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름과 머무름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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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가야국(古寧加耶國)은 ?

삼국사기 잡지 지리 신라 상주(尙州) 고령군(古寧郡) 고령군(古寧郡)註 165은 본래 고령가야국(古寧加耶國)註 166으로 신라가 취하여 고동람군(古冬攬郡)註 167고릉현(古陵縣)이라고도 한다.으로 삼았다. 경덕왕(景德王) 때 이름을 고쳤다. 지금[고려]의 함녕군(咸寧郡)註 168이다. 거느리는 현[領縣]은 셋이다.가선현(嘉善縣)註 169은 본래 가해현(加害縣)註 170으로 경덕왕(景德王) 때 이름을 고쳤다. 지금[고려]의 가은현(加恩縣)註 171이다.관산현(冠山縣)註 172은 본래 관현(冠縣)註 173관문현(冠文縣)이라고도 한다.인데 경덕왕(景德王) 때 이름을 고쳤다. 지금[고려]의 문경현(聞慶縣)註 174이다.호계현(虎溪縣)註 175은 본래 호측현(虎側縣)註 176인데 경덕왕(景德王) 때 이름을 고쳤다..

자찬묘지명(自撰墓誌銘)에 대하여

자찬묘비명 산골어부 묘비명도 쓰고자서전도 쓰고송덕비도 만드는위인들도 있지만 학식도 없고,벼슬도 없고,명예도 없어학생이라고들 쓴다. 재주도 없고신념도 없고따르는 자도 없으니,그저 흙으로 돌아간다. 살아서는 기쁠지라도죽어서는 뭘 알겠는가 ?흔적이 있어도 그뿐인데,왜 스스로 허물을 남길까 ? 2025. 4. 15 다산시문집 제16권 / 묘지명(墓誌銘)자찬 묘지명(自撰墓誌銘) 집중본(集中本) 이는 열수(洌水) 정용(丁鏞)의 무덤이다. 본명은 약용(若鏞)이고, 자는 미용(美庸)이며 또 송보(頌甫)라고도 한다. 호는 사암(俟菴)이고 당호(堂號)는 여유당(與猶堂)이니 ‘주저하기를 겨울에 내를 건너듯 하고 조심하기를 사방 이웃을 ..

포천 반월성에서

삼국사기 신라본기 진평왕고구려의 낭비성을 침공하다 ( 629년 08월 ) 51년(629) 8월에 왕이 대장군(大將軍) 용춘(龍春)註 001과 서현(舒玄),註 002 부장군(副將軍)註 003 유신(庾信)註 004을 보내 고구려의 낭비성(娘臂城)註 005을 침공하였다.註 006 고구려인이 성에서 나와 진(陣)을 펼쳤는데, 군세(軍勢)가 매우 왕성하였다. 우리 군사들이 이를 바라보고 두려워서 별로 싸울 마음이 사라졌다. 유신이 말하기를, “내가 듣건대, ‘옷깃을 잡고 흔들면 갖옷이 바로 펴지고, 벼리를 끌어당기면 그물이 펼쳐진다.’라고註 007 하였으니, 내가 그 벼리와 옷깃이 되겠다.”라고 하였다. 이에 말에 올라타 검을 빼들고 적진(敵陣)을 향하여 곧바로 나아갔다. 적진에 세 번 들어갔다가 세 번 나왔는데..

회암사지에서

조선왕조실록/태종실록/ 태종2년 회암사로 가서 태상왕을 문안하다임금이 회암사(檜巖寺)로 가서 태상왕을 조알(朝謁)하였다. 처음에 태상왕이 왕사(王師) 자초(自超)의 계(戒)를 받아 육선(肉膳)을 들지 아니하여, 날로 파리하고 야위어졌다. 임금이 이 말을 듣고 환관(宦官)을 시켜 자초에게 말하기를,“내가 태상전(太上殿)에 나가서 헌수(獻壽)하고자 하는데, 만일 태상왕께서 육선(肉膳)을 자시지 않는다면, 내가 장차 왕사(王師)에게 허물을 돌리겠다.”하였다. 자초가 근심하고 두려워하여 회암사를 사양하고 작은 암자에 나가 있었다. 임금이 이른다는 말을 듣고 회암사 주지(住持) 조선(祖禪)과 더불어 태상왕께 고하기를,“상(上)께서 육선(肉膳)을 드시지 아니하여, 안색이 파리하고 야위어지십니다. 우리들이 오로지 상..

초부(樵夫)는

초부(樵夫)는 산골어부 봄바람이 나부끼면벌나비도 날지만,철없는 늙은이는뒹굴다가 잠이 든다. 노 젓는 소리는강아지처럼 들리고,장 치는 소리는 문짝처럼 아른거린다. 삭정이 잔가지로넝쿨도 떠받치고,잡초도 뽑다가벌렁 누워 웃는다. 시골에 사는 초부는갈가지처럼 웃으며쑥개떡을 만드는 아내를선녀인양 바라본다. 2025. 4. 14 양근의 나무꾼(楊根樵夫) : 정초부단원의 도강도 : 김홍도 고운당필기 제1권 양근의 나무꾼 시인〔楊根樵夫〕 양근의 나무꾼은 시를 잘 짓기로 나라 안에 알려졌다. 그의 시 〈백조를 읊다[詠白鳥]〉는 다음과 같다. 동호의 봄물 쪽빛보다 푸르니 / 東湖春水碧於藍백조..

