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흘림기둥의 가설과 역설 2

배흘림기둥은 왜 전승되지 못했을까 ?
내가 처음으로 부석사를 다녀간 것이 1985년이다. 그 시절에는 교수님의 이야기를 열심히 듣기는 했지만, 남은 것이라곤 주심포와 배흘림기둥이란 용어 뿐이었다. 그 후로도 부석사 무량수전보다는 부석사 안양루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무척 좋아서 자주 다녀 갔지만, 한국전통에 대한 안목도 없고 실력도 없기에 "글쎄"라는 꼬리표만 남겼을 뿐이고, 그에 대한 의문을 풀어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불교건축에 대해서도 조금은 관심이 있었으나 깊은 생각은 하지 않았었다. 지난 7월에 완주의 화암사를 답사하면서 "조촐하고 누추한 절"을 보며 나 자신에게 수많은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내공이 없는 머리에서는 남의 이야기만 떠올랐다. 그러던 중에 아무도 오지 않을 것 같은 무더운 산중에 팔십을 넘기신 할아버지가 할머니 두 분을 모시고 험준한 산길을 걸어서 올라와 화암사에 대하여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다. 아시는 것도 많았지만, 팔십을 넘긴 나이에 팔십이 넘은 할머니들에게 자신 있게 이야기하는 모습에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할아버지가 이야기한 내용은 내게는 어쩌면 상식이고, 답사기에서 본 이야기였지만, 그를 자신있게 자신의 생각으로 이야기한다는 것에 감동한 적이 있었다. 나는 말재주도 없고, 글재주도 없기에 이 글에서도 특별한 것은 없다. 나 역시도 책을 좋아하고, 떠돌아 다니기를 좋아하기에 똥파리 박사라고 자칭하지만, 결국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내 생각을 더할 뿐이다. 더 쉽게 말하면 관점이 조금 다르다는 것이다. 이 글은 불필요한 논쟁보다는 흐름과 머무름 속에서 나무기둥 또는 목조기술의 발전과정을 설명할 뿐이다. 고대사에서는 철기문명이 고대국가의 성장을 견인했다면 근대사에서는 산업혁명인 기계문명이다. 현재는 기계의 자동화 내지는 인간을 대신한 로봇시대일 것이다. 세계문화유산과 국제 표준화란 무엇일까 ? 배흘림기둥을 이야기하면서 배흘림기둥의 제작과정은 잊은 채, 추상적인 이론만을 제기한다. 배흘림기둥을 만든 대목장은 자신의 미적감각을 고려하여 최소한의 비용으로 멋진 기둥을 만들고 싶었을 뿐이었다. 어쩌면 배흘림기둥은 대목장의 독자적인 생각이라기보다는 당시에 유행하던 건축술일 것이다. 도편수가 치목한 기둥을 깎는 목수는 어떨까 ? 예전이나 지금이나 공사비를 아끼고자 하는 생각은 같다. 단순히 인건비를 줄이면 건물은 조잡해질 것이지만, 목재를 다루고 세우는 기술과 장비를 개발한다면 그 결과는 달라질 것이다.

배흘림기둥의 예찬론을 이야기하면서 그에 대한 가설과 역설을 제기하는 것은 기둥보다는 서까래에 집착하는 곁가지일 것이다. 기둥과 대들보가 건축물의 뼈대라면 서까래와 추녀는 지붕의 곡선을 위한 소소한 부재일 것이다. 즉 기둥과 대들보의 기나긴 역사는 빼놓고, 추상적인 미학이론에 빠져 귀신과 잡상까지도 멋으로 되새기게 한다. 배흘림기둥은 왜 전승되지 못했을까 ? 쉽게 말하면 배흘림기둥은 구시대의 산물이다, 최순우 선생이 무량수전과 배흘림을 예찬한 것도 조선시대에 공포와 단청으로 치장한 건물들을 보다가 깊은 산사에서 단순하면서도 우아한 지붕과 기둥의 곡선미에 감탄했을 것이다. 신라의 왕경인 경주에서도 보지못한 달항아리와 같은 단아한 모습에 취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와 달리 내가 느낀 것은 촌스럽고 누추한 건물이었다. 무엇이 다를까 ? 완주의 화암사는 왜 "조촐하고 누추한 절"일까 ? 어쩌면 단청만 다시 칠해도 누추해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썩어서 보수한 흔적보다는 기둥이라도 새것으로 바꾸면 어떨까 ? 아니면, 올라오는 산길에 일주문도 세우고 중간에 불이문도 세우면 또 어떨까 ? 하지만 완주 화암사는 그러지 않았기에 조촐하고 단아해 보이는 것이다. 나 역시 전통건축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건축현장소장으로 한평생을 지냈다. 30여 년 전에 지방자치단체의 00군 청사를 지으면서 당시의 도목수와 배흘림기둥에 대하여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의 도목수의 이야기는 배흘림기둥이 민흘림보다는 만들기가 더 쉽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큰 재목[대목]을 다루는 것과 작은 재목[소목]을 다루는 것이 다른데, 작은 서까래는 조금만 다듬으면 되지만, 큰 재목인 기둥을 다듬으려면 너무 힘들기에 작은 부재인 창틀의 문선을 맞추거나 회벽을 치는 것이 돈과 인력이 덜 든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굵고 긴 저렴한 수입목과 제재하는 기술과 목공기계 등이 개발되어 배흘림이나 민흘림기둥을 만드는 것이 원통형 기둥을 만드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한다. 무슨 뜻일까 ? 쉽게 말하면 배흘림기둥은 수제품이었고, 현재의 원통형 기둥은 공산품이라는 것이다. 고대건축에서는 배흘림이 일반적이지만, 지금은 원통형이 기본이라는 것이다. 즉 기둥의 발전과정은 도랑주에서 배흘림으로, 배흘림에서 민흘림으로, 민흘림에서 원통형으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조선 후기에 나타나는 도랑주와 전통건축의 복원에서 나타나는 배흘림기둥은 어쩌면 시대의 흐름과 머무름을 모르는 전통건축의 재현일 뿐이라는 것이다. 흔히들 도랑주와 배흘림기둥의 자연미와 곡선미를 예찬하지만, 건축공학적으로 이야기하면 구시대 산물이다. 조선시대 후기에 나타나는 울퉁불퉁한 도랑주는 선비들의 자연주의 보다는 안빈낙도를 내세운 선비들의 허세와 조선시대의 무능일 것이다. 하지만, 많은 건축가들까지도 시대의 흐름과 머무름을 잊고 궤변 아닌 궤변으로 무위자연의 아름다움에 덧칠을 하는 것이다.
배흘림기둥과 민흘림기둥의 차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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