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산성과 축성설화에 대하여
설화는 신화와 민담과 전설로 구분한다. 신화와 민담과 전설 뿐만 아니라, 허무맹랭한 음담패설도 민담으로 채록된다. 내 고향인 충주 노은에서는 조선말기인 임오군란 때 명성황후 피난에 따른 민담이 가장 많았다. 사건이 발생한지 1백 년도 지나질 않았는데, 출처도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이 난무했다. 명성황후의 피난에 관한 기록도 승정원 일기와 임오일기의 내용이 다르게 나타난다. 승정원 일기에서 왕비의 기록이 신변을 알 수 없기에 모호하게 기술된 것으로 확인되었고,임오일기의 기록에 따라 사학계에서는 피난지에 따른 민담들이 정리되었지만, 명성황후에 따른 민담들은 아직도 변하지않고 떠돌아 다닌다. 그리고, 승정원 일기나 임오일기에서 보듯이 특정인의 기록도 아주 단순하다. 하지만, 후대의 설화에서는 사건 당사자도 모르는 이야기가 소설과 드라마처럼 등장한다. 사건 당사자도 모르는 일들이 기술되고 전승되는 것이 역사라는 것이다. 많은 민담들이 사실과 달리 항간에 떠돌다가 정착되어 전래된다. 역사와 설화는 무엇이 다를까 ? 역사라는 것도 보는 관점에 따라 그 평가는 달라진다. 유적과 유물과 기록이 있어도 사실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것이 역사라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은 진실보다는 흥미위주의 이야기꺼리를 더 즐긴다. 역사는 지나간 결과물들이지만 그에 대한 평가는 산 자들의 손에 의해 좌우될 뿐이다. 재판장의 증인도 자신과 관련된 부분만 증언한다. 역사의 산증인도 자신이 본 것만 안다. 그리고, 자신이 사건현장에 있었어도 사건의 전체를 알 수는 없다. 역사란 판관처럼 관련된 사건들을 정리할 뿐이다.
중부지역인 충청과 경기지역의 축성설화에서 많이 등장하는 이야기는 "마고 또는 노고"에 따른 전설과 오누이 간의 성쌓기에 따른 전설이 대부분이다. 지역에 따라 조금씩 변형되었지만, 그 줄거리는 큰차이가 없다. 이는 특정설화가 인접한 지역으로 전래되어 지역특성에 따라 와전된 것으로 추정된다. 충주지역에서 남산성(충주산성)은 마고할미가 아닌 마고선녀에 따른 이야기고, 장미산성과 보련산성은 장미와 보련이라는 오누이 간의 이야기다. 하지만, 역사학에서는 설화와는 다르다. 충주 남산성은 백제 때 마고선녀가 쌓았다고 전해지지만, 남산성은 신라가 삼국을 통일 한 후에 축성한 것으로 나타날 뿐이다. 장미산성이나 남산성은 신라가 고구려나 백제의 산성을 점령한 후에 재축성하였을 수도 있지만, 잔존하는 산성의 특징은 신라가 축성한 것일 뿐이고. 최근에 복원된 산성은 오늘날 관광용으로 재현된 산성일 뿐이다. 장미산성과 보련산성은 축성시기가 다르다, 장미산성은 백제와 고구려와 신라시대의 유물이 모두 출토되지만, 보련산성은 고려시대 몽고침입 시기에 축성된 것으로 추정한다. 하지만 두 성의 축성설화는 동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나타난다.
장미산성 지명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설총의 화왕계에 나타나는 아름다운 여인인 "장미"다. 그리고, 장미산성 축성설화에서는 미인도 선녀도 아닌 딸로 묘사된다. 삼국사기에 나타나는 "포정과 정완"과 신증동국여지승람 충주목에 나타나는 포모대의 유래에서 "장미 또는 포모" 에서 장미라는 이름이 다른 민담과 혼재된 것같은 느낌이 든다. 민담은 사서의 기사와 인물을 편집해서 짜집기한 것같은 이야기처럼 보일 뿐이다. 남산성의 축성설화에서는 축성기간이 엿가락처럼 줄어들어 7일 만에 축조되기도 한다, 장미산성 축성설화에서 나타나는 장미와 보련이라는 이름은 설총의 화왕계와 보련산 보련사에서 도출되어 전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사기의 기록이 떠돌다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되고, 그 이야기가 또 다른 이야기가 첨가되어 떠돌다가 다시 채록되어 남겨진다. 고사에 수록된 두 미녀의 이야기가 포정과 정완이 되고, 장미와 백두옹이 되고, 장미와 보련이도 되고, 마고선녀와 장미선녀 또는 포모선녀도 된 것이 아닌가한다. 달천의 옥녀봉 포모대에서 남한강의 장미산성에 이르는 전설은 진실보다 달천의 아름다움을 선녀와 미녀를 빌어 표현한 것이 아닌가한다.
국원성의 옛 이름인 완장성과 탁장성 그리고 현존하는 지명인 장천리의 장미산과 장미산동에서도 장미가 연상되기도 하지만, 전설 속에 등장하는 장미와 보련은 설총의 화왕계에 등장하는 장미와 백두옹에서 전개된 것이 아닌가한다. 달천에 떠도는 달래내 전설도 포모대의 전설과 오누이의 축성설화가 뒤섞여 음담패설로 변한 것으로 추정할 수도 있다. 탄금대의 대문산이 견문산으로 변질되고, 달천의 유래가 달래내 전설로 변하는 것이 일시적으로 흥미를 유발시킬 수는 있지만, 민담이라 할지라도 지역정서에 반하여 전래되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닐 것이다. 탄금대도 악성 우륵의 혼이 깃들어진 명승지에 전쟁터의 이미지와 패장의 무용담이 왜곡되면서 우국충절이라는 본래의 의도와 달리 패전에 따른 슬픔만 느끼게 한다. 장미산성의 축성설화에 나타나는 "장미와 보련"은 화왕계의 "장미와 백두옹"과 이름은 유사할 수는 있지만, 그 내용과는 관련이 없다. 하지만 또 다른 민담들이 유입되어 와전된 것처럼 보인다. 축성설화에서도 축성과 전쟁의 애환보다는 두 남매 또는 두 미인의 아름다움이 더 낫지 않을까 ? 장미산과 보련산을 바라보면 전설과 달리 "장미와 보련"이라는 아름다운 두 남매가 그려진다. 백두옹(할미꽃)보다는 보련(연꽃)이 더 멋있을까 ? 보련산 보련골에는 아름다운 연꽃이 있었을까 ? 장미산 장미골에는 장미라는 미녀가 살았을까 ? 아주 잠시라도 산성이라는 무시무시한 전쟁터를 잊고 장미와 연꽃의 아름다움을 떠올려 본다.
(장미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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