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미륵대원은 미완성일까 ?
충주 미륵리에 있는 미륵대원을 미완성의 절터로 이야기한다. 아마도 그 근거는 돌거북과 당간석 등을 보고 이야기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지금 현재도 수많은 천년 고찰들이 중창불사를 진행 중이다. 시대의 흐름에 따른 변화에 적응하는 행위일 뿐이다. 박물관처럼 변하는 오늘날의 대형사찰들도 마찬가지다. 천년고찰이 새로운 중창불사를 하다가 중지를 하면은 미완의 사찰일까 ? 미완이라는 의미는 일부분에 지나질 않는다. 미륵사지의 돌거북도 미완성일까 ? 미륵사지의 돌거북은 비석과 이수가 없이 귀부만 남아 있다. 미륵사지의 돌거북을 더 조각할 수는 있을까 ? 아마도 더 이상 조각을 진행을 한다고 해도 균형이 맞질 않는다. 이는 거북처럼 생긴 자연석 일부분만 가공하여 거북의 머리와 몸통을 단순하게 형상화 것이기에 볼품도 없지만, 정교함보다는 해학적 이미지를 담고 있을 뿐이다. 실물처럼 돌거북의 네 다리의 균형을 맞추어 형상화 할 수가 없기에 본래의 돌형상에서 표현이 가능한 앞다리 하나만을 표현했을 뿐이며, 나머지 세다리는 등가죽으로 덮힌 몸통 속에 숨긴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리고, 어미거북의 등을 타고 오르는 두마리의 새끼거북은 무슨 의미일까 ? 그를 만든 사람의 생각을 그 누가 알 수 있을까 ? 다만, 보는 이의 상상에 따를 뿐이다. 꿈보다 해몽이 좋다는 말처럼 이해하는 것이 더 낫다. 미륵사지의 돌거북은 비석과 이수가 없고, 전통성이 없기에 해학적 가치는 있으나, 조형미나 문화재적 가치는 없다. 그리고, 누구의 비석인지 알 수도 없지만, 왕사나 국사와 같은 중책을 맡은 고승이 아니라, 미륵대원의 미륵당이나 미륵불을 조성한 사람의 뜻을 남기기 위한 것이 아닌가 싶다. 거북과 현무의 차이는 무엇일까 ? 대부분의 승묘탑 귀부는 거북의 형상이지만, 고구려의 사신도에 나오는 현무처럼 하늘을 날 것같은 형상이 아니라, 머리만 용의 형태를 하고 물에 떠있는 모습이다. 비석의 상부인 이수도 구름을 타고 하늘을 나는 용의 형태이다. 거북이가 현무가 아닌 용으로 변신한 것도 미륵사상과 중국의 수신사상이 결합된 산물일 것이다. 본래의 미륵사상이 전래되면서 도교의 신선사상보다는 용화사상으로 변모하면서 귀부와 이수의 형태도 용모양으로 변한 것으로 추정한다.
