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름과 머무름 속에서

역사의 뒤안길에서/옛날 기록들 14

사열산성은 어디일까 ?

제천시 청풍문화재단지의 망월산성을 답사한 분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 정약용과 신채호로 이어지던 성열성과 성열현에 관한 지명유래도 역사의 오류였지만, 아직도 향토사학에서는 성열성과 성열현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조선시대의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사열산성에 대한 기록이 없으나, 후대의 기록인 대동지지에서 고성으로 성황산 유지와 삼국사기의 기록인 사열산성이 등장하는 것도 조선후기의 실학사상을 반영한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제천의 향토사와 청풍문화재단지에는 오늘도 잘못된 역사를 소개하고 있다. 한국사에서 우륵이나 강수의 출생지에 관한 이야기는 큰 의미가 없지만, 향토사에서 내 고장 출신임을 자랑하기 위해서는 절실한 사료일 것이다. 하지만, 삼국사기의 기록만으로 성열현이나 성열성의 위치를 비정할 수 ..

달천(達川)의 유래와 포모대(泡母臺)에 대하여

신증동국여지승람 제14권 충청도(忠淸道) 충주목(忠州牧)【산천조]에서 "본조(本朝)의 이행(李行)이 능히 물맛을 변별하는데, 달천 물을 제일이라 하여 마시기를 좋아하였다." 라는 기록은 성현의'용재총화(慵齋叢話)'에 나타난다. 고려 말에 차(茶)를 좋아하는 기우자(騎牛子) 이행(李行)은 좋은 물에 대한 품평을 한 기록에서 '첫째는 충주(忠州)의 달천수(達川水)요, 두 번째는 한강의 우중수(牛重水), 세 번째가 속리산의 삼타수(三陀水)이다.' 라고 하였을 뿐, 달천수가 왜 최고인지에 대한 근거를 어디에 두고 품격을 나누었는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차(茶)를 끓이는 물의 질은 지하수나 용천수보다는 하늘이 내린 천수(天水)가 제일 좋다고 한다. 따라서 달천수(達川水)가 자연 상태에서 흐르는 강물 중에서 ..

명당과 두무소 이야기

명당과 두무소 이야기 임진왜란 때 명나라 이여송의 책사인 두사충에 얽힌 명당 이야기와 조선의 혈을 끊는다는 이야기는 두사충이 다닌 곳마다 산재한다. 충주에서도 장호원 오갑산의 이진봉과 한수의 묘지 이야기가 있으며, 남한강 장미산 자락의 명당에 얽힌 두무소(두담)의 설화는 두담의 됫산을 오를 적마다 두사충이 본 명당자리가 어디일까하는 망상에 남한강과 장미산 자락을 한번 더 바라보게한다. 하지만, 두담의 됫산에서 바라본 명당 자리는 보이질 않는다. 다만, 저멀리 보련산 자락의 보련산성(천룡산성)만이 눈에 들어온다. 하긴, 두사충도 찾지 못한 명당이 쉽게 눈에 보일리도 없겠지만, 두사충 자신도 훗날 조선에 귀화하여 대구땅에 묻혔지만, 그 자신의 묘소 역시 명당이라고 할 수가 있겠는가. 두사충이 찾았다는 비선혈..

망이산과 망이산성의 유래

마이산 471.9m (馬耳山) 또는 망이산(望夷山)은 안성시 일죽면과 음성군 삼성면의 경계에 위치하는 산으로 동국여지승람에는 옛 죽산현의 관할로 망이산성(望夷山城)과 망이산 봉수대가 있는 곳으로 기록되어 있다. 망이산(望夷山)은 오랑캐(夷)를 바라보는(望) 산(山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는 망이산(望夷山)을 현재의 한자표기로 해석한 것으로 오랑캐(夷)에 대한 해석은 동이족 뿐만 아니라 고구려.백제.신라 중 이 지역을 지배한 주체에 따라 달리 해석된다. 그러나, 망이산이란 이름에서 고려 무신정권시대에 공주의 명학소(현재 대전)에서 일어난 망이.망소이의 난을 일으킨 망이와 망소이가 연상되기는 하지만, 망이산과 망이와 망소이의 난은 큰 연관성이 없어 보인다. 망이산은 망이산 봉수대처럼 옛 설성지역인 이천과 ..

달천강은 감물내를 흐르는 강이다.

달천강의 유래를 찾아서 달천강의 유래를 찾는다는 것이 어찌보면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또한 달천강의 유래를 찾았다고 해서 달천이 변하는 것도 아니고, 오늘날에 회자되는 고유명칭과 유래들을 바꿀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런데,  왜 달천강의 유래가 궁금한 것일까 ? 잘못 와전된 유래와 설화로 본래의 지명 유래가 전혀 다른 의미로 변질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명을 시대의 변천에 따라 바꿀 수도 있겠지만은 전통과 문화를 계승하는 차원에서 본래의 의미를 되살려야 하지 않을까. 달천강에는 달천과 달강, 달내와 달래, 단내와 단강, 단냇물과 단물내, 감물와 감물내 등이 나타나듯이 달천강 유역에는 달에 대한 지명들이 산재하고 있다. 기존에 알려진 달천의 유래는 달다(甘)에서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달천강 주변의 지명..

국망산과 명성황후

노은면에 위치하는 국망산의 이름이 임오군란 때 명성황후의 피난으로 인하여지어진 것으로 전해져 있다.그러나, 역사서에 의하면 고종이 즉위하기 이전에도국망산으로 기록하고 있다.또한 명성황후의 피난지인 노은면 가신리 신흥동 궁궐터에 대한이야기도 궁궐터라기 보다는 그를 기념하기 위한 작은 누각이나초가집인 이음성집을 기와집으로 짓기 위한 것이다.유물로 남아 있는 주초석의 크기와 수 등으로 추정할때,대지의 규모나 건축물의 크기가 작았다는 것을 의미한다.또한 이를 추진하시던 사람 역시 관에서 파견된 관리가 아니라지역주민인 홍모씨로 궁궐을 지어본 경험도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궁궐터 역시 궁궐을 지으려한 것이 아니라 명성황후와 연관된 건축물이라서궁궐터라고 전해진 것이 아닌가 한다. 최근 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