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름과 머무름 속에서

산과 들 626

버드나무 숲길에서

하담에서의 이별[荷潭別] 아버지여 아시나이까 모르시나이까 / 父兮知不知어머님은 아십니까 모르십니까 / 母兮知不知가문이 금방 다 무너지고 / 家門欻傾覆죽느냐 사느냐 지금 이렇게 되었어요 / 死生今如斯이 목숨 비록 부지한다 해도 / 殘喘雖得保큰 기대는 이미 틀렸습니다 / 大質嗟已虧이 아들 낳고 부모님 기뻐하시고 / 兒生父母悅쉴새없이 만지시고 기르셨지요 / 育鞠勤携持하늘 같은 그 은혜 꼭 갚으렸더니 / 謂當報天顯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이리도 못돼버려 / 豈意招芟夷이 세상 사람들 거의가 / 幾令世間人아들 낳은 것 축하 않게 만들 줄을 / 不復賀生兒하담을 떠나며[離荷潭] 사휴정 아래 물줄기 넘실넘실 흐르는데 / 四休亭下水漣漣객중의 말 슬피 울며 나룻배에 올랐네 / 客馬悲鳴上渡船가홍역에 당도하여 강어귀서 바라보니 / ..

일지암에서

초의선사가 일지암을 짓고 지은 시 연하(烟霞)가 난몰(難沒)하는 옛 인연의 터에중 살림할 만큼 몇 칸 집을 지었네못을 파서 달이 비치게 하고 간짓대 이어 백운천(白雲泉)을 얻었으며다시 좋은향과 약을 캐나니때로 원기(圓機)로써 묘련(妙蓮)을 펴며 눈 앞을 가린 꽃가지를 잘라버리니좋은 산이 석양 노을에 저리도 많은 것을.  그 날의 아쉬움 일지암에 도착하니,강아지가 날 반긴다. 깊고 깊은 산 중에그 누가 찾을까마는~~~~녹차라도 할 스님은산방에서 뭘하는지, 초의가 있었으면헛기침이라도 했을텐데.~~~~~~주인장이 아니라서~~~~~

초계와 현풍

합천 운석충돌구초팔성(草八城): 현재의 경상남도 합천군 초계면(草溪面). 본서 권34, 잡지3 지리1에 강주(康州) 강양군(江陽郡)의 영현(領縣)인 팔계현(八谿縣)이 본래 초팔혜현(草八兮縣)인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으며 지금[고려]의 초계현(草谿縣)이라고 되어 있다. 조선 시대 초계현의 중심지는 현재의 초계면, 즉 초계 분지의 북쪽에 있었다. 『대동지지』에서는 청계산이 군 서쪽 5리에 있고, 또 거기에 고성이 있다고 하였다(『대동지지』 권9 초계).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청계산이 군 북쪽 1리에 있다고 하여(『신증동국여지승람』 권30, 경상도 진주목 초계군 산천), 현재의 단봉산을 지칭한 것으로 보이는데, 조선 말에는 현재의 대암산(해발 591m)을 청계산이라 하고, 거기에 고성이 있다고 한 것이다...

가섭산 봉화골에서

신증동국여지승람 제14권 / 충청도(忠淸道) 음성현(陰城縣)  동쪽으로 충주(忠州) 경계까지 8리이고, 북쪽으로 충주 경계까지 25리이고, 남쪽으로 괴산군(槐山郡) 경계까지 18리, 청안현(淸安縣) 경계까지 35리이고, 서쪽으로 진천현(鎭川縣) 경계까지 40리이고, 서울까지 2백 48리이다.【건치연혁】 본래 고구려의 잉홀현(仍忽縣)인데 신라에서 지금 이름으로 고치어 흑양군(黑壤郡)의 영현(領縣)을 만들었다. 고려(高麗)에서 충주(忠州)에 붙였다가 뒤에 감무를 두었고, 본조(本朝) 태종(太宗) 13년에 규례에 따라 현감으로 만들었다.【관원】 현감(縣監)ㆍ훈도(訓導) 각 1인.【군명】 잉홀(仍忽)ㆍ설성(雪城)ㆍ잉근내(仍斤內) 육익(六翼)【성씨】 본현 송(宋)ㆍ윤(尹)ㆍ경(敬)ㆍ정(鄭)ㆍ박(朴)ㆍ채(蔡)ㆍ최(..

백두대간 조령산에서

백두대간 조령산에서 아직은 저질체력이라서 작은 산을 오르는데, 1시간 남직한 거리를 3시간이나 걸려서 올랐다. 힘들게 정상에 도착했는데, 나를 추월해서 간 등산객 중에 한 분이 내게 말을 건네며 반긴다. 그리고 이 일대의 백두대간에 대하여 이야기하며 자신의 무용담을 자랑하다가 내게도 추천한 곳을 힘들더라도 가보라고 한다. 그때, 옆에서 쉬고 있던 마나님이 수술환자라서 거기까지는 못간다고 말했다. 그러자, 갑자기 주변에 있던 등산객들이 나를 주목했다.산골어부 왈 "여기는 내가 버섯따러 다니던 곳이라서 ~~~"산정상이 조용해졌다.그리고, 반전이 생겼다.저질체력인 나보고 대단한 분이라고 ~~~~~~

한다리 계암고택에서

한다리와 큰다리대교와 백교삽다리와 섶다리  이른 아침에 계암고택을 나와마을 제방길을 산책했다.한다리 마을 산책길에서 대교유허지(?) 표지석이 보였다.작은마을의 하천 제방길이라서대교라는 표현이 의아하게 느껴졌다.섶다리를 대교로 과장해서 표현한 것이 아닐까 ? 제방길 산책을 마치고 마을 입구에 들어섰다.고고한 소나무 한그루와 더불어 마을 안내판이 보인다."한다리"한다리가 아까 보았던 대교(큰다리)라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어제 늦게 도착하여 마을과 숙소를 둘러보지 못해서마을에 대한 정보를 몰랐기에 ~~~~~ "사진이라도 한장 찍을 걸" 후회 아닌 아쉬움이 ~~~~~ 이번 가족여행은 나와 아들의 수술 후유증과 한강의 노벨상 수상으로역사와 트라우마에 대한 이야기로 ~~~~~ 규방칠우누가 제일 힘들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