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뒤안길에서/기억 속으로

학교모범(學校模範)

산골어부 2025. 5. 14. 05:34

 

율곡선생전서 제15권 / 잡저 

 

학교모범(學校模範)

하늘이 만백성을 낳으니 사물이 있으면 법칙이 있는 것이다. 천부(天賦)의 거룩한 덕을 누구나 다 받았건마는, 사도(師道)가 끊어지고 교화(敎化)가 밝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진작시킬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선비의 풍습이 경박하여지고 양심(良心)이 마비되어 부박(浮薄)한 공명만 숭상하고 실행을 힘쓰지 않아서 위로는 조정에 인재가 모자라서 벼슬에 빈자리가 많으며, 아래로는 풍속이 날로 퇴폐하고 윤리의 기강(紀綱)이 날로 무너져 없어지고 있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니 참으로 한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장차 지난날의 물든 습속을 일소하고 선비의 기풍을 크게 변화시키기 위하여, 선비를 가려 뽑고 가르치는 방법을 다해서 성현의 가르침을 대략 본받아 〈학교모범〉을 만들어서 많은 선비들로 하여금 몸을 가다듬고 일을 처리해 나가는 규범을 삼게 하니 모두 16조(條)로 되어 있다. 제자(弟子) 된 자는 참으로 마땅히 지켜 행해야 되고 스승 된 이는 더욱 이 법규로써 먼저 자신을 바로잡아 이끄는 도리를 다해야 할 것이다.
 
첫째는 입지(立志)이니,
배우는 자는 먼저 뜻을 세워 가지고 도로써 자신의 임무를 삼아야 한다. 도는 고원(高遠)한 것이 아닌데 사람이 스스로 행하지 않는다. 만 가지 선(善)이 모두 나에게 갖추어 있으니 달리 구할 필요는 없다. 다시 망설이거나 기다릴 것도 없으며 더 이상 두려워하거나 머뭇거릴 필요도 없이 곧 천지(天地)로 마음을 세우고 민생으로써 표준을 삼으며, 옛 성인을 표준삼아 끊어진 학문을 계승하고, 온 세상을 위해서 태평을 열어 주기로 목표를 세워야 한다. 물러서서 스스로 앞길에 한계선을 긋는 생각이나 우선 편안한 것을 바라서 스스로 용서하는 버릇은 털끝만큼이라도 가슴속에 생겨나지 못하게 해야 한다. 훼손과 명예, 영화됨과 욕됨, 이해(利害)와 화복(禍福) 이런 것들이 나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게 해야 하며 분발하고 힘써서 꼭 성인이 되어야 한다.
 
둘째는 몸을 금제(禁制)함이니,
배우는 자는 한번 성인이 되겠다는 뜻을 세운 이상에는 반드시 구습을 씻어 버리고 오로지 학문을 지향하여 몸가짐과 행동을 다잡아야 한다. 평소에 일찍 일어나고 밤늦게 자고 의관은 정숙하게, 용모는 장중하게, 보고 들음은 단정하게, 거처는 공손하게, 걸음걸이는 똑바르게, 음식은 절제 있게, 글씨는 조심성 있게, 책상은 가지런하게, 서재는 깨끗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항상 구용(九容 아홉 가지 용태)으로써 몸을 지녀야 하니, 족용중(足容重)하고, 수용공(手容恭)하고, 목용단(目容端)하고, 구용지(口容止)하며, 성용정(聲容靜)하고, 두용직(頭容直)하며, 기용숙(氣容肅)하고, 입용덕(立容德)하며, 색용장(色容莊)할 것이다. 또는 예(禮) 아니면 보지 말고 예 아니면 듣지 말고 예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 아니면 행동하지 말 것이다. 이른바 예가 아니라는 것은 조금이라도 천리에 어긋나면 이는 곧 예가 아니다. 그 대략의 것을 말하자면, 창우(倡優)의 부정(不正)한 안색과 사치스러운 속악(俗樂)의 소리와 비루하고 방탕한 놀이와 정도에 어긋나는 문란한 놀음은 더구나 엄금해야 한다.
 
