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란 그늘 아래서/담론들

미륵리의 하늘을 바라보며

산골어부 2021. 1. 6. 09:14

 

미륵리의 하늘을 바라보며(19.06.04)

 

 

 

유구한 역사와 백두대간의 고갯길로 유명한 하늘재에서는 무엇을 볼 수 있을까 ? 조선시대의 영남대로인 문경새재에서는 또 무엇을 볼 수 있을까 ? 백두대간의 고개가 아닌 국도와 고속도로 터널 속에서는 또 무엇을 볼 수 있을까 ? 불과 얼마 전까지도 미륵대원지에는 폐사지의 허름한 석조물과 하늘재를 오르는 오솔길 밖에는 없었다. 하늘재와 미륵사지의 내력을 아는 사람들은 하늘재 주변에 산재하는 유적들을 떠올리며 답사하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륵사지의 전설과 소설같은 솔깃한 이야기를 전해주는 관람용 팜플렛과 안내판에서 잘못된 역사를 되새기며 다녀간다. 그런 이야기들이 미륵사지와 무슨 연관성이 있을까 ? 나그네가 지나가는 듯한 낭만적인 허무와 상상만으로 유적지를 이해하는 것은 역사가 아닌 관광용 상술에 지나질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문화재 복원을 싫어하지만, 만약에 미륵사지를 재창건한다면, 어떤 기술과 장비가 필요하며, 동원된 인력과 공사기간은 얼마나 필요할까 ? 미륵사지는 비슷한 시기에 있던 사찰과 달리 국가나 지방의 호족이 공사한 것으로 보이질 않는 유적지다. 좁고 긴 계곡을 따라 조성된 비대칭의 입지와 계곡을 가로막고 선 미륵당의 석실 등 당시의 가람배치와 양식과도 다르고, 시대에 맞지않는 기술과 발상들이다. 마치, 미륵세상을 꿈꾸는 고집스러운 스님과 그를 따르는 불자들이 모여 자력갱생의 선원을 조성하다가 포기한 것같은 이미지다. 달리 표현하면 낙향한 촌부가 깊은 산중에 들어 원림을 조성하다가 포기한 산채같은 느낌이다. 어쩌면 그 덕분에 정형화된 현대문명에서 볼 수 없는 순수와 해학을 느끼기에 미륵불이 더 신비롭게 보이는 것은 아닐까한다.

 

시대를 잊은 미륵사지의 유적들

 

충주시 향토자료에 의하면 일제강점기인 1935년 5월 24일에 오층석탑과 석불입상이 각각 국보 제166호와 제167호로 지정되었으나, 1936년 대홍수(병자년 홍수)로 인하여 법통이 끊어지고, 관리가 되질 않아서인지, 1963년 1월 21일에 각각 보물 제95호와 제96호로 변경되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수안보면이 괴산군에 속하여 문화재 명칭이 "괴산 미륵리 오층석탑"과 "괴산 미륵리 석불입상"이었으며, 고려 석실(돌방) 사원지로 소개되었다고 한다. 충주 미륵대원지는 행정구역 변경과 발굴조사 등에 따른 명칭변경으로 혼란스러울 뿐만 아니라, 미륵사지도 도깨비가 놀다간 것처럼 출토된 석조물과 유구들이 뒤죽박죽으로 흩어져 있다. 천 년을 이어온 미륵사지의 석조물과 유구는 유지보수와 중수과정에서 남겨진 일부분이다. 목조건물은 내구성도 떨어지고, 화재에 취약하여 백년도 버티기 힘들다. 국보나 보물로 지정된 건축문화재도 수없이 많은 중수를 거치면서 기본틀인 뼈대만 이어진 것에 불과하다. 세월이 너무 많이 흐른 탓일까 ? 아니면 세월이 너무 많이 변한 탓일까 ? 미륵사지에는 목조로 구성된 전각들은 사라지고, 돌덩어리만 남아있다. 일그러지고 헤어진 불상과 석탑이 남아 있었기에 천년이 흐른 지금까지 미륵이란 법통이 이어진 것이다. 천년이라는 세월 속에 남겨진 유물은 특정시기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보수와 중수를 거치면서 수없이 변화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연지형의 암반과 암석을 이용한 기초와 기단석에 세워진 석탑과 석등을 비롯한 미륵사지의 석조물과 유구는 다른 폐사지의 유물을 가져다 진열하다가 중단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회랑처럼 늘어선 석축과 주초석은 미륵대원의 미륵사지가 아주 작은 한칸짜리 전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암시한다. 당간지주석과 귀부석이 위치한 사찰의 진입공간을 제외한 미륵사지의 본당 크기는 대략 30m*90m(1:3)이며, 세계사가 있는 요사체 영역을 포함하면 대략 60m*180m(1:3)이지만, 물길로 양분된 요사체 구역을 제외한 폐사지가 연출하는 공간은 30m*180m(1:6)정도의 좁고 긴 비대칭이다. 미륵사지를 가르는 물길과 달리 미륵당의 석불입상과 석등 그리고 석탑은 계곡의 중심축이 되어 미륵불이 바라보는 북향의 시선은 땅이 아닌 하늘로 승화시켜 미륵의 꿈을 일깨워주는 듯하다.

 

 

 

 

충주 미륵대원지 사각석등

 

미륵대원은 미완성일까 ? 미륵사지의 미륵당과 미륵불을 비롯한 석조물들은 시대구분조차도 불분명하여 혼란스러워 많은 상상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단순하게 생각하면 미륵대원은 아웃사이더들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더 혹평을 하면 미지의 세계에 소외된 사람들이 타지에서 본 것들을 구현한 모사품처럼 보인다. 불상이 약사불인지 미륵불인지 구분하기도 어렵고, 미륵당의 석실과 감실은 고구려 고분이나 신라의 석굴암을 어설프게 모방한 것같은 느낌이다. 불상과 석등과 석탑도 다른 곳에서 옮겨온 것같아 보이고, 석조물의 형태와 문양의 양식도 다르다. 미륵사지의 연혁으로 살펴보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수리와 중수되어 혼재한 것으로 볼 수도 있고, 주변에 있던 다른 사찰이 폐사되면서 그 유물들을 옮겨온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리고, 훌륭한 작품을 만들고는 싶었지만, 경제력과 기술력이 떨어져 흉내만 낸 것처럼 보인다. 석굴암의 돔과 불국사의 석단은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지만, 미륵사지는 그럴만한 실력도 없어 보인다. 그러기에 불상과 감실의 조형물도 짝퉁이라고 하기도 민망하여 혼란기에 조성된 사찰이라는 표현과 함께 폐사지와 미완성의 이미지다. 하지만 미륵대원지는 미완성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에 따라 적응해 갔다는 것을 보여준다.

 

 

 

 

 

 

 

 

 

 

충주 미륵대원지의 석탑과 석등에 대하여

cafe.daum.net/_c21_/bbs_read?grpid=1G3nu&fldid=jU5A&contentval=00049zzzzzzzzzzzzzzzzzzzzzzzzz&datanum=257&page=1&prev_page=0&firstbbsdepth=&lastbbsdepth=zzzzzzzzzzzzzzzzzzzzzzzzzzzzzz&listnum=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