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름과 머무름 속에서

역사의 뒤안길에서/옛날 기록들

임진왜란과 달천몽유록

산골어부 2011. 2. 17. 16:07

임진왜란과 달천몽유록

 

  • 원천(참고)자료 : 대동야승

     

    윤계선은 전란의 고통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임진왜란이라는 조선 최대의 전란은 전국토를 폐허로 만들어버렸다. 충주부도 그 예외가 될 수 없었다. 벌써 전란의 소용돌이가 휩쓸고 간 지 벌써 두 해가 지났지만 그 상처는 아직도 깊었다. 탄금대에서 전란의 상처를 읍상하던 윤계선의 귀에 농부들의 대화가 들렸다.
    "김가야 어디 가느냐?"
    "양식이 떨어져 장에 간다."
    "무어 내어다 팔 것이라도 있냐?"
    "팔 것이 없으면 이 몸뚱이라도 팔아야지, 이것저것 가릴 것이 어디있누? 그냥 가는 게다."
    "그래도 손에 무에가 들렸는데?"
    "무에긴 무에냐. 어제 낚은 잉어랑 가물치다."
    "어이구야, 그래도 그 정도면 양식 마련 좀 하것구나."
    "최가 네놈은 풀칠은 하고 있냐?"
    "살다보니 니놈 걱정을 다 듣는구나. 걱정 말아라. 아직 이 최가 안 죽었다."
    "그래, 너 잘났다. 이눔아. 나는 먼저 간다."
    "그래, 양식 많이 팔아 오너라."
    오늘은 장이 서는 날인 모양이었다. 그들의 대화는 장이 서는 날이면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 그런 류의 대화였다. 왜란 이후로 곡식을 비롯한 모든 것들이 부족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앉아서 굶어죽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백성들은 최대한 여러 가지 물건들을 교환했다. 장은 그 중심지였고 난전이 서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난리 전까지만 해도 난전은 국법으로 엄하게 금지하였으나 요즘은 그럴 수도 없었다. 난전에 의지해 먹고사는 백성들이 너무 많은 탓이었다. 윤계선은 다시 작은 탄식을 했다.
    "세상이 바뀌고 있어."
    그는 탄금대의 기둥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그리고 그곳이 어떤 기억을 가지고 있는 곳인지 생각했다. 탄금대, 그곳은 임진왜란 중에도 치욕적인 역사를 기억하는 곳이었다. 선조임금은 난리가 일어났을 때만해도 크게 걱정하지 않는 눈치였다. 왜구의 침입은 수시로 있는 일이었고 임금이 그런 사소한 일까지 일일이 신경 쓰지는 않았던 것이다. 선조는 왜란의 초기에는 평소에 있는 왜구의 침입이려니 여겼고 그 난리가 그렇게까지 커질 줄은 짐작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다. 윤계선이 알기로는 선조 임금이 난리가 크게 났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탄금대에서의 전투 이후였다고 들었다. 선조 임금은 북방에서의 전투에서 오랑캐의 침입을 완벽하게 막아내고는 했던 명장 신립을 깊게 신뢰하고 있었다. 난리가 아무리 크다고 해도 신립이 나서면 쉽게 이기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윤계선은 선조가 그렇게 신뢰했던 신립이 전투를 벌였던 탄금대에서 그 날의 전투를 상상해보았다. 신립은 선조의 명을 받고 왜군을 막기위해 충주부로 진군했다. 많은 부장들이 지형의 유리함을 끼고 싸울 것을 조언했지만 신립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북방의 오랑캐들과 싸울 때도 한번도 그런 전투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승자총통과 기마병을 앞세워 항상 오랑캐를 휩쓸었던 그였다. 신립은 왜군도 그렇게 무찌를 생각이었다. 단번에 시원하게! 하지만 조선군의 사기는 많이 떨어져 있었다. 신립은 탈주병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뒤로 도망칠 수 없는 배수진을 꺼내들었고 전투의 장소를 탄금대로 정했다. 탄금대는 지형도 평지라서 기마전술을 쓰기에도 괜찮아 보였다. 하지만 그 외에 지형의 유리함을 찾아보기는 힘들었다. 그리고 드디어 왜군과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신립은 큰 낭패를 보고야 말았다. 기마병이 마음대로 활동하기에 탄금대는 땅이 너무 질었고 왜군은 조총이라는 처음 보는 무기로 원거리에서 자유자재로 조선군을 공격하고 있었다. 신립은 시간이 지날수록 절망감을 맛볼 수밖에 없었고 결국 스스로의 목숨마저 잃고 말았다. 배수진이었기에 퇴각할 곳도 없었다. 윤계선의 머릿속에 죽음을 맞는 신립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대체 왜 그런 만용을 부렸단 말인가? 신립이 몽땅 잃은 조선군만 온전하였어도 왜군은 이곳에서 더 이상 한양으로 진격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상감이 어가를 옮기는 일도 없었을 것을…쯧쯧… ."
    충주부는 다른 말로 중원이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조선의 한 가운데, 중원이라고 불릴 정도로 중요한 조선의 요충지, 동쪽으로는 죽령이고 남쪽으로는 조령이다. 과거 삼국시대에도 고구려, 백제, 신라가 이 충주부를 차지하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던가? 그리고 결국 충주부를 마지막으로 차지한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지 않았었던가? 윤계선은 다시 한 번 신립의 실패가 너무나도 아까웠다.
    "이곳만 지켰어도 되었을 것을…… 그런 어리석은 장수를 만인을 상대할 장수라고 칭송했던 자들은 과연 어떤 자들인지 궁금하구나. 한신이 만든 배수의 진이 다 죽으라고 만든 전술은 아니지 않은가? 몇 번을 다시 생각해도 어리석은 장수로구나."
    하지만 이미 지난 일이었다. 이제는 전란의 상처를 치유하고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할 때였다. 이미 실패했던 일을 안타까워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백성들은 열심히 사는 것이 자신들의 할 일을 다 하는 것이다. 윤계선은 생각했다. 과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를 말이다.
    "그래, 후세에 이 일을 바르게 전해야 하겠구나. 비록 내가 사서를 기록할만한 능력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작은 글재주는 부릴 수 있지 않은가? 다시는 이런 어리석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이 일을 정확하게 기록하여 후세에 남겨야겠구나."
    윤계선은 결심을 굳히고 발걸음을 돌렸다. 집에 도착하여 그는 먹을 갈고 붓을 들어 책을 쓰기 시작했다. 책의 제목은 『달천몽유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