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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목 화령군(化寧郡)의 지명유래 - 답달비군과 도량현

산골어부 2017. 1. 27. 00:28

 

化寧郡(화영군) : 화령현은

本答達匕郡(본답달비군) : 원래 답달비군이었던 것을

(一云沓達(일운답달) : ) [답달이라고도 한다]

景德王改名(경덕왕개명) : 경덕왕이 개칭한 것인데

今因之(금인지) : 지금도 그대로 부른다.

領縣一(령현일) : 이 군에 속한 현은 하나이다.

道安縣(도안현) : 도안현은

本刀良縣(본도량현) : 원래 도량현이었던 것을

景德王改名(경덕왕개명) : 경덕왕이 개칭한 것인데

今中牟縣(금중모현) : 지금의 중모현이다.

(출처: 삼국사기 지리편)

 

 

삼국사기에 기록된 상주목 화령군(化寧郡)의 옛지명은 답달비군(答達匕郡) 또는 답달(沓達)이라고 한다. 상주목 화령군(化寧郡)의 옛지명은 삼국사기의 기록에서 세번이나 바뀌어 나타난다. 답(沓)에서 답(答)으로, 답(答)에서 화(化)로 바뀔 뿐만 아니라, 달(達)이 달비(達匕)로, 답달비(答達匕)가 화령(化寧)으로 변천된 것을 알 수가 있다. 화령군의 속현인 도안현(道安縣)의 옛지명은 도량현(刀良縣)이었는데, 삼국사기를 쓴 시점인 고려말에는 중모현(中牟縣)이라는 것이다. 고려말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에 나타난 이 지역의 지명은 답달(沓達)과 도량(刀良)이라는 두 지명이 합쳐져 답달비(答達匕)가 되었다가 화령(化寧)으로 변천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조선시대 초기에 기록된 고려사지리지와 세종지리지, 그리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화령군(化寧郡)에 대한 삼국사기의 기록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으나, 조선시대에는 화령군(化寧郡)이 아니라 화령현(化寧縣)으로 지위가 강등된 것으로 나타난다. 

 

화령군(化寧郡)은 속리산과 화령재를 중심으로 화동면, 화서면, 화남면, 화북면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중모현(中牟縣)은 모동면과 모서면으로 잔존하고 있다. 화령군의 지명유래에서 답달(沓達)이란 산마루의 분수령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답(沓=水+曰)과 답(答=竹+合)이라는 지명은 낙동강과 금강의 물줄기가 나누어진다는 뜻과 더불어 낙동강과 금강이 만나는 산마루를 표현한 것이 아닐까한다. 일부에서는 답(沓)을 논(畓=水+田)으로 해석하지만, 다랭이논과 같은 답(畓)보다는 물줄기가 나누어지는 분수령이라는 뜻으로 풀이하는 것이 더 타당해 보인다. 중모현(中牟縣)도 문경새재인 조령의 옛지명인 상초(上草) 또는 상모(上芼)처럼 고갯마루에 형성된 촌락을 의미하는 지명으로 보여진다. 상초(上草) 또는 상모(上芼)는 초점 또는 점촌으로 변형되었다가 현재의 문경(점촌)시와 수안보면으로 개정되었지만, 여기에서 나타나는 상(上)과 점(岾)은 고개나 능선의 꼭대기를 의미한다. 또한, 답달비(答達匕)에서 비(匕)와 도량현(刀良縣)의 도(刀)란 표기도 본래 지명을 가차한 것으로 신라와 백제가 벌였던  전쟁터나 고갯마루를 표현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비(匕)와 도(刀)라는 지명이 화령(和嶺) 또는 화령(化嶺)이 아니라, 화령(化寧)으로 변천된 것도 싸우지 말고 평온하게 지내라는 의미에서 생성된 지명이 아닐까한다.

