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란 그늘 아래서/담론들

삼국사기 - 국원소경의 인물들

산골어부 2015. 12. 12. 16:45

 

신득(身得)과 능안(能晏)에 대하여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 신라 진흥왕조에 나타난 신라의 관직에서 오늘날 지방제도의 관직명을 비교하면 대아찬은 도지사, 아찬은 시장, 사찬은 군수가 아닐까한다. 또한 신라관등 17등급 중에서 10등급인 대나마(大奈麻)와 11등급인 나마(奈麻)는 하급기관의 관리직으로 향,소,부곡의 촌주(村主)이거나 특수전문(기술)직 등의 관리자로 오늘날의 면장 또는 동장에 해당하는 직급으로 추정된다. 사찬이라는 관직에 오른 강수와 구진천이 그들의 명성에 비해서 낮은 관직에 머무른 것도 신라의 귀족인 성골이나 진골이 아닌 평민으로 관직에 오른 전문직 관료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글에서는 신라시대의 관직이나 품계에 관한 논쟁보다는 삼국사기에 나타난 국원소경 또는 중원경의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하고자 한다.

 

충주를 대표하는 3대 명현은 우륵, 강수, 김생이다.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에는 우륵, 강수, 김생 뿐만 아니라, 국원소경의 지방관인 대아찬 용장과 아찬 춘부가 기록되고, 대나마(大奈麻)라는 관직의 주지(注知), 계고(階古)와 나마(奈麻)라는 관직의 신득(身得), 긴주(緊周), 석체(昔諦), 천승(天承)과 대사(大舍)라는 관직의 만덕(萬德), 충훈(忠訓) 등이 나타난다. 그 중에서도 대문장가인 강수의 아버지인 석체(昔諦)와 욕돌역에서 가야무를 춘 능안(能晏)의 아버지인 긴주(緊周)와 우륵의 제자인 주지(注知), 계고(階古), 만덕(萬德)은 향토사학에서도 간혹 거론되지만, 국원소경에 포노(砲弩)를 만들어 설치한 신득(身得)과 포모대의 전설에 등장하는 천승(天承)과 충훈(忠訓) 등은 그 이름조차도 언급되지 않는다. 이는 고구려의 국원성이며, 신라의 국원소경이자 통일신라의 중원경이었던 충주에 우륵과 강수와 김생이라는 큰 인물이 있었기에 지방관료의 수장인 용장과 춘부 그리고 하급기관의 관리자는 미미한 인물로 간주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무용사에 등장하는 능안(能晏)과 포노(砲弩)를 만든 신득(身得)은 고대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특히 일천보를 날아가는 노(弩)를 만든 기술자인 사찬 구진천(仇珍川)보다도 앞선 진흥왕 때 포노(砲弩)를 만든 나마(奈麻) 신득(身得)에 대한 기사는 신라노(新羅弩)에 대한 역사 뿐만 아니라, 고대사를 고찰함에 있어 중요한 기록인데도 향토사에서 그에 관한 내용은 소개되질 않는다. 단궁(檀弓)에서 시작된 조선활의 역사는 신라의 천보노(千步弩)로 이어지고, 천보노는 고려의 화포기술과 조선시대의 신기전 등의 신무기제조기술에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당시에는 신득(身得)이 국원에 설치한 포노(砲弩)가 자랑스러운 강력한 신무기였기에 삼국사기 진흥왕조에 기술되었을 것이다. 신라의 진흥왕이 한강유역을 지배하면서 국원소경의 군사력을 강화시킨 것도 삼국을 정벌하기 위한 전초기지를 구축한 것이며, 삼국을 통일한 후 문무왕이 국원성을 축성하고 중원경을 설치한 것도 삼국을 통치하기 위한 것이다.

