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름과 머무름 속에서

역사란 그늘 아래서/자취를 밟으며

음성 수정산과 수정산성

산골어부 2011. 3. 13. 20:24

 

 

 

 

 

 

 

 

 

 

 

 

 

 

 

 

 

 

 

 

 

 

 

 

 

 

 

 

 

 

 

 

 

 

 

 

 

 

 

 

수정산과 수정산성(참고자료)

  • 수정산(해발393m)은 음성읍 읍내에서 동쪽으로 2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음성 주민들이 간편한 차림으로 많이

    이용하는 산이다.음성읍 읍내리와 음성읍 평곡리에 걸쳐있는 산으로 산의 북쪽에는 청주∼충주간 국도가 뻗어있으며

    남쪽에는 충북선이 뻗어 있어 마치 섬모양을 하고 있다. 산을 오르다 보면 산마루에 바위가 하나 있는데 이바위는

    직경 2m 가량되는 길고 둥근모양을 하고 있는데 이돌이 옛날 장수들이 돌을 가지고 놀았다하여 장수바위라고 부른다.

  • 정상에 오르면 오래된 옛 성을 발견 할 수 있는데 이성이 바로 수정산성이다.

     

    종    목 : 시도기념물 제111호 (음성군) 
    명    칭 : 수정산성(水精山城) 
    분    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성/ 성곽 
    수량/면적 : 42183 
    지 정 일 : 1999.12.31 
    소 재 지 : 충북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 산14-1, 산15-2, 평곡리산16,한벌리산94-1,산95 
    시    대 : 통일신라
    소 유 자 : 국유.사유
    관 리 자 : 음성군
    상 세 문 의 : 충청북도 음성군 문화공보과 043-871-3063


    수정산성에 대한 전설로 남매 축성해다는 설화가 전해져 오는데 원남면 상노리와 하로리 경계의 할미성과 함께

    할애비성으로 할애비와 할미의 축조했다는 설화가 전해져 오고 있으며 고려시대 고려장군 박서가 축성해다는

    이야기도 전해오고 있다. 성내에는 삼국시대의 연질.결질토기편과 통일신라에서 고려를 거쳐 조선시대에 이르는

    토기,도자기 및 기와편이 발견되고 있는데 여려상황으로 보아 삼국시대에 토축하여 쌓은 산성을 고려시대에

    석축으로 보강하것으로 판단된다.

     

    음성읍 동쪽 1.2km 떨어진 수정산에 있는 성으로 옛기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신증동국여지승람》14권 음성현 고적조에는 '고산성 재수정산상 석축 주일천이백칠십일척 고장여 내유일정 금폐 성지남유고읍유지 호관평'이라 기록되어 있고, 《대동지지》6권 음성 성지조는 '고성 재수정산상 칭설성주일천이백칠십일척 정일이라 하였다.
    이러한 기록을 미루어 이 산성은 수정산상을 포위한 석성으로 주위가 1,271 척에 성의 높이가 1장여(장여)이고, 성내에 우물이 1개소 있으며 설성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남쪽에 관평이라 불리우던 고읍유지가 있다는 것이다.

    일제시의 《조선유물고적조사자료》에는 '석축 주위 350간 고50척 폭3척'이라 기재되어 있다. 수정산(수정산, 수정산)의 정상과 동쪽 낮은 지대의 계곡을 포위한 둘레 601.5m의 산성으로 기록에는 석축으로만 나오고 있으나, 실제 답사를 해보면 당초 토축산성이 있는 곳에 석축을 해 보강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 동쪽의 일부 토루는 완성되지 못한 채로 그대로 남아 있어 석성인 내성에 토축의 외성을 둔 것처럼 보인다. 석축부분의 높이는 286∼328cm이고, 동쪽 토축부의 높이는 141∼147cm에 두께는 160∼184cm이다.
    이 산성에 관한 전설로는 남매 축성설화(축성설화), 원남면 상노리와 하로리 경계의 할미성(토성)과 함께 할애비성으로 할애비와 할미의 축성설화가 있으며, 고려장군 박서(박서)의 축성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성내에는 삼국기의 연질·결징토기편과 통일신라에서 고려를 거쳐 조선시대에 이르는 토·도자기 및 기와편 등이 발견되고 있는데 여러 상황으로 보아 삼국시대에 토축(토축)하여 쌓은 산성을 고려시대에 석축(석축)으로 보강한 것으로 생각된다.(충청북도, 1982.《문화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