 

백두산에서 내려온 산줄기가 경상북도 상주시 화령재에서 시작하여 추풍령에 이르는 구간에서 쉬어가는 것처럼 200 ~300 미터에 불과한 해발고도가 낮은 고개들로 백두대간을 넘나든다. 금강 상류지역인 충청북도의 남부 3군인 보은군, 옥천군, 영동군 뿐만 아니라, 전라북도의 동부 3군인 무주군, 진안군, 장수군은 백제와 신라의 치열한 국경분쟁지역이였지만, 고대 삼국 또는 가야를 포함한 사국이 통일된 후에는 더 이상 싸우지 말고, 평온하게 지내라는 의미에서 화령(化寧)으로 변천된 것으로 해석하고 싶다.

 

삼도(충청도와 경상도와 전라도)에 접해 있다는 삼도봉과 민주지산 자락에는 충청북도 영동군의 용화면과  전라북도 무주군의 무풍면이 있다. 용화면과 무풍면은 금강수계에 속해 있으며, 생활권도 무주군에 속해 있다. 용화면은 전라북도 무주군의 생활권이지만 행정구역은 충청북도 영동군이며 충청도 사투리를 쓰고, 무풍면은 경상도 사투리를 많이 섞어 쓴다. 삼국시대 이래로 금강 유역의 대부분은 백제영역에 속하지만, 금강의 상류지역이 신라에 속해 있었기에 그 역사성이 잔존하는 것이다. 전라북도 무주군과 진안군과 장수군, 뿐만 아니라 충남의 금산군도 금강유역에 속해 있다. 하지만 행정구역 뿐만 아니라, 지리적 특성과 수계가 일치하지 않기에 용화면과 무풍면과 같은 행정구역과 지역적 특색이 발생된 것이지만, 교통과 통신이 발달된 현시점에서 산맥이나 고개를 넘나드는 의미는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지금은 화령재에도 고속도로가 개통되어 특별한 볼 일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삼국시대의 국경선은 커녕 고개라는 것조차도 잊은채 지나쳐 버린다. 기나긴 역사 속에서는 동서화합을 이룬다는 "화개장터"란 노래를 부르지 않아도 그 지역 사람들은 화목하게 잘지내고 있으며, 고속도로가 아닌 험난한 고갯길이나 뱃길을 넘나들 때도 서로가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백두대간을 따라 무수히 쌓아 올렸던 관문과 산성이 사라지듯이 모든 경계선으로 구분된 이념과 정치도 사라졌으면 한다. 지역감정이라는 것도 경계선에 선 사람들은 잘 모른다. 하지만, 그 경계선을 기준으로 편을 가르는 정치인과 장사꾼들에 의해 왜곡되고 농락 당하는 것 뿐이다.

 

 

(백두대간 삼도봉에서)

 

자는 ‘되다’나 ‘변천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자는 (사람 인)자와 (비수 비)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자의 갑골문을 보면 두 사람이 서로 엇갈려 있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산사람과 죽은 사람을 함께 그린 것이다. 자는 본래 윤회()를 표현한 것으로 자는 ‘산 사람’을 자는 ‘죽은 사람’을 뜻한다. 자에 ‘죽다’나 ‘태어나다’의 뜻이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자는 ‘변천하다’나 ‘바뀌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참고자료]

삼국사기 지리 - 신라

 

尙州(상주) : 상주는

沾解王時取沙伐國爲州(첨해왕시취사벌국위주) : 첨해왕 때 사벌국을 빼앗아 주로 삼은 지방이다.

 

開寧郡(개녕군) : 개령군은

古甘文小國也(고감문소국야) : 옛날 감문소국이었다.

眞興王十八年(진흥왕십팔년 진흥왕 18년,

陳永定元年(진영정원년) : 진 나라 영정 원년에

置軍主(치군주) : 군주를 두어

爲靑州(위청주) : 청주라 하였으나,

眞平王時州廢(진평왕시주폐) : 진평왕 때 폐지되었다가,

文武王元年(문무왕원년) : 문무왕 원년에

置甘文郡(치감문군) : 감문군을 설치하였고,

景德王改名(경덕왕개명) : 경덕왕이 개령군으로 개칭하였는데

今因之(금인지) : 지금도 그대로 부른다.

