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 들/물길 따라서

[스크랩] 달천 정심사의 가을풍경

산골어부 2014. 11. 2. 21:10

 

 

 

 

 

 

 

 

 

 

 

 

 

 

 

 

 

 

 

 

[참고자료]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영곡사(靈鵠寺) 대림산(大林山)에 있다.

깎아지른 절벽에 기대고 푸른 시냇물을 굽어보며

공중에 걸쳐서 누각을 지었다.

밑에서 바라보면 달아맨 것 같다.

 

○ 정지상(鄭知常)의 시에,

 

“천 길 바위 머리에 천년 묵은 절,

앞은 강물에 임하고 뒤는 산에 기대었다.

위로는 별(星)에 닿았으니

집이 세 뿔이 났고, 반쯤 허공에 솟았으니 다락 한 칸이로다.” 하였다.


○ 고려 진화(陳澕)의 시에,

 

“이미 낭떠러지 구렁에 임하여 긴 소나무를 굽어보고,

다시 층층 사다리를 밟으며 여윈 지팡이를 짚는다.

도리어 우습구나, 노는 사람의 마음이 너무 조급하여,

한 번 와서 최고봉에 오르려 한다.” 하였다.

 

○ 김극기(金克己)의 시에,

 

“옛 절이 비고 서늘하여 땅에 먼지조차 없는데,

어느 해에 애써 부지런히 일하는 것을 무릅쓰고 집을 지었는고.

그림 누각은 그림자가 남호(南湖) 물에 떨어지고,

경쇠[磬] 소리 여운은 북령(北嶺) 구름에 묻힌다.

날이 따뜻하니 갈대 시내에는 고기가 떼를 짓고,

사람이 돌아가니 버들 물가에는 학이 줄을 지었다.

중을 향하여 세상일을 말하려 하니,

단정히 앉아 말없이 냉정히 듣지 않네.” 하였다.

 

[참고자료] 영곡사지

 

한자 靈鵠寺址
영어의미역 Yeonggok Temple Site
이칭/별칭 월은사,달암사,개운사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충청북도 충주시 단월동 산 51
시대 고려/고려 전기
집필자 유봉희 

[상세정보]
 

성격 사지
원건물 건립시기/일시 고려 전기
소재지 주소 충청북도 충주시 단월동 산 51  

[정의]
충청북도 충주시 단월동 에 있는 고려 전기 절터.


[개설]
영곡사에 대한 기록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권14 충주목 불우조에 남아 있다. 절의 입지와 함께 주변 정황을 알 수 있는 정지상(鄭知常)과 김극기(金克己)의 시가 실려 있다. 영곡사는 대림산에 있으며, 깎아지른 절벽에 기대어 푸른 시냇물을 굽어보며 공중에 걸쳐서 누각이 있어 밑에서 보면 달아맨 것 같다고 하였다.


[변천]
영곡사는 절이 창건된 당시의 이름인 월은사(月隱寺)가 바뀐 이름이다. 그 후 영곡사는 조선 후기에 달암사(達岩寺)로, 일제강점기에 개운사(開雲寺)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1870년에 발간된 『충주읍지(忠州邑誌)』에는 폐사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근래에 사찰명이 정심사(靜深寺)로 정해지고 절이 중창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현재 정심사는 충주시 전통 사찰로 지정되어 있다. 최근까지 철제 관음보살상·금동삼존불상·십이지신상 등이 있었다고 하나, 1972년 도난당하여 현재까지 행방을 알 수 없다.


[위치]
호암스포츠센터, 청소년수련원 등이 있는 호암지를 경유하여 수안보 방면으로 향하다가 살미면 향산리 체험미술학교(구 세성초등학교) 방면의 구 도로를 따라가면 정심사 이정표가 보인다. 영곡사지는 이 이정표를 따라가면 다다를 수 있으며, 충주시 시내 중심부에서 남쪽 방향에 해당된다. 절이 위치해 있던 곳은 자연 절벽에 가까운 경사가 높은 곳으로 앞쪽에는 달천강이 흐르고 있다. 현재 정심사에는 법당 외에 범종각과 산신각이 있으며, 산신각 아래 임경업 장군이 수련을 쌓았던 곳으로 전하는 삼초대가 있다.


[의의와 평가]
영곡사에 대한 흔적은 문헌 기록으로만 접할 수 있다. 고려시대 시인들이 남긴 내용으로 보아 당시 영곡사는 허공에 다락처럼 걸려 있는 특이한 절의 하나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영곡사는 법등이 끊긴 적도 있었고 변화도 있었으나, 그 터에 고려시대부터 계속 법등이 이어지고 있는 것은 다행스런 일로 생각된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출처 : 남한강 물길 따라
글쓴이 : 산골어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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