셋째는 글 읽기이니,
배우는 자가 이미 선비의 행실로 몸가짐을 단속하고 나서는 반드시 독서와 강학(講學)으로 의리를 밝혀야 하니 그런 뒤에 학문에 나아가야 학문의 방향이 흐리지 않는 것이다. 스승에게 배우되 배움은 넓어야 하고 질문은 자세하게 해야 하며 생각은 신중하게 해야 하고 분별은 명확해야 한다. 그리하여 깊이 생각하여 반드시 마음으로 터득하기를 기약할 것이다. 언제나 글을 읽을 때는 반드시 태도를 정숙하게 하고 단정히 앉아서 마음과 생각을 한곳으로 모아 한 가지 글에 익숙해진 다음에 비로소 다른 글을 읽어야 하고 많이 보기에 힘쓰지 말아야 하고 기억하는 것만 일삼지 말아야 한다. 글 읽는 순서는 《소학》을 먼저 배워 그 근본을 배양하고 다음에는 《대학》과 《근사록(近思錄)》으로 그 규모를 정하고, 그다음에는 《논어》ㆍ《맹자》ㆍ《중용》과 오경(五經)을 읽고, 《사기(史記)》와 선현의 성리(性理)에 관한 책을 간간이 읽어 뜻을 넓히고 식견을 가다듬어야 할 것이다. 성인이 짓지 않은 글은 읽지 말고 보탬이 없는 글은 보지 말아야 한다. 글 읽는 여가에는 때로 기예를 즐기되 거문고 타기, 활쏘기 연습, 투호(投壺) 등의 놀이는 모두 각자의 규범을 두어 적당한 시기가 아니면 놀지 말고, 장기ㆍ바둑 등 잡희에 눈을 돌려 실제의 공부에 방해가 되게 해서는 안 된다.
 
넷째는 말을 삼가는 것이니,
배우는 자가 선비의 행실을 닦으려면 반드시 언어를 삼가야 한다. 사람의 과실은 언어로부터 오는 것이 많으니 말을 반드시 정성스럽고 믿음직스럽게 하고 때맞추어 말하고 수정이나 승낙은 신중하게 해야 한다. 말투를 정숙하게 하고 익살이나 떠들지 말아야 한다. 다만 문자와 이치에 유익한 말만 하고 허황한 것, 괴이한 것, 귀신의 이야기나 거리의 상말을 입 밖으로 내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무리들과 잡담으로 날을 보내거나, 시대의 정치를 함부로 논란하거나, 남의 장단점을 논하는 것은 모두 공부에 방해되는 것이니 일체 경계해야 할 것이다.
 
다섯째는 본마음 간직함이니,
배우는 자가 몸을 닦으려면 안으로 마음을 바로잡아 외물(外物)의 유혹을 받지 않아야 한다. 그런 뒤에야 마음이 태연하여 온갖 사특함이 물러나 진실한 덕에 나아갈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배우는 자가 먼저 할 일은 마땅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가만히 앉아서 본마음을 간직하여 조용한 가운데에서 흐트러지지도 않고 사리에 어둡지도 않음으로써 근본을 세우는 것이다. 이를테면 일념(一念)이 생길 때에는 반드시 선악의 기미를 살펴 그것이 선(善)일 때에는 그 의리를 궁구하고, 그것이 악일 때에는 그 싹을 근절하여 본마음을 간직하고 본성을 기르고 성찰하여 노력이 끊이지 않으면 모든 언동이 의리의 당연한 법칙에 부합하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여섯째는 어버이를 섬김이니,
선비의 온갖 행실 중에 효도와 우애가 근본이니 삼천 가지 죄목 중에 불효가 제일 큰 것이다. 어버이를 섬기는 이는 공경을 극진히 하여 어른의 명에 순종하는 예(禮)를 다하고, 즐거움을 다하여 음식의 봉양을 드리고 병환에는 근심을 극진히 하여 의약의 치료를 다하고, 상사(喪事)에는 지극한 슬픔으로 상례의 도리를 다할 것이요, 제사(祭祀)에는 엄숙함을 극진히 하여 추모의 정성을 다해야 할 것이다. 겨울에는 따스하게 모시고 여름에는 시원하게 해 드리며 아침저녁으로 보살펴 드리고 외출할 때는 반드시 알리고 돌아와서는 반드시 뵙는 것까지도 모두 성인의 교훈을 따르지 않는 것이 없게 하고, 부모가 만일에 잘못이 있을 때에는 성의를 다하여 은근히 간하고 말리어 점차 도리로써 깨닫게 해야 한다. 자식은 속으로 자신의 몸을 돌이켜 보아 온갖 행실이 갖추어지지 않은 것이 없이 시종 덕을 온전히 하여 부모를 욕되게 하지 않게 하고서야 비로소 어버이를 섬긴다고 말할 수 있다.
 