領縣四(령현사) : 이 군에 속한 현은 넷이다.

禦侮縣(어모현) : 어모현은

本今勿縣(본금물현) : 원래 금물현을

(一云陰達(일운음달) : ) [ '음달'이라고도 한다.]

景德王改名(경덕왕개명) : 경덕왕이 개칭한 것인데

今因之(금인지) : 지금도 그대로 부른다.

金山縣(금산현) : 금산현은

景德王改州縣名(경덕왕개주현명) : 경덕왕이 주와 현의 명칭을 개칭하였는데

及今並因之(급금병인지) : 지금까지 모두 그대로 부른다.

知禮縣(지예현) : 지례현은

本知品川縣(본지품천현) : 원래 지품천현이었던 것을

景德王改名(경덕왕개명) : 경덕왕이 개칭한 것인데

今因之(금인지) : 금도 그대로 부른다.

茂豐縣(무풍현) : 지무풍현은

本茂山縣(본무산현) : 원래 무산현이었던 것을

景德王改名(경덕왕개명) : 경덕왕이 개칭한 것인데

今因之(금인지) : 지금도 그대로 부른다.

 

永同郡(영동군) : 영동군은

本吉同郡(본길동군) : 원래 길동군이었던 것을

景德王改名(경덕왕개명) : 경덕왕이 개칭한 것인데

今因之(금인지) : 지금도 그대로 부른다.

領縣二(령현이) : 이 군에 속한 현은 둘이다.

陽山縣(양산현) : 양산현은

本助比川縣(본조비천현) : 원래 조비천현이었던 것을

景德王改名(경덕왕개명) : 경덕왕이 개칭한 것인데

今因之(금인지) : 지금도 그대로 부른다.

黃澗縣(황간현) : 황간현은

本召羅縣(본소라현) : 원래 소라현이었던 것을

景德王改名(경덕왕개명) : 경덕왕이 개칭한 것인데

今因之(금인지) : 지금도 그대로 부른다.

 

管城郡(관성군) : 관성군은

本古尸山郡(본고시산군) : 원래 고시산군이었던 것을

景德王改名(경덕왕개명) : 경덕왕이 개칭한 것인데

今因之(금인지) : 지금도 그대로 부른다.

領縣二(령현이) : 이 군에 속한 현은 둘이다.

利山縣(리산현) : 이산현은

本所利山縣(본소리산현) : 원래 소리산현이었던 것을

景德王改名(경덕왕개명) : 경덕왕이 개칭한 것인데

今因之(금인지) : 지금도 그대로 부른다.

縣眞縣(현진현) : 현진현은

本阿冬号縣(본아동호현) : 원래 아동호현이었던 것을

景德王改名(경덕왕개명) : 경덕왕이 개칭한 것이다.

今安邑縣(금안읍현) : 지금의 안읍현이다.

 

三年郡(삼년군) : 삼년군은

本三年山郡(본삼년산군) : 원래 삼년산군이었던 것을

景德王改名(경덕왕개명) : 경덕왕이 개칭한 것이다.

今保齡郡(금보령군) : 지금의 보령군이다.

領縣二(령현이) : 이 군에 속한 현은 둘이다.

淸川縣(청천현) : 청천현은

本薩買縣(본살매현) : 원래 살매현이었던 것을

景德王改名(경덕왕개명) : 경덕왕이 개칭한 것인데

今因之(금인지) : 지금도 그대로 부른다.

耆山縣(기산현) : 기산현은

本屈縣(본굴현) : 원래 굴현이었던 것을

景德王改名(경덕왕개명) : 경덕왕이 개칭한 것이다.

今靑山縣(금청산현) : 지금의 청산현이다.