 

 

신라 문무왕 8 년에 욕돌역(褥突驛)에서 가야의 춤을 춘 나마(奈麻) 긴주(緊周)의 아들 능안(能晏)이 국원소경의 수장인 대아찬 용장보다도 더 유명한 인물이다. 나마(奈麻) 긴주(緊周)는 국원소경에 소속된 관기(官技)를 관장하는 직위이거나, 긴주의 아들 능안(能晏)이 가무를 하는 무동(舞童)일 수도 있지만, 우륵의 가야금과 더불어 정착된 대가야의 문화 중 가야무가 문무왕 때까지도 이어졌다는 기록이며 긴주의 아들 능안(能晏)은 한국무용사에 최초로 기록된 무용수라는 것이다. 최근에는 충주의 향토예술계에서도 우륵국악단과 같은 무용단을 만들어 고전무용(가야무)을 재현하려는 시도가 진행 중이다. 고구려의 고분벽화나 가야 또는 신라의 유적지에서 발굴되는 유적에서 의복과 춤사위의 특징을 보고, 복원한 춤이 당시의 전통무용이라기 보다는 전통무용에 대한 뿌리를 복원한다는 상징적 의미일 것이다. 삼국사기의 기록에 나타난 욕돌역(褥突驛)과 능안(能晏)은 향토사 뿐만 아니라, 고대사 연구에도 중요하다. 대아찬 용장과 나마(奈麻) 긴주(緊周)라는 직위와 이름이 아니라, 삼국시대의 관방체계와 역참제도에 등장하는 욕돌역(褥突驛)과 고대 무용사에 등장하는 능안(能晏)이 향토사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것은 사회와 문화보다는 정치와 권력이 향토역사를 지배하기 때문이다. 가금면 일대에 산재했던 유적지와 고분들이 도굴되어 폐허가 된 것처럼 발굴된 유적지나 유물들이 박물관 수장고에서 보관되었다가 사라진다면, 그 또한 도굴되어 사라진 골동품에 불과할 것이다. 중앙탑이 있는 탑평리 유적지는 발굴조사에서 백제와 고구려와 신라의 유물들이 출토되어 고대 삼국의 영토분쟁과 영역을 입증하는 중요한 사적지임에도 아직까지 그에 대한 연구가 발표된 적이 없다.

 

 

삼국사기 성덕왕조에 나오는 포정과 정완의 이야기는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고적조에서 풍류산 포모대의 전설로 기록된다. 포모대의 이야기에는 장미(薔薇)라는 선녀가 등장한다. 또한 장미(薔薇)라는 이름은 장미산성과 보련산성의 남매축성설화에서도 나타난다. 우연일 수도 있고, 와전일 수도 있지만, 기나긴 역사 속에서 이어지는 이야기로 보여진다. 삼국사기의 포정과 정완이 장미산성을 축성한 장미(薔薇)일 수는 없겠지만, 포모대의 전설과 장미산성의 설화가 혼재되어 나타난 현상으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향토사학계에서 포정과 정완의 이야기에는 관심조차 없다. 일부에서는 삼국사기의 기록을 부정하기도 하지만 역사의 기록이란 그를 쓴 시대와 사관의 관점에 의해 기록되는 것이기에 그를 부정하기 보다는 기록의 진위여부를 입증하는 노력이 더 필요한 것이다. 만약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가 없었더라면 충주를 대표하는 3대 명현인 우륵, 강수, 김생도 국원소경의 신득(身得) 과 능안(能晏)처럼 이름만 남아 전해졌을 것이다. 삼국사기 강수열전에 나오는 강수의 처와 성덕왕조에 나오는 포정과 정완은 충주를 대표하는 여성일 것이다. 미천한 대장장이의 딸인 강수의 처에 대한 기록은 공직자들의 내조에 귀감이 되며, 포정과 정완도 고국을 위해 희생될 위기에서 귀국할 수 있었던 것은 그 행실이 바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충주향토사학은 임진왜란 충주전투에서 참패한 신립의 민담으로 처녀귀신부터 시작하여 탄금대 열두대에서 분전하다가 전사한 곳이라는 "신립장군순국지지비와 순절비"까지 세워 역사의 왜곡하고, 탄금대의 명성과 탄금대 토성까지도 훼손시키고 있으며, 달천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조차도 음담패설로 얼룩지게하고 노래를 만들어 상업화하고 있다.