일곱째는 스승을 섬김이니,
배우는 자가 성심으로 도에 뜻을 두었다면 반드시 먼저 스승 섬기는 도리를 융숭히 해야 한다. 사람은 임금ㆍ스승ㆍ아버지 이 세 분 덕에 태어나고 살고 배우게 되므로, 섬기기를 똑같이 해야 하니, 어찌 마음을 다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함께 살게 되면 아침, 저녁으로 뵙고 따로 있으면 수업을 받을 때 뵙고 초하루ㆍ보름에는 일제히 모여서 예를 행한 다음 두 번 절하고 뵙는다. 평상시에 모셔 받듦도 존경을 다하고 교훈을 돈독히 믿어 늘 명심하여 잊지 말아야 한다. 만일 스승의 말씀과 행하는 일에 의심나는 점이 있을 때는 조용히 질문하여 그 잘잘못을 가려야 하며, 곧 자기의 사견(私見)으로 스승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 또는 의리를 생각하지 않고 스승의 말만을 맹목적으로 믿어서도 안 되며 봉양하는 정도에 있어서는 힘에 따라 성의를 극진히 하여 제자의 직분을 다해야 한다.
 
여덟째는 벗을 택함이니,
도를 전해 받고 의혹을 해결하는 것은 스승에게 힘입더라도 서로 갈고 닦아 인(仁)을 돕는 것은 실로 벗에게 힘입는 것이다. 그러므로 배우는 자는 반드시 충성과 신의, 효도와 우애, 강직하고 방정하며, 돈독한 선비를 가려 벗으로 사귀어서 잘못이 있으면 서로 경계하고 선행(善行)으로써 서로 권하고 충고하여 덕행을 닦음으로써 벗의 윤리를 다해야 한다. 만일 마음가짐이 돈독하지 못하고 자유의 절제가 엄하지 못하여 떠들고 다니며 즐겁게 노는 것만 좋아하고 말과 기운만 숭상하는 자는 모두 벗으로 사귀지 말아야 한다.
 
아홉째는 가정생활이니,
배우는 자가 몸과 마음을 닦았으면 가정생활에서 윤리를 다하여 형은 우애하고 아우는 공순하여 한몸같이 보며, 남편은 온화하고 아내는 양순하여 예의를 잃지 말며, 바른 도리로써 자녀를 교육하되 애정으로 총명이 흐려지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아랫사람을 통솔하는 데는 엄격함을 주로 하되 관용을 베풀고 굶주림과 추위를 특별히 염려하여 상하가 정숙하고 내외의 분별이 있어서 한 집안일의 처사가 극진한 도리를 하지 않음이 없어야 한다.
 
열째는 사람을 응접함이니,
배우는 자가 이미 가정을 바로잡고 나서는 남을 대할 때 한결같이 예의를 준수해야 한다. 어른을 공손히 섬기되 침식과 보행(步行)을 모두 어른보다 뒤에 하고, 나이가 열 살 이상이면 형으로 섬기고 갑절 이상이면 더욱 공손하게 대우한다. 어린이는 자애(慈愛)로써 어루만져 주어야 하고, 친족에게는 돈독하고 화목하며, 이웃을 사귀는 데도 그들의 환심(歡心)을 얻어야 하고, 항상 덕과 학업을 서로 권장하고 허물은 서로 바로잡고, 혼인 장례 때 서로 돕고 어려운 일은 서로 도와 언제나 남을 구해 주고, 항상 남을 이롭게 할 생각을 가져야 하며 남을 해치거나 사물을 해롭히는 생각은 털끝만치라도 마음에 머물러 두지 말아야 한다.
 
열한 번째는 과거에 응시하는 것이니,
과거는 비록 뜻있는 선비의 애써 구할 바는 아니나 또한 요즈음에는 그것이 벼슬에 나아가는 길이 되어 있다. 만일 도학(道學)에 온 마음을 쏟아서 나아가고 물러남을 예의로 하는 사람이라면 과거를 숭상할 까닭이 없지만 서울의 문물을 보고 과거에 응하게 되면 또한 성심으로 공부를 해야 하고 세월만 부질없이 보내서는 안 된다. 다만 과거의 득실 때문에 자신이 지키는 지조를 잃어서는 안 되며 항상 자신을 바로 세우고 도를 행하여 임금에게 충성하고 나라의 은혜를 갚을 생각을 하고 그저 구차스레 의식을 넉넉하게 할 것이나 추구할 것이 아니다. 진실로 도를 지향하여 게을리하지 않고, 일상으로 행하는 일이 도리대로 따르지 않음이 없어야 한다. 과거 공부도 일상사의 한 가지 일이니 실제의 공부에 무엇이 방해되겠는가. 오늘날 사람들이 늘 과거에 뜻을 빼앗길까 염려하는 것은 득실로써 생각이 움직여짐을 면치 못하기 때문이다. 또 요즈음의 선비들의 공통된 병폐는 게으르고 방종하여 글 읽기에 힘쓰지 않고 도학을 따른다고 하면서 과거 공부를 달갑게 여기지 않아 부질없이 세월만 보내고 학문과 과거 공부 중 한 가지도 성취하지 못하는 자가 많으니 가장 경계할 점이다.
 
