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금대섬을 바라보며
1948년에 탄금대 일대를 촬영한 항공사진을 바라본다. 탄금대섬이 선명해 민둥산으로 추정된다. 1945년 해방 후의 모습이 그대로 나타난다. 용섬을 비롯하여 칠지의 섬뜰과 하방의 섬뜰도 보이며, 갈수기에 촬영했기에 한강과 달천강의 물흐름이 사막의 모래톱처럼 살아있다. 하지만, 대홍수가 발생하면 탄금대는 섬이 되고 샛강은 물론 용섬과 섬뜰도 물바다가 된다. 벙어리 여울과 김생제방은 또 어디일까 ? 소금배와 황포돛배는 어떻게 다녔을까 ? 항공사진에 나타난 흔적들을 찾아본다. 금대마을에 있던 선사시대의 흔적은 너무 작아서 보이질 않는다. 탄금대 토성은 보이지만, 가마터는 민가들이 형성되어 있다. 우륵이나 신립의 흔적도 보이질 않는다, 우륵이 가야금을 탄 곳은 어디일까 ? 신립이 배수진을 친 곳은 어디일까 ? 아니, 어디에 빠져 죽었을까 ? 8천의 조선군과 1만8천의 일본군도 배가 없이도 건너 다녔는데, 아니 초등학교 학생도 건너 다니는 달천의 여울에서 배수진을 쳤을까 ? 조운과 조창에 따른 양진나루와 양진창은 또 어디일까 ? 충주성에서 탄금대를 잇는 일제감점기의 신장로가 선명하게 보인다. 능암마을이 가장 큰 마을인 대촌이지만, 신장로를 따라 형성된 신촌마을도 보인다. 그리고 충주천변의 봉계마을도 보인다. 충주역 부근의 방정마을인 상방과 하방이 마을길을 따라 이어져 있다. 1948년 항공사진에서는 일제가 만든 신장로와 마을 그리고 탄금대 토성만이 인간의 흔적으로 남아 있다. 1948년은 대한민국이 정부를 수립한 해이다. 탄금대는 한국전쟁 이후인 1955년 충혼탑이 건립되면서 급격히 변한다. 1872년 충주목 지도와 1948년 위성사진을 토대로 탄금대의 역사의 흐름을 추정해본다. 시대나 사건에 따라 탄금대 역사를 정리하면 아래처럼 구분이 되지만, 사라진 이야기는 아직도 땅 속에 묻혀 있을 뿐이다. 아직도 탄금대에 머무는 전설과 민담들을 옛사진을 보며 되새겨본다. 무슨 상상들을 했을까 ? 역사가 아닌 꿈같은 이야기들이다.
1. 고인돌과 무문토기에 대하여
2. 토성과 가마골에 대하여
3. 우륵과 가야금에 대하여
4. 김춘추와 강수에 대하여
5. 김생과 벙어리 여울에 대하여
6. 대림창과 양진창에 대하여
7. 양진명소와 양진명소사에 대하여
8. 배수진과 열두대에 대하여
9. 금휴포와 청금정에 대하여
10. 탄금대 공원과 무술공원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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