 

 

삼국사기의 기록을 살펴보면 신라의 군현들은 17등급 중에서 8등급인 사찬이 군주(軍主)로 임명되었지만, 국원소경은 진흥왕 때는 6등급인 아찬 춘부, 문무왕 때는 5등급 대아찬 용장이 군주(軍主)인 지방관으로 나타난다. 군주(軍主)란 오늘날의 지방관과 달리 군사 뿐만 아니라 행정과 형벌 등의 막강한 권한을 갖는 지방의 통치자를 의미한다. 어찌보면, 아찬 춘부가 기록상으로는 충주에서 가장 오래된 지방관이다. 그러나, 춘부는 물론 나.당 연합군의 고구려 평양성 전투에 아찬으로 참전한 대아찬인 용장도 이름만 나타날 뿐이다. 요즈음 선출직인 시장과 군수가 자신의 재임기간 중에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 수많은 기록과 기념비에 이름을 남기지만, 불과 몇 년만 지나도 그의 이름조차 거론되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 충주의 수많은 송덕비와 선정비 중에서 충주목사인 이국헌은 아전(지방공무원)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엄찬은 사판(삭탈관직)되었다. 단지, 송덕비와 선정비만 본다면 백성을 위해 애를 쓴 것으로 보이지만, 역사의 기록에 의하면 그들은 자신의 치적을 위한 탐관오리들 중의 하나였을 뿐이다. 삼국사기에 기록된 대나마(大奈麻)라는 관직의 주지(注知), 계고(階古)와 나마(奈麻)라는 관직의 신득(身得), 긴주(緊周), 석체(昔諦), 천승(天承)과 대사(大舍)라는 관직의 만덕(萬德), 충훈(忠訓) 등이나 가야무를 춘 능안은 이름만 남긴 왕들보다도 더 위대한 인물인 것이다. 즉, 역사의 인물이란 관직과 부가 아니라, 국가와 백성을 위해 헌신한 삶이 시대의 흐름 속에서도 회자된 것이다.

 

 

인물론에서 특정인물의 직위나 이름은 큰 의미가 없다. 역사 속에 잔존하는 인물의 명성은 그 인물이 무엇을 했는가이다. 고문서나 금석문에서 이름이 남았다고 할지라도 행적이나 업적이 기술되지 않았다면 그 존재가치는 거의 없다. 우륵과 강수와 김생이 충주의 3대 명현으로 추대된 것도 삼국사기를 쓴 김부식 때문에 부각된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들의 업적이 시대를 초월하여 공감되었다는 것이다. 신라의 구진천(仇珍川)은 일천보(一千步)를 날아가는 노(弩)를 만드는 기술보다는 노(弩)의 제작기술을 적국인 당나라에 가르쳐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삼국사기에 나타나는 포(砲)와 노(弩)는 신라만의 전쟁무기가 아니라, 대부분의 나라에서 사용된 무기이다. 그러나, 신라노는 약 1.2~1.5km를 날아가는 비법과 포와 노의 기능을 결합시킨 신무기일 것으로 추정된다. 구진천이 무기제작을 관장하는 직책인 사찬에 있었다는 것은 의미가 없으나, 국가기밀에 해당되는 기술을 적에게 넘기지 않았기에 충신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이다. 탄금대 공원에 수많은 비석들과 조형물과 안내판이 설치된다고 하더라도 삼국사기의 인물편에 수록된 기록에 비하면 그 존재가치는 없다. 어찌보면, 삼국사기에 기술된 우륵, 강수, 김생의 행적을 탄금대에 비문이나 해설문으로 설치하는 것이 탄금대를 찾는 사람들에게 보다 쉽게 역사를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하지만, 탄금대 뿐만 아니라 관광지에 세워진 비문들을 보면 역사의 기록보다는 비석을 세운 사람들이나 단체의 이름을 알리기 위한 문구만 나열된 조잡한 기념물들로 오히려 유적지의 미관을 해치고 있다. 오늘날 명승지에 세위진 기념물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려는 부끄러운 추태들은 사라졌으면한다.

 

 

 

(참고자료)

 

 

三國史記 第 四卷(삼국사기 제 04권) 新羅本紀 第 四(신라본기 제 04)

제24대 眞興王(진흥왕) <540~576 재위기간 36년>

 

十八年(십팔년) : 18년,

以國原爲小京(이국원위소경) : 국원을 소경으로 만들었다.

