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유래를 고찰하다가보면 어원(語源)이라는 한계에 봉착한다. 한글이든 한문이든 간에 고유지명의 어원이라는 것을 나열하게되면 그를 수긍하기보다는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정규교육과정을 받은 사람들에게 더욱 심하게 나타난다. 지명유래에 나타나는 고대의 역사나 민담설화에서도 마찬가지이며, 동제나 무속에서 나타난 신앙도 예외는 아니다. 가족의 안녕과 국태민안을 기원하는 곳이 교회이건 절이건 성황당이건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 성황당에서 빌면 미신이고, 대웅전 부처님에게 빌면 불심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그 동안 지명유래를 고찰하면서 지명유래가 어디서 시작되었으며,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찾기위해 노력하지만 고유명사 본래의 특수성 때문에 다만 추정할 뿐이다. 며칠 전에 동량면 마흘에 있는 영모사를 돌아보다가 말흘산(末訖山) 자락의 성암사와 마애불을 찾게 되었다. 예전부터 충주의 옛 지명인 미을성(未乙城)을 말을성(末乙城) 또는 주을성(朱乙城) 등으로 추정해보고 동량의 말흘산(末訖山)에 대하여 고찰해오면서 동량의 사천(모래내)과 산척의 용천(덕해)에 대한 지명유래를 고찰해 왔었다. 고서와 지도에서는 산척의 용천산(龍天山)이 말흘산(末訖山)으로 표기되어 왔으나,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말흘산(末訖山)이 용천산(龍天山)으로 변해 버렸다. 이는 동량 마흘에서 보면 마흘산이고, 산척 용천에서 보면 용천산이 되는 것처럼 아주 단순한 이야기다. 하지만 마흘산과 용천산은 그 의미가 다르다. 마흘은 마을 또는 마실을 의미한 촌락 또는 고을을 의미하는 것이고, 용천은 샘(湧)이나 용(龍)을 의미하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산척면의 옛지명은 산천(山天)에서 유래한다, 그리고 동량면의 유래는 사량(김생의 출생지))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하는데, 산척의 덕해(德海)나 달천의 덕천(德川)이라는 지명이 민심이 후하다는 덕(德)에서 유래한다기 보다는 산(山)을 미화한 지명으로 추정하기 때문이다. 천등산과 인등산과 지등산이란 지명이 풍수에 의한 지명이라면, 덕해(德海)란 지명은 산골의 작은 마을이라는 뜻으로 달동네 또는 산동네를 의미할 뿐이다. 산척면 용천산(龍天山)에는 마을에서 기우제를 지내는 용우물과 용바위(용암)에 새겨진 마애불이 있다. 용바위의 마애불은 불교신앙에 따른 불상이 아니라, 민간무속의 수신신앙(水神信仰)으로 보여지지만, 마애불 아래에 있는 명문의 내용과 "용천산 금강문"이란 표현은 마애불상에서는 볼 수없는 독특성을 지닌다. 마애불상은 불상보다는 분묘의 문인상과 석장승의 형태로 무속신앙의 수호신으로 보여지며, 바위에 암각된 문자는 마애불상과 무관하게 후대에 암각된 것으로 추정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용두사(龍頭寺) : 말흘산(末訖山) 밑에 있다." 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용두사가 마애불상 아래에 절터를 말하는 것인지는 단정하기 어렵다. 동량면 지명유래에는 내동 뒷산에 "대전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기록되지만, 현재에는 "태고종인 성암사"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용암의 성암사는 대전사 또는 용두사와 지형적으로 밀접한 연관성이 있으며, 마애불의 접근로도 덕해마을보다는 용암의 성암사를 경유하여 돌아보아야 한다. ![]() ![]() ![]() ![]() ![]() ![]() ![]() ![]() ![]() ![]() ![]() ![]() ![]() ![]() ![]() ![]() ![]() ![]() ![]() ![]() ![]() 충주 영덕리 마애불