열두 번째는 의리를 지킴이니,
배우는 자는 무엇보다도 의(義)와 이(利)의 밝게 분별하는 것보다 더 급한 것이 없다. 의란 것은 무엇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조금이라도 무엇을 위해서 하는 목적이 있다면 다 이를 위하는 도둑의 무리이다. 어찌 경계하지 않겠는가. 선을 행하면서 명예를 구하는 자 또한 이를 위하는 마음이니 군자는 그것을 담장을 넘고 벽을 뚫는 도둑보다 더 심하게 본다. 하물며 불선(不善)을 행하면서 이득을 보겠다는 자이랴. 배우는 자는 털끝만큼의 이욕(利欲)도 마음에 머물러 두어서는 안 된다. 옛사람은 부모를 위한 노역이라면 품팔이나 쌀을 짊어지기도 하였지만 그 마음은 항상 깨끗하여 이욕에 물드는 일이 없었는데 오늘날의 선비는 온종일 성현의 글을 읽으면서도 오히려 이욕을 버리지 못하니 슬프지 않겠는가. 혹시 가정이 가난하여 부모의 봉양을 위하여 한번 계획해 보지 않을 수 없으나 이득을 구하는 생각은 싹트게 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물리치거나 받거나 가지거나 주거나에 있어서도 언제든지 그 당연한가 아닌가를 살피고, 이득이 되는 것을 보면 의리에 맞는가를 생각해야 하고 털끝만큼도 구차스럽게 지나쳐서는 안 된다.
 
열세 번째는 충직함을 숭상함이니,
충직하고 순후함과 기개와 절조는 서로 표리(表裏)가 되는 것이나 스스로 지키는 절도가 없이 두루뭉수리한 것으로 충성하고 순후한 체하는 것도 옳지 못하고, 근본적인 덕이 없이 강하고 과격함으로써 기개와 절조인 체하는 것도 옳지 못하다. 세속이 어지럽고 야박하여 실덕(實德)이 날로 상실되어 남의 비위를 맞추어 아부하는 자가 있는가 하면 거만스럽게 기개만 숭상해서 행실이 중도에 맞는 선비를 얻어 보기가 실로 어렵다. 《시경》에, “온화하고 공손한 사람이여 오직 덕을 닦는 기초로다.[溫溫恭人 維德之基]” 하였고, “부드러워도 삼키지 않고 딱딱해도 뱉어 버리지 않도다.[柔亦不茹 剛亦不吐]” 하였다. 사람이 반드시 온순하고 공손하며 화평하고 순수하여 근본이 깊고 두터워진 뒤에야 제대로 정의를 세워 큰 절개에 다다라 자기 뜻을 빼앗기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저 비루하고 아첨하는 못난 자들이야 본래 말할 것도 없거니와, 명색이 학문한다는 선비로서 자신의 재주와 권위만 믿고 남을 경멸하고 모욕하는 자는 그 피해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지경이다. 조금 터득해도 만족하고 발끈하거나 명성이나 좋아하는 사람이 어찌 제대로 된 기개와 절조를 지닌 자이겠는가. 요즘 선비들의 병통이 이와 같으니 진실로 예법에 관한 학문이 밝지 못하고 허례와 교만이 습성이 된 탓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예의에 관한 학문을 밝혀 윗사람을 높이고 어른을 공경하는 도리를 다해야 한다. 진실로 이와 같이 하면 충직하고 순후함과 기개와 절조를 다 완전히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열네 번째는 공경을 돈독히 함이니,
배우는 자가 덕에 나아가서 학업을 닦는 것은 오직 공경을 돈독히 하는 데 있다. 공경하기를 돈독하게 하지 않으면 다만 빈말일 뿐이다. 반드시 표리(表裏)가 하나같고 조금도 그침이 없어야 한다. 말에는 본받을 만한 교훈이 있고 행동에는 법도가 있으며 낮에는 하는 일이 있고 밤에는 얻는 것이 있으며, 눈 한 번 깜짝하는 사이나 숨 한 번 쉬는 동안에도 본마음을 간직하고 본성을 기름에 있어서 공부하는 과정을 오랫동안 계속하더라도 그 효과는 구하지 말고 오직 날마다 쉬지 않고 힘쓰다 죽은 뒤에야 그만두는 것이니 이것이 실학(實學)이다. 만일 이것은 힘쓰지 않고 다만 해박한 것을 논하고 이야기하는 것을 자신을 꾸미는 도구로 삼는 자는 선비의 적이다. 어찌 두려워하지 않아서 되겠는가.
 