廢沙伐州(폐사벌주) : 사벌주를 없애고

置甘文州(치감문주) : 감문주를 설치하였다.

以沙湌起宗爲軍主(이사찬기종위군주) : 사찬 기종을 그 곳의 군주로 임명하였다.

廢新州(폐신주) : 신주를 없애고

置北漢山州(치북한산주) : 북한산주를 설치하였다.

十九年春二月(십구년춘이월) : 19년 봄 2월,

徙貴戚子弟及六部豪民(사귀척자제급육부호민) :
귀족의 자제들과 6부의 호민들을 국원으로 이사하게하여

以實國原(이실국원) : 국원을 충실하게 하였다.

奈麻身得作砲弩上之(내마신득작포노상지) : 내마 신득이 포와 노를 만들어 바쳤으므로,

置之城上(치지성상) : 이를 성 위에 설치하였다.

 

二十六年(이십육년) : 26년,

秋八月(추팔월) : 가을 8월 ,

命阿湌春賦出守國原(명아찬춘부출수국원) : 아찬 춘부로 하여금 국원을 지키게 하였다

 

 

三國史記 第 七卷(삼국사기 제 07권) 新羅本紀 第 七(신라본기 제 07)
제30대 文武王 上(문무왕 상) <661~681 재위기간 20년>

 

八年春(팔년춘) : 8년

六月二十一日(이십일일) : 6월 21일,

以大角干金庾信爲大幢大摠管(이대각간김유신위대당대총관) : 대각간 김 유신을 대당 대총관,

角干金仁問欽純(각간김인문흠순) : 각간 김 인문·흠순·

天存文忠迊湌眞福(천존문충잡찬진복) : 천존·문충과 잡찬 진복·

波珍湌智鏡大阿湌良圖愷元(파진찬지경대아찬양도개원) : 파진찬 지경·대아찬 양도·개원·

欽突爲大幢摠管(흠돌위대당총관) : 흠돌을 대당 총관,

伊湌陳純(이찬진순) : 이찬 진순·

一作春(일작춘) : '순'을 '춘'이라고도 한다.

竹旨爲京停摠管(죽지위경정총관) : 죽지를 경정 총관,

伊湌品日迊湌文訓大阿湌天品(이찬품일잡찬문훈대아찬천품) : 이찬 품일·잡찬 문훈·대아찬 천품을

爲貴幢摠管(위귀당총관) : 귀당 총관,

伊湌仁泰爲卑列道摠管(이찬인태위비열도총관) : 이찬 인태를 비열도 총관,

迊湌軍官大阿湌都儒阿湌龍長(잡찬군관대아찬도유아찬용장) : 잡찬 군관·대아찬 도유·아찬 용장을

爲漢城州行軍摠管(위한성주행군총관) : 한성주 행군 총관,

迊湌崇信大阿湌文穎阿湌福世(잡찬숭신대아찬문영아찬복세) : 잡찬 숭신·대아찬 문영·아찬 복세를

爲卑列城州行軍摠管(위비열성주행군총관) : 비열성주 행군 총관,

波珍湌宣光阿湌長順純長(파진찬선광아찬장순순장) : 파진찬 선광·아찬 장순, 순장으로

爲河西州行軍摠管(위하서주행군총관) : 하서주 행군 총관,

波珍湌宜福阿湌天光爲誓幢摠管(파진찬의복아찬천광위서당총관) :
파진찬 의복과 아찬 천광을 서당 총관을 삼고,

阿湌日原興元爲罽衿幢摠管(아찬일원흥원위계금당총관) :
아찬 일원과 흥원으로 계금당 총관을 임명하였다.

 

冬十月二十五日(동십월이십오일) : 겨울 10월 25일,

王還國次褥突驛(왕환국차욕돌역) : 왕이 귀국하는 길에 욕돌역에서 묵었다.

國原仕臣龍長大阿湌私設筵(국원사신용장대아찬사설연) :
그 때, 국원의 지방관인 대아찬 용장이 개인적으로 연회를 열어

饗王及諸侍從(향왕급제시종) : 왕과 여러 시종들을 접대하였다.

