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릴 적에 청금산장을 지날 때면
나는 언제 커서 저 산장에서
거시기랑 하룻밤을 지낼 수 있을까 ?
당시에 충주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현재 한화콘도 옆에 있는 사보이 산장이었다.
사보이 산장은 당시의 최고급 호텔 수준이지만
그에 비하면 청금산장은 아주 작은 산장으로
남한강을 굽어 볼 수 있는 정취가 있는 곳이다.
청금정은 우륵과 관련있는 곳이기는 하지만
청금정의 정확한 위치는 알 수가 없다.
누암 청금정이란 기록에서
현재의 청금산장이나 금강사 주변으로 추정할 뿐이다.
우륵의 가락이 깃든 탄금대 탄금정(?)과 사휴정은
남한강의 금탄여울을 오가며 노닐던 곳이라고 한다.
제1휴정은 누암 청금정(?), 제2휴정은 월락탄 옥강정(?),
제3휴정은 하담 모현정(?), 제4휴정은 가흥창지(목계) 몽구정(?)
그를 복원할 수는 없을까 ?
동해안 화진포에 가면 유명인사들의 별장이 보존되어 있다.
청금산장을 보존할 수는 없을까 ?
사유지와 사유물이라는 굴레에 묶이기보다는
지역사회에서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새로운 역사문화 공간으로 창출했으면 ~~~~
영업정지로 폐허가 되어가는 청금산장.
접근조차 힘든 창동마애불.
제 모습을 잃고 산장 입구에 선 석탑과 석불,
어릴 적 꿈은 흉물로 변해버린 산장처럼
추억 속으로 사라져 버린 것같다.
(쳥명주 유래에서)
조선후기 실학자인 이규경(李圭景·1788~?)은 ‘청명주변증설’에서
청명주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이 술은 우리나라 금환(金還·속명 금탄〈金灘〉)사람만이
만들 수 있으니 금탄의 물이 아니면 이룰 수 없으니
다른 지방에서는 모방해도 이와 같지 않다.”
술의 맛은 물에 달렸으므로 금탄의 물을 사용할 수 없는
다른 지역에서는 ‘모방하려해도 불가능하다’고 한 것이다.
이규경보다 앞서 살았던 이익은 술을 매우 좋아했다.
그는 오제삼주(五齊三酒·술의 종류)를 말하면서 “나는 평생
청명주를 가장 좋아한다”고 하고,
청명주의 양조방법을 양계처사(良溪處士)에게서 배우고 나서
“혹시나 잊어버릴까 두려워 기록해 둔다”고 했다.
당시에 청명주가 얼마나 소문이 났으며 애주가들에 의해
사랑받았는가를 알 수 있게 해 준다.
'역사란 그늘 아래서 > 자취를 밟으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충주읍성 관아골 골목길에서 (0) | 2011.09.18 |
---|---|
충주 관아공원 (0) | 2011.09.15 |
남한강과 창동 마애불 (0) | 2011.08.01 |
[스크랩] 더 이상 흐르지 않는 강 (0) | 2011.07.14 |
[스크랩] 충북 괴산 백마산 백운사 (0) | 2011.06.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