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 18일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오늘은 4대강 사업으로 시끌거리는 삼합리를 다녀 오기로 했다.
삼합리는 섬강과 청미천이 남한강에 흘러드는 세물머리가 있는 곳이다.
요즈음 도리섬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대오뜰 골재장이 있던 곳이다.
대오뜰 하중도는 오갑산 줄기에서 흘러내린 끝자락이라
도리섬보다는 대오섬 또는 단진개섬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강 건너의 흥원창 나루는 개치나루라고 하고,
대오마을의 나루는 참남나루(창내미나루)라고 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오지인 대오마을을 경유하지 않고,
도리마을에서 바라보기 때문에 도리섬이라고 했을 것이다.
4대강 사업현장도 삼합리나 도리에서 출입하는 것이 아니라
강 건너의 강천면 굴암리에서 중장비들이 드나든다.
겨우 임시수로 십여개로 도강이 이루지니,
우리가 크다고 말하는 남한강은 너무도 작은 강이다.
어부가 이 곳을 처음 찾은 것은 2004년도 일 것이다.
그리고 매년 삼합리 대오마을을 찾아 왔었다.
어부가 대오마을을 찾는 것은 너무도 조용한 오지인데다가
청미천 하류에 형성된 모래밭과 하중도가 아름답기 때문일 것이다.
청미천 하류는 갈수기에는 수심이 낮아 쉽게 도강할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72년 대홍수를 생각하면 하중도에 따른 홍수피해와
앞으로도 토사유입에 대한 대비책은 세워야 할 것이다.
앙성을 지나 닭이머리고개를 넘어 삼합리로 접어들었다.
청미천 제방도로를 따라 내려가다가 대오마을로 향하지만
마을로 향하는 고개 입구에서 공사현장이라 위험하다고 통제를 한다,
마을 주민과 공사관계자 외에는 출입을 통제한다고 한다.
공사현장의 안전 때문에 출입을 통제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통제를 하는 분과 실랑이를 할 수가 없어서 도리로 향했다.
5월에 내리는 굿은 비를 맞으며
충주에서 이포까지 둘러본 남한강변은 ????
산악자전거를 타고 남한강 투어를 하던 지난날을 회상해본다.
4대강 사업으로 잘 정비된 보기 좋은 강변이 아니라,
강의 생태계가 잘 보존된 남한강을 기대하며 ~~~
여주 삼합리 4대강 사업 위성사진
대오마을 앞 남한강과 자산
대오마을과 대오뜰
4대걍 사업이 진행 중인 개치나루와 창내미 나루터
4대걍 사업이 진행 중인 창내미 나루터
대오마을과 대오뜰
대오마을과 대오뜰
남한강과 청미천의 합수머리 하중도
남한강과 청미천의 합수머리 하중도
남한강과 청미천의 합수머리의 하중도 입구
남한강과 청미천의 합수머리 (하중도와 도리마을)
(참고자료)2006년 10월 5일 한가위 특집 삼합리 라이딩 후기 중에서
내일이 추석인데,
잔차타러 간다니까 어머니 표정이 좀~~~~
날씨가 조금은 쌀쌀해서 방풍자켓 대신 속에
마라톤 런닝복을 입고 있으니,
마나님이 날씨가 더울꺼라고 입지 말랜다.
(어부 매니져로 승진시켜야 하나~~~)
출발 전에 서비스로 사진 몇장 찍고,
목계다리로 출발~~~
예정시간보다 30분 일찍 도착하여 10여분을 기다리다가
아무도 올 것같지 않아서 홀로 출발하였다.
덕은리를 지나서 부론 단강분교에서 쉬고있는데,
록키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부님 오늘 라이딩~~~"
"어! 난 단강초등학교까지 왔는데,~~~"
"저 혼자 라이딩 할께요."
록키에게 무척 미안했다.
10시 출발로 긴급공지하고 9시 40분에 출발했으니....
거돈사지 입구 삼거리에서 어데로 갈까 망설이다가 거돈사지로 향했다.
거돈사지에 도착해서 괴이한 광경을 목격했다.
40대 초반의 남자가 오랜 시간을 추를 흔들고 있었다.
하도 이상하여 ?i아가서 확인하니,
작은 막대에 오해머에 금도금을 한 추를 흔들며 운동하는 중이란다.