及樂作(급악작) : 음악이 시작되자

奈麻緊周子能晏年十五歲(내마긴주자능안년십오세) : 내마 긴주의 아들 능안이 나이 15세로서

呈加耶之舞(정가야지무) : 가야의 춤을 추었다.

王見容儀端麗(왕견용의단려) : 왕이 그의 얼굴과 거동이 단정하고도 고운 것을 보고

召前撫背(소전무배) : 앞으로 불러 등을 어루만지면서

以金盞勸酒(이김잔권주) : 금잔으로 술을 권하고

賜幣帛頗厚(사폐백파후) : 폐백을 후하게 주었다.

 

九年(구년) : 9년,

冬唐使到(동당사도) : 겨울, 당 나라 사신이 와서

傳詔(전조) : 조서를 전하고,

與弩師仇珍川沙湌廻(여노사구진천사찬회) : 쇠뇌를 만드는 기술자인 사찬 구 진천을 데리고 갔다.

命造木弩(명조목노) : 당 황제가 나무 쇠뇌를 만들게 하였다.

放箭三十步(방전삼십보) : 만든 후에 화살을 쏘아보니 30보 밖에 나가지 않았다.

帝問曰(제문왈) : 황제가

聞在爾國造弩射一千步(문재이국조노사일천보) :
"너희 나라에서 만든 쇠뇌는 1천 보를 나간다고 들었는데,

今纔三十步何也(금재삼십보하야) :
지금 만든 것은 겨우 30보밖에 나가지 않는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對曰(대왈) : 대답하기를

材不良也(재불양야) : 그는 "목재가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若取材本國(약취재본국) : 만약 신라의 목재로 만든다면

則可以作之(칙가이작지) : 그렇게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天子降使求之(천자항사구지) : 천자는 사신을 보내 목재를 요구하였고,

卽遣福漢大奈麻獻木(즉견복한대내마헌목) : 곧바로 대내마 복한을 보내 목재를 바쳤다.

乃命改造(내명개조) : 황제는 즉시 쇠뇌를 개조하게 하였다.

射至六十步(사지육십보) : 그러나 개조한 후에 쏘아보니 60보 밖에 나가지 않았다.

問其故(문기고) : 황제가 그 이유를 물었다.

答曰(답왈) : 구 진천은

臣亦不能知其所以然(신역불능지기소이연) : "저도 그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殆木過海(태목과해) : 아마도 목재가 바다를 건너올 때

爲濕氣所侵者歟(위습기소침자여) : 습기가 배어 들었기 때문인 듯합니다."라고 대답하였다.

天子疑其故不爲(천자의기고불위) : 천자는 그가 고의로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닌가 의심하여

刦之以重罪而終不盡呈其能(겁지이중죄이종불진정기능) :
중죄를 준다고 위협하였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자신의 재능을 모두 발휘하지 않았다.

 

 

 

三國史記 第 七卷(삼국사기 제 07권) 新羅本紀 第 七(신라본기 제 07)
제30대 文武王 下(문무왕 하) <661~681 재위기간 20년>

 

十三年春正月(십삼년춘정월) : 13년 봄 정월,

大星隕皇龍寺在城中間(대성운황룡사재성중간) :
큰 별이 황룡사에 떨어지고, 재성에 지진이 발생하였다.

拜强首爲沙湌(배강수위사찬) : 강수를 사찬으로 임명하고,

歲賜組二百石(세사조이백석) : 해마다 벼 2백 석을 주기로 하였다.

二月(이월) : 2월,

增築西兄山城(증축서형산성) : 서형산성을 증축하였다.

八月(팔월) : 8월,

以波珍湌天光爲中侍(이파진찬천광위중시) : 파진찬 천광을 중시로 임명하였다.

增築沙熱山城(증축사열산성) : 사열산성을 증축하였다.

九月(구월) : 9월,

築國原城(축국원성) : 국원성

古薍長城(고완장성) : 예전의 난완성·

北兄山城召文城耳山城首若州走壤城(북형산성소문성이산성수약주주양성) :
북형산성·소문성·이산성·수약주의 주양성·

一名迭巖城(일명질암성) : 혹은 질암성

達含郡主岑城居烈州萬興寺山城(달함군주잠성거열주만흥사산성) :
달함군의 주잠성·거열주의 만흥사산성·

歃良州骨爭峴城(삽량주골쟁현성) : 삽량주의 골쟁현성을 쌓았다.

