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시 이류면 문주리에 있는 문주리 산성은 달천강변에 있는 작은 산성이다.
문주리 산성은 성의 위치나 규모 그리고 성벽의 석축 등을 고려할때,
정규군이 주둔하는 산성이라기보다는 척후를 위한 성으로 여겨진다.
문주리 산성은 (옛)충주군 유등면의 소재지인 매현을 방어하거나,
충주산성인 대림산성의 보루로 문주리 산성을 축조한 것으로 추측된다.
이는 문주리 산성이 작은 산에 위치하여 달천강변의 팔봉과 토계리만 조망되고
충주방면으로는 대림산 정상에 있는 봉수대터가 보일 뿐이다.
문주리 산성 아래의 지명에서 수주라는 지명과 문백이(문박)란 지명이 흥미롭다.
문백이이란 지명은 문의 입구 또는 문의 바깥쪽을 일컷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충주의 남한강 관문인 탄금대의 대문산과 유사한 지명이 아닐까 한다.
괴산군과 충주시의 경계를 두고 괴산군 불정면에 하문과 지문이란 곳이 있고,
충주시 이류면 문주리는 수주와 문백이(문박이)란 지명이 있는데,
이는 문주리 산성이 달천강의 문지기란 것을 암시하는 것같으며,
그리고, 문주리는 달천강의 달천댐 예정지로 늘 거론되는 곳이기에
문주리 산성이 적의 길목을 차단하는 성으로 축조되지 않았을까 한다.
하지만 문주리 산성의 석축이 정교하지 못하고,
성 내의 시설물과 유적들이 나타나질 않기에
미완성으로 끝난 것이 아닌가한다.
문주리와 문주리 산성
문주리와 달천강 협곡
달천강과 팔봉
문주리 산성 서측의 고양봉 줄기
문주리 산성의 북측치
문주리 산성의 북측 성벽
문주리 산성의 북측 성벽
문주리 산성의 동측성벽
문주리 산성의 동측성벽
문주리 산성의 동측 성벽
문주리 산성의 개미떼
문주리 산성의 개미떼
문주리 산성의 남측 성벽
문주리 산성의 남측 성벽
문주리 산성의 남측 성벽
문주리 산성의 서측 성벽
문주리 산성의 서측 성벽
문주리 산성의 북측 성벽
문주리 산성에서 바라본 달천강 수주팔봉
문주리 산성에서 바라본 달천강과 수주팔봉
문주리 산성에서 바라본 달천강과 문백이
문주리 산성에서 바라본 달천강의 운무
문주리 산성에서 바라본 중부내륙고속도로와 월은고개 입구
문주리 산성에서 바라본 달천강
문주리 마을 앞 달천강의 억새
문주리 마을 앞 달천강의 억새
문주리 마을 앞 달천강의 억새
(참고자료)지명유래 ▶ 이류면
▣ 이류-면(利柳面)【면】충주시 13면의 하나. 본래 충주군의 지역으로서, 이안면(利安面)이라하여 천동(川東), 금곡(金谷), 당저(堂底), 거곡(巨谷), 상검단(上檢丹), 하검단(下檢丹)의 6개 리를 관할하다가, 그 후 천동리를 빼고, 영평(永平), 두산(斗山), 대소(大召), 마치(馬致), 장재동(長在洞), 성종(城宗), 부연(釜淵), 독동(篤洞), 본리(本里), 노옥(老玉), 흑평(黑坪), 불방(佛坊), 주정(酒井), 가정(佳亭)의 14개 리를 더하여 19개 리로 개편 관할하다가, 1914년 4월 1일 군면 폐합에 따라 유등면(柳等面)의 만적(萬積), 독정(篤井), 두담(豆潭), 소용(所用), 궁동(弓洞), 탄동(炭洞), 산정(山井), 내포(內浦), 수현(修峴), 기동(基洞), 매산(梅山), 장승(長承), 월은(月隱), 수주(水周), 문박(文朴), 팔봉(八峰), 즉문(卽文), 하담(河潭)의 18개 리를 병합하여 이안면과 유등면의 이름을 합하여 이류면(利柳面)이라하여 검단(檢丹), 금곡(金谷,) 대소(大召), 두정(豆井), 만정(萬井), 매현(梅峴), 문주(文周), 본리(本里), 영평(永平), 완오(完五), 장성(長城), 탄용(炭用), 하문(河文)의 13개 리로 개편 관할하다가 1973년 7월 1일에 대통령령 제6542호〔1973, 3, 12공포(公布)〕로 하문리는 괴산군(槐山郡) 불정면(佛頂面)으로 편입되었다. 동쪽은 충주시 달천동, 살미면, 상모면, 괴산군 장연면, 남쪽은 괴산군 감물면과 불정면, 서쪽은 주덕읍, 북쪽은 가금면에 각각 닿음. 충주시와 중원군은 1956년에 분리되었다가 다시 1995년에 충주시와 중원군이 통합 충주시로 단일 행정구역이 되었음.