 

古寧郡(고영군) : 고령군은

本古寧加耶國(본고영가야국) : 원래 고령가야국이었는데,

新羅取之(신라취지) : 신라가 이를 빼앗아

爲古冬攬郡(위고동람군) : 고동람군이 되었고,

(一云古陵縣(일운고릉현) : ) [고릉현이라고도 한다]

景德王改名(경덕왕개명) : 경덕왕이 이를 고령군으로 개칭하였다.

今咸寧郡(금함영군) : 지금의 함령군이다.

領縣三(령현삼) : 이 군에 속한 현은 셋이다.

嘉善縣(가선현) : 가선현은

本加害縣(본가해현) : 원래 가해현이었던 것을

景德王改名(경덕왕개명) : 경덕왕이 개칭한 것인데

今加恩縣(금가은현) : 지금의 가은현이다.

冠山縣(관산현) : 관산현은

本冠縣(본관현) : 원래 관현이었던 것을

(一云冠文縣(일운관문현) : ) [관문현이라고도 한다.]

景德王改名(경덕왕개명) : 덕왕이 개칭한 것인데

今聞慶縣(금문경현) : 경지금의 문경현이다.

虎溪縣(호계현) : 호계현은

本虎側縣(본호측현) : 원래 호측현이었던 것을

景德王改名(경덕왕개명) : 경덕왕이 개칭한 것인데

今因之(금인지) : 지금도 그대로 부른다.

 

化寧郡(화영군) : 화령현은

本答達匕郡(본답달비군) : 원래 답달비군이었던 것을

(一云沓達(일운답달) : ) [답달이라고도 한다]

景德王改名(경덕왕개명) : 경덕왕이 개칭한 것인데

今因之(금인지) : 지금도 그대로 부른다.

領縣一(령현일) : 이 군에 속한 현은 하나이다.

道安縣(도안현) : 도안현은

本刀良縣(본도량현) : 원래 도량현이었던 것을

景德王改名(경덕왕개명) : 경덕왕이 개칭한 것인데

今中牟縣(금중모현) : 지금의 중모현이다.

 

 

제20대 자비 마립간 (慈悲 麻立干 458~479 재위기간 21년)

十三年(십삼년) : 13년,

築三年山城(축삼년산성) : 삼년산성을 쌓았다.

(三年者(삼년자) : [삼년이란

自興役始終三年訖功(자흥역시종삼년흘공) : 공사를 시작한지 삼년만에 끝났다고 하여

故名之(고명지) : 붙인 이름이다.]

十四年春二月(십사년춘이월) : 14년 봄 2월,

築芼老城(축모노성) : 모로성을 쌓았다.

十六年春正月(십육년춘정월) : 16년 봄 정월,

以阿湌伐智級湌德智爲左右將軍(이아찬벌지급찬덕지위좌우장군) : 아찬 벌지와 급찬 덕지를 좌우 장군에 임명하였다.

秋七月(추칠월) : 가을 7월,

葺明活城(즙명활성) : 명활성을 보수하였다.

十七年(십칠년) : 17년,

築一牟沙尸廣石沓達仇禮坐羅等城(축일모사시광석답달구례좌라등성) :

일모·사시·광석·답달·구례·좌라 등에 성을 쌓았다.

秋七月(추칠월) : 가을 7월,

高句麗王巨連親率兵(고구려왕거연친솔병) : 고구려왕 거련이 직접 군사를 거느리고

攻百濟(공백제) : 백제를 공격했다.

百濟王慶(백제왕경) : 백제왕 경이

遣子文周求援(견자문주구원) : 아들 문주를 보내 구원을 청하였다.

王出兵救之(왕출병구지) : 왕은 군사를 보내어 구원토록 했는데,

未至(미지) : 구원군이 도착하기 전에

百濟巳陷(백제사함) : 백제가 이미 함락되었고

慶亦被害(경역피해) : 또한 경이 죽었다.

