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름과 머무름 속에서

역사란 그늘 아래서/자취를 밟으며

유학산성을 찾아서

산골어부 2011. 10. 28. 12:46

 

충주시 이류면 장성리에는 성마루(성종)라는 마을이 있다.

성마루의 유래는 마을 앞 작은 야산에 있던 토성에서 유래하는데,

토성의 훼손이 심하여 토성이라고 인식하기 어려운 정도이다.

하지만, 맞은 편에는 다인철소로 지목되는 익안현이 있는 곳이고,

서측에는 조선시대의 봉수대가 있고, 남서측에는 금곡(쇠실)이 있으며,

동으로는 충주철산이 있고,남동측에는 유학사지와 부연마을이 있는 곳이다.

그리고, 남측에는 다인철소의 부곡민들이  대몽항쟁을 벌인 유학산성으로

추정하는 곳이 있지만 그를 고증할만한 사료나 유적이 나타나질 않는다.

다만, 유학사지에 있던 탑과 불상이 잔존하여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이번 산행은 대몽항쟁을 벌였다는 유학산 유학산성을 답사하기 위해

가섭지맥 중 고사리봉에서 성마루로 이어지는 산줄기를 따라

유학산성을 찾아 다녔지만, 유학산성의 흔적은 찾지 못하였다.

또한, 유학산성이라고 지목한 주변은 화전민의  흔적이 있었을 뿐

다인철소의 부곡민들이 대몽항쟁을 벌일 정도의 성터는 찾지 못했다.

대부분의 유적지들이 훼손되어 단순한 지표조사로는 잘 드러나질 않고,

산성의 경우에는 화전민터와 사찰 등이 성터 주변에 형성되어

산성의 흔적들을 훼손하는 경우가 많아 그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고사리봉 쇠실고개 아래에 있는 외령리 재마을에서도

유학산성과 연관지을 수 있는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번 산행에서 고사리봉 주변의 바위와 절벽에서

성을 쌓기 위한 암석의 채취나 산성이 무너져 내린 흔적은 없었으나,

고사리봉 정상의 망루터와  안부의 화전민터에서

작은 규모의 보루가 있었을 것같은 느낌~~~~~

하지만 하산하는 발길은 허전함 뿐이었다.

 

김윤후의 처인성 전투를 연상하면 성마루의 토성에서도

처인성 전투와 같은 기적같은 승리가 없으리라는 법도 없지만,

몽고의 정예병에 항전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충주지역 대몽항쟁에서 충주산성(대림산성)과 월악산성 등이 지목되고

양평의 양근성(함왕성)과 천룡성(보련산성)과 백화산성(금돌성)처럼

험난한 산성들이 등장하지만 대규모 전면전은 거의 일어나질 않았으며

국지전과 기습작전과 산성에 은거하여 지칠 때까지 버티는 항전이었다.

 

 

(참고자료 - 불정면 삼방리와 외령리 유래)

 

괴산군 불정면 삼방리(쇠실고개 남쪽에 위치)는 본래 충주군 불정면의 지역으로, 1914년에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연지동, 관전리, 탑촌리, 안촌리와 외능리 일부를 병합하여 삼방리가 되었으며, 1961년에는 행정구역을 안촌, 연지로 세분화하였다.

삼방리 안촌의 안촌은 예전에는 외방이었으나 지금은 안촌으로 부르고, 물방골은 주변에 바위가 많으며, 양지말은 안촌의 양지쪽에 있는 마을이다. 삼방리 연지의 갓돈 마을은 원삼방 동북쪽에 있는 마을로, 조선 초대의 영의정인 배극염이 낙향하여 은거하였던 마을이고, 연못골은 현재의 연지로 옛날 연못이 있었으며, 탑말은 연못골 동북쪽에 3층 석탑이 있는 마을이다.

불정면의 외령리(고사리봉 남쪽에 위치)는 본래 충주군 불정면의 지역으로, 1961년에 행정구역을 세분화하면서 능현, 사현, 영촌으로 분리되었다. 외령리의 능현 마을은 능현의 본동으로 마을 뒷산에 훈민정음을 만드는데 일조 한 정인지의 능이 있어 반능 또는 능현이라 부르고, 지통말은 반능 서남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에 종이를 뜨는 마을이었으며, 새방골은 반능 서북쪽에 위치한 마을이다.

