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름과 머무름 속에서

역사란 그늘 아래서/담론들

중원역사의 재조명을 시작하며

산골어부 2013. 2. 6. 15:30

 

산골어부는 역사를 좋아한다기보다는

산과 강을 따라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많은 사람들이 역사문화 답사기를 남기지만,

답사한 자신의 생각보다는 유적자료와 사진으로

나도 이런 곳을 다녀왔다는 것을 과시한다. 

산골어부도 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여행과 산행 중에 

접하는 옛유적지와 문화재를 살펴보고

"왜" 란 의문을 던지며 역사란 것을

인식하기 시작했던 것같다.

 

학창시절에 배운 한국사와 세계사는

진학과 취업을 위한 시험공부로 취급되고,

잡학을 좋아하기에 역사책과 향토자료는

백과사전과 같은 이야기꺼리일 뿐이었다.

하지만, 역사에 대한 자료들을 접하면서

학교에서 배운 한국사와 관련된 사료들 중에

잘못 해석되고 기술된 것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특히 향토역사에 관한 논문과 자료집에서

잘못된 자료들을 인용하여 그를 정당화시키고,  

역사에 대한 연구보다는 지역예찬론에 집착하여

사실의 고찰아니라 향토사를 미화시켜

본질을 왜곡하여 애향심에 호소하고, 

지역발전에 잘못된 이정표로 이어진다.

 

중원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그 이야기를 정리하고 싶다.

"왜곡된 중원의 역사"를 생각나는대로 글로 남긴 적이 있었다. 

산골어부가 답사한 유적지를 개인적으로 보고 느낀대로 쓴 것이

객관성도 없고, 입증할 자료도 없기에 반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일부에서는 논문을 쓰는 것이 어떠냐는 충고도 했지만

논문이란 형식을 빌린다고 역사가 바뀌는 것도 아니다.

아무리 논리로 증명한다고해도 위서는 위서일 뿐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문제점들을 찾아내어 역사를 정리하기에

역사의 진실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대표적인 충주(중원문화권)의 왜곡된 역사

 

1. 원삼국시대의 지배세력은 누구인가 ?

2. 국원성의 중심은 어디에 있었는가 ?

 

3. 충주(忠州)의 유래는 한반도의 중심인가 ?

4. 대몽항전의 승전지는 어디인가 ?

5. 철기소 유적지는 왜 사라지는가 ?

6. 신립은 왜 한나절만에 패했는가 ?

7. 달천은 왜 음달패설로 얼룩졌는가 ?

8. 중원문화권은 왜 축소되는가 ?

9. 대문산의 탄금대는 왜 슬픈 곳인가 ?

10. 충주를 빛낸 사람들은 누구인가 ?

 

 

국망산이란 지명은 조선초기부터 있었다.

국망산은 명성황후가 한양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국원성의 영역을 조망할 수있는 산에서 유래된 것은 아닐까 ?

 (명성황후 유래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