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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괴산 제월대와 고산정

산골어부 2011. 9. 26. 18:23

종 목 충청북도  기념물 
제24호
명 칭 괴산고산정및제월대 (槐山孤山亭및霽月臺)
분 류 유적건조물 / 인물사건/ 인물기념/ 사우
수량/면적 1동
지정(등록)일 1978.10.27
소 재 지 충북 괴산군  괴산읍 제월리 산16-2
시 대
소유자(소유단체) 사유
관리자(관리단체) 유해익
상 세 문 의 충청북도 괴산군 문화관광과 043-830-3444
조선 중기 문신인 유근(1549∼1627) 선생이 괴산읍 제월리에 세운 정자인 고산정과 산의 풍경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암반(岩盤)인 제월대이다.

선생이 충청도 관찰사로 있을 때인 선조 29년(1596)에 세운 것으로 처음에는 만송정이라고 했다가, 광해군 때 국정의 어지러움을 피해 이곳에 은거하면서 고산정이라 이름을 바꾸었다. 특히 정자에 걸려 있는 ‘고산정사기’는 명나라 사신인 태화가 보내온 것인데 뛰어난 글로 평가 받고 있다.

정자는 아래쪽으로 맑은 냇물을 바라다 볼 수 있도록 벼랑 위에 세웠다. 앞면 2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정자 동남쪽에 있는 제월대 위에서 보면 이 산의 수려한 경관이 한눈에 들어온다.

 

◆ 고산9경

고산정, 황니판, 관어대, 은병암, 제월대, 창벽, 영객령, 영화담, 고산정사

○ 제1곡 고산정 - 충북도 기념물 제24호. 조선 선조때의 명현 서경 유근이 충청 관찰사로 있을 때인 1596년에 창건하였으며 만송정이라 하였다. 광해군때 어지러운 정치를 피해 고향에 돌아와 이곳에 머물면서 고산정이라 개칭하였다.

이 정자는 괴산의 경승지 중의 하나로 괴강이 내려다 보이는 산 위에 세워져 있는데 건물은 정면 2칸, 옆면 2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으며 사면 모두를 개방하였고 마루의 주위에는 평난간을 둘렀다. 정자 밖에는 이원이 쓴 ´고산정(孤山亭)´이란 현판이 걸려 있고 정자 안에는 유근이 접대한 중국의 사신 주지번이 ´고산지승도´를 보고 감탄하여 선조 39년(1606)에 쓴 ´호산승집´이란 편액이 있으며 역시 유근이 접대한 중국 명 나라의 사신 웅화(熊花)가 광해군 1년(1609)에 쓴 ´고산정사기(孤山亭舍記)´란 편액이 있는데 이 편액은 명필로 이름이 나 있다.

이 밖에 ´고산지승도´를 보고 주지번이 길게 써 내려 간 시와 유근이 응답한 시 그리고 주지번의 부사 양유년이 지은 ´고산구경시´와 유근이 응답한 시 등을 적은 편액이 있었는데 조선시대 말기에 일본인들에게 약탈 당하였다.  
○ 제2곡 황니판
○ 제3곡 관어대 - 영화담 위의 바위 절벽 아래서 내려다 보면 한가롭게 놀고 있는 고기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곳이 관어대이며 세속을 떠난 신선처럼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 제4곡 은병암 - 제월대에서 강을 따라 조금 내려가면 푸른 강물이 S자로 크게 굽이치는 절벽과 절벽에 연이은 큰 바위들이 강물에 반쯤 드리워져 있어 절경을 이루고 있는데 이 바위를 은병암이라 한다.
○ 제5곡 제월대 - 고산정이 있는 부분의 절벽부분을 지칭하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괴강의 푸른물 양편에 흩어진 일련의 경승지를 통칭 제월대라 한다.
○ 제6곡 창벽
○ 제7곡 영객령
○ 제8곡 영화담 - 고산정 아래 속리산으로부터 흐르는 푸른물이 여울 소리를 내며 유유히 흘러와 정자 밑에서 머물러 푸른 연못처럼 평온하고 많은 고기 등이 노닐고 있어 한폭의 동양화를 연상시킨다.
○ 제9곡 고산정사 - 고산정에 걸려 있는 고산정이란 글을 말하며 서경 유근 선생이 혼정을 피해 은거하면서 고산정이라 했다.

 

 

 

 

 

 

 

 

 

 

 

 

 

 

 

 

출처 : 남한강 물길 따라
글쓴이 : 산골어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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