아마도 도인인가보다.
거돈사지를 뒤로 하고 산길을 따라서 손곡저수지로 향했다.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산길(농로)인데,
지난 수해가 복구되질 않아 자갈이 우글거리고 세굴된 곳이 너무 많아
끌바의 연속이다.
손곡저수지 삼거리에서 또 갈등을 했다.
법천사지로 갈까? 아니면 이 참에 (구만이고개)개척 라이딩을 할까? 망설이다가
원래 일정대로 진행하기 위해 법천사지로 다운힐 했다.
조금 가다보니 고등학생 녀석이 철티비를 타고 신나게 따라 붙는다.
"학생 잘 타는데."하고 칭찬을 했더니, 더 열심히 달린다.
어부의 잔차는 내리막이라 그냥 굴러가는디,
학생녀석은 죽어라고 페달질하다가 뒤쳐진다.
어부는 엠티비의 때 아닌 자존심이 발동되어
젖먹던 힘까지 페달질했다.
이내 학생은 시야에서 사라졌다.
법천사지에 들려서 어부의 애마 사진도 찍어주고 부론으로 향하는데,
아까 그 학생이 무엇인가를 사들고 낑낑거리며 고개를 올라온다.
손을 흔들며 "안녕"했더니, 안녕히 가시란다.
법천사지 느티나무
대오마을 백사장에서 바라본 자산과 섬강 합수머리
청미천 도강 후 바라본 대오 골재장
부론의 남한강대교를 지나 여주 닭이머리고개를 넘어 삼합저수지에 도착하여
육개장을 먹고 삼합리 대우뜰로 향했다.
대오뜰에는 여주 고구마 수확이 한창이다.
남한강변을 따라 이어지는 단무지무와 고구마는 유명한 농산물이다.
고구마를 캐고 난 밭에서는 외지인들이 고구마 이삭을 캐면서 흥겨운 표정이다.
멀리 영동고속도로에는 차들이 서행을 한다.(무슨 고생들이람..)
골재장에는 지난 장마에 쓰러진 고압선과 전봇대가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이제는 도강을 해야한다.
양말과 신발을 벗어들고 수심이 낮은 여울을 따라 50여미터를 건너갔다.
그리고는 또 100여미터의 모래톱 끌바~~~~
삼합리 트레킹을 마치고 장호원을 지나 시골집 노은으로 향하는데,
때 아닌 돌풍과 역풍으로 잔차가 나아가질 않는다.
감곡면 월정리에 도착하여 쉬고 있는데.
송** 회원님의 전화가 삐리리리~
"어부형님, 백운 도곡임도 삼거리인데요~~~~"
늦은 시간인지라 충주까지 올려면 고생터인데하며
임도상태을 설명해 주었다.
(참고자료) 2007년 9월 24일 남한강 라이딩 후기 중에서
한강변의 오지마을인 도리에 도착하니,
드넓은 습지와 강천유원지가 펼쳐졌다.
도리 마을 앞 습지와 강천유원지
도리 마을 한바퀴 돌아보고
도리 마을회관에서 어부의 간식인 건빵을 먹고 물을 보충했다.
도리는 막다른 곳이라서 되돌아가야 하지만
청미천을 도강하여 삼합리 대오뜰로 건너가고 싶은 유혹에
다시 강변으로 향했다.
도리 마을회관
청미천과 남한강이 합류하는 도리강변은
하얀 백사장으로 뒤덮혀 있어서 잔차를 끌고 갔다.
청미천은 흐르는 물의 양이 너무 많아 도강이 어렵다.
작년 이맘 때에 잔차를 둘러메고 강을 건너갔던 생각이 났다.
청미천 합수머리 백사장
청미천 합수머리 백사장
도강지점을 찾아보지만
강바닥이 모래밭인지라 더 더욱 힘이 들었다.
이내 도강을 포기하고 되돌아 나왔다.
청미천 합수머리 백사장
청미천 합수머리 백사장
여주군 점동면의 지명 유래 (여주군청)
삼합리(三合里)
삼합리는 남한강과 남한가의 지류인 섬강 그리고 청미천이 합수(合水)하는 지역으로 삼합(三合)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으며 또한 이곳은 경기도와 강원도 그리고 충청도의 경계가 근접하는 지역으로서 오갑산 능선의 꼬리 부분이며, 능선 서편아래 오리골, 중간말, 단진개(아랫말)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ㆍ단진개- 「단진개」는 강 하구에 가까이 형성된 마을로서 가장 오래되고 큰 마을이다.