외령리 사현의 네브르미는 사현 본동으로 고개가 네게 있어 네 번 오른다 하여 네오르미라 하였는데 지금은 네브로미 또는 사현이라 부른다. 산지촌은 사현 북쪽은 있는 작은 마을로 옛날 채씨 성을 가진 산지기가 살았다고 하며, 외령리 영촌의 잿말은 영촌 본동으로 쇠실 고개 밑에 있는 마을이다.

이류면의 지명유래

 

▣ 이류-면(利柳面)【면】충주시 13면의 하나. 본래 충주군의 지역으로서, 이안면(利安面)이라하여 천동(川東), 금곡(金谷), 당저(堂底), 거곡(巨谷), 상검단(上檢丹), 하검단(下檢丹)의 6개 리를 관할하다가, 그 후 천동리를 빼고, 영평(永平), 두산(斗山), 대소(大召), 마치(馬致), 장재동(長在洞), 성종(城宗), 부연(釜淵), 독동(篤洞), 본리(本里), 노옥(老玉), 흑평(黑坪), 불방(佛坊), 주정(酒井), 가정(佳亭)의 14개 리를 더하여 19개 리로 개편 관할하다가, 1914년 4월 1일 군면 폐합에 따라 유등면(柳等面)의 만적(萬積), 독정(篤井), 두담(豆潭), 소용(所用), 궁동(弓洞), 탄동(炭洞), 산정(山井), 내포(內浦), 수현(修峴), 기동(基洞), 매산(梅山), 장승(長承), 월은(月隱), 수주(水周), 문박(文朴), 팔봉(八峰), 즉문(卽文), 하담(河潭)의 18개 리를 병합하여 이안면과 유등면의 이름을 합하여 이류면(利柳面)이라하여 검단(檢丹), 금곡(金谷,) 대소(大召), 두정(豆井), 만정(萬井), 매현(梅峴), 문주(文周), 본리(本里), 영평(永平), 완오(完五), 장성(長城), 탄용(炭用), 하문(河文)의 13개 리로 개편 관할하다가 1973년 7월 1일에 대통령령 제6542호〔1973, 3, 12공포(公布)〕로 하문리는 괴산군(槐山郡) 불정면(佛頂面)으로 편입되었다. 동쪽은 충주시 달천동, 살미면, 상모면, 괴산군 장연면, 남쪽은 괴산군 감물면과 불정면, 서쪽은 주덕읍, 북쪽은 가금면에 각각 닿음. 충주시와 중원군은 1956년에 분리되었다가 다시 1995년에 충주시와 중원군이 통합 충주시로 단일 행정구역이 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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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소리(大召里)

⊙ 대소-리(大召里)[대초원, 대소원, 대춘, 대촌]【리】이류면 법정리동의 하나. 본래 충주군 이안면(利安面)의 지역으로서 조선조 때 대소원(大召院)이 있었으므로 대소원(大召院), 대촌, 대소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마치리(馬致里)를 병합하여 대소리라 해서 이류면에 편입됨.

* 대소 1구
●대소1-구【마을】장터, 웃말, 새마을 등으로 이루어짐.
●봉화-산(烽火山 馬山烽燧)【봉화】현 대소원 초등학교에서 남쪽 38번 국도 바로 옆으로 보이는 산. 봉화를 올리던 봉(峯)임. 이 봉수대는 동해안에서 전달되어 오는 충주의 심항산 봉수와 경상도 방면에서 오는 충주의 대림산 봉수를 전달받아 서쪽으로 음성의 가엽산(가섭산) 봉수로 연결되고, 이곳에는 별장 1명 감관 5명 군인 100명이 주둔하였다.           
●새-마을【마을】1972년 수해로 집단이주한 마을로 문화촌이라고도 함.
●소전-거리【길】대소리에 있는 길. 옛날에 쇠전거리(우시장)였음.
●은행소-들【들】대소원 북쪽에 있는 들. 전에 은행에 저당잡혔었다 함.
●장포-샘【못】장포샘거리에 있는 못. 창포가 많음.

* 대소 2구

●대소2-구【마을】새터, 진말, 웃대촌, 중지등으로 이루어짐.
●대소원-터(大召院-) [대조원터, 경제원터]【터】대소원에 있는 조선시대의 원터.
●비랭이-들 [드랭이들]【들】대소리에 있는 들. 옛날에는 수리 시설이 불완전하여 들에 가뭄이 들면 수확이 전혀 없고, 비가 잘 오면 수확이 많았다 함.
●짓-말【마을】대소원 남쪽, 학교 앞에 있는 마을.

