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름과 머무름 속에서

역사란 그늘 아래서/자취를 밟으며

[스크랩] 월악산 덕주사 마애여래입상 (德周寺 磨崖如來立像)

산골어부 2013. 4. 23. 09:02

 

 

 

 

 

 

 

 

 

 

 

 

 

 

 

 

 

 

아버지인 경순왕이 왕건에게 나라를 넘기자 경주를 떠난 마
의태자 일행은 망국의 한을 안고 신라의 국권회복을 위해
병사를 양병하고자 금강산으로 길을 가던 중 문경군 마성면
에 이르게 된다.

일행은 그곳에서 야영을 하며 하룻밤을 자게 되었는데, 그 날 밤 마의태자는 관세음보살을 만나는 신기한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관세음보살은 왕자에게 "이곳에서 서쪽으로 고개를 넘으면 서천(西天)에 이르는 큰 터가 있을 것이다. 그 곳에 불사를 하고 석불을 세우며, 북두칠성이 마주 보이는 자리에 영봉을 골라 마애불을 이루면 억조창생(億兆蒼生)에게 자비를 베풀 수 있으니 포덕함을 잊지 말라"고 현몽하였다 한다.

예사롭지 않은 꿈이라 생각하고 두 남매는 계곡 물에 목욕재개 하고 서쪽 하늘을 향해 합장배례 한 뒤 다음날 서쪽으로 자리를 이동하게 된다. 일행이 서쪽으로 가며 고개를 넘게 되었는데 고개마루턱 큰 바위에 한 권의 황금빛 포경문(布經文)이 놓여 있었다고 한다.

일행은 그곳에서 북두칠성이 마주 보이며, 최고봉이 한 눈에 들어오는 장소를 찾아 석불입상을 세우고 북두칠성의 별빛이 한껏 비추는 최고봉 아래에 마애불을 조각하며 8년이라는 세월을 보내게 되었으니 그곳이 바로 덕주사다.

공주는 그대로의 삶, 불사에 전념하며 구도의 길을 걸음에 만족하였으나 왕권을 계승하지 못하여 비련의 주인공이 되어버린 마의태자는 그러하지 못하였다. 태자는 동생인 덕주공주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나라를 되찾겠다는 초지(初志)를 굽히지 않고 금강산을 향해 떠난다.

마지막 혈육인 오빠와 헤어져 혈혈단신이 된 공주는 출가하여 절에 몸담고 아버지인 경순왕의 애틋한 부정을 그리워하고 오빠인 태자의 건승을 서원하며 일평생을 살았다 한다.

덕주사에서 다시 1.5Km쯤 더 걸어 올라가면 높이가 15m쯤 되는 커다란 바위에 암각 된 마애불이 있으니 이 마애불이 바로 덕주공주와 마의태자 오누이가 조성한 것으로 천년의 세월동안 한 결같이 그 자리에 묵묵히 서있다.

출처 : 남한강 물길 따라 이어지는 MTB 여행
글쓴이 : 산골어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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