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름과 머무름 속에서

삶과 앎/건축개론

배흘림과 민흘림의 차이는

산골어부 2025. 9. 11. 10:41

 

배흘림기둥의 가설과 역설 3

 

안성 청룡사 대웅전 도랑주

 

굴립주와 도랑주에 대하여

 

수혈식 주거지에서 나타나는 나무기둥과 토성에서 목책으로 쓴 나무기둥은 나무를 잘라서 나무의 껍질을 벗기지 않고, 땅을 파서 기둥을 묻고 세우는 방식이다. 이를 굴립주라고 하는데, 굴립주는 습기에 강한 나무를 쓰기도 하지만, 흙에 묻힌 나무가 쉽게 썩어서 오래 버틸 수가 없다. 통나무 원목주택의 원조인 산골짜기의 통나무 귀틀집은 어떨까 ? 선사시대 이야기는 접어두고, 삼국시대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삼국사기에는 백제 온조왕 때 지은 궁실에 대해 "검이불루 화이불치"라고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삼국시대의 목조건물은 잔존하는 것이 없어 볼 수가 없다. 삼국시대의 목조건물의 규모는 유적지에 남은 기단석과 주초석 등으로 추정할 뿐이고, 형태는 고분벽화나 유물에 나타난 형상으로  상상할 뿐이다. 삼국사기의 "검이불루 화이불치"라는 기록을 백제건축의 전통미라고 이야기하지만, 그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다른 건축물을 이야기할 때는 전혀 다르게 이야기한다. "검이불루 화이불치"라는 말은 "조촐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치졸하지 않다."라고 해석하면 어떻까 ?  솔직히 이야기하면 권력과 부를 누리던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안빈낙도와 같은 이야기다. 어쩌면 고려와 조선시대의 건축문화가 초라한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으며, 전통건축문화 답사기에서 도랑주나 배흘림을 예찬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도랑주나 그랭이질을 언급하는 것도 자연친화적이라기보다는 선비들의 안빈낙도를 내세우기 위한 변명일 것이다. 조선시대의 선비들은 왜 시대에 뒤떨어진 건축행위를 할까 ? 조선시대의 누정문화는 자연친화적이라기보다는 자신의 권력과 부를 상징할 뿐이다. 

 

화엄사 구층암 모과나무

 

도랑주를 이야기할 때, 안성 청룡사의 대웅전을 이야기한다.  청룡사 대웅전에서 보기 좋은 기둥은 전면에 배치하고, 못생긴 기둥은 뒤로 감추고 있다. 그리고, 모서리는 더 큰 기둥을 배치하고 중간에는 작은 기둥들이다.  왜 그랬을까 ? 키가 크고 굵은 재목이 많았다면 어땠을까 ?  화엄사 구층암 요사채에는 한 개 또는 두 개의 모과나무 기둥이 세워져 있다. 구층암은 작은 건물이라서 지붕의 하중을 전달하는 보를 조금만 보강하면 모과나무기둥 정도는 빼어버려도 무리가 없기에 도랑주라기보다는 스님과 목수의 해학이 넘치는 지혜로 이해하면 된다. 굴립주보다 더 발전한 것이 도랑주다. 도랑주는 나무의 껍질을 벗겨서 필요한 부분만 깎아낸 원목기둥이다. 굴립주와 도랑주는 무엇이 다를까 ?  도랑주는 나무껍질만 벗긴 것이 아니라, 기둥 밑에는 흙이 아닌 다듬지 않은 주춧돌이 있다. 도랑주에서 그랭이 한 기둥과 주춧돌은 접합부를 밀착시켜 하중을 고르게 전달하지만, 잘 다듬어진 기둥과 주춧돌은 그랭이질보다는 높이만 조절해도 잘 맞는다. 전통건축을 이야기할 때, 도랑주는 울퉁불퉁하고 휘어진 기둥을 이야기하지만, 소규모 건축물인 주택이나 구조물에서는 껍질과 잔가지의 옹이를 제거한 울퉁불퉁한 작은 기둥을 흔하게 볼 수 있지만, 그것을 도랑주라고 하지는 않는다. 도랑주는 자연상태의 모습을 유지한 큰 기둥이다. 이는 민흘림과 배흘림기둥도 마찬가지다. 도랑주가 자연상태의 원목기둥이라면 민흘림과 배흘림은 목재의 가공을 최소화한 기둥이다.

