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름과 머무름 속에서

역사의 뒤안길에서/옛날 기록들

명당과 봉학사지

산골어부 2011. 5. 30. 05:09

보광사 普光寺

충북

 

소재지 : 괴산군 사리면 
원문참조 및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전통사찰종합정보 
사진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11141.jpg 충청북도 괴산군 사리면 사담리 보광산(普光山)에 있는 절. 한국불교태고종에 속한다.

 

〔창건 및 연혁〕

보광사의 창건주와 창건시기에 대해는 전하는 바 없어 구체적으로 알 수 없으나, 1530년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괴산군」〈불우조(佛宇條)〉에서 절의 이름이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조선 초기에는 절이 창건되어 법등이 이어지고 있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러나 1799년에 편찬된 『범우고(梵宇攷)』에는 절이 폐사되었다 하였고,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무렵에 나온 『괴산군읍지(槐山郡邑誌)』에도‘보광사는 보광산에 있는데, 이미 무너진 지 오래되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18세기 후반에는 절이 폐허가 되었던 것 같다.

이후 폐허가 된 절은 근대에 와서 1925년에 권봉주(權鳳柱)스님이 초암을 지어 절의 법등을 다시 이었고, 1936년에는 김봉삼(金奉三)스님이 역시 폐허였던 인근의 봉학사터에서 석불을 옮겨 봉안하면서 절을 중창하였다. 최근에는 1991년부터 운산(雲山)스님이 주석하면서 절을 중수하기 시작하였는데, 1993년에 낡은 법당을 헐고 새로운 법당을 지었으며, 2002년에는 삼성각과 요사를 새로 건립하였다.

 

〔당우 및 문화재〕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과 산신각·요사채 등이 있다. 대웅전 안에는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30호로 지정된 괴산 봉학사지 석조여래좌상이 봉안되어 있는데, 상호(相好)는 단정하고 안정감을 주며, 여성적인 온후함과 자비가 넘치는 걸작품으로서 고려 초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이 여래좌상은 원래 봉학사(鳳鶴寺) 법당에 있던 주불이었는데 조선 헌종 때 충청도관찰사인 김소(金素)의 묘를 쓰고자 절을 헐고 불상의 머리를 절단하여 매장하였다고 한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약 150년 전에 보광산 밑의 하도마을에 사는 손씨의 꿈에 노승이 나타나 100여 년 동안 흙 속에 묻혀 있었다며, 때가 되었으니 보광사 남쪽의 언덕에 있는 불상을 파내어서 봉안하라는 현몽을 얻었다 한다. 손씨는 같은 꿈을 세 번 꾸고 난 뒤 10여 인의 동조자들과 함께 불상을 찾아 제사를 지냈으며, 그 뒤 많은 불공객들이 찾아왔을 뿐 아니라 손씨 집안은 크게 번창하였다고 한다.

또한 이 절에서는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9호로 지정된 괴산 봉학사지 오층석탑을 관리하고 있다. 이 밖에도 옛 절터에는 고려 초기의 석등하대석(石燈下臺石)·주춧돌·기와조각 등이 남아 있다.

괴산봉학사지오층석탑[충북 유형 29]

괴산봉학사지석조여래좌상[충북 유형 30]

 

〔가람배치〕

보광산 정상 아래에 자리한 보광사는 대웅전, 삼성각, 요사 건물로 작은 가람을 이루고 있다. 정남향한 가람은 횡으로 길게 펼쳐진 형태로 대웅전을 중심으로 좌측에 삼성각, 우측에 요사가 있다. 또한 절에서 산 쪽으로 약 200m 정도를 올라가면 봉학사지라는 절터가 나오며, 이곳에는 고려시대 초기의 오층석탑이 남아있다.

 

〔사찰풍경〕

사라진 봉학사(鳳鶴寺)의 후신(後身) 보광사(普光寺)

 

대웅전 처마 끝에서 보면 끝없이 펼쳐지는 낮은 산들이 손에 잡힐 듯 친근해 보이고 마음까지도 시원해진다. 대웅전 오른쪽 바위 밑에선 석간수가 샘솟는데 아무리 가물어도 넘쳐 나는 샘물이 맛 또한 그만이다.

