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흘림기둥의 가설과 역설 1

배흘림기둥의 예찬론
유네스코와 대한민국 국회의 앰블럼은 고대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을 변용한 이미지다. 파르테논 신전은 세계문화와 역사의 상징이 되어 그 이미지가 전 세계에 널리 퍼져 있다. 파르테논 신전의 기둥을 에렉테이온 신전의 여인상이 아닌 고려청자와 홍두깨로 바꾸면 어떨까 ? 고려청자나 항아리는 뚱뚱해 보이고, 방망이와 홍두깨는 너무 가늘게 보여 비유가 지나치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유네스코 앰블럼의 알파벳 문자보다는 더 멋있게 보이지 않을까 ? 항아리와 홍두깨를 파르테논 신전의 비율에 맞추어 이미지를 조절하면 유네스코의 앰블럼과 같거나, 그보다도 더 멋진 미니어쳐가 될 것이다. 한국전통건축에서 "항아리보"라는 대들보가 있다. 울퉁불퉁하고 못생긴 보를 항아리처럼 생겼다고 항아리보라고 하지만, 자세히 보면 보와 기둥이 교차하는 마구리와 필요한 부위만 다듬었기에 항아리처럼 보일 뿐이다. 그리고, 배흘림기둥을 항아리에 비유하면 기둥의 상부가 커져서 불안하다고 하지만, 항아리를 뒤집어 세우면 그 문제는 간단히 해결된다. 배흘림과 민흘림기둥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 목재기둥의 치목과정에서 기둥의 상부와 하부를 그랭이질하고 치목하는 방법은 같다. 그럼 다른 것은 무엇일까 ? 배흘림기둥에서 가장 굵은 지점이 1/3이라고 하지만 1/3이라는 것도 고정관념의 하나일 뿐이다. 국회 앰블럼의 기둥은 민흘림기둥처럼 보이지만, 나무기둥이라기보다는 긴사다리꼴 도형일 뿐이다. 기둥과 도형이 아니라, 이론과 현실과의 괴리라는 관점에서 배흘림기둥에 대하여 이야기해 보자. 엔타시스와 배흘림의 차이는 무엇일까 ? 황금분할이란 무엇일까 ? 나의 관점에서는 부석사 무량수전 뿐만 아니라, 국보로 잔존하는 고려시대의 건축물들은 단아하고 조촐할 뿐이다. 어쩌면 궁궐건축과 비교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산사의 전각들이다. 삼국시대에 건립된 사찰인 황룡사를 상상해보자 불국사는 어떨까 ? 배흘림기둥은 민흘림기둥보다 떨어지는 목조기법으로 대리석으로 만든 석조건물인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과는 다르지만, 많은 사람들이 파르테논의 추상적인 이론을 끌어들여 부석사 무량수전에 불필요한 덧칠을 하고 있다. 파르테논 신전에서도 엔타시스나 황금분할은 존재하지 않는다. 수많은 학자들이 엔타시스나 황금분할을 연구하고 이론을 제시하지만 가설을 전제로 한 추론일 뿐이다. 특히 파르테논 신전의 외부노출기둥과 달리 무량수전의 외부기둥은 시각보정이라는 개념과는 달리 거꾸로 세운 아주 긴항아리처럼 보일 뿐이다. 또한 무량수전의 배흘림기둥은 외부에서 보면 외벽체에 묻혀 창호의 문선과 어울리지 않거나 누런 회벽체로 인하여 배흘림이 생뚱맞게 보이지만, 무량수전 내부에 노출된 독립된 배흘림기둥은 비로자나불과 잘 어울려 보인다. 무량수전의 배흘림기둥은 벽체에 구속된 것보다 강릉의 객사문처럼 노출된 독립기둥일 때 더 잘 어울리는 것이 실제의 모습이지만, 파르테논 신전의 이론이라는 편견과 오만으로 한국전통미를 왜곡시키고 있다.

최순우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와 서현의 "배흘림기둥의 고백"은 무엇이 다를까 ? 최순우의 글이 국민의 감성에 호소하는 수필이라면, 서현의 글은 건축이론에 항변하는 건축사론일께다. 아름다움이란 무얼까 ? 최고의 멋은 감탄사 하나면 된다. 그 최고의 멋을 설명하려면 구차한 변명들이 더해져서 결국은 미보다는 추함만 남는다. 유명인사와 학자들의 부석사 답사기들을 보면 최순우의 글을 빌어와 부석사의 창건설화와 중수기록을 추가하고 서양미학까지 더해져서 배흘림기둥을 예찬하고 있다. 예찬보다 더한 극찬이라는 과장된 표현에서 시작된 논쟁은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기둥의 엔타시스와 황금분할로 이어졌고, 서양 미술사에 서양철학까지 혼입되어 부석사 무량수전보다는 배흘림기둥의 예찬론이 되어 있다. 부석사 무량수전의 예찬론은 처마의 곡선에 따른 기둥의 배흘림. 귀솟음. 안쏠림과 추녀의 곡선인 안허리곡. 앙곡. 활주 등으로 이어지지만, 배흘림기둥에 대한 고백은 서현의 목구조역학이나 기둥 단면에 따른 작업량 감소도 부분적인 설명에 지나질 않는다. 서현의 공학이론에 목재를 다듬고 세우는 치목과 공사과정을 더하면 예술적인 측면은 사라지고 장인들의 힘겨운 애환만 남을 것이다. 충원 적화면 석수 김애선(忠原 赤花面 石手 金愛先)은 누굴까 ? 충원 적화면이란 지명도 모르지만, 석수 김애선이 무얼 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추측할 수 있는 것은 석수 김애선이 조선시대 말에 부석사 무량수전의 기단석을 가공하고 쌓은 석공의 책임자가 아닐까 할 뿐이다. 부석사의 석등과 석탑 등 다른 것을 만든 것으로 추정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추정하는 바보도 없겠지만, 지나친 추측이나 가설은 진실에서 더 멀어질 뿐이다. 아니면 아닌 것이고, 모르면 모르는 것이 옳은 것이기 때문이다. 부석사 무량수전의 기둥을 만든 목수는 배흘림을 알까 ? 배흘림기둥은 부석사 뿐만 아니라, 그 당시에 유행하던 건축술의 하나일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중국전통건축사로 보면 배흘림 기둥은 한나라 때 성행한 것으로 나타나며, 한국전통건축사로 보면 고려시대에 건립되어 잔존하는 소규모 건축물에서 나타날 뿐이다. 한국의 멋을 자랑하는 배흘림 기둥은 왜 전승되지 못하고 사라졌을까 ? 그 이야기를 파르테논 신전의 엔타시스와 황금분할이 아닌 한국전통건축을 만들어온 대목장과 목수들의 입장에서 되새겨 보고자 한다.

배흘림기둥은 왜 전승되지 못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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