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망산에서 중원을 둘러보다.
내 고향 노은(老隱)은 국망산(國望山)과 보련산(寶蓮山) 아래에 있다. 국망산에 올라서면 태백산맥과 소백산맥 그리고, 한강과 금강을 가르는 한남금북정맥으로 둘러싸인 충주.괴산.음성,전천,이천.여주 등 남한강과 달천유역 일대가 조망된다. 국망산은 해발 770미터로 작은 산이지만 한강 이남인 경기도 일대에서는 가장 큰산이다. 노은이라는 산골짜기에 살면서도 국망산에만 오르면 북으로는 서울이 보일 것같고, 서쪽으로는 바다가 보일 것 같지만, 서울과 바다는 아득할 뿐이고, 동쪽과 남쪽으로는 국망산보다 더 높은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의 산줄기들이 둘러 있을 뿐이다. 국제화, 세계화를 외치는 세상에서 별로 유명하지도 않은 국망산과 보련산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바보같지만, 그래도 내게는 태어나고 자란 고향땅이기에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는 곳이다. 고향이 싫으면 그 곳을 떠나야 하는 것이고, 조국이 싫으면 조국을 버려야 하는 것이다. 내 고향이라고 해서 모든 것을 만족하며 살 수는 없지만, 그래도 고향을 떠나지 않고 살아왔다. 나의 고향은 대한민국 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이다. 노은이라는 지명이 별다른 의미가 없듯이 이 글도 잠시 스치는 넋두리이기를 바란다
고대유적들이 돌덩어리만 남은 것처럼 현대의 수많은 자료도 수천 년 후에는 돌무더기와 쓰레기만 남기고 사라질 것이다. 천년 전의 사람들도 수많은 책과 기록물을 남기려 했지만, 별로 남은 것이 없다. 땅 속의 매장문화재를 놀이개 삼아 전시한 박물관의 유물들도 국가가 잘 보존할 것같지만, 국가가 혼란해지거나 사라지면 그 보호막이 사라져 땅 속보다도 더 빨리 훼손되어 사라진다, 역사를 고찰하면서 온갖 역사이론과 고증을 내세우지만, 역사의 진실은 밝혀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잊혀져갈 뿐이다. 근.현대사를 동네 아이들의 이야기처럼 말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유적과 유물 그리고 기록이 남았다해도 역사적 가치가 없으면 지나는 바람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향토사 뿐만 아니라, 국사나 세계사도 흥미로운 옛이야기일 뿐이다. 수많은 학자들이 그를 연구하고, 정리하는 것도 미래를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명분을 위한 전통성을 확보하려는 이야기일 뿐이다.
이 글은 내 고향의 향토사에 관한 이야기다. 역사의 산 증인이라고 떠벌이는 사람도 자기 자신이 본 사실과 생각이 아니라, 주변 여건에 따라 관점이나 시점이 변한다. 한국고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자료는 삼국사기일 것이다. 고려의 김부식이가 삼국사기를 썼던 것처럼 오늘날의 역사학자가 한국사를 쓴다면 김부식과 마찬가지로 옛자료들을 보고 정리할 것이다. 지나간 사실은 변함이 없지만, 자료와 생각과 표현방식이 다르기에 달리 쓰여질 것이다. 요즈음도 근.현대사 논쟁에서 자신이 사건현장에서 모든 것을 지켜본 것처럼 이야기하고, 자신이 피해자라고 주장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로 변하기도 한다. 향토사는 국사처럼 정리되지 못하고 민담으로 전래되는 것은 향토사를 연구하는 것이 쉽지도 않고, 정리되었다고해도 전승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향토사를 정리하면서 가장 힘든 것이 국사의 범위를 벗어날 수도 없으며, 단편적인 사건을 국사의 흐름에 따라 전개시켜야 한다. 국사에 대한 논쟁도 끊임없이 변하는 것처럼 향토사의 논쟁도 정설이나 정답은 없다. 다만, 향토사는 국사에서 논하지 않는 지역의 이야기를 정리하여 지역의 자긍심으로 삼는 것이다.
2019.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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