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령(竹嶺)을 넘으며
산골어부
아달라왕은 왜 ! 넘었을까 ?
누가 죽령이라 했을까 ?
대나무도 없는 고갯마루에 서서
멀고 먼 옛날을 상상해본다.
대간으로 이어지는 분수령은
충청과 경상을 가르는 기준선으로
천 년이 흘러도 변함없이 여전하다.
풍파 속에서 나타나는 지역적 특성은
터널이 생겨도, 비행기가 날아도
낙동과 한수는 다를 수 밖에 없었다.
산세를 따라 적성은 한강으로
풍기는 낙동강으로 흐르듯이
이념이 아닌 순리 그 자체다.
투박한 사투리가 뒤섞일지라도
능글거리는 말이 될 수 없는 것은
같은 하늘 아래에 산다는 것이다.
솔잎 사이로 흐르는 향기가
막걸리맛보다 못한 것은
인정이라는 지혜가 아닐까 ?
2017년 5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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