열다섯 번째는 학교에 거처함이니,
배우는 자가 학교에 있을 때에는 모든 행동거지를 일체 학령에 따라야 한다. 글도 읽고 저술(著述)도 하며 식후에는 잠깐 동안 거닐어 정신을 맑게 하고 돌아와서 학업을 익히고 저녁 먹은 뒤에도 그렇게 해야 한다. 여럿이 함께 있을 때에는 반드시 강론으로 견문을 넓히고 예법에 맞는 몸가짐으로써 가지런히 정돈하고 엄숙해야 한다. 만일 스승이 학교에 있으면 읍(揖)을 한 뒤에 질문하며 마음을 비우고 가르침을 받아서 늘 잊지 말아야 하며 무익한 글을 질문하여 마음과 힘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
 
열여섯 번째는 글 읽는 방법이니,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는 여러 유생들이 학당에 일제히 모여 문묘(文廟)에 배알하고 읍하는 예를 마친 뒤 자리를 정하고 스승이 있으면 북에 앉고 여러 생도는 삼면(三面)에 앉는다. 장의(掌議) 장의가 유고 시에는 유사(有司) 혹은 글을 잘 읽는 자가 대리한다. 가 소리를 높여 《백록동교조(白鹿洞敎條)》 또는 〈학교모범〉을 한 번씩 읽는다. 그러고 나서 서로 토론하며 실질적인 공부로써 권면하고, 스승이 있으면 스승에게 질문한다. 만일 의논할 일이 있으면 강론을 통해 결정해야 하고, 여러 생도들이 의논하는 일이 있을 때에는 스승이 먼저 나가야 한다. 여러 생도들이 사고로 참석하지 못할 때에는 반드시 서면으로 모이는 장소에 알려야 한다. 여러 사람이 다 아는 바로 질병이 있거나 시골에 갔거나 기일(忌日)을 당한 외에 사고를 핑계하고 참석하지 않는 자에 대해서는 두 번이면 1개월 동안 모임에서 내쫓고 그래도 오지 않으면 사장(師長)에게 고하여 체벌을 의논한다. 출좌(黜座)는 쫓아내는 것이다. 어진 사람은 다시 복귀를 허락할 때는 전체가 모인 자리에서 대놓고 꾸짖는다.
 
 
위의 열여섯 가지 조항은, 스승ㆍ제자ㆍ학우 사이에 서로 권면하고 경계하며 명심해야 한다. 생도들 가운데 마음을 잘 간직하고 몸을 잘 단속하여 모범을 준수하고 학문이 성취되어 뛰어나게 칭찬할 만한 자가 있을 경우 회의 때에 여러 사람에게 묻고 찬성을 얻으면 착한 자의 명부에 기입하고, 그중에 남달리 뛰어난 자가 있으면 그 실상을 갖추어 사장(師長)에게 단자를 올려 권장의 뜻을 표시하고, 만일 여러 생도들 중에 학교 규칙을 준수하지 않은 채 향학의 의욕이 독실하지 않고 놀기만 하며 날짜만 보내고 몸가짐을 삼가지 않고 놓친 본마음을 되찾지 못하며, 행동거지가 장중하지 않고 언어가 진실하지 않으며 부모에게 효성을 다하지 않고 형제에게 우애가 없고 가정의 법도가 난잡하여 질서가 없고, 스승을 존경하지 않고 나이 많고 덕이 있는 사람을 업신여기며, 예법을 경멸하고 본처를 소박하고 음란한 창기를 가까이 사랑하고 부질없이 권세가 있는 사람 찾아가기를 좋아하며 염치를 돌보지 않으며 함부로 사람답지 않은 자와 사귀어 아래 또래에게 굽실대며 술 마시기 좋아하여 방탕한 생활을 하고 주정에 빠지기를 낙으로 삼으며 송사(訟事)하기 좋아하며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그만두지 않고 재물의 이익을 계획하여 사람들의 원망을 무시하고 재주 있는 자를 시기하며 선량한 이를 헐뜯고 일가친척과 화목하지 않고 이웃과 불화하며, 제사에 근엄하지 못하고 천지신명에게 태만하며 한 집안의 제사뿐 아니라 학당의 제사에도 사고를 핑계하고 참석하지 않는 것도 천지신명에게 태만한 것이다. 혼인, 장례에 돕지 않고 환란에 돕지 않으며 지방에 있어서는 조세에 성의를 다하지 않고, 고을 수령을 헐뜯고 흉보는 일 등등의 잘못은 벗들이 보고 듣는 대로 깨우쳐 주되, 고치지 않을 때에는 장의에게 고해서 유사가 모임에서 드러내어 꾸짖는다. 그래도 고치지 않고 억지 변명으로 복종하지 않으면 적은 허물이면 모임에서 쫓아내고 큰 허물이면 사장에게 알려서 출재(黜齋) 출재란 학당에 와서 배우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허물을 고친 뒤에는 돌아오게 한다. 를 하고 나쁜 자의 명단에 기입한다. 학당에서 내쫓긴 자만 나쁜 자의 명단에 기입한다. 학당에서 쫓겨난 뒤에 마음을 바꾸고 허물을 고쳐서 뚜렷이 선을 지향하는 자취가 있으면 다시 학당에 들어오기를 허가하고 도로 학당에 들어올 적에는 모두 모인 자리에서 대면하여 꾸짖는다. 그 나쁜 자의 명부에서 이름을 지워 버린다. 만약 끝까지 허물을 뉘우치지 않고 나쁜 버릇을 더욱 키워 자기를 책하는 이를 도리어 원망하면 사장에게 고하여 그 이름을 명부에서 삭제하고 이어 중앙과 지방의 학당에 통고한다. 제적된 사람이 자신을 원망하고 꾸짖어 현저하게 선을 지향하는 자취가 뚜렷이 보이기 3년을 지난 후에 그것이 더욱 독실할 때에는 도로 입학을 허가한다. 무릇 잘못을 기록할 때는 반드시 법규를 세운 뒤에 기록하고 법규를 세우기 전의 허물은 소급하여 논란하지 않고 그가 스스로 고칠 길을 열어 줄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고치지 않으면 그때에 처벌을 논한다.
 