수운을 이용하던 시대에는 매우 번창했던 마을이며 청미천 맨 아래에 마을이 위치하므로 「아랫말」이라고도 한다.
「단진개」라는 마을 이름의 유래는 분명치 않은 바 다음 세 가지로 추정할 수 있다.
① 장마가 지나면 마을 앞강의 하상이 들어나면 붉은색을 띠므로 단진개(丹津)라고 일컬었다.
② 단진개는 단수(丹樹)라고 불려진 일이 있다하며 이 단수라는 마을 이름에서 단진(丹津) 개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③ 청미천 맨 끝 하구에 위치하므로 단진(斷津)개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단진개에 전래되어온 민속놀이는 백중 때에 씨름과 줄다리기 행사를 해온 것이다.
ㆍ중간말(구전자:한종호63세)- 마을에는 단진개 마을이 아랫말이고 웃마을이 오리골이다. 그 중간에 위치한 마을이「중간말」이다.
※ 중간촌(中間村)
ㆍ오리골- 지명의 유래는 알 수 없으며 산중턱의 「닭이 머리」를 지나 능선으로 넘어서면 충북으로 넘어가는 길이 개설되어 있다.
ㆍ닭이머리- 「닭이머리」는 예전부터 충청도로 넘어가는 산중턱의 생김새가 닭머리처럼 생긴 지형 때문에 오래전부터 불려진 지명이다.
「닭이머리」로 오르는 길가에 「미륵」이 있으나 최근에 도난당하였다.
※닭(달山)+머리(모퉁이, 모롱이, 모리)= 산모퉁이= 달머리= 달기머리
ㆍ공양소 (구전자: 한유동85세)- 오갑산 능선 맨 끝 꼬리에 「봉우재」라는 산이 있고 경사가 급한 산아래 남한강이 흐르는 바 그곳에 깊은 소가 있는데 이곳을 공양소라고 한다.
예전 공양왕이 삼척으로 유배갈 때 이곳에서 쉬어갔다는 전설이 유래되어 공야소라 일컬어진다.
ㆍ창내미- 남한강변에 위치하며 강원도로 도강하기 위하여 나루가 있었던 곳이다.
지명의 유래는 강 건너 부른 땅에 「흥원창」이 있었는데 그 남쪽 강 건너에 있다하여 「창」의 남쪽이라는 「창내미」라고 불려진 것이다.
※창(興原倉)+내(川)+미(山)= 창고 있는 냇가 산마을(倉川山) 즉 남한강 건너편 산기슭에 있는 마을
ㆍ한티고개 (구전자: 한종호63세)- 「닭이머리」에서 충청도의 「검단」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한티」고개라 하는 바 큰 고개라는 뜻이다.
※한(큰)+티+고개=큰고개
ㆍ소너미고개- 삼합리 중간 말에서 충청도로 넘어 다니던 고개로 지명의 유래는 분명치 않으나 예전에 사람들 내왕이 빈번하고 물건도 소등에 얹어서 넘나들었기 때문에 「소너미」라는 이름으로 불려진 것으로 생각된다.
※소(고양소 마을)+너머(너미)+고개= 고양소 너머고개
ㆍ봉우재- 오갑산 능선 꼬리에 위치한 산을 이르는 말인데 그 지명의 유래는 알 수 없다.
예전에 봉화를 올린 곳이라는 전설이 있다.
※봉우(봉우리)+재= 봉우리재= 봉우재
ㆍ마골산- 마골산은 삼합리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지명의 유래는 알 수 없다.
마(막)+골(谷)+산(山)= 막힌골산= 막골산
ㆍ도림골산 (구전자:한유동 85세)- 도림골산은 해발 192m이며 마골산에서 흘러내린 산봉우리이다.
지명의 유래는 알 수 없다.
ㆍ개내골산 (구전자: 한종호 63세)- 청미천변에 우뚝 솟은 얕은 산(해발 56m)이다.
지명의 유래는 알 수 없다.