 

고구려 덕흥리 고분벽화

 

배흘림과 민흘림의 차이는

 

고구려 고분벽화에도 기둥의 대부분은 긴 사다리꼴 민흘림기둥이 아니라, 벌목한 통나무의 껍질과 잔가지를 다듬은 것처럼 보인다. 자연상태의 통나무는 재료의 특성이 윗부분은 가늘고 아랫부분은 굵다. 자연산 통나무기둥은 특별히 가공을 하지 않아도 민흘림기둥처럼 보이지만,  통나무기둥이 다른 부재와 조화를 이루려면 기둥 상. 하부의 접속부의 크기가 일정해야 하기에 그를 기준으로 불필요한 부분들을 깎아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긴사다리꼴로 만든 것이 민흘림이고, 덜 깎아내서 홍두깨나 항아리처럼 보이는 것이 배흘림이다. 통나무기둥의 상부는 공포와 화통가지의 크기에 맞추어야 하고, 기둥하부는 돌기초 크기에 맞추어야 한다. 직선이나 곡선의 마감정도는 기둥의 위치나 벽체에 따라 도목수의 재량에 달려있다. 민흘림이나 배흘림에 따르는 특별한 규정은 없으나, 도목수나 목수들의 실력에 따라 건축의 아름다움이 달라지는 것이다. 하지만, 요즈음 목재의 제재술과 가공술이 발달하여 목재기둥도 야구 방망이처럼 얼마든지 정교하게 다듬을 수 있다. 

 

완주 화암사 극락전의 하양구조는 지붕의 처마를 더 길게 내밀기 위한 구조지만, 그보다 더 좋은 지붕구조의 발전으로 후대의 건축물에서는 사라진 공법이다.  배흘림기둥은 왜 사라졌을까 ? 고인돌과 같은 거석문화도 신비롭지만, 건축문화의 흐름에서 쓸모가 없기에 사라진 건축물이다. 따라서 고인돌은 그 이미지만 상징적으로 전승되는 것이다. 배흘림기둥이 사라진 것도 한마디로 말하면 목조건축기술의 발전이며, 더 자세히 말하면 목재를 다루는 치목기술의 발전 때문이다. 물론 보는 시각에 따라 배흘림기둥의 곡선미가 예술적으로 보일지는 몰라도 목재를 다루는 치목기술로 보면 민흘림보다도 더 단순하며, 요즈음의 원통형 기둥과 비교하면 형편없는 수제품에 불과하다. 통나무와 껍질만 벗겨낸 도랑주는 무엇이 다를까 ?  사립문이나 초막을 지을 때는 나무의 크기가 작고 껍질을 벗기지 않아도 되지만, 큰 건물의 기둥과 대들보에서는 껍질을 벗기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 울퉁불퉁한 도랑주와 배흘림기둥은 무엇이 다를까 ? 도랑주는 껍질만 벗긴 것이고, 배흘림기둥은 기둥의 상부와 하부를 원하는 크기로 만들지만, 기둥의 가운데 부위는 덜 깎아내는 것이다. 전통한옥에 쓰이는 나무는 대부분이 소나무지만, 크고 못생긴 나무기둥에는 느티나무가 많다고 한다. 활엽수와 침엽수의 차이는 무엇일까 ? 느티나무 기둥은 왜 사라졌을까 ? 금강송과 황장목은 무엇이 다를까 ? 소나무의 종류도 수없이 많다. 한국의 전통건축은 다른 나라와 무엇이 다를까 ?  기둥 이야기를 하다가 나무 이야기를 하는 것이 바보 같지만, 재료의 특성을 알지 못하면 배흘림기둥의 이야기도 추상적인 엔타시스나 황금분할 이야기에 빠지는 것이다.

 

정설이 되어버린 가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