두 손의 표현도 기이한 형태로 가슴 앞에서 검지와 새끼손가락을 수평하게 펴서 오른손이 위, 왼손이 아래로 가도록 양손이 수평 교차되어 있다. 방형의 대좌 전면에는 1행 5자씩의 명문 8열이 있다. 명문의 내용은 조상과는 무관한 것으로 일제강점기에 지원병, 징용 등으로 끌려간 동네 청년들의 무사 귀환을 바라는 내용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제14권 - 충청[1]-[충주목]에서 발췌 말흘산(末訖山) : 주 북쪽 30리에 있다. 정토산(淨土山) : 혹은 개천산(開天山)이라고도 한다. 주 북쪽 33리에 있다. 천등산(天燈山) : 주 북쪽 40리에 있다. 용두사(龍頭寺) : 말흘산(末訖山) 밑에 있다. 개천사(開天寺) : 정토산(淨土山)에 있다. (대동지지) 금생(金生) : 북쪽으로 처음이 10리, 끝이 20리. 가차산(加次山) : 서북쪽으로 처음이 15리, 끝이 20리. 엄정(嚴政) : 북쪽으로 처음이 30리, 끝이 60리. 산천(山天) : 동북쪽으로 처음이 30리, 끝이 50리. |
[충주지명유래] 동량면
▣ 동량-면(東良面)【면】츙주시 13개 면의 하나. 본래 충주군의 지역으로서, 대한제국 시대에는 동량곡(東良谷)이라 불렀고, 경술국치(1910년) 이후 동량면(東良面:동량곡)이라 하여 운교(雲矯), 용대(龍垈), 대야(大也), 사천(沙川), 배일(排日), 마흘(馬屹), 황전(黃田), 장선(長善), 모천(毛川), 건지(乾地), 조돈(早遯), 손력(遜力), 탄동(炭洞), 화암(花岩), 지동(紙洞), 만천(萬川), 하곡(荷谷)의 17개 리동을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용교(龍橋), 대전(大田), 조동(早洞), 손동(遜洞), 화암(花岩), 지동(紙洞), 하천(荷川)의 7개리로 개편 관할함. 1987년 1월1일 행정구역 조정으로 제천군 한수면 사기(沙器), 명오(鳴梧), 서운(瑞雲), 포탄(浦灘), 함암(咸岩), 호운(好雲)리가 새로 편입되어 13개 리동을 관할하게 되었음. 1995년 1월 1일 시군통합에 따라 충주시에 편입됨. 남쪽은 목행동(牧杏洞), 서쪽은 금가면(金加面), 북쪽은 산척면(山尺面), 동쪽은 제천시(堤川市) 한수면(寒水面)에 각각 닿음.
⊙ 대전-리(大田里)〔한밭, 황밭, 대전, 황전〕【리】동량면 법정리동의 하나. 본래 충주군 동량면의 지역으로 큰 밭이 있으므로 한밭, 황밭, 또는 대전(大田), 황전(黃田)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대야리(大也里), 사천리(沙川里), 배일리(排日里), 마흘리(馬屹里), 황전리(黃田里)를 병합하여 대야와 황전의 이름을 따서 대전리라 함. 현재 행정리동으로 수회, 내동, 마흘, 배일, 황전, 사천, 대미가 있음. ●수회(水回)[수녹골]【마을】대전리 행정리동의 하나. 목행대교를 건너 19번 도로를 따라가다가 2㎞ 지점인 대미에서 우회전, 25번 군도를 따라 동쪽으로 2㎞ 지점 황전 입구에서 좌회전하여 동북쪽 2㎞ 지점에 형성된 마을. 안골마을 동남쪽 삼거리에 위치함. 1997년 8월 조사시 28호, 98명의 주민이 살고 있고 되터, 웃말, 건너말 등의 자연마을이 있음. 대전천(大田川)이 마을 앞을 돌아서 흐름.
●딴-산【산】수회마을 서편에 있는 산, 웃말 앞쪽에 있음.
●청대-골【골짜기】광대목골 윗쪽의 골짜기.
* 내동(內洞, 안골)
●내-동(內洞)[안골]【마을】대전리 행정리동의 하나. 수회 마을 북서쪽 0.6㎞ 지점에 위치함. 마흘(멀미) 동쪽 골짜기 안에 있는 마을. 1997년 8월 조사시 29호, 119명의 주민이 살고 있고, 자연마을로 양지말과 음지말이 있음. 옛날에 관청이 있었다고 함. 논·밭농사를 주로하며 밭농사로는 고추를 주로 재배함.
●절-골【골짜기】안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 가늠골 동쪽에 있음. '대전사'라는 절이 있었다 함.
●충주-영모사【사묘】충주 최씨 사묘. 충주 최씨 시조인 최승(崔陞) 등 선조 8위의 위패를 모시고 배향하고 있음. 1922년 후손들에 의하여 창건됨,
●풍무-골[품무골]【골짜기】안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 바람이 없어서 '풍무골'이라 했다 함.
