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름과 머무름 속에서

삶과 담소/구름처럼 바람처럼

초부(樵夫)는

산골어부 2025. 4. 14. 22:54


 
초부(樵夫)는
 
                             산골어부
 
봄바람이 나부끼면
벌나비도 날지만,
철없는 늙은이는
뒹굴다가 잠이 든다.
 
노 젓는 소리는
강아지처럼 들리고,
장 치는 소리는 
문짝처럼 아른거린다.
 
삭정이 잔가지로
넝쿨도 떠받치고,
잡초도 뽑다가
벌렁 누워  웃는다.
 
시골에 사는 초부는
갈가지처럼 웃으며
쑥개떡을 만드는 아내를
선녀인양 바라본다.
 
                                         2025.  4.   14
 
양근의 나무꾼(楊根樵夫) : 정초부
단원의 도강도 : 김홍도

 
고운당필기 제1권
 
양근의 나무꾼 시인〔楊根樵夫〕
 
양근의 나무꾼은 시를 잘 짓기로 나라 안에 알려졌다. 그의 시 〈백조를 읊다[詠白鳥]〉는 다음과 같다.
 
동호의 봄물 쪽빛보다 푸르니 / 東湖春水碧於藍
백조 두세 마리 또렷하게 보이네 / 白鳥分明見兩三
가벼이 노 젓는 소리 나는 듯 떠난 뒤에 / 柔櫓一聲飛去盡
석양의 산빛만 빈 강에 가득하네 / 夕陽山色滿空潭
 
사람들의 입에 자자하게 오르내렸고 사대부도 그와 시를 창수하는 이가 많았다. 나무꾼의 성은 정(鄭)이고 이름은 내봉(來鳳)이며 스스로 초부(樵夫)라 불렀는데 수청리(水靑里)에 사는 여씨(呂氏)의 종이었다. 내가 양근 군수가 된 이듬해 그 나무꾼이 죽었다. 나무꾼의 아들이 이임(里任)으로 관아를 출입하였는데 내가 그의 유고를 찾자 문드러진 종이 몇 장을 가지고 와 올렸다. 〈봉사기악(奉謝箕嶽)〉 한 수가 다음과 같았다.
 
나그네 설움 내버려 두었더니 어느새 귀밑머리 세어 / 任遣羈愁到鬢華
강루에서 며칠이나 연하에 누웠던가 / 江樓幾日臥煙霞
한가한데 바둑판은 선리에 어울리고 / 閑中棋局稱仙吏
취중에 강과 산은 바로 나의 집이네 / 醉裏湖山是我家
잠잘 때는 쌍구와 더불어 늙은 버들에 기대고 / 睡與雙鷗依古柳
꿈에서는 나비 따라 새로 핀 꽃을 찾네 / 夢隨孤蝶覓新花
난간에서 바라보고 벌써 봄인가 놀랐으니 / 危欄極目驚春早
비 온 뒤 긴 둑이 온통 푸른 봄풀이네 / 雨後長堤遍綠莎
 
이는 썩 잘된 작품이다. 나무꾼은 천인인데도 시로 세상에 이름을 날렸으니 기이하다. 그러나 그가 천인이기 때문에 명성이 또한 실제보다 부풀려졌다.
 
[주-D001] 양근의 나무꾼 : 양근의 나무꾼에 대해서는 김종수(金鍾秀), 유언호(俞彦鎬), 윤행임, 이덕무, 박제가 등 많은 사람이 기록을 남겼다.[주-D002] 나무꾼의 …… 불렀는데 : 이덕무의 《청장관전서》 권34 〈양근의 나무꾼[楊根樵夫]〉에서는 초부의 이름이 정포(鄭浦)이고 호가 봉운(鳳雲)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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