보광사는 없어진 봉학사의 후신으로 그 명성을 간직해 오고 있으며, 봉학사지 석조여래상을 대웅전에 주존불로 모시고 있다. 이 부처님에 대해 전해져오는 전설은 백 년의 세월을 건너뛰며 이어져 있어 신비가 더 하다.

 

조선 헌종 때 충청도 관찰사였던 김소(金素)가 죽어 명당을 구하다 마침 봉학사(鳳鶴寺)터가 금계포란형의 천하의 명당임을 알고 절을 폐하고 묘를 썼다. 이때 이 부처님은 목이 부러지는 운명에 처해 지금의 보광산 언덕에 묻히게 된다. 그런데 하루는 김소의 자손에게 한 스님이 찾아와서 명당을 더 복되게 하려면 계곡 아래 물을 막아 복이 새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했다. 자손은 귀가 솔깃해서 스님의 말을 따랐으나 오래지 않아 집안에 화가 겹쳐 망하고 말았다. 물을 막음으로 해서 금계가 품고 있던 알이 다 썩어버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로부터 백년 후 보광산 아래 마을에 사는 손씨는 똑같은 꿈을 세 번이나 꾸었다. 스님 한 분이 나타나서 "나는 백년 동안이나 묻혀 있었다. 이제 때가 되었으니 보광산에 올라가 언덕을 파면 돌부처가 나올 것이니 잘 봉안하라."는 꿈이었다. 그래서 손씨는 십여 명의 동료를 모아서 언덕을 파고 이 부처님을 모셔다 지금의 보광사에 봉안했다고 한다.

 

명당이란 자연의 섭리를 거역하지 않고 지은 인연에 따라 복이 되는 곳을 이르는 것이다. 불가에 복전(福田)이란 말이 있다. 복을 지을 수 있는 터전이란 말이다. 그렇다면 명당이나 복전이나 그 자체가 복을 주는 것은 아니다. 복은 명당을 운위하는 사람, 복전을 일구는 사람, 그 사람이 짓는 수많은 행실의 결과로 만들어지고 창조되는 것이다. 착하고 성실한 사람에게는 명당도 복전도 따로 없다. 지장보살에게는 지옥도 복전이지 않는가?

 

〔설 화〕

대웅전에 봉안된 석조여래좌상은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한다. 이 불상은 본래 봉학사(鳳鶴寺)의 법당에 있었는데, 조선 헌종 때 충청도 관찰사였던 김소(金素, 1602~1666)의 자손들이 김소의 묘를 법당 자리에 쓰면서 불상을 근처에 파묻었다. 이 절터가 풍수지리설에서 금계포란형의 명당자리로 소문났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스님이 찾아와 명당을 더 복되게 하려면 계곡 아래 물을 막아 복이 새나가는 것을 막으라고 일러 주었고, 자손들이 그 말대로 하자 집안이 망했다. 금계포란형은 금닭이 알을 품은 형국인데, 물이 흐르지 못하여 알이 썩는 바람에 집안이 망했던 것이다.

그 뒤 19세기 중엽 보광산 아래 하도마을에 사는 손(孫)씨의 꿈에 노승이 나타나서 옛날에 파묻은 불상의 위치를 알려주고는 ‘이제 때가 되었으니 보광사 남쪽 언덕에 있는 땅속에서 불상을 파내어 봉안하라’고 하였다. 이에 손씨는 마을사람들과 함께 올라가 불상을 파내고 봉안하였는데, 이후 손씨 집안은 크게 번창하였다고 한다. 1935년까지만 해도 건물 밖에 있던 불상은 김봉삼(金奉三)스님이 주지로 오면서 대웅전에 봉안하게 되었다.