 
교화(敎化)하는 방법은 스승을 가리는 것보다 우선할 것이 없다. 근래에는 훈도의 임명에 그 자격을 가리지 않고 청탁에만 따르므로 스승의 자리가 도리어 가난한 선비의 밥벌이의 구제가 되고 말았다. 때문에 훈도의 이름이 천하게 되어 서로 비웃고 나무라기까지 한다. 스승이 알맞은 사람이 아니고 보면 선비의 기풍이 날로 쇠퇴해지는 것이 사리와 형세상 필연적이므로 괴이할 것이 없다. 오늘날 비록 옛 법규를 바꾸어 사장을 선택하더라도 사람들이 믿지 않아서 부임(赴任)하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좋은 법규와 아름다운 뜻도 결국 실속이 없게 되고 말 것이요, 학교에 적(籍)을 둔 선비들은 모두 학문에 뜻이 없고 구실을 피할 것만 꾀한다면 스승은 얻더라도 배울 사람이 없게 될 것이다. 만약 과거의 그릇된 자취를 크게 바꿔서 남의 이목을 새롭게 하지 않는다면 성취되기를 바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스승을 가려 선비를 양성하는 규정을 다음과 같이 삼가 적는다. 이하는 사목(事目)을 적은 것이다.
 
1. 무릇 학문과 덕행이 있어서 남의 추증을 받아 사표(師表)가 될 만한 자를 해마다 서울은 한성부(漢城府)와 5부(部)에서 지방은 감사(監司)와 수령(守令)들이 각각 성심껏 보고 조사하여 그 실상을 얻어 명단을 적어 올리면 임금의 결재를 얻어 명단을 이조(吏曹)에 내리고, 성균관 당상관(堂上官) 역시 관학(館學)의 여러 유생들을 모아 공천하게 하여 합당한 자는 명단을 뽑아 이조에 보고한다. 매년 연말에 서울과 지방에서는 으레 명단을 적어 올린다. 이조는 다시 자세히 검토하여 자리가 비는 대로 차출하되 사는 곳에서 가까운 고을에 으레 자리를 준다. 그 성과를 보아 그중에서 공적이 남달리 뛰어나고 선비의 기풍을 변화시킨 자는 품계를 올려서 실직을 주고, 그다음으로 직책에 충실하여 성과가 있는 자는 곧 벼슬길을 열어 주며, 또 그다음으로 성과가 있는 자는 임기가 차면 다른 고을로 옮겨서 성과가 더욱 드러난 뒤에 벼슬길을 열어 준다.
 
2. 전직 조정 관리 출신은 파직이나 출신 여부를 불문하고 그중에 사표가 될 만한 자는 교관(校官)에 제수하고, 6품(六品) 이상이면 교수에 제수하며, 7품 이하면 훈도(訓導)에 임명하여 성과가 있는 자는 임기가 차면 복직하게 한다.
 