충주 미륵리에 있는 미륵대원지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유물들은 동시대에 조형된 것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에 따라 더해지고, 변한 것들이다. 이는 미륵대원지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다른 사적지들도 마찬가지다. 본 절터에는 두 개의 석등이 있다. 현존하는 미륵대원의 배치가 전통건축과 다른 것도 당초부터 계획된 것이 아니라, 미륵불이 있는 미륵당에서 북측으로 계곡의 물길을 따라 확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석등의 배치도 상이하고, 양식과 시기가 전혀 다른 것처럼 보인다. 사찰입구의 당간유구도 온전한 상태가 아니기에 완성되었다가 망가진 것인지, 조성 중에 중단한 것인지도 알 수가 없으며, 돌에 새겨진 문양도 미륵불이 있는 미륵당이나 석탑의 유구 등에서 찾아 볼 수 없는 것이기에 미륵당과 미륵불을 축조한 후에 만들어졌거나, 다른 사찰의 유구를 옮겨 온 것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기나긴 세월 속에서 화재와 전란, 그리고 홍수 등으로 폐허가 된 미륵대원지에 석재가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것은 문화재를 골동품으로 생각하던 과거의 관념 덕분일 수도 있다. 충주 미륵대원의 미륵당을 이야기할때 비교하는 것이 경주의 석굴암이다. 돌로 축조된 것은 유사하나 공법이나 양식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르다. 석굴암에 사용된 돔양식과 석공기술은 당시에 수입된 최첨단 공법과 기술이다. 백제의 무녕왕릉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미륵대원의 미륵당의 축조방식은 부지를 조성할때 쌓는 석축처럼 고구려 무덤의 석실보다도 떨어지는 기술이다. 당초부터 지붕을 덮을 수 없는 구조이다. 석실의 석축높이를 미륵불 상단까지 쌓았거나 가구식으로 지붕을 만들었다면, 석축의 벽체가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을 것이다. 돌로 축조된 것은 같지만 동굴같은 굴이 아닌 성곽같은 방이기에 석굴이라고 하는 것보다는 돌방 또는 석실이라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삼국시대보다 수백년이나 뒤늦게 축조된 미륵당과 미륵불은 권력과 부가 아닌 힘없는 불자의 신념과 지혜로 조성된 것이다. 일부에서는 국가가 아닌 지방호족이나 왕족을 이야기하지만, 신라말기나 고려초기의 호족세력은 막강한 권력과 부를 축척한 세력이다. 미륵대원의 미륵불과 미륵당을 바라보면은 고인돌보다도 못한 작은 돌조차 옮길 여력도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만든 것처럼 보인다. 미륵당의 석실은 성돌을 쌓는 것처럼 토축하면서 지면을 따라 돌을 옮겨 쌓아 올린 것이다.
미륵불이란 까득히 먼 훗날에 나타날 부처님이다. 현세에서 미륵불처럼 되고픈 사람들과 미륵세상이 쉽게 이루어어질 것같은 몽매한 희망으로 세상을 더 어지럽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아마도 뱀이 용이 되는 세상처럼. 아니면, 자신이 부처가 되고픈 심정일 것이다. 하지만 석가모니 부처님이 살아 있을 때도 중생을 구제한 세상은 없었다. 다만, 부처님의 지혜와 꿈을 주고 떠났기에 수많은 불자들도 그 꿈같은 지혜와 진리를 믿고 의지할 뿐이다. 미륵대원의 미륵불은 무얼 생각하며 무얼 바라보고 있을까 ? 미륵불이 바라보는 곳은 하늘재 자락에서 보이는 가장 높은 봉우리가 아니라, 가장 넓은 하늘이 있는 가장 깊은 산골짜기의 물길을 바라보는 것같이 보인다. 아마도 미륵세상과 달리 미륵불을 만든 사람은 산길이 아닌 물길을 따라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 폐사지인 미륵사지는 폐사지처럼 보이질 않는다. 이는 사찰의 기본구성인 불당과 불상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대웅전 속의 아름답고 신비한 금동불이 아닐지라도 폐사지를 지배하는 듯한 괴력이 미륵당과 미륵불에 깃들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폐사지에 들어 서면 자신도 모르게 미륵불로 향하는 시선과 발길 그리고, 미륵당에서 미륵불이 바라보는 세상을 느끼게 한다. 산 속의 작은 세계가 아니라 더 넓고 큰 깨달음이 저 산이 아니라, 저 물길 속에 있음을 일깨워 주는 것같이 보인다. 충주 미륵리에 있는 미륵대원지는 폐사지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다. 사지 옆에 있는 미륵세계사라는 절이 사지를 관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륵사지 뒷편 기슭에는 대광사란 절이 신축 중이다. 대광사란 절의 신축과정을 살펴보면 미륵대원을 건립한 것과 유사해 보인다. 지난 세월도 십여 년은 된 것같다. 앞으로도 몇 년이 더 걸릴런지도 모른다. 세월의 흐름 만큼 좋은 결과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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