 

 

三國史記 第 八卷(삼국사기 제 08권) 新羅本紀 第 八(신라본기 제 08)

 

제33대 聖德王(성덕왕) <702~737 재위기간 35년>

 

二十二年春三月(이십이년춘삼월) : 22년 봄 3월,

王遣使入唐(왕견사입당) : 왕이 사신을 당에 보내

獻美女二人(헌미녀이인) : 미인 두 명을 바쳤다.

一名抱貞(일명포정) : 한 명은 포정이라는 여자로서

父天承奈麻(부천승나마) : 아버지는 내마 천승이었으며,

一名貞菀(일명정울) : 한 명은 정완이라는 여자로서

父忠訓大舍(부충훈대사) : 아버지는 대사 충훈이었다.

給以衣着器具奴婢車馬(급이의착기구노비차마) :
두 여자가 떠날 때 왕이 의복과 기구와 노비와 수레와 말을 주어,

備禮資遣之(비례자견지) : 예장을 갖추어 보냈다.

玄宗曰(현종왈) : 현종은

女皆王姑姊妹(녀개왕고자매) : "너희들이 모두 왕의 내종 자매들로서,

違本屬別本國(위본속별본국) : 친척과 이별하고 고국을 떠나 왔으니,

朕不忍留(짐불인류) : 나는 차마 머물러 있게 할 수가 없다"라고 말하고,

厚賜還之(후사환지) : 하게 선물을 주어 돌려 보냈다.

貞菀碑云(정울비운) : 후정완의 비석에는

孝成六年(효성륙년) : "효성 6년

天寶元年歸唐(천보원년귀당) : 즉 천보 원년에 당 나라에 가다"라고 되어 있으니,

未知孰是(미지숙시) : 어느 것이 옳은지 알 수 없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제14권 충청도(忠淸道) 충주목(忠州牧)【고적조에서】

 

 

포모대(泡母臺) 풍류산(風流山)에 있는데, 높이가 수십 장(丈)이다. 속설에 전하기를, “옛적에 장미(薔薇)라는 선녀가 있었는데, 스스로 포모(泡母)라 이름하고 항상 그 위에서 놀아 향기가 골에 가득하였다. 당 명황(唐明皇)이 그 말을 듣고 도사(道士)를 보내 맞아서 궁에 들이고 정완부인(貞完夫人)이라 이름하였다.” 한다. 상고하건대, 신라 성덕왕(聖德王) 22년(723)에 왕이 사신을 당(唐) 나라에 보내어 미녀 포정(抱貞)과 정원(貞菀) 두 사람을 바치니, 현종(玄宗)이 말하기를, “여자가 모두 왕의 고모와 자매인데, 친속(親屬)을 떠나고 고국을 이별하였으니, 짐이 차마 머물러 둘 수 없다.” 하고, 후하게 물건을 주어 돌려보냈다 하였으니, 정완(貞完)은 아마 정원(貞菀)이 잘못된 듯하다. 그러나 향기가 골에 가득하였다는 말은 심히 괴이하여 믿을 수 없다.

 

 

三國史記 第 三十二卷(삼국사기 제 32권) 雜志 第 一(잡지 제 01)樂(악)

 

羅古記云(라고기운) : 신라 고기에는

加耶國嘉實王見唐之樂器而造之(가야국가실왕현당지락기이조지) :
"가야국 가실왕"이 당 나라 악기를 보고 만든 것인데,

王以謂(왕이위) : 가실왕이 스스로 이에 대하여

諸國方言各異聲音(제국방언각이성음) : '모든 나라의 방언은 각각 그 성음이 다른 것인데

豈可一哉(기가일재) : 어찌 당나라의 노래만 부를 수 있으랴?'라고 말하고,

乃命樂師省熱縣人于勒造十二曲(내명락사성열현인우륵조십이곡) :
악사인 성열현 사람 우륵에게 명령하여 12곡을 창작하게 하였다.