 

〔교통안내〕

■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중부고속도로 증평IC〕

증평IC---(510번국도 괴산, 문경방면)---연탄사거리---(영광병원)---미암사거리---화성교차로---사곡교차로---청룡교차로---(청결고추 조형물)---수암교차로---시동마을 입구---(산길로 1.5km)---보광사

〔중부내륙고속도로 연풍IC〕

연풍IC---(34번국도 괴산방면)---칠성면---괴강삼거리---(1.2km)---대덕사거리---(37번국도 금왕, 음성방면 3km)---괴산교차로---(34번국도 증평, 청주방면 5km)---유평터널---(4km)---수암교차로---(산길로 1.5km)---보광사

■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서울 -> 청주고속버스(1일 35회) 1시간 30분

청주 -> 사리직행버스(1일 40회) 40분

시동마을 입구에서 하차하여 절까지는 걸어서 가야함.(거리는 약 1.5km정도이나 길이 꼬불꼬불하고 험하여 대략 50분 정도 걸림)

 

(보광산 정상)

 

(보광산 정상 한남금북정맥 산꾼들의 이정표)

 

(보광산 봉학사지 갈림길의 이정표)

 

(봉학사지 북서측 한남금북정맥의 능선-인공의 토축한 것으로 추정된다)

토성 또는 풍수지리에 따른 묘택. 봉학사지의 바람막이 등)

 

(봉학사지 북서측의 토축능선)

 

(보광산에서 바라본 사리면과 청안면)

 

(보광산에서 바라본 모래재와 칠보치)

 

 

 

 

 

 

 

 

 

 

 

 

 

 

 

 

 

 

 

 

 

 

 

 

 

 

 

참고자료-괴산35명산(괴산군청)

명산35
- 명산35 - 명산35
 
보광산(531m)
 
