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름과 머무름 속에서

역사의 뒤안길에서/옛날 지명들

장미산성과 잣고개에 대하여

산골어부 2015. 6. 27. 08:30

 

 

 

충주시 가금면 장미산에는 장미산성과 잣고개가 있다. 장미산성 서측에 있는 잣고개는 중원고구려비가 있는 입석마을에서 묘곡을 지나 봉황리 마애불이 있는 내동(안골)을 잇는 고개로 1872년 고지도에는 백자치(栢子峙)로 표기되어 있으며, 조선지지자료에선 백현(栢峴)이라고도 한다. 현재의 잣고개는 묘곡에서 내동으로 이어지는 지방도에 있지만, 본래 잣고개의 옛길은 묘곡에서 가흥리 원동으로 이어지는 오솔길이며, 잣고개 북측에는 고려 때의 절터인 원동사지와 원터가 있었으나, 지금은 그 흔적들이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원동사지에서 발견된 "봉황"이라는 명문와편으로 인하여 원동사지는 봉황골의 봉황사가 아니였을까하는 추측을 하게 된다. 옛 잣고개 마루에는 고갯길을 파낸 흔적과 돌무더기가 잔존하여 있고, 장미산성으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희미하게 남아있다. 대부분의 지명유래에서 잣고개는 잣을 성(城)으로 해석하여 성(城)으로 이어지는 고개나 산성 주변의 고개를 성재로 풀이한다. 그로 인하여 산성 주변의 고개들이 성재 또는 잣고개가 되었다가 백현(栢峴)이 되고, 솔고개인 송치(松峙)로 변천되어 전해진다. 이는 잣(城)과 재(峴)가 구분없이 혼용되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재는 성황당 고개도 될 수도 있고, 산성으로 이어지는 고개인 성재도 될 수 있다. 충주 남산성(금봉산성) 남측에는 직동에서 재오개로 이어지는 성재가 있는데, 고갯마루 밑에 성황당과 당산나무가 서 있다. 그리고, 잣고개와 솔고개로 불리우는 수많은 고개들을 살펴보면 산성과 무관한 곳들이 산재하며, 잣고개보다는 자재기고개 또는 자작고개가 더 널리 분포하고 있다. "자재기"란 어원은 "자작나무"의 방언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잣"은 제주도 사투리로 돌담을 뜻하기도 한다. 잣고개는 단지 산성고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의미에서 변천된 것이다.

 

산성고개(山城)와 성황당고개(城隍堂)에 대하여

 

산성에 있는 고개는 성재라 하고, 성황당이 있는 고개는 당재라고 한다. 하지만 고갯마루에는 흔히 성황당이나 당산목이  존재한다. 조선시대의 기록에서도 성황사와 서낭당은 다르게 나타난다. 성황사는 각 군현마다 관청에서 설치하지만, 서낭당은 촌락단위로 민간에 의해 설치가 된다. 하지만, 성황사와 당집은 제를 목적으로 하기에 성재와는 그 기능이 다르다. 충주 남산성 아래에 있는 성재는 성(城)재라고 해야하나, 당(堂)재라고 불러야 할까 ? 성황당(城隍堂)에서 성황(城隍)이란 표현도 성(城)의 해자(垓子)를 의미한다. 즉 촌락이나 군현의 경계에 지역의 수호신을 모시고 굿판을 벌이는 민간신앙이 아니라, 외부의 침입을 막기 위해 고갯마루에 해자와 호를 설치하고 투석전을 대비하여 돌무더기를 미리 쌓아 둔 곳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일설에 의하면 외적의 침입에 따른 지역방어를 위하여 성황재를 설치했다고도 한다. 따라서 성재와 당재를 구분하는 것은 마을의 신앙에 따른 것인가 아니면 군사적 목적인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고갯마루에 있는 성황당은 대부분 두 개의 목적이 함께 나타난다. 산성고개는 군사적 목적으로 주요 거점에 설치하는 목책이나 영액처럼 임시 군사시설물을 구축하거나 군사물자의 운반이나 군사의 이동을 쉽게하기 위하여 험한 고갯마루를 인위적으로 절.성토하여 만들었지만, 차단성이 설치된 문경새재나 하늘재를 성재라 하지않고, 령(嶺)이라 하는데, 차단성에는 성벽에 성문과 관(關)을 설치하기에 성재와는 다르다. 즉 잣고개인 성재에는 산성에 딸린 임시방호시설이 설치되어 산성의 출입이나 통행을 감시하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산성이 폐허가 되면서 성재의 기능도 군사적인 목적보다는  마을을 안녕을 기원하는 당재로 전락했을 것이다. 고개나 성황당에 깃든 민간신앙이나 풍습은 아직도 계승되고 있다.

 

잣고개(栢峴)와 솔고개(松峙)에 대하여

 

원주시 부론면 거돈사지 부근에는 자재기, 자작고개, 작실, 솔미, 솔고개, 솔미산 등의 지명이 나타난다. 이곳 지명에서 나타난 것처럼 자재기는 자작나무, 소나무, 잣나무, 까치 등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마을의 민담에선 가마솥에서 유래되었다고도 전해진다. 자재기란 지명은 충주시 노은면 법동리나 금성면 활산리 등에서도 나타나며, 대부분 솔고개란 지명과 함께 나타난다. 하지만 전국에 산재한 자재기란 지명들을 살펴보면 산성, 소나무, 잣나무, 자작나무, 까치 등과는 달리 산골오지의 마을이나 오솔길을 표현한 지명들이다, 자재기는 성재와 달리 관방체계나 군사시설인 산성에 딸린 지명이 아니라 마을과 마을을 잇는 산간오지의 고개나 고개 주변의 마을을 의미한다. 즉 자재기란 높고 큰고개 또는 오지마을을 의미하는 것으로 장고개, 잣고개, 자작고개, 솔고개 등으로 그 지명이 변천된 것들이다. 이는 소나무가 없는 솔고개가 되고, 잣나무가 없는 잣고개가 되고, 자작나무가 없는 자작고개가 되었다가 까치(鵲)고개인 작실고개 등으로 변천되는 것이다. 장고개란 의미도 지역사람들이 읍내 장터로 장을 보려다닌다는 뜻이 아니라, 고개 길이가 길다는 뜻에서 변천된 것이지만, 민담에서는 소장수나 보부상들이 다니는 길로 표현되기도 한다. 지명에서 크고 작다는 의미는 실제로 산과 강이 크고 넓다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자연환경과 비교하여 이르는 표현이기에 산간오지에서도 벌과 들이 나타나며, 들판에서도 고개와 골짜기가 나타나는 것이다. 잣나무(栢) 또는 측백나무(柏)는 중국식 한자표기이기에 오늘날 상용한자로 풀이하는 것과 다르다. 훈몽자회에서도 백(栢)은 잣나무가 아닌 측백나무로 해석하며, 백(柏)자와 혼용되어 껍질이 하얀 자작나무가 되기도 한다. 장미산과 장미산성은 한자로 장미(長尾) 또는 장미(薔薇)로 전해지는데, 장미(長尾)는 "크다"라는 뜻이고, 장미(薔薇)는 장미산성의 남매축성설화인 장미와 보련의 전설에서 유래한다. 국원성 또는 중원경의 옛지명인 완장성,난장성,탁장성 등에서 장(長)도 "크다" 라는 뜻으로 장미산성과 같이 큰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한다.

 

 

  

장미산성을 둘러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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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산성과 잣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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