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어부 2025. 4. 18. 06:04

 

조선왕조실록/태종실록/ 태종2년

회암사로 가서 태상왕을 문안하다

임금이 회암사(檜巖寺)로 가서 태상왕을 조알(朝謁)하였다. 처음에 태상왕이 왕사(王師) 자초(自超)의 계(戒)를 받아 육선(肉膳)을 들지 아니하여, 날로 파리하고 야위어졌다. 임금이 이 말을 듣고 환관(宦官)을 시켜 자초에게 말하기를,
“내가 태상전(太上殿)에 나가서 헌수(獻壽)하고자 하는데, 만일 태상왕께서 육선(肉膳)을 자시지 않는다면, 내가 장차 왕사(王師)에게 허물을 돌리겠다.”
하였다. 자초가 근심하고 두려워하여 회암사를 사양하고 작은 암자에 나가 있었다. 임금이 이른다는 말을 듣고 회암사 주지(住持) 조선(祖禪)과 더불어 태상왕께 고하기를,
“상(上)께서 육선(肉膳)을 드시지 아니하여, 안색이 파리하고 야위어지십니다. 우리들이 오로지 상위(上位)께서 부처를 좋아하시는 은혜를 입어서 미천한 생(生)을 편안히 지내는데, 지금 상(上)의 안색이 파리하고 야위신 것을 보니, 우리들의 생이 오래지 않은 것을 알겠습니다.”
하였다. 태상왕이 말하기를,
“국왕이 만일 나처럼 부처를 숭상한다면, 내가 마땅히 고기를 먹겠다.”
하였다. 임금이 들어가 술잔을 올리니, 태상왕이 허락하고 얼굴빛이 안화(安和)해졌다. 임금이 기뻐하여 삼현(三絃)을 들여와 연주하도록 명하고, 소선(素膳)을 올리었으니, 태상왕의 뜻을 거스를까 두려워함이었다. 태상왕이 조용히 임금에게 말씀하기를,
“왕사의 말이,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으면 후생에 반드시 머리 없는 벌레가 된다’고 하기에, 내가 고기를 먹지 않는다.”
하였다. 임금이 말 네 필을 태상전에 바치었다.
【원전】 1 집 243 면
【분류】 왕실-의식(儀式) / 사상-불교(佛敎)

 

 

조선왕조실록/순조실록/ 순조21년

형조에서 회암사의 부도 등을 파괴한 이응준에 대한 법의 적용을 대신들에게 묻다

 
광주(廣州)의 유학(幼學) 이응준(李膺峻)이 양주(楊州)의 회암사(檜巖寺) 부도(浮圖)와 비석을 파괴하고 사리를 훔친 후 그곳에다가 자신의 아버지를 묻었다. 지공(指空)ㆍ나옹(懶翁)ㆍ무학(無學) 세 선사(禪師)의 부도(浮圖)와 사적비(事蹟碑)가 회암사 북쪽 산비탈에 있었는데, 무학의 비석은 곧 태종(太宗)의 분부를 받아 글을 지어 세운 것이다. 경기의 관찰사가 이 사실을 장계로 아뢰자, 형조에서 법의 적용 여부에 대해 대신들에게 물었다. 영의정 한용귀는 말하기를,
“이응준은 매우 악한 범죄를 저질렀으므로 중죄에 처해야 합당하겠습니다만, 그 형량을 참고할 만한 법이 없으니, 그냥 그대로 심리를 해야 합니다. 만일 그가 사리를 훔친 짓에 대하여 논한다면 관(棺)을 열어 시신을 본 죄에 비길 만하고, 그 비석을 파괴한 죄에 대하여 논한다면 임금이 지은 글을 훼손한 죄에 해당되므로, 모두 사형(死刑)을 적용해야 할 것입니다. 어찌 그를 살려줄 수 있겠습니까? 옛날부터 그 죄가 사형에 관계되면 다만 그 법에 의하여 처단하였지 엇비슷한 다른 법을 적용한 사례가 없었습니다. 이 예를 한번 터놓으면 그 후환이 말할 수 없이 많을 것입니다. 구구한 저의 소견을 말씀드린다면 그에게는 특별히 사형을 감하여 엄중한 형장을 가하고 외딴섬으로 유배하되, 대사면령이 반포되기 전에는 용서하지 않는 것이 실로 공평한 의의에 부합될 것입니다.”
하고, 좌의정 남공철과 우의정 임한호가 말하기를,
“형조에서 그를 중죄에 처하든 살려주든간에 하나의 율을 정하는 것이 실로 사리에 맞는 일입니다. 이와 같은 죄안(罪案)에 관한 의논을 묘당(廟堂)에까지 의논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법관이 처리해야 한다.’는 의의로 볼 때 이와 같이 처리해서는 안됩니다. 해당 당상관을 먼저 추고(推考)하소서.”
하니, 하교하기를,
“국가의 큰일 중에서 사형보다 더 중한 것은 없다. 그러므로 형관(刑官)이 의심난 일이 있으면 대신들에게 묻기를 청하고, 임금이 의심난 일이 있으면 대신들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이는 살리고 죽이는 권한이 오직 임금과 대신들에게 있기 때문이니, 고금에 공통된 의의이다. 그런데 이번에 좌상과 우상은 가부를 논하지 않고 대신에게 물어보라고 한 형관을 질책하였으니,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그렇다면 죄수를 관대하게 처결하거나 복계(覆啓)할 때에 대신들이 꼭 참여할 필요가 뭐가 있겠는가? 또한 죄수를 죽이든 살리든간에 말 한마디도 하지 않을 셈인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영상은 이미 자기의 의견을 말하였으니, 영상 이외에 좌상과 우상에게는 다시 한 가지를 지적하여 의논을 거두어 오도록 하라.”
하였다.
【원전】 48 집 181 면
【분류】 사법-치안(治安) / 사법-탄핵(彈劾) / 풍속-예속(禮俗) / 사상-불교(佛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