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 점말동굴 앞에서
제천 점말동굴 앞에서
요즈음에는 고대사를 공부하다가 보니, 딜레마에 빠져 너무 답답했다. 아는 것도 없지만, 어깨너머로 읽어보는 이야기 속에서 수많은 학자들이 이어온 논쟁을 나름대로 이해한다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아침에 문득, 청주의 두루봉 동굴을 갈까 하다가 오후에 봄비가 내릴 것 같아서 가까운 제천의 점말동굴을 찾았다. 점말동굴은 아주 까마득한 옛날 옛적에 원시인들이 살았던 곳이다. 너무 머나먼 이야기지만, 인류사가 아닌 자연사에서는 그리 멀지도 않은 이야기다. 점말동굴 앞에서는 한국사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교과서나 박물관에서나 보는 선사시대. 나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선사시대를 알기 시작 것은 1980년에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같은 골목에서 자취를 하던 역사교육과 선배들과 술을 마시면서다. 80년의 봄은 무척 시끄럽던 시절이었다. 술만 먹으면 정치와 데모 이야기를 하다가 튀어 나오는 유적발굴 이야기. 처음에는 점말동굴과 두루봉 동굴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것에는 관심조차도 없었지만, 그런 이야기도 자주 듣다가 보니, 그게 궁금해서일까 ? 두루봉 유물을 전시한 대학 박물관을 찾게 되었지만, 당시만 해도 전시라기보다는 유물이 수장고 박스에 담겨 연구 중에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국보나 보물급 문화재를 유물로 취급하던 시절에 돌조각과 뼛조각을 들고 설명해 주시던 교수님이 조금은 한심스럽기도 했었다. 그 후로도 흥수아이라는 인골이 발견되었다고 하였지만, 나에게는 관심 밖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하지만, 가끔씩 답사를 다니면서 박물관을 방문할 때면 그 당시의 추억이 떠오르곤 한다.
오래 전에 역사학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읽었던 책들이 떠오른다. 이제는 그 책들도 이름만 어렴풋이 기억할 뿐이다. 역사란 무엇일까 ? 옛날 이야기가 아닌 학문의 세계는 ? 제천 점말동굴 앞에서 까마득한 옛날을 상상하면 어떨까? 어쩌면 바보가 되어야 한다. 선사가 아닌 고대역사는 어떨까 ? 뒤늦게 역사에 흥미를 느껴서 역사를 공부하다가 풀리지 않을 때면 "흥수아이"를 떠올리곤 한다. 왜 ! "흥수아이"가 떠오를까 ? 무엇이 다를까 ? 근. 현대사를 잘 아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아는 것이 없다. 단지, 먹고사는 내 주변의 이야기일 뿐이다. 까마득한 옛날에도 그랬다. 하지만 남은 것은 돌조각과 뼛조각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동굴을 바라본다. 무엇이 떠오를까 ?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다를 것이다. 수렵과 채취는 원시인일까 ? 지금도 수렵과 채취를 한다. 물고기도 잡고, 산나물도 뜯는다. 물고기나 산나물이 아니더라도, 돈벌이를 한다. 그 대상이 화폐로 변한 것이다. 돌조각과 뻣조각으로 만든 도구들은 어쩌면 당시에는 첨단과학기술일 것이다. 근,현대사란 무엇일까 ? 어쩌면 현대인은 고대인들 보다도 더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