 

 

 

 

 

 

고려사 지리지 상주목(尙州牧)

 

본래 사벌국(沙伐國)으로 신라 첨해왕(沾解王)이 취하여 주(州)로 삼았는데 법흥왕(法興王)이 고쳐 상주(上州)로 삼아 군주(軍主)를 두었고 진흥왕(眞興王)이 주(州)를 폐하여 상락군(上洛郡)으로 삼았다가 신문왕이 다시 주(州)를 두었고 경덕왕(景德王)이 고쳐 상주(尙州)라 하였으며 혜공왕(惠恭王)이 다시 사벌주(沙伐州)라 하였다. 태조(太祖) 23년에 다시 고쳐 상주(尙州)라 하였고 그 뒤에 다시 고쳐 안동 도독부(安東都督府)로 삼았다가 성종(成宗) 2년에 처음으로 12목(牧)을 두니 상주(尙州)는 곧 그 하나이다. 14년에 12주(州) 절도사(節度使)를 두고 호(號)를 귀덕군(歸德軍)이라 하여 영남도(嶺南道)에 소속시켰고 현종(顯宗) 3년에 절도사(節度使)를 폐하매 다시 안동 대도호부(安東大都護府)로 삼았으며 5년에 고쳐 상주 안무사(尙州安撫使)로 삼았다가 9년에 정하여 목(牧)이 되매 8목(牧)의 하나가 되었다. 별호(別號)를 상락(上洛)【성종(成宗) 때에 지정한 것이다.】 이라 하고 또 호(號)를 상산(商山)【속담에 전하기를 주(州)의 북면(北面) 임하촌(林下村)의 사람으로 성(姓)이 태(太)란 자가 도적을 잡은 공이 있었으므로 그 촌(村)을 올려 영순현(永順縣)으로 삼았다고 한다.】 이라 한다. 낙동강(洛東江)이 있고 또 큰 제방이 있어 이름을 공검(恭儉)【명종(明宗) 25년에 사록(司錄) 최정분(崔正)이 옛 터를 따라 축조(築造)하였다.】 이라 하였다. 7군(郡)과 17현(縣)이 소속하였고 2지사부(知事府)를 관령(管領)하였다.

 

○ 보령군(報令郡). 본래 신라의 삼년산군(三年山郡)으로 경덕왕(景德王)이 고쳐 삼년군(三年郡)이라 하였고 고려(高麗) 초에 보령군(保寧郡)이라 고쳤다.【뒤에 그 이름이 바뀌어 지금 이름으로 되었다.】 현종(顯宗) 9년에 내속(來屬)하였고 명종(明宗) 2년에 감무(監務)를 두었다. 속리산(俗離山)【신라때 속리악(俗離岳)이라 칭하여 중사(中祀)로 삼았다.】 이 있다.

 

○ 영동군(永同郡). 본래 신라의 길동군(吉同郡)으로 경덕왕(景德王)이 지금 이름으로 고쳤고 성종(成宗) 14년에 올려 계주 자사(稽州刺史)로 삼았으며 목종(穆宗) 8년에 자사(刺史)를 폐하였고 현종(顯宗) 9년에 내속(來屬)하여 명종(明宗) 2년에 감무(監務)를 두었다가 6년에 올려 현령(縣令)으로 하였고 뒤에 다시 감무(監務)로 삼았다가 이어 파하였다.

 

○ 청산현(靑山縣). 본래 신라의 굴산현(屈山縣)【돌산(山)이라고도 하였음.】 으로 경덕왕(景德王)이 이름을 기산(耆山)이라 고쳐 삼년군(三年郡)의 영현(領縣)으로 삼았고 고려(高麗) 초에 지금 이름으로 갈아 내속(來屬)하여 공양왕(恭讓王) 2년에 감무(監務)를 두었고 상주(尙州) 주성부곡(酒城部曲)을 쪼개어 이에 예속(隸屬)시켰다가 11년에 환속(還屬)하였다.

 

○ 화령군(化寧郡). 본래 신라의 답달비군(達匕郡)【답달(沓達)이라고도 하였음.】 으로 경덕왕(景德王)이 고쳐 화령군(化寧郡)이라 하였고 고려(高麗) 초에도 이에 그대로 두었으며 뒤에 현(縣)이 되어 내속(來屬)하였다.