* 마흘(馬屹, 멀미)
●마-흘[말흘, 멀미, 흘살]【마을】대전리 행정리동의 하나. 내동에서 서쪽으로 0.5㎞ 지점에 형성된 마을. 수회 서쪽에 있는 배일과 내동 사이에 위치함. 1997년 조사시 42호, 138명의 주민이 살고 있고, 동녘말과 서녘말 등의 자연마을이 있음. 이곳이 대전리에서 가장 높은 지대임. 논농사와 밭농사를 주로하며 밭농사로는 고추를 많이 재배함.
* 배일(排日)
●배-일(排日)[뱀골]【마을】대전리 행정리동의 하나. 목행대교를 건너 19번 도로를 따라가다가 금가면 도촌리 괴정 마을에서 우회전, 동쪽으로 0.5㎞ 지점에 형성된 마을. 마흘 서쪽에 위치함. 1997년 8월 조사시 39호, 130명이 살고 있음. 원명칭은 '뱀골'이었고, 일제시대에는 '배일(拜日)'이라고 기록하다가 해방후에는 '배일(背日)'로 기록하기도 했음. 이에 딸린 마을로 건너말, 웃말, 샘터, 학골, 아랫말, 장고개 등이 있음. 밭농사가 주를 이루며 고추를 주로 재배함.
●샘-터【마을】배일에 속한 자연마을의 하나. 학골 동쪽에 위치함.
●아랫-말【마을】배일에 딸린 자연마을의 하나. 19번 도로에서 동쪽으로 배일을 향해 0.3㎞ 지점에 위치한 첫번째 마을.
●웃-말【마을】배일에 속한 자연마을의 하나. 샘터 동쪽에 위치함.
●장-고개【마을】배일에 속한 자연마을의 하나. 금가면 도촌리 괴정마을 웃구라니 동편에 위치함.
●학-골【마을】배일에 속한 자연마을의 하나. 아랫말 동쪽에 위치함.
* 황전(黃田, 황밭)
●황전(黃田)[황밭]【마을】대전리 행정리동의 하나. 대미에서 24번군도를 따라 2㎞ 지점에서 좌회전하여 북쪽 0.5㎞ 지점에 형성된 마을. 모래내 동북쪽에 위치함. 1997년 8월 조사시 67호, 234명의 주민이 살고 있음. 자연마을로 모내고개, 안말, 만호실 등이 있음.
●만호-실【마을】황전에 속한 자연마을의 하나. 황전 온수지 남쪽에 위치한 마을.
* 사천(沙川, 모래내)
●사-천1(沙川)[모래내]【마을】대전리 행정리동의 하나. 대미에서 25번 군도를 따라 동쪽으로 1㎞ 지점에 남북으로 형성된 마을. 황전 서남쪽에 위치함. 1997년 8월 조사시 151호, 498명의 주민이 살고 있음. 자연마을로 양지말, 음지말, 웃말, 새터, 뒷말, 분터말 등이 있음. 논·밭농사를 주로하며 고추를 특작함.
●날가지-산【산】분터말 동쪽의 산. 높이 135m.
●분터-골【골짜기】분터말 북쪽으로 이어진 골짜기. 당뒤고개로 이어짐.
분터-말【마을】사천에 속한 자연마을의 하나. 모래내 북쪽에 있음.
[충주지명유래] 산척면
▣ 산척-면(山尺面)【면】충주시 13면의 하나. 본래 충주군의 지역으로서, 천등산(天登山)이 있어 본래부터 산척면(山尺面)이라하여 정암(鼎岩), 방대(方垈), 명돌(明乭), 삼탄(三灘), 도덕(道德), 서대(西垈), 신담(新潭), 명암(明岩), 합천(合川), 만지(晩知), 석문(石門), 원서(院西), 매촌(梅村), 가정(佳亭), 소월(小月), 상산(上山), 증촌(曾村), 소강(小江), 대강(大江), 광동(廣洞), 송정(松亭), 행정(杏亭), 도봉(道峯), 소림(小林), 월현(月峴), 둔대(屯垈), 독동(篤洞), 용전(龍田), 덕해(德海), 계척(桂尺), 상영(上永), 백악(白岳), 성암(聖岩), 서곡(黍谷), 하영(下永), 용암(龍岩), 온금(溫今)의 37개 동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명서(明西), 석천(石川), 원월(院月), 송강(松江), 영덕(永德)의 5개 리로 개편 관할함. 1989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원월리 응평, 원서, 매촌, 대월, 소원, 재현, 가정등 7개 마을이 제원군 백운면으로 편입됨. 동쪽은 제천시 봉양면, 남쪽은 동량면, 서쪽은 엄정면, 동북쪽은 제천군 백운면에 각각 닿음.
