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름과 머무름 속에서

잔차를 타고/남한강과 충주호

갑둥이재와 직마리재와 꼬부랑재

산골어부 2012. 6. 6. 21:10

 

무척 오랜만에 수안보면 고운리에서 살미면 공이동으로 이어지는 갑둥이재 임도를 트레킹했다.

충주시 수안보면 고운리는 충주에서 물이 가장 깨끗한 중산 저수지 바로 위에 있는 오지마을이다.

하지만, 예전에는 한수면 송계리의 골미와 살미면 공이리에서 수안보장을 보기 위하여 북바위산에서

뻗어내린 계명지맥의 험난한 꼬부랑재와 갑둥이재를 넘어와 다시 고운리에서 수안보면 적보산(첩푸산)

안부의 직마리재 또는 성재를 넘나들었다고 한다.  고운리는 골미나 공이동보다는 수안보와 충주를

쉽게 다닐 수 있었으나, 충주호와 월악산 국립공원이 생겨나면서도 교통이 불편한 오지로 남았다.

 

꼬부랑재는 잊혀진 산길이 되어 다닐 수가 없지만, 갑둥이재와 직마리재는 거칠은 원지반 임도를

유지하고 있어 도보 트레킹이나 산악자전거를 라이딩하는 맛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요즈음

4대강 자전거도로와 아름다운 임도 조성공사로 승용차도 다닐 수 있는 자전거 도로와 임도들이

만들어져 오프로드를 즐기는 산악자전거 매니아들에게는 달갑지 않은 일이다. 이번에 갑둥이재를

다녀오면서 직마리재 정상 부근이 채석광산으로 사라져 버리고, 새로운 도로가 생겨날 것처럼

보여져 머지않아 직마리재에 대한 추억도 사라져 버릴 것같았다.

 

몇 년 전에 충주호 단풍&사과투어를 갑둥이재와 직마리재와 북바위산 사시리재를 경유하는 코스로

구상하다가 북바위산 사시리재의 입산통제 구간과 온로드가 길어져서 포기한 적이 있었는데, 다시

기회가 된다면 지루한 빨래판 같은 콘크리트 임도와  뽀얀 돌가루 먼지와 자갈만 굴러 다니는 임도를

피하여 갑둥이재와 직마리재를 넘는 코스로 추진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트레킹 중에 오디와 산딸기를

따먹으며 초여름을 실감했는데, 갑짝스런 더위로 수확을 서두르는 배추를 보니, ~~~~~~

 

고운리 갑둥이재 입구

 

고운리 갑둥이재 입구

 

고운리 갑둥이재 입구

 

고운리 갑둥이재 아래 농가

 

고운리 갑둥이재 아래 농가와 농지

 

고운리 갑둥이재 아래 농가와 농지

 

고운리 갑둥이재 아래 농가와 농지

 

갑둥이재 임도

 

갑둥이재 임도

 

갑둥이재 임도

 

갑둥이재 임도

 

갑둥이재 임도 정상

 

갑둥이재 임도 정상

 

갑둥이재 임도 정상

 

갑둥이재 임도 공이동 구간

 

 

갑둥이재 임도 공이동 구간

 

갑둥이재 임도 공이동 구간

 

갑둥이재 임도에서 바라본 공이동 길

 

갑둥이재 임도에서 바라본 공이동 길

 

갑둥이재 임도 아래의 공이동 길

 

갑둥이재 임도 아래의 공이동 길

 

갑둥이재 임도 아래의 공이동 길

 

갑둥이재 임도 아래의 공이동 배추밭

 

갑둥이재 임도의 오디

 

갑둥이재 임도의 산딸기(복분자)

 

갑둥이재 임도의 산딸기(복분자)

 

갑둥이재 임도에서 바라본 직마리재와 체석산

 

 

 

계명지맥 1구간 (북바위산 지도)

 

충주호 남단 주변의 오지와 임도(http://cafe.daum.net/chungjuhoMTB/WUBA/99)

월악산 송계계곡 라이딩 코스(http://cafe.daum.net/chungjuhoMTB/WRDO/41)

북바위산 사시리 고개 라이딩(http://cafe.daum.net/chungjuhoMTB/WR1I/119)

 

(참고자료 - 지명유래)

 

공이리(公耳里)

⊙ 공이-리(公耳里)【리】살미면 법정리동의 하나. 본래 충주군 지역으로서, 고니실 또는 공이곡(公耳谷)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유촌(柳村)과 송정(松亭)을 합하여 공이동이라 함. 북쪽은 암소바위 부근에서 신당리와 접하고, 서쪽은 대미산을 넘어 상모면 중산리와 접하고, 동쪽은 망대봉 줄기를 경계로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와 접하고, 남쪽은 상모면 고운리, 사문리와 접함.