⊙ 탄용-리(炭用里)【리】이류면 법정리동의 하나. 본래 충주군 유등면(柳等面)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탄동(炭洞), 소용리(所用里), 궁동(弓洞)을 병합하여 탄동과 소용의 이름을 따서 탄용리라하여 이류면에 편입됨.
* 소용
●소-용(所用)【마을】소용골에 위치한 동네로 300여년 되는 동네.
●도장-골[소도둑골]【골짜기】박진골에서 조금 올라가서 있는 골짜기로 닭소리가 안들릴 정도로 골짜기가 깊음. 일명 '소도둑골'이라 부르고 있음.
●딴-봉【산】소용골 입구 오른쪽에 있는 봉우리로 봉우리를 둘러싸고 농경지가 많음.
●아름-말【골짜기】궁동 앞 골짜기중 아래쪽. 아름말에는 사람이 살았는데 호랑이가 사람을 잡아먹고, 사람의 머리를 아름말에서 바라보이는 바위에 올려놓아 아름말 사람들이 동네를 떠났다고 함. 지금도 이 바위에 치성을 드리는 사람이 있음.
●앞-산【산】궁동의 앞산으로 차돌산이라고도 함. 옛날에 유서방네가 이곳에 묘를 쓰고 이방행수까지 하였다. 유서방네는 벼슬을 믿고 사람들에게 행패를 부려 지관이 묘를 조금 밑에다 쓰면 큰 벼슬을 할 수 있다고하여 묘를 이장하니 앞산의 차돌에서 피가 나왔다고 함. 그후 유서방네는 패가가 되었음.
●호랑이-굴【동굴】소용골 입구에서 우측으로 있는 동굴로 사람이 서서 움직일 수 있다고 함.* 탄동
●탄-동【마을】탄용리 동쪽에 있는 마을.
●상여-바위【바위】→ 행상바위.
●숯-골【마을】마을 주변이 남-무제, 북-매봉, 동-용문산, 고양봉, 서-팔승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주로 숯을 구웠음.
●양짓-말【마을】탄용리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
●용문-산【산】숯골 뒤쪽에 있는 산으로 금자형국(金字形局)이다. 그래서 탄용리에는 주로 김씨가 살고 있다.
●탄동 새마을-회관【집】1996년에 개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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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현-리(梅峴里)【리】이류면 법정리동의 하나. 본래 충주군 유등면(柳等面)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매산동(梅山洞), 수현리(修峴里), 기동(基洞), 장승리(長承里)를 병합하여 매산과 수현의 이름을 따서 매현리라 해서 이류면에 편입됨.* 매산
●매-산【동네】매산에 매봉재가 있는데 매봉재에서 시작되는 매화낙지혈(형)이 있는데 처음에는 매화낙지혈이 동네의 맨끝집에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매현 초등학교가 개교하고 많은 학생들이 학업에 정진하자 매화낙지혈이 매현 초등학교에 있다고 하였다함.
●마그-랭이【골짜기】매현 초등학교 뒤쪽 골짜기.
●매-봉【산】매산 서쪽에 있는 산으로 매현 사람들은 매봉재(해발 280m)라고 부름. 매산에서 매를 이용하여 사냥할 때 매을 띠운곳이라 함.
●문화류씨열녀-문【열녀문】매현리 장성백이에 정면 1칸 측면 1칸(1.15평)의 맛배지붕으로 건축한 것으로 송순의 부인 문화류씨가 병자호란때 순절한 절개와 덕을 기리기 위해 1701년에 건립되었다.
●온수-골【골짜기】매산 한터골 남쪽으로 온수골이 있었는데 옛날에는 뜨거운 물이 나왔다고 하나 지금은 쇠물처럼 붉은 물이 고여있고, 사람들은 온수골에서 개을 잡아먹는 부정한 짓을해서 온수가 수안보쪽으로 이동하여 갔다고함.
●이승소신도-비【비】이승소(1422∼1484)는 본관은 음성, 자는 윤보, 호는 삼탄, 혜호는 문간이고, 비는 이승소 사우에 있으며 4면비이다.
●장성-백이【장】장(場)이 섰던 곳으로 유등면의 소재지였으며 일제 시대 때는 일본 경찰이 주재하고, 병참부대가 주둔하였음.
