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의산은 충주시 노은면과 신니면 그리고, 음성군 생극면과 감곡면에 걸처있는 산이다. 수레의산은 수리산으로 전래되어 왔으나, 근래에 "수리"란 지명이 수레(車)로 차용되면서 생극면 차평리와 차곡리란 지명이 생성되고, 그와 더불어 수리산의 명칭이 수레의산으로 변천된 것으로 추정된다. 수레의산에 인접한 노은, 신니, 감곡의 노인들 대부분이 수리산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생극면과 음성군에서 발간한 수레의산 휴양림 홍보물 등에 의해 수레의산이라는 지명이 고착되어가고 있으며, 최근에 발간된 등산지도에서도 수레의산과 수리산이 동시에 기록되고 있는데, 수레의산이 주봉으로, 수리산은 부봉으로 표기되어 있다.
수레의산의 지명유래에서 수리산, 수리뜰, 수리울 등의 수리가 한자인 차(車)로 표기되면서 이상한 지명이 되었다. 수레의산을 한자로 표기하면 차산(車山)이 되거나, 민주지산처럼 표기하면 차지산(車之山)이 된다. 하지만 "수리"란 "꼭대기(頂)"를 의미하고, "물레방아"에서 "물레"는 "수레 또는 수차"로 변천한다. 수리산의 전설에서 양촌 권근의 묘에 얽힌 설화 등에서 나타나는 지명과 1872년 충주목 지도에서 수리산으로 기록되어 있기에 "수레"란 의미보다는 "머리(首) 또는 물(水)로 변천되었다가 수레로 변천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수리산의 유래는 물(水)보다는 머리(首)라는 의미가 지배적으로 나타난다. 노은면 법동과 안락의 옛지명은 "자작리"인데, 자작리의 본래의 의미도 "잣"이다. 즉 잣고개가 잣재로 변하였다가 자작고개 또는 솔고개로 변천된 것으로 추정한다. 지명에서 자작나무가 없는 자작고개나 작실고개가 나타나고, 소나무가 없는 솔고개나 솔치재가 나타나는 것은 잣(재성: 城)에서 파생된 지명들이기 때문이다. 즉 법동의 옛지명인 자작이나 자재기는 지대가 높은 산촌을 이르는 지명일 뿐이다.
불교의 천수경에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修里修里 摩訶修里 洙修里 沙波訶)"라는 구절이 나온다. 여기에서 수(修)는 "지극하다."라는 뜻이다. 수리산의 유래는 수레가 아니라, 불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도 볼 수 있으며, 법동(法洞)이란 지명도 수리산(修里山)과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지명유래에서 수리봉은 독수리의 머리처럼 생긴 암봉을 이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수리산은 산정상을 의미하는 (정)수리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인접한 가섭산이 가엽산으로 표기되거나, 원통산(圓通山)이 원통하여 우는 원통산(怨慟山)으로 왜곡되는 것도 일제강점기에 잘못된 한자표기에서 기인한다. 수리산의 전설에서 양촌 권근의 묘자리에 얽힌 풍수지리 이야기가 수리산 안부의 "전설의 못"으로 와전되고, 차곡리의 수리울 또는 수레올이란 지명과 차평리의 수리뜰이라는 지명도 수리산 아래에 있다는 뜻이 음운과 방언의 변화에 따라 변천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근래에 발간된 등산지도나 위성지도에서 수리산이 부봉으로 표기된 것도 수레의산이 아니라, 수리산이 본래 지명이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지리산의 천황봉을 표기하면서 지리산 정상을 천황봉으로 기록한 것과 같은 논리인데, 이는 천.지.인의 삼등산이라는 지등산에서도 나타난다. 지등산 관모봉을 표기하면서 관모봉을 정상에 기록하고, 지등산은 서쪽 부봉에 기록하면서 지등산 관모봉이 아니라 관모봉 지등산이 되는 것처럼 주와 객이 뒤바뀌는 격이다. 산(山)은 산줄기의 총칭을 이르는 것이고, 봉(峰)은 산(山)에 딸린 봉우리를 이르는 지명으로 금강산 일만이천봉일 뿐이지만, 산(山)과 봉(峰)을 혼용한 잘못된 지명들이 나타난다. 또한 수리산과 인접한 산들의 명칭을 보면 가섭산, 보현산, 소속리산, 부용산, 행덕산, 원통산 등 불교와 관련된 지명들이 산재하는데, 이들 명칭에서도 수리산은 가섭산보다 낮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행덕산도 원통산이나 수리산보다는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록 작은 지명이지만 주변의 산과 지형에 따라 서열이 존재하는 것이다. 산의 높고 낮음은 해발고도의 기준이 아니라, 지형의 상황에 따른 음양의 이치에 따를 뿐이다.