3. 중앙과 지방에서 뽑혀 사표가 될 만한 자가 만일 생원, 진사이거나 또는 이름이 난 자는 재주와 자격의 유무를 불구하고 곧 교관에 제수하고 그렇지 못한 자는 반드시 그 재주와 자격을 시험하여 요행의 폐단을 없애야 한다.
 
4. 서울과 지방에서 학문과 덕행으로 추천되어 벼슬하게 된 자와 생원ㆍ진사로서 벼슬할 만한 자는 먼저 교관으로 시험 채용한 다음 그 능력 여부를 보아서 임기가 차지 않더라도 틈틈이 등용하여 교관과 조정의 관리를 섞어서 한 길이 되게 하는 한편 선비들도 훈도가 되는 것을 영예롭게 뽑히는 것으로 여기게 하여 지난날의 천한 이름을 씻도록 한다.
 
5. 학교의 스승은 이미 그 자격을 정선(精選)하였으면 또한 예의에 맞도록 대우하여 자중하는 선비가 그 직분에 만족하도록 해야 한다. 감사와 수령이 교관을 늘 우대하여 부임하지 않는 자에 대해서는 취임하도록 돈독히 권하고 왕명을 받들고 온 사신을 영접할 때에는 《대전(大典)》에 의하여 대문 밖에서 기다리고 사자의 말머리에 서지 말게 하며, 다만 가르친 유생의 학문 능력의 가부와 몸가짐을 경건과 방종만을 살펴 포폄(褒貶)을 할 뿐 훈도는 시강(試講)을 하지 않고 가르치는 방법만을 헤아려 논한다. 그리고 급료를 정하되 목사(牧使)가 있는 고을 이상은 다달이 쌀과 콩 각 두 섬, 벼 넉 섬을 주고 도호부(都護府)에는 다달이 쌀 두 섬, 콩 한 섬, 벼 석 섬, 군에는 다달이 쌀 한 섬 닷 말, 콩 한 섬, 벼 두 섬, 현(縣)은 다달이 쌀ㆍ콩ㆍ벼 각각 한 섬, 군 이상으로서 특히 쇠잔한 고을에는 감사가 참작하여 적당히 감하여 지급한다.
 
6. 생원ㆍ진사를 제외하고 서울의 학문에 뜻을 둔 선비는 모두 하재(下齋) 또는 사학(四學)에 들어가고, 지방에서는 문벌이 높은 집안이나 낮은 집안을 막론하고 유학(儒學)을 배우려는 자는 향교로 들어가게 한다. 처음 입학할 때에는 생도 10명이 학문에 뜻을 가졌다고 추천한 뒤에 시험하여 입학을 허가하고, 〈학교모범〉으로 품행을 가다듬게 하고, 만약 구속을 꺼리어 학교에 적을 두지 않는 자에게는 과거를 보지 못하게 한다.
 
7. 서울과 지방에서 이미 학교에 들어간 자에 대하여 형편상 일시에 제적시키기 어려우면 오직 〈학교모범〉으로 몸을 가다듬게 하여 학규를 따르지 않는 자는 제적시킨다. 사학(四學)에는 200명을 정원으로 하여 시험을 보여 이미 입학한 자를 다시 시험 보여 뽑는다. 그 수를 채운다. 5개 번으로 나누어 한 번에 20명씩 학교에 거처하게 하는데 10일을 기한으로 윤번제로 한다. 정원 내의 생도들에게는 하루에 두 끼니를 주며, 정원에 들지 못한 자 역시 5개 번으로 나누어 학교에 와서 배우게 하되, 식량은 각자가 갖추게 하고 공공 식량으로 먹이지 않는다. 지방의 모든 고을도 역시 시험을 보여 그 정원을 채우되, 목사가 있는 고을 이상은 정원을 90명, 도호부 이상은 70명, 군은 50명, 현은 30명으로 하고, 만일 글에 능한 자가 부족할 때에는 정원수가 차지 않더라도 글에 능한 자만으로 많고 적음에 따라 정원에 맞추어 공공 식량으로 먹이는데 또한 5개 번으로 나눈다. 정원 내에 들지 못한 자는 5개 번으로 나누어 번(番) 들기는 같이 하되 공공 식량은 먹이지 않는다. 지방의 공공 식량은 감사와 수령이 반드시 경영하고 계획하여 이식으로 밑천을 마련해서 언제나 모자라지 않게 한다. 정원 내의 유생에 결원이 있을 때에는 정원 외의 사람으로 시험 보여 보충한다. 당번이 되어도 학교에 나오지 않는 자는 첫 번째는 대면하여 꾸짖고, 두 번째는 생도들 속에서 쫓아내고, 세 번째는 출재(黜齋)하고 출재란 스승에게 고하여 학교에 나오지 못하게 하는 것인데, 허물을 고쳐서 스스로 새롭게 된 후에는 다시 학교에 오도록 허가하되, 생도들 속에서 쫓겨난 자와 학교에서 쫓겨난 자가 다시 참석할 때에는 반드시 모두 모인 자리에서 면대하여 꾸짖는다. 네 번째는 학적을 삭제한다. 학적이 삭제된 자는 군역(軍役)으로 돌린다. 허물을 고쳐서 스스로 새로워졌더라도 반드시 초시(初試)에 입격한 뒤에야 다시 들어올 수 있다. 만약에 질병과 사고가 있어서 학교에 나오지 못하는 자는 사유를 갖추어 스승에게 단자로 제출하면 처벌을 면하지만 사고를 핑계 대는 자는 들어주지 않는다.
 