後于勒以其國將亂(후우륵이기국장란) : 그 후 나라가 혼란스러워지자

携樂器投新羅眞興王(휴락기투신라진흥왕) : 우륵이 악기를 가지고 신라 진흥왕에게 귀순하였다.

王受之(왕수지) : 왕이 그를 받아 들여

安置國原(안치국원) : 국원에 정착시키고,

乃遣大奈麻注知階古大舍萬德傳其業(내견대내마주지계고대사만덕전기업) :
곧 대나마 주지, 계고와 대사 만덕 등을 보내 그에게서 수업하게 하였다.

 

 

 

三國史記 第 三十三卷(삼국사기 제 33권) 雜志 第 二(잡지 제 02)

色服(색복)

 

 

 

法興王制(법흥왕제) : 법흥왕 때의 제령에는,

自太大角干至大阿湌(자태대각간지대아찬) : 태대각간으로부터 대아찬까지는

紫衣(자의) : 자색 옷을 입었으며,

阿湌至級湌(아찬지급찬) : 아찬으로부터 급찬까지는

緋衣並牙笏(비의병아홀) : 붉은 옷에 상아홀을 들었으며,

大奈麻奈麻(대내마나마) : 대나마와 나마는

靑衣(청의) : 푸른 옷,

大舍至先沮知(대사지선저지) : 대사로부터 선저지까지는

黃衣(황의) : 황색 옷을 입는다고 되어 있다.

 

 

三國史記 第 三十八卷(삼국사기 제 38권) 雜志 第 七(잡지 제 07)

職官上(직관상)

 

新羅官號(신라관호) : 신라 관직의 호칭은

因時沿革(인시연혁) : 시대에 따라 바뀌어

不同其名言(부동기명언) : 그 명칭이 같지 않다.

唐夷相雜(당이상잡) : 이에는 당 나라의 명칭과 우리나라의 명칭이 섞여 있다.

其曰侍中郞中等者(기왈시중랑중등자) : 예컨대 시중이나 낭중이라고 하는 것은

皆唐官名(개당관명) : 모두 당의 관직명으로서

其義若可考(기의약가고) : 그 의미를 알 수 있으나

曰伊伐湌伊湌等者(왈이벌찬이찬등자) : 이벌찬 혹은 이찬과 같은 것들은

皆夷言(개이언) : 모두 우리나라 말로서

不知所以言之之意(부지소이언지지의) : 그 명칭을 붙이게 된 의미를 알 수가 없다.

當初之施設(당초지시설) : 처음 이러한 관직을 두었을 때는,

必也職有常守(필야직유상수) : 틀림없이 관직마다 일정한 임무가 있고,

位有定員(위유정원) : 직위마다 일정한 인원이 있었을 것이며,

所以辨其尊卑(소이변기존비) : 그것으로써 직책의 상하를 구분하고,

待其人才之大小(대기인재지대소) : 능력의 대소에 따라 임무를 맡겼을 것이다.

世久(세구) : 그러나 세월이 흐르자

文記缺落(문기결락) : 문헌이 사라졌고,

不可得覈考而周詳(불가득핵고이주상) :
이에 따라 고증하거나 상세하게 밝힐 수 있는 방도가 없어져 버렸다.

觀其第二南解王(관기제이남해왕) : 신라의 2대 임금 남해왕이

以國事委任大臣(이국사위임대신) : 나라 일을 대신에게 위임하고

謂之大輔(위지대보) : 그를 대보라 하였으며,

第三儒理王設位十七等(제삼유리왕설위십칠등) :
3대 임금 유리왕이 17등급의 작위를 두었다는 것은 살펴볼 수 있다.

自是之後(자시지후) : 그러나 그 이후는

其名目繁多(기명목번다) : 관직명이 복잡하게 많아졌다.

今採其可考者(금채기가고자) : 이제 고증할 수 있는 부분을 모아

以著于篇(이저우편) : 이 책에 기록한다.

 

大輔(대보) : 대보

南解王七年(남해왕칠년) : 남해왕 7년에

以脫解爲之(이탈해위지) : 탈해를 대보로 삼았다.

儒理王九年(유리왕구년) : 유리왕 9년에

置十七等(치십칠등) : 다음과 같은 17등급을 두었다.

