 2구절이 더 있다.
[주D-020]북당(北堂) : 부모가 거처하는 집으로, 전하여 부모님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주D-021]효오(孝烏) : 효자(孝子)를 뜻하는 말이다. 까마귀는 새끼가 자라서 어미를 먹여 살린다고 하여 까마귀를 자오(慈烏) 또는 효오라고 한다.
출처 : 남한강 물길 따라
글쓴이 : 산골어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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