●충렬-사【절】매산 새터말을 벗어나 매현교를 건너서 좌측으로 전봇대가 있는 곳이다. 충렬사라는 절터가 있던 곳으로 기왓장과 재가 지금도 나온다고 함. 일제 시대 절터에서 금부처가 출토되어 주민이 팔아먹다가 일본 결찰에 체포되어 조사를 받았다고함.
●팔승-산【산】궁골에서 시작하여 여덟봉우리를 이루고 매산 탄동으로 이어지는 산.
* 수현
●계란-봉【산】논골에 위치하고 달걀봉이라고함.
●두루-봉【산】수현 서북쪽에 있는 산으로 임진왜란 때 피난터로 산정상에 땅을 둥굴게 판 흔적이 있음.
●아래-말【마을】수현의 웃말아래에 위치한 동네로 아래 낚은터.
●웃-말【마을】수현에서 동북쪽으로 위치한 동네로 웃 낚은터.
●큰안터-고개【고개】불정면 목도로 넘어가는 고개로 큰 안터고개로 상업 활동과 죄수도 이곳을 통하여 압송함. 일명 괴산통로로 부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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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주-리(文周里)【리】이류면 법정리동의 하나. 본래 충주군 유등면(柳等面)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수주리(水周里)와 월은리(月隱里), 문박리(文朴里)와 팔봉리(八峰里)의 일부를 병합하여 문박과 수주의 이름을 따서 문주리라 해서 이류면에 편입됨.* 수주
●귀뜰-바위[귀돌바위]【바위】수주와 팔봉사이 강에 있는 바위로 이 바위에 돌을 던져 올라 앉히면 득남한다고 하며 바위 밑에는 관을 쓴 쏘가리가 있다하여 가물면 기우제를 지낸다고 함.
●꺼먹-바위【바위】수주 성골의 동남쪽에 거대한 바위언덕이 있는데 바위 색깔이 검다하여 꺼먹바위라 부르며 바위 밑에는 북향으로 두 개의 굴이 있으며 서로 통한다고 한다.
●문-백이【마을】성골, 음달말, 양달말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마을.
●문주리-산성【성】수주 문박이 옆에 있는 산성으로 길이는 400∼500M, 높이 1.5∼2M 정도로 자연석으로 내축 외탁하였다.
●성-골[성동]【마을】수주 산성 아래에 음달말, 양달말이 있음.
●음달-말【마을】수주 마을
●탑-말【마을】문백이에서 팔봉쪽으로 350m가면 탑이 있는데 이 마을을 가리킴.
* 월은
●월-은【마을】수주에서 서북쪽으로 위치한 마을로 청풍 김씨 묘소가 달이 구름에 숨은 형국이라해서 월은이라함. 달은터 또는 다른터라고 함.
●쇠부리-밭【터】큰 음달 산아래 밭에 쇠통밭이 있음. 100여 전쯤에 낫, 도끼 등을 제조하였음. 쇠(연쇠)는 가금의 쇠꼬쟁이에서 가져와 가공하였고, 주변지역은 숲이 울창하였음.
●음지-말【마을】월은 북쪽에 위치함.
* 팔봉
●골-말【마을】팔봉에서 서쪽 마을.
●금진나루-터【나루터】팔봉에 70여 년전에는 소금배가 들어와 경상도 사람들이 소금을 가져갔다고 하며 지금은 나루터는 흔적 없고 여울만이 흐르고 있다.
●도로-고개【고개】영의정으로 있던 동생 유영경이 형 유영길에게 식량과 필목을 주었으나 형은 동생이 보낸 물건들을 돌려보냈고 짐꾼들이 물건을 도로 가져간 고개라하여 도로 고개라함.
●못-바위【바위】골말에 있는 바위로 바위 앞에 연못이 있었으나 지금은 메워지고 폐쇄된 우물만이 있다. 못바위에는 글씨가 쓰여진 바위가 일부 있었는데 충주 사람들이 글씨만 있는 바위를 가져갔다고 함.
●샘-말【마을】서원말의 동북쪽으로 샘이 있으며 현재도 사용중. 샘말은 웃말이라고도 함.
●서원-말【마을】팔봉서원 앞동네.
●지르-목【고개】팔봉에서 향산 노루목으로 질러가는 고갯길로 질른목이라고도 함.
●청살-매【집】팔봉 서원말에서 매사냥을 150여 년전에하여 불려진 이름으로 참판을 지낸 류용희(柳龍熙)가 중국 사람한테 청살매를 구입하여 매 사냥을 하였다하며 지금은 흔적만 있음.
●팔-봉【산】팔봉의 유래는 1번째 봉우리인 문필봉에서 시작하여 9번째 되는 장산자리에 동네가 위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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