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름과 머무름 속에서

산과 들/물길 따라서

목계나루 막흐래기와 여우섬

산골어부 2007. 2. 11. 13:28

 

막히락탄 (소태면)

 
      목계에서 선창벼루를 지나가면 소태면 양촌 마을이 나오고 다시 강변을 따라 내려가면 막흐래기라는 마을이 있으며 그 앞의 강물은 물살이 세기로 유명하였다.
옛날 내륙의 삼대하항을 지칭 할 때 양평,여주 그리고 목계를 말하며 그 중 대형선박이 출입할 수 있는 종착항으로 목계나루가 가장 중심을 이루고 있었다.


       
옛날 내륙의 삼대하항을 지칭 할 때
    양평,여주 그리고 목계를 말하며...


옛날 충청북도는 물론 경상북도나 강원도 일부 지역까지도 한양엘 가려면 충주지방을 거쳐야 했는데 말이나 당나귀등을 이용한다는 것은 보통 사람들은 어렵고 대개가 목계에 와서 배를 타고 갔던 것이었다.사람뿐만 아니라 내륙과 경인지방과의 교역물품도 이곳이 중심이 되고 있었다. 따라서 이 곳을 출입하던 배들은 지금우리들이 보고 있는 나룻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배였다고 하는데 서울 쪽으로 가는 배는 강 복판을 운행하고 목계쪽으로 오는 배는 강가를 통행하도록 되어 있어서 많은 배들이 규칙적으로 운행되어서 장관이였다고 한다.
그런데 큰 문제는 가끔 부딛치는 여울 때문인데 여울을 잘못 운행하다가는 큰 사고가 나게 마련이어서 조심해야 했었다. 그 중에서도 막흐래기 앞에 있는 막흐래기 여울에 있는 끌 패들이 제일 많았고 벌이도 가장 좋았다.막흐래기란 뜻은 말 막자,기쁠 희자,즐거울 락자를 써서 莫喜樂인데 글자대로 풀이를 한다면 희희낙락 하지 말라는 뜻이다.
이 여울이 너무도 어려운 장소이니 희희낙락 하다가는 큰 일 난다는 말이


 

가흥리(可興里)

⊙ 가흥-리(可興里)〔가릉, 가흥, 역말, 역촌〕【리】본래 충주군 가흥면(可興面)의 지역으로, 조선조 때 가흥창(可興倉)과 가흥역(可興驛)이 있었으므로 가흥(可興) 또는 가릉(嘉陵), 역말 또는 역촌(驛村)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원동(院洞), 신대리(新垈里), 상동(上洞), 중동(中洞), 하동(下洞), 능암리(綾岩里)의 일부를 병합하여 가흥리라 해서 가금면에 편입됨.
  
●가흥창 터(可興倉―)〔경원창터, 덕흥창터〕【터】가흥에 있는 옛 창 터. 목계(牧溪)가 내륙 하항(河港)으로 서울과 교역할 때 내륙으로 집산하던 물자를 간수하던 창고터. 본래 가흥역 동쪽에 있던 것을 이 곳으로 옮겼었음.

● 막흐래기-여울(莫喜樂灘)【여울】→막흐래기.

●  막-흐래기〔막희락탄〕【여울】가흥 뒷 강에 있는 여울. ① 물살이 세게 마구 흐름. ② 냇바닥에 바위가 깔려 있고 물살이 세니, 너무 좋아하지 말고 조심하여 건너라는 뜻에서 "막희락탄(莫喜樂灘)"이라고도 함.

●막희락-탄(莫喜樂灘)【여울】→막흐레기.

 

 

목계대교 아래의 여우섬과 월촌(막흐래기)마을 전경

 

청소년수련원 옆 여울목

 

 여우섬의 경작지

 

막흐래기 맞은편 청소년 수련원 아영장

 

막흐래기의 바위돌

 

여우섬 하류와 막흐래기

 

 

여우섬의 도선장과 진입로

 

여우섬의 상류

 

목계에서 본 여우섬

 

 

전설및설화

 

 
목계에서 선창벼루를 지나가면 소태면 양촌부락이 나오고 다시 강변

을따라 내려가면「막흐래기」라는 마을이 있으며 그 앞의 강물은 물

살이 세기로 유명한 곳인데 소위「막희락 탄」이다.

옛날 내륙의 삼대하항이라면 경기도 야평, 여주 그리고 목계를 지칭

했었다. 그중 대형선박이 출입할 수 있는 종착항으로 목계나루가 가

장 중심을 이루고 있었다고한다. 옛날 충청북도는 물론 경상북도나

강원도 일부까지도 한양에 가려면 충주지방을 거쳐야 했는데



말이나 당나귀 등을 이용한다는 것은 보통사람

들은 어렵고 거의가 목계에 와서 배를 타고 갔던 것이다.

사람뿐만 아니라 내륙과 경인지방과의 교역물품도 이곳이 중심이 되

고 있었다.

따라서 이곳은 출입하던 배들은 지금 우리들이 보고 있는 나룻배와

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배였다고 하는데 서울쪽으로 가는 배

는 강 복판을 운행하고 목계쪽으로 오는 배는 강가를 통해하도록 되

어 있어서 많은 배들이 규칙적으로 운행되어 장관이었다고 한다. 그

런데 큰 문제는 가끔 부딪치는 여울 때문인데 여울을 잘못 운행하다

가 큰 사고가 나게 마련이어서 가장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중

에서도 막흐래기 앞에 있는 막희라기 여울이 가장 유명했다고 하는

데 각 여울마다 끌패라고 해서 배를 끌어 넘겨주고 임금을 받아 먹

고 사는 사람들인데 이곳 막흐레기 여울에 있는 끌패들이 제일 많

고 벌이도 제일 잘됐다고 한다.

막흐래기란 뜻은 한자로 말막자, 기쁠희자, 즐거운락자를 써서 莫喜

樂인데 글자대로 풀이한다면 희희낙낙하지 말라는 뜻이 된다.

그러니까 이 여울이 너무도 어려운 장소이니 희희낙낙하다가는 큰일

난다는 말이다

그래서 옛날 목계항의「도선별장」은 막흐래기 나루의 사고가 안 나

도록 하는데 항시 힘을 기울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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