솔고개에서
어릴 적에 같이 놀던 친구들이 학교에 입학하면서 이름이나 나이가 바뀌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글을 모르는 부모와 마을이장 그리고 호적을 담당하는 면서기들이 한자나 음력과 양력 등을 잘못 표기하여 발생되는 우화들이다. 그 이름이 더 좋은 이름이라면 괜찮겠지만, 다른 사람에게 조롱거리가 되었다면 개명하는 고충을 겪는다. 수리산의 본래 의미가 어디서 부터 시작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현재 사용되고 있는 수레의산이란 괴상한 명칭은 사라져야 할 것이다.
「수리산 못」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한자 修理山 못
영어의미역 The Tale of Pond in Surisan Mountain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차곡리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안상경
[상세정보]
[정의]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차곡리에 전해오는 권근의 묘 이장(移葬)에 관한 일화.
[개설]
조선 초기 권근(權近), 권제(權踶), 권람(權擥)에 이르는 유명한 인물들을 배출한 명문 집안에 얽힌 이야기이다. 묘가 음성군에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에 관한 이야기도 많이 들을 수 있다.
[내용]
1409년(태종 9)에 양촌 권근이 죽자 광주에 묘를 썼다가 1440년(세종 22)에 방축리 능안에 좋은 땅을 골라 이장할 때의 일이다. 양촌의 묘소 조성이 한창 진행 중에 있는데 때마침 이곳을 지나가던 노승과 상좌가 있었다.
노승은 발길을 멈추고 산세를 둘러보며 살피다가 상좌를 돌아보며 목이 마르니 상주에게 가서 물을 얻어 오라고 하였다. 어린 상좌는 묘소를 조성하는 곳에 가 상주를 보고 온 뜻을 말하였다. 그때 상주는 좌찬성을 지낸 권제와 좌의정 권람이었다.
상주는 이를 당돌하게 여기고 어린 상좌를 꾸짖으며 노비를 불러 노승을 포박하여 대령하라고 하였다. 끌려간 노승은 상주에게 용서를 구하였지만 상주는 노발대발하며 곤장을 치도록 하였다.
이때 노승이 침착한 어조로 “소승이 불민하여 죄를 진 것 같사옵니다. 운수(雲水) 납자(衲子)의 몸으로 오늘 우연히 이곳을 지나는 길에 급작스레 갈증이 나서 물을 마시고자 사방을 살피니, 민가는 보이지 않고 우물도 보이지 아니하여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기에 행여 물이 있을 것 같아 물을 얻어 오라 하였습니다”하며 자초지종을 말하였다.
이어 “상주님, 노여움을 거두소서. 하오나 지금 하고 있는 광중(壙中: 시체가 놓이는 무덤의 구덩이 부분)에서 물이 난다면 그것을 퍼서 버리겠지요? 퍼서 버리는 물이면 갈증 나는 사람에게 한 그릇 주면 얼마나 좋은 일이겠소” 하였다.
이 말이 떨어지자 사람들은 “광중에서 물이 난다”면서 떠들썩하였다. 상주는 크게 당황하였고 택지(擇地)한 지사는 이미 달아나고 보이지 않았다. 이 광경을 본 노승이 결박을 풀어 달라 하면서 광중에서 나오는 물에 대한 대책을 세우겠다고 하였다. 풀려난 노승은 묘소 주위의 지형을 살피고 나서 동쪽 수리산을 손으로 가리키면서 “저 산 중턱에 못을 파면 이곳 물이 저곳으로 빠져갈 것입니다”라고 말하였다.