8. 학교 생도들은 예로써 대우해야 하고, 수령들이 관청의 일로 부려서는 안 되며 오직 학문에 전념하도록 해야 한다. 교관의 구종 마련 같은 것도 생도들에게 책임지워서는 안 되며 모두 관(官)에서 마련하고, 감사의 초도 순시와 왕명을 받든 이외에는 무릇 사신이 올 경우에도 알성(謁聖 공자의 사당에 배알하는 것)할 때 교문 밖에서 맞이하고 알성이 아니면 맞이하지 않는다. 비록 감사일지라도 만약 두 번째의 순시라면 관문(官門)에서 맞이하지 않는다.
 
9. 한 해 걸러 8도의 모든 고을에 사신을 위임하여 보내서 생도들의 학업을 시험하고 몸가짐을 살펴 그것으로 교관의 능력 여부를 등급으로 매기어 보고하게 한다. 감사는 순회할 때마다 고시하여 그 상벌(賞罰)을 분명히 밝히고 수령이 위의 사목을 준행하지 않으면 경중에 따라 처벌을 논한다.
 
10. 대소(大小) 과거를 보일 때마다 태학(太學)에서는 과거 기일 전에 성균관 당상이 관관(館官)과 당장(堂長)ㆍ장의(掌議)ㆍ유사를 명륜당에 모아 상하재(上下齋)의 명부와 선적(善籍)과 악적(惡籍)을 모두 가져다 놓고 평일에 보고 들은 것을 참작하여 행동에 오점이 없는 자를 선택하여 비로소 과거를 보게 한다. 사학에서는 학관(學官)들이 각각 해당 학교에 모여서 당장ㆍ유사와 의논하여 가려 뽑기를 위와 같이 하며, 지방에서는 수령이 교관 및 향교의 당장ㆍ장의ㆍ유사와 함께 위의 예와 같이 의논하여 가려 뽑는다. 시골에 있는 생원ㆍ진사로서 행동에 하자가 있어 과거에 응시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자는 수령이 한 고을의 공론(公論)을 채택하여 감사에게 보고해서 성균관에 통첩하게 한다. 만약 학문에 뜻을 둔 선비 중 이름이 군적에 편입된 자로서 과거 보기를 원하는 자가 있으면 서울에서는 성균관의 관원이, 지방에서는 수령이 그 진실과 허위를 살펴 그 실상이 확인되면 또한 과거에 응시하도록 허가한다.
[주-D001] 족용중(足容重) : 경솔하게 걷지 않는다. 만일 어른 앞에 나갈 때에는 여기에 구애되지 않는다.[주-D002] 수용공(手容恭) : 손을 건들거리지 말고 일이 없으면 단정하게 모으고 망동하지 않는다.[주-D003] 목용단(目容端) : 눈과 눈썹을 고정시키고 눈을 바르게 보고 두리번거리거나 곁눈질하지 않는다.[주-D004] 구용지(口容止) : 말할 때와 음식을 먹을 때 외에는 항상 다문다.[주-D005] 성용정(聲容靜) : 목소리를 가다듬어야 하며 딸꾹질이나 가래침 뱉는 소리를 내서는 안 된다.[주-D006] 두용직(頭容直) : 머리는 바로 하고 몸은 곧게 하며 기울거나 한쪽으로 기대서는 안 된다.[주-D007] 기용숙(氣容肅) : 호흡은 늘 고르게 하고 소리를 내지 않는다.[주-D008] 입용덕(立容德) : 똑바로 서고 기대지 않으며, 덕 있는 기상을 드러내야 한다.[주-D009] 색용장(色容莊) : 안색은 단정해야 하고 태만한 빛을 보이지 않는다.

 

 

김홍도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