一曰伊伐湌(일왈이벌찬) : 첫째는 이벌찬이다.

或云伊罰干(혹운이벌간) : 혹은 이벌간,

或云于伐飡(혹운우벌손) : 우벌찬,

或云角干(혹운각간) : 각간,

或云角粲(혹운각찬) : 각찬,

或云舒發翰(혹운서발한) : 서발한,

或云舒弗邯(혹운서불감) : 서불한이라고도 한다.

二曰伊尺湌(이왈이척찬) : 둘째는 이척찬이다.

或云伊湌(혹운이찬) : 혹은 이찬이라고도 한다.

三曰迊湌(삼왈잡찬) : 셋째는 잡찬이다.

或云迊判(혹운잡판) : 혹은 잡판

或云蘇判(혹운소판) : 혹은 소판이라고도 한다.

四曰波珍湌(사왈파진찬) : 넷째는 파진찬이다.

或云海干(혹운해간) : 혹은 해간

或云破彌干(혹운파미간) : 혹은 파미간이라고도 한다.

五曰大阿湌(오왈대아찬) : 다섯째는 대아찬이다.

從此至伊伐湌(종차지이벌찬) : 이로부터 위로 이벌찬까지는

唯眞骨受之(유진골수지) : 오직 진골만이 될 수 있으며,

他宗則否(타종즉부) : 다른 계통은 안된다.

六曰阿湌(육왈아찬) : 여섯째는 아찬이다.

或云阿尺干(혹운아척간) : 혹은 아척간

或云阿粲(혹운아찬) : 혹은 아찬이라고도 한다.

自重阿湌至四重阿湌(자중아찬지사중아찬) : 이에는 중아찬으로부터 사중아찬까지 있다.

七曰一吉湌(칠왈일길찬) : 일곱째는 일길찬이다.

或云乙吉干(혹운을길간) : 혹은 을길간이라고도 한다.

八曰沙湌(팔왈사찬) : 여덟째는 사찬이다.

或云薩湌(혹운살찬) : 혹은 살찬

或云沙咄干(혹운사돌간) : 혹은 사돌간이라고도 한다.

九曰級伐湌(구왈급벌찬) : 아홉째는 급벌찬이다.

或云級飡(혹운급손) : 혹은 급찬이나

或云及伐干(혹운급벌간) : 급복간이라고도 한다.

十曰大奈麻(십왈대나마) : 열째는 대나마이다.

或云大奈末(혹운대내말) : 혹은 대나말이라고도 한다.

自重奈麻至九重奈麻(자중내마지구중내마) : 이에는 중나마로부터 구중나마까지의 구분이 있다.

十一曰奈麻(십일왈내마) : 열한째는 나마이다.

或云奈末(혹운내말) : 혹은 나말이라고도 한다.

自重奈麻至七重奈麻(자중내마지칠중내마) : 이에는 중나마로부터 칠중나마까지의 구분이 있다.

十二曰大舍(십이왈대사) : 열두째는 대사이다.

或云韓舍(혹운한사) : 혹은 한사라고도 한다.

十三曰舍知(십삼왈사지) : 열세째는 사지이다.

或云小舍(혹운소사) : 혹은 소사라고도 한다.

十四曰吉士(십사왈길사) : 열네째는 길사이다.

或云稽知(혹운계지) : 혹은 계지,

或云吉次(혹운길차) : 길차라고도 한다.

十五曰大烏(십오왈대오) : 열다섯째는 대오이다.

或云大烏知(혹운대오지) : 혹은 대오지라고도 한다.

十六曰小烏(십륙왈소오) : 열여섯째는 소오이다.

或云小烏知(혹운소오지) : 혹은 소오지라고도 한다.

十七曰造位 열일곱째는 조위이다.

或云先沮知(혹운선저지) : 혹은 선저지라고도 한다.

 

 

三國史記 第 四十六卷(삼국사기 제 46권) 列傳 第 六(열전 제 06)

强首(강수)

强首(강수) : 강수(强首)는
中原京沙梁人也(중원경사양인야) : 중원경 사량인(沙梁人)이다.
父昔諦奈麻(부석체나마) : 아버지는 나마 석체(昔諦)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