※개(蒲)+내(川)+골(谷)+산(山)→갯가 내 골짜기산
ㆍ대오- 창내미 나루 근처에 최근에 형성된 작은 마을로 마을지명의 유래는 알 수 없으나 깊은 오지라는 뜻이므로 붙여진 이름으로 추정한다.
도리(道里)
점동면 장안리의 지금 승안리 마을 서편에 도호동(桃湖洞) 마을이 있었는데 남한강에 수운이 발달하면서 강변 쪽의 생활이 편리하고 토양이 비옥하며 어떤 계기로 도호동 사람들이 이주하여 살며 큰 마을(큰말)을 이루게 되었다.
그리하여 도호동 사람들이 이주해 왔다는 뜻에서 「도래(桃來)」가 되고 이곳이 「되래」로 발음된 것이며 여기서 행정 리명(里名)으로 「도리(道里)」라는 이름을 얻은 것이다.
그러나 「되래」마을은 여러 차례의 전란에서 안전하여 환란을 모면하였다는 뜻으로 환란에서 돌아난 지역이라 하여 「되래」라 일컬었다는 주장도 있다.
「되래」는 범선이 정박하던 곳으로, 곡물이 이곳을 통하여 서울로 가고, 소금, 생선 등이 이곳을 통하여 중부 내륙지방으로 유통되어 「흔바위」와 함께 상당히 번창하였던 마을이다.
강변을 통하여 「흔바위」로 연결되는 「아홉 사리」라 불리는 오솔길이 있어서 서울과 충주지방으로 이동하는데 요긴한 통로의 역할을 하였으며 되래의 동쪽으로 「중군이봉」이라는 그리 높지 않는 산이 있다.
이 산자락이 강변에 절벽을 이루며 아름다운 경치를 만들어 낸다.
그중에 「되래」에서 동쪽 약1.2㎞ 지점에 「신선(神仙) 바위」가 있는 바 남한강변의 빼어난 절경으로 명소였으나 지금은 찾는 이가 없어 그 절경이 아깝게 숨어 방치되어 있다.
마을 앞 강변 경작지에서는 지금도 선사주거유적지가 발견되고 있다.
※ 돌(回)+내(川) =돌래= 도래= 되래
ㆍ큰말-「되래」마을이 큰 마을을 이루고 남한강 수운으로 번창하였으므로 「큰말」이라고 불려졌다.
남한강의 물줄기가 돌아나가는 지형에서 얻어진 지명.
ㆍ새마을- 새마을은 점동면 도리의「되래」마을에서 남서쪽으로 500m 떨어져 있는 바 1972년의 홍수로 피해를 당한 강변주민들을 집단 이주시켜서 형성된 마을이다.
ㆍ사장골 (구전자: 민순호 67세)- 원래 사장골은 사정(沙亭)에서 유래된 마을이다.
이것은 묘비의 비문이나 족보에 분명히 이 마을에 이름이 기록되어 있으므로 그 유래를 알 수 있다.
「사장골」은「되래」마을에서 서쪽으로 800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사장골」,「새마을」 부근에는 반란을 일으킨 「이괄」의 선대묘가 여러 기 분포하고 있는데 그 묘비는 모두 땅에 묻혀져 있어, 그 묘의 실체를 숨기고 있으며 돌보는 이 없이, 숲이 우거져 묘역조차 분간이 어렵게 되었다고 한다.
※경사진 산 아래 경사면에 위치한 마을
ㆍ중군이봉 (구전자: 민영주73세)- 「되래」의 동쪽에 솟아있는 산봉우리로서 남한강과 청미천의 합수머리를 내려다 볼 수 있다. 봉우리가 강변 쪽으로 흘러내린 끝단에는 신선바위가 있으나 그 지명의 유래는 알 수 없다.
ㆍ아홉사리- 도리와 흔암리를 연결하는 강변의 오솔길로 길이 좁고 험하며 아홉구비를 굽이굽이 돌아 다닌다하여 아홉 사리라 하였다.
경상도, 충청도에서 서울을 왕래할 때 이용되던 길이며 예전에는 빈번한 통로였지만 지금은 왕래하는 이가 거의 없는 황폐된 길이다.
※사리는 꼬불꼬불하거나 감아놓은 것을 말하는 것으로 사리로 발음하는데 아홉구비를 아홉 사리로 칭한 것이다.