이 말을 들은 상주는 반신반의하면서 수리산에 못을 파게 하였다. 하지만 묘소보다 수리산이 높은데 낮은 곳의 물이 높은 곳으로 흐른다는 것은 사리에 어긋나는 황당한 이야기요, 또한 이곳에서 저곳까지 십 리가 넘는데 그곳에서 혹시 물이 난다 해도 그 물은 그쪽 산에서 나는 물이 분명하지 이곳 물이라고는 볼 수가 없었다.
생각 끝에 상주가 증명해 달라고 하자 노승이 왕겨를 가져 오라 하고는 왕겨 한 줌을 광중 물 위에 띄우니 광중 물이 서서히 없어져 버렸다. 얼마 후에 수리산 못 물에서 왕겨가 나왔다는 전갈이 왔다. 이에 상주는 크게 기뻐하고 노승에게 사의를 표하였다. 이 일이 있은 후로 500여 년이 훨씬 지났으나 지금도 3년에 한 번씩 안동권씨 후손들은 수리산을 손질한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권근의 이장 이야기는 풍수지리와 연관이 있다. 풍수상으로 물이 있는 땅에 시신을 안장하면 관 안에 물이 차 시체가 편치 못하기 때문에 물이 차는 땅은 안 좋은 땅이다. 이 이야기는 노승을 등장시켜 그 땅을 어떻게 길지(吉地)로 만드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못을 만들어 물이 안 나는 지역에 물을 나게 하는 덕을 쌓는 행위를 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참고문헌]
『음성의 구비문학』(음성문화원·음성향토문화연구회, 2005)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수리산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한자 愁離山
영어음역 Surisan
영어의미역 Surisan Mountain
이칭/별칭 수레내산,차산,차이산
분야 지리/자연 지리
유형 지명/자연 지명
지역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차곡리|감곡면 월정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예경희
[상세정보]
[정의]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차곡리와 감곡면 월정리의 경계에 있는 산.
[명칭유래]
수리산은 일명 수레내산·차산(車山)·차의산(車依山) 등으로도 불리고 있다.
[자연환경]
남쪽에는 수레의산이 있고 북동쪽에는 행덕산이 있다. 수리산과 행덕산 사이에는 술고개가 있고 노은면 법리와 감곡면 월정리 간에는 도로가 통하고 있다. 차곡리천이 수리산에서 발원하여 서류하면서 차평리에서 차평천이 되며 응천과 합류하는 한강 수계를 이루고 있다. 음성군 생극면과 충주시 노은면·신니면의 경계를 이루는 수레의산과 수리산을 잇는 주능선 표고 600m 지대 그리고 서쪽 계곡 400m 이상의 각 사면에는 신갈나무 군락이 넓게 형성되어 있다.
또한 수리산에서 서쪽 차곡리를 거쳐 방축리에 발달한 주능선의 표고 200~400m의 각 사면에는 상수리나무와 소나무가 우세한 혼효림이 형성되어 있고 충주시 노은면과 신니면 동쪽 사면에는 상수리나무가 보다 우세한 경향을 나타내고 있다. 소나무 군락의 초본층은 신갈나무 군락과는 달리 나도기름새·선사초·그늘사초 등의 식물이 곳곳에 분포해 있다.
[현황]
옛날에 상원암이 있었지만 지금은 상원암 터만 남아 있다. 산령의 굴 안에는 법당이 있어 수십명을 능히 수용할 수 있으며 지금도 토불 몇 개가 있다고 한다. 수리산 서쪽 중턱에는 수리산못이 있는데 권근 묘에 관한 풍수설화가 있고, 남쪽 사면의 차곡리에는 청소년수련원이 위치해 있다. 수리산은 생극면 차평리의 차평저수지, 감곡면 원당리의 감곡저수지, 노은면 대덕리의 대덕저수지 등의 수원을 이루고 있다.
[참고문헌]
『지명지』(충청북도, 1987)
『음성군지』(음성군지편찬위원회, 1996)
『음성의 산(山)·천(川)·제언(堤堰)』(음성문화원·음성향토문화연구회, 2001)
최창조, 『한국의 자생풍수』(민음사, 2002)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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