빈둥빈둥 노닐며

빈둥빈둥 노닐며 산골어부 해는 바람과 구름을 벗 삼아 거닐었고,어부는 술과 담배로세월 따라 노닐었다. 오늘도 빈둥거리는데,정겨운 술과 담배는아주 잊은지 오래지만식은 녹차는 반긴다. 장자의 소요유는나비처럼 날았지만,산목 (散木)의 무념은푸르른 숲 속을 만든다. 할 일 없이 빈둥대도나뭇잎은 피고 지고,부지런히 노닐어도산하는 끝이 없다. 빈둥빈둥 거닐다가건방 떨며 웃다가도돌부리가 나타나면깜짝 놀라 멈춘다. 2025. 4. 12 하담에서

초의목식(草衣木食)

초암에서 산골어부 초의가 없는 산방에반가부좌를 하고 앉아서놀음도 하고 싶었다네. 초근목피가 겨웠을까 ?산사에 묻힌 망상은초막에서 잠이 든다네. 초암에 걸터앉아초의를 쓴 스님처럼황차도 마셔본다. 토란과 연근도 먹으며보랏빛 향기를 느끼며호강에 겨워 취한다. 2025. 4. 2 초의(草衣) & 초암(草庵) 대륜산 산골짜기에서무위자연을 떠올리며허무적멸을 상상하다.

버드나무 숲길에서

하담에서의 이별[荷潭別] 아버지여 아시나이까 모르시나이까 / 父兮知不知어머님은 아십니까 모르십니까 / 母兮知不知가문이 금방 다 무너지고 / 家門欻傾覆죽느냐 사느냐 지금 이렇게 되었어요 / 死生今如斯이 목숨 비록 부지한다 해도 / 殘喘雖得保큰 기대는 이미 틀렸습니다 / 大質嗟已虧이 아들 낳고 부모님 기뻐하시고 / 兒生父母悅쉴새없이 만지시고 기르셨지요 / 育鞠勤携持하늘 같은 그 은혜 꼭 갚으렸더니 / 謂當報天顯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이리도 못돼버려 / 豈意招芟夷이 세상 사람들 거의가 / 幾令世間人아들 낳은 것 축하 않게 만들 줄을 / 不復賀生兒하담을 떠나며[離荷潭] 사휴정 아래 물줄기 넘실넘실 흐르는데 / 四休亭下水漣漣객중의 말 슬피 울며 나룻배에 올랐네 / 客馬悲鳴上渡船가홍역에 당도하여 강어귀서 바라보니 / ..

다산초부(茶山樵夫)

다산초당에서 산골어부 따뜻한 초당은초부의 일상이기에고주박도 좋았겠지요. 깊고 깊은 산중에먹을 것이 없으니,녹차라도 다렸겠지요. 초부와 초당은 사라지고,허세만 남았으니,유배의 아픔은 없네요. 다산초부와 사대부.산골어부의 눈에는동백꽃만 뚝뚝 지네요. 2025. 4. 1 다산시문집 제14권 / 제(題)가경(嘉慶) 병자년(1816, 순조 16) 7월 상순(上旬)에 다산초부(茶山樵夫)는 쓴다. 다산시문집 제14권 / 김생(金生)의 글씨에 발함 무진년(1808, 순조 8) 5월에 열수산인(洌水散人)은 발한다. 다산시문집 제17권 / 정효자 전(鄭孝子傳) 가경(嘉慶) 신미년(181..

일지암에서

초의선사가 일지암을 짓고 지은 시 연하(烟霞)가 난몰(難沒)하는 옛 인연의 터에중 살림할 만큼 몇 칸 집을 지었네못을 파서 달이 비치게 하고 간짓대 이어 백운천(白雲泉)을 얻었으며다시 좋은향과 약을 캐나니때로 원기(圓機)로써 묘련(妙蓮)을 펴며 눈 앞을 가린 꽃가지를 잘라버리니좋은 산이 석양 노을에 저리도 많은 것을.  그 날의 아쉬움 일지암에 도착하니,강아지가 날 반긴다. 깊고 깊은 산 중에그 누가 찾을까마는~~~~녹차라도 할 스님은산방에서 뭘하는지, 초의가 있었으면헛기침이라도 했을텐데.~~~~~~주인장이 아니라서~~~~~

찌질이 친구들

찌질이 친구들                          산골어부 쌔고 쌘는데,잠시 참으면 어떨까 ?단식투정도열흘은 버틴다. "Ugly"내 친구들이"못난이"다.중독된 친구들."알코올과 니코틴"해탈된 친구들."짝퉁과 공짜" 쌔고 쌘 것인데,잠시 잊으면 어떨까 ?삼칠일이면금줄도 사라진다.  "Ugly" 꼴불견 찌질이는때깔만 그럴듯하다.우리끼리만 있으면잘난척 하지만,우리들만 있기에추태를 부린다.                               2025.   3.  15

왜 태백산 부석사일까 ?

왜 태백산 부석사일까 ? 부석사 일주문의 현판을 보면서 던지는 질문이다. 단양을 지나 죽령을 넘어 풍기와 순흥을 지나면서 소백산만 보이는데, 갑자기 나타나는 "태백산 부석사"는 오류일까 ? 부석사 경내를 오르다가 보면 부석사 범종루에는 "봉황산 부석사"가 보인다.  "소백산과 태백산과 봉황산" 무슨 차이가 있을까 ?   "태백산 부석사를 검색하면 고치령 산신당의 태백산과 소백산 신위를 근거로 설명하기도 하지만, 무엇인가가 부족한  궤변처럼 보인다. 산줄기로 이야기하면 고치령 보다는 태백산 사고가 있었던 춘양의 우구치일 것이다. 춘양의 각화사는 "태백산 각화사"라 하고, 풍기의 비로사는 "소백산 비로사", 순흥의 부석사는 봉황산보다는 " 선달산 부석사"로 쓰는 것이 어떨까 싶지만, 이는 오늘날의 관점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