⊙ 영덕-리(永德里)【리】본래 중원군 산척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둔대리(屯垈里), 독동(篤洞), 용전리(龍田里), 덕해리(德海里), 계척리(桂尺里), 상영리(上永里), 백악리(白岳里), 성암리(聖岩里), 서곡리(黍谷里), 하영리(下永里), 용암리(龍岩里), 온금리(溫今里), 월현리(月峴里)와 엄정면의 율곡(栗谷)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상영과 덕해의 이름을 따서 영덕리라 함. 현재 행정리동으로 둔대, 덕해, 독동, 용전, 상영, 계척, 서곡, 하영, 용암이 있음.
* 덕해(德海)
●덕-해(德海)【마을】영덕리 행정리동의 하나. 월현 남쪽 영덕천 건너에 형성된 마을. 산척면 사무소 소재지에서 531번 도로를 따라 달랑고개를 넘어 약 1㎞ 지점의 덕해교를 건너 마을이 시작됨. 옛날 충주와 원주 사이의 교통의 요지로서 꼭 들렸다 가는 곳이라 하여 '들리기'라 했고, 또한 인심이 후덕하다 하여 '덕바대'(덕바다)라 했다 함. 1997년 8월 조사시 44호, 173명의 주민이 살고 있으며, 자연마을로 들녁이, 웃말, 아랫말, 속들 등이 있음.
●들녁-이[들리기]【마을】덕해에 속한 자연마을의 하나. 덕해교를 건너 첫 번째 마을.
●속-들【마을】덕해에 속한 자연마을의 하나. 웃말 서쪽에 취락구조 사업으로 형성된 새로운 마을.
●아랫-말【마을】덕해에 속한 자연마을의 하나. 속들 서편에 위치함.
●용천-산(龍天山)【산】덕해 남쪽의 동량면 대전리와 접경에 있는 산. 높이 293.7m.
●웃-말【마을】들녁이 남쪽의 덕해에 속한 자연마을.
●은-골【골짜기】아랫말 서남쪽으로 뻗은 골짜기. 옛날 은을 묻었다고 해 붙여진 명칭.
* 용전(龍田)
●용-전(龍田)【마을】영덕리 행정리동의 하나. 531번 리도를 사이에 두고 독동과 접하며, 독동의 서편에 위치함. 마을 뒷산인 용천산의 용자를 따서 용전이라 했음. 1997년 8월 조사시 25호, 77명의 주민이 살고 있으며, 자연마을로 신대말, 범아골 등이 있음.
●범바-골1【마을】용전에 속한 자연마을의 하나. 용전 본동 남쪽에 위치함.
●신대-말【마을】용전에 속한 자연마을의 하나. 독동 수풍거리 남서쪽에 위치함.
●참샘-골[찬샘골]【골짜기】범바골과 사태밑지 사이의 서쪽으로 뻗은 골짜기. 옛날 옻이 올랐을 때 효험이 있는 샘이 있었다 함.
* 용암(龍岩)
●용-암(龍巖)【마을】영덕리 행정리동의 하나. 하영남쪽 19번 도로변에 형성된 마을. 예날 기우제를 지내면 용이 내려와서 비가 오도록 하는 바위가 있어 용바위라 하였고, 용바위가 있는 마을이라 하여 용암(龍巖)이라 하였다 함. 1997년 8월 조사시 60호, 198명의 주민이 살고 있으며, 자연마을로 참샘골, 개터, 팔매울, 성암 등이 있음.
●개-터【마을】용암에 속한 자연마을의 하나. 19번 도로에서 207번 리도 입구에 위치한 마을. 옛날 단양 우씨 묘자리를 개가 잡아 불리워진 이름.
●성-암【마을】객고개 동쪽에 있는 용암에 속한 자연마을의 하나.
●참샘-골【마을】용암에 속한 자연마을의 하나. 하영 서편에 위치함. 샘이 있어 현재도 상수원으로 사용하고 있음.
●팔매-울【마을】개터 동쪽에 있는 용암에 속한 자연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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