* 마치
●마-치【마을】멧촛골, 점촌으로 이루어짐.
●메추-골 [마치동]【마을】웃말 서쪽에 있는 마을.
●안메추-골【마을】메추골 안쪽에 있는 마을.
●웃대-춘【마을】대소원 위쪽에 있는 마을.
●점-촌(店村)【마을】메추골 북쪽에 있는 마을. 옹기점이 있었음.
●중정이-골【마을】대소원 서남쪽에 있는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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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곡리(金谷里)

⊙ 금곡-리(金谷里) [쇠실, 금곡]【리】이류면 법정리동의 하나. 본래 충주군 이안면(利安面)의 지역으로서 쇠가 많이 났으므로 쇠실 또는 금곡(金谷)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금곡리라 해서 이류면에 편입됨.

* 상금곡
●웃쇠-실[상금곡]【마을】서랫말 남쪽으로 위치한 마을로 음달말, 묘막담, 분특골, 웃말, 건넛말 등으로 이루어짐.  
●깃대-봉【산】놋초골에 있는 산의 봉우리로 측량기점에 깃대를 꽂아 놓아 깃대봉이라 함.
●놋초-골[놋점골]【골짜기】금곡리 서쪽에 있는 골짜기로 쇠 천근, 딱 천근, 구리 천근이 나왔다고하여 놋쇠 천근이라고 부르다가 '놋점골', '놋초골'이라 부름.
●사-실[사금]【마을】금곡리 마을로 한덕골, 진논머리의 자연부락이 있음.
●상금-곡【마을】→ 웃쇠실.
●한덕-골【마을】쇠실(사금) 서남쪽에 있는 골짜기에 있는 마을.
●황새-봉[황수봉]【산】윗쇠실 앞에 있는 산으로 황새목처럼 생겼음.

* 하금곡
●아랫쇠-실[하금]【마을】봉화산 남쪽으로 있는 마을로 봉화뚝, 음달말, 양달말, 서랫말로 이루어진 마을임.
●서랫-말[소랫말]【마을】아래 쇠실에 딸린 마을.

 

장성리(長城里)

⊙ 장성-리(長城里)【리】이류면 법정리동의 하나. 본래 충주군 이안면(利安面)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성종리(城宗里), 장재동(長在洞), 부연동(釜淵洞)을 병합하여 장재와 성종의 이름을 따서 장성리라하여 이류면에 편입됨.

* 부연
●가마-소[釜淵]【마을】성마루 동남쪽에 있는 마을. 앞에 솥처럼 둥글게 생긴 가마소가 있었음.
●장성리석불좌-상【불상】장성리 부연 마을에 있는 불상으로 높이 1m로 무릎까지 흙에 매몰되어 있고 불두는 없어졌으며 어깨는 50㎝, 양손은 파손되었고 불상에 배광을 하였음.

* 성종 1구
●성-마루[城宗]【마을】성마루는 주위에 낮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바깥성마루, 안성마루로 이루어진 마을.  
●중간-마을【마을】성마루 동쪽에 있는 마을.

* 성종 2구
●성-마루[城宗]【마을】성마루는 주위에 낮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능골, 장자터로 이루어진 마을.
●장자-터[장재동]【마을】가마소 서북쪽에 있는 마을. 옛날에 큰 부자가 살았다 함.


 

 

외령리 영촌의 잿말(재마을)과 고사리봉

외령리 영촌의 잿말(재마을)과 고사리봉

 

외령리 영촌의 잿말(재마을)

 

외령리의 능현 마을(정인지묘)

고사리봉에서 바라본 월악산

고사리봉에서 바라본 충주

고사리봉에서 바라본 충주

고사리봉에서 바라본 충주

고사리봉에서 바라본 충주

고사리봉 정상의 망루터

고사리봉 정상의 망루터

 

 성마루에서 바라본 능골과 유학산

 

 성마루에서 바라본  유학산

 

 성마루에서 바라본 능골과 유학산

 

 성마루에서 바라본 마산봉수

 

 성마루에서 바라본 마산봉수

 

성마루에서 바라본 마산봉수

 

 (가섭지맥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