ㆍ신선바위- 중군이봉에서 남한강변 쪽으로 흘러내린 곳에 신선바위가 있는데 이곳은 남한강과 청미천이 합수(合水)되는 지점이다.
신선바위는 빼어난 경관으로 남한강변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치로 손꼽히고 있다.
이곳 바위에 공룡발자국 같은 형상이 새겨져 있다.
흔암리(欣岩里)
흔암리는 「흔바위」와「동마루」, 두 마을로 이루어졌는 바, 흔바위는 남한강 수운의 요충지로 고래로 오래된 마을이고 「동마루」는 최근에 몇몇 인가가 산재하여 마을을 형성한 곳이다.
마을 앞에는 바람을 막아주는 안산이 있고, 마을 뒷산은 이름 없는 바위산으로 급한 경사로 남한강과 접하고 있으며 그곳 강변에 좁은 공간이 있어 「우산절」이라는 지명을 가지고 있는 바 이곳에서 선사주거 유적이 발견되었다.
흔바위에 전래되는 민속놀이는 「쌍용거줄다리기」가 있으며 정월대보름에 치르는 큰 행사이므로 주변 마을 사람들까지 그 놀이를 즐기기 위하여 모여들었다.
강천면 굴암리로 연결하는 나루가 있었다.
ㆍ흔바위 (구전자: 심상대 73세)- 흔암리의 어원은 흰바위에서 비롯된 것인 바 마을 앞 강바닥 가운데에 큰 바위가 있어서 마을이름이 「흰바위」가 되었고 흰바위가 흔바위로 발음된 것이다.
「흔바위」는 남한강을 오고가는 배의 정박지로서 사람의 내왕이 빈번하고 상업이 번성한 곳으로 옛적에는 대단히 활기찬 지역이었으며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
흔바위에 전래되는 민속놀이는 「쌍용거줄다리기」가 있으며 정월대보름에 치르는 큰 행사이므로 주변마을 사람들까지 그 놀이를 구경하며 즐기기 위하여 모여들었다 한다.
마을 앞에는 수백 년생 훼나무가 있으며 강천면 굴암리로 연결하는 나루가 있었다.
「흔바위」를 「흔암(欣岩)」으로 쓰는 이유는 알 수 없으며 다만 행정구역을 한문으로 표기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잘못된 이름이다.
ㆍ동마루 (구전자: 김종철 56세)- 「동마루」는 점동면 처리에서 흔암리 「흔바위」로 통하는 길옆 야산에 최근에 몇몇 인가가 들어서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는 바 인가는 밀집되지 않고 산재해 있다. 마을 이름의 유래는 분명치 않으나 「마루터기」라는 말에서 유래된 것으로 짐작한다.
「동마루」의 위치는 서편에 넓은 「가마뜰」에서 바라볼 때 동쪽의 야산지대로 그 형세가 가마뜰 보다 다소 높은 지역이므로, 동쪽의 마루터기라는 뜻에서 마을이 형성된 지역을 「동마루」라 부르게 된 것으로 짐작한다.
※동+마루= 동편 산마루
ㆍ우산절- 지명의 유래는 알 수 없으며 흔바위 뒷산이 급한 경사로 강변에 접하여 있는데 그 경사면의 중턱에 좁은 공간이 있는데 이곳을 「우산절」이라 부른다.
이곳에서 선사주거유적이 발견되었다.
3.000년이 넘은 탄화미(炭化米)가 발견된 곳으로 신석기 시대 이전부터 사람이 정착한 지역임을 알 수 있다.
※위(上)+산(山)+절(턱)= 윗산턱= 우산절
ㆍ안산- 흔바위 앞산을 안산이라 부르는데 남쪽의 바람을 막아 주고 흔바위 마을을 아늑하게 감싸주는 얕은 산이다.
ㆍ고살래고개- 지명의 유래는 알 수 없으나 흔바위에서 장호원쪽으로 가려면 예전에는 「고살래 고개」를 넘어 점동면 처리를 거쳐 가야 하는 바 흔암리에서 서편으로 200m 위치에 있는 언덕(고개)으로서 서낭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서낭이 훼손되고 큰 향나무가 베어져 없어졌다.
또한 사람의 내왕이 거의 없고 겨우 처리(범솥)으로 연결하는 한가한 길로서 옛적의 큰길의 역할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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