전 화 : 043-830-3421
관 리 : 보광산(531m)
한 자 : 普光山
주 소 : 사리면 수암리
요약정보 : 보광산은 산세가 뛰어나거나 경치가 좋고 바위가 있다던가 하는 산은 아니다. 나즈막한 육산에 불과하나 정상의 봉학사지에 얽힌 전설 같은 현실에 인간의 욕심이 무상함을 일깨워 주는 곳이다.
주변지역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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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박지
음식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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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휴양지
레져/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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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
산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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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광산은 산세가 빼어나거나 경치가 좋고 바위가 있다던가 하는 산은 아니다. 그저 나즈막한 육산에 불과하다. 그러나 정상의 봉학사지에 얽힌 전설 같은 현실에 인간의 욕심이 무상함을 일깨워 주는 곳이기도 하다.또한 접근이 용이하고 험하지 않아 가족단위로 등산할 수 있는 좋은 산이다.
산행의 시작은 모래재 고개에서 800미터 괴산쪽으로 위치한 수암리 시동마을에서부터 시작한다. 모래재 고개에는 보광산 관광농원이 있어 휴식을 취하고, 특색있는 먹거리와 농원 뒤의 방가로식 숙박시설과 각종 조류를 관찰할 수 있는 사육시설이 있어 가족단위로 찾기에 좋다. 사동마을에서 보광사까지는 차도가 닦여있다. 시동마을 앞 승강장옆에 있는 보광사 안내표지판을 따라 비포장 길을 5분정도 오르면 왼쪽으로 조그만 소류지가 있고, 오른쪽엔 새농심 유기질 비료공장이 보인다. 계속되는 길은 5분정도 더 가면 가파르다. 걸어서 오르기에도 힘이 드는데 차가 오르내리고 있다. 승용차는 가지 못하고 찌프차만 통행할 수 있는 길이다. 시동마을을 출발한지 50분정도면 보광사에 도착한다. 보광사는 없어진 봉학사의 후신으로 그 명성을 간직해오고 있으며 봉학사지 석조여래좌상을 대웅전에 주존불로 모시고 있다. 대웅전 처마끝에서 보면 끝없이 펼쳐지는 낮은 산들이 손에 잡힐 듯 친근해 보이며, 마음까지도 시원해 지는 곳이다. 대웅전 오른쪽 바위 밑에선 석간수가 샘솟는데 아무리 가물어도 넘쳐 나는 샘물이 맛 또한 그만이다. 요사체 뒤의 화장실을 오른쪽으로 끼고 돌아 은진송씨 묘가 있는데, 묘 앞으로 잘 나 있는 길을 버려두고 일단 묘로 올라서면 오른쪽으로 길이 잘 보이고 5분정도 가면 나뭇가지 사이로 봉학사지 5층석탑이 보인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절터에 홀로 남은 5층 석탑은 고려 초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지방유형 문화제로 지정되었다는 안내판이 있다. 탑에서 30미터정도 가면 큰 묘가 두 개 나타나는데 이것이 봉학사와 관련있는 묘다.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이 묘자리는 봉학사의 대웅전이 있던 자리로 이 터가 "금계포란형"으로 천하에 드문 명당자리라 김아무개의 자손들이 세도를 등에 업고 절을 허물어 이 명당 자리에 묘를 썼다 한다. 봉학사가 철거된지 여러 해 지난 후 괴승이 나타나 앞산의 물길을 둑을 쌓아 돌리도록 하여 후손을 잇지 못하게 했다는 얘기가 전해온다. 묘의 바로 뒤로 주능선이 얕으막하게 지나가고 능선에 올라보면 길이 네갈래로 갈라지는데, 왼쪽으로 200미터정도가 정상이지만 뚜렷한 봉우리를 형성하고 있지는 않다. 정상을 넘어서는 헬기장 전망대가 있어,증평쪽의 평야가 시원스레 가슴을 열어준다.헬기장 전망대에서 5분정도 내려오면 새로닦은 임도와 만나고 보광사 진입도로 맞은편 능선을 타고 모래재 고개로 하산할수 있다.
네갈래 길에서 정면으로난 내리막길을 택하면 백마산까지의 능선 종주나 소매저수지 방향으로 하산할 수 있다. 차를 시동마을이나 모래재에 두고 왔을 경우 왔던 길을 되돌아 가야 하겠지만 백마산으로 가는 능선의 고리테 고개에서 소매리 쪽으로 하산하는 것도 좋다. 능선 사거리에서 내리막길를 따라 난 키 큰 철쭉 터널길을 40분정도 내려오면 고리테고개에 이르고 여기서 소매저수지로 40분정도내려오면 사리면의 둔터골 마을로 내려온다. 둔터골에서 15분정도 더 가면 백마초등학교가 나오고 넓은 포장길에 닿게 된다. 고리테 고개에서 백마산까지는 산불이 난 후 벌채로 인해 잡목이 무성히 자라 길도 찾기 힘들고 벌채 후 잔재물이 온통 길에 널려 길이 잘 보이지 않는다.
고리테 고개에서 백마산까지는 1시간 20분 정도면 도착하고 산아래 있는 백운사로 하산할수도 있다.

이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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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코스 (산행시간:약 2시간 40분 소요)
모래재 관광농원(50분)→보광사(10분)→김판서 묘,봉학사 5층석탑(5분)→ 정상(40분)→고리테 고개(40분)→둔터골(15분)→백마초등학교
주차장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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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견주차
유래및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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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즈막한 육산에 불과하나 정상의 봉학사지에 얽힌 전설같은 현실에 인간의 욕심이 무상함을 일깨워 주는 곳이기도 하다.
위치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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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광산은 산세가 뛰어나거나 경치가 좋고 바위가 있다던가 하는 산은 아니다. 나즈막한 육산에 불과하나 정상의 봉학사지에 얽힌 전설 같은 현실에 인간의 욕심이 무상함을 일깨워 주는 곳이다.
찾아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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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 서울-청주 직행버스(1일 40회, 1시간 30분 소요), 청주- 사리 직행버스(1일 35회, 30분 소요)
승용차 : 중부고속도로-증평IC-도안-사리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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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 서울-청주 직행버스(1일 40회, 1시간 30분 소요), 청주- 사리 직행버스(1일 35회, 30분 소요) 승용차 : 중부고속도로-증평IC-도안-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