 

○ 중모현(中牟縣). 본래 신라의 도량현(刀良縣)으로 경덕왕(景德王)이 이름을 도안(道安)으로 고쳐 화령군(化寧郡)의 영현(領縣)으로 삼았고 고려에서 지금 이름으로 갈아 현종(顯宗) 9년에 내속(來屬)하였다.

 

○ 가은현(加恩縣). 본래 신라의 가해현(加害縣)으로 경덕왕(景德王)이 이름을 가선(嘉善)으로 고쳐 고령군(古寧郡)의 영현(領縣)으로 삼았고 고려(高麗) 초에 지금 이름으로 갈아 현종(顯宗) 9년에 내속(來屬)하였고 공양왕(恭讓王) 2년에 문경(聞慶)에 이속(移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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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지리지 상주목

 


○ 신라 첨해왕(沾解王)이 사벌국(沙伐國)을 취하여 주(州)를 만들었고,【위(魏) 여공(厲公) 정시(正始) 9년 무진(서기 248년)이다.】법흥왕(法興王)이 상주(上州)로 고쳤다.【바로 양(梁) 무제(武帝) 보통(普通) 6년 을사(서기 525년)이다.】진흥왕(眞興王)이 주(州)를 폐하여 상락군(上洛郡)으로 만들었다가, 신문왕(神文王)이 다시 주(州)를 두고, 경덕왕(景德王)이 상주(尙州)로 고쳤는데, 혜공왕(惠恭王)이 다시 사벌주(沙伐州)로 고쳤다.【바로 당(唐) 대종(代宗) 대력(大曆) 11년 병진이다.】

○ 화령현(化寧縣)은 본디 답달비군(答達匕郡)인데, 경덕왕이 화령군(化寧郡)으로 고쳤다.
○ 중모현(中牟縣)은 본디 도량현(刀良縣)인데, 경덕왕이 도안(道安)으로 이름을 고쳐서 화령군(化寧郡)의 영현(領縣)을 삼았고, 고려에서 지금의 이름으로 고쳤다.
○ 사방 경계는 동쪽으로 비안(比安)에 이르기 57리, 서쪽으로 보은(報恩)에 이르기 52리, 남쪽으로 금산(金山)에 이르기 35리, 북쪽으로 예천(醴泉)에 이르기 1백 15리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상주목

 

동쪽으로 비안현(比安縣) 경계까지 67리, 남쪽으로 선산부(善山府) 경계까지 39리, 동부(同府) 경계까지 40리, 금산군(金山郡) 경계까지 47리, 서쪽으로 충청도(忠淸道) 보은현(報恩縣) 경계까지 70리, 북쪽으로 함창현(咸昌縣) 경계까지 29리, 서울까지 4백리다.
【건치연혁】 본래 사벌국(沙伐國)인데 하나는 사불(沙弗)이라고도 한다. 신라 점해왕(沾解王)이 빼앗아서 주(州)로 만들었다. 법흥왕(法興王)이 상주(上州)로 고쳐 군주(軍主)를 두고, 진흥왕(眞興王)이 상락군(上洛郡)으로 고치고 신문왕(神文王)이 다시 주(州)로 만들고, 경덕왕(景德王)이 지금의 이름으로 고치고, 혜공왕(惠恭王)이 다시 사벌주(沙伐州)로 만들었다.
【속현】 화령현(化寧縣) 본래 신라 답달비군(荅達匕郡)인데 경덕왕(景德王)이 화령군(化寧郡)으로 고쳤고, 고려(高麗)에서 그대로 하였다가 뒤에 현(縣)으로 고쳐 내속(來屬)시켰다. 주(州) 서쪽 51리에 있다. 중모현(中牟縣) 본래 신라 도량현(刀良縣)인데 경덕왕(景德王)이 이름을 도안(道安)으로 고쳐 화령군(化寧郡)에 예속시켰다. 고려에서 지금 이름으로 고쳐 예속시켰으며 주(州) 서쪽 57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