* 공이 1리

●공이1-리【마을】공이리 행정리동의 하나. 자연마을로는 암소바위, 유산(幽山), 하리(下里), 송정(松亭)이 있으며, 북쪽은 암소바위 부근에서 신당리와 접하고, 서쪽은 대미산 줄기를 따라 내사리, 신매리와 접하고, 남쪽은 공이 2리 유촌과 접하며, 동쪽은 행상바위가 있는 능선을 따라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와 접함.

●건넝-골【골짜기】하리 청소년회관 서쪽에 있는 골짜기.

●공이초등-학교【학교】공이 1리 송정에 위치하고, 1951년 4월 1일 개교하였으며, 현재는 세성초등학교 공이분교가 되었음.

●까치-벌【산】불당골 남쪽, 평촌 동쪽 골짜기 막바지에 사방에서 급경사로 올라오다가 632m 고지 주변에 평평하게 형성된 넓은 지역.

●도장골 막바지-산【산】도장골 끝, 신당리와 공이동의 경계에 있는 산. 높이 581.1m.

●목재-골【골짜기】굴골과 농골 사이에 있는 골짜기로 위쪽에 목재가 있음.

●사노-정(四老亭)【정자】연안 이씨 선조 4형제가 이 정자를 짓고 풍류를 즐겼다고 하며, 내력을 기록한 비석과 함께 암소바위 옆에 있음.

●송-정(松亭)【마을】공이 1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소나무 숲이 있어서 생긴 이름.

●쇠-골【골짜기】암소바위 옆, 뱃재골과 유산 골짜기 사이에 있는 작은 골짜기로 광산이 있었음.

●수리-봉[鷲峰]【산】암소바위 서쪽에 있는 산으로 장군혈이 있다하여 일제 시대에 쇠말뚝을 박았다고 함.

●욕갓-골【골짜기】하리 윗쪽에서 동쪽으로 난 골짜기로 막바지 부근에 절이 있었으며, 불상은 충주시 단월동의 정심사 혜원 스님이 현몽한 것을 구실로 모셔감.

●유-산(幽山)【마을】공이교에서 동쪽 골짜기 안에 있던 마을로 6가구가 거주하였으나 화전 정리 이후 폐동이 됨.

●지치박-골[지초박골, 주초박골]【골짜기】지초박골, 주초박골이라고도 하며 하리 서쪽에 있는 골짜기로 지초라는 약초가 많이 있다고 함.

●햇-골【골짜기】하리 동쪽에 있는 골짜기로 중간 지점에 상수도 상수원이 있으며, 행상바위를 넘어 송계 1리 햇골과 연결됨.

●홈다리-들【들】작은굴골과 굴골 사이에 있는 들로 통나무를 파서 만든 홈으로 물을 댄데서 유래하였으며, 지도에는 '흔다리들'이라고 기록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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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이2리

●공이2-리【마을】공이리 행정리동의 하나. 자연마을은 유촌, 평촌, 공말, 담말, 하녀골이며, 북쪽은 공이 1리 송정과 접하고, 서쪽은 갑둥이재, 대미산을 경계로 고운리, 중산리 법수와 접하고, 남쪽은 고운리 시녀골과 접하며, 동쪽은 비지재, 망대봉을 넘어 송계 3리와 접함.

●갑둥이-재【고개】공이 2리와 고운리의 경계가 되는 고개로 옛날에는 공이동 사람들이 이 고개를 넘어 다른 지역과 문물 교류가 있었음.

●공-말【마을】담말에서 하녀골로 올라가는 길 동쪽에 있는 마을.

●꽃-봉[문필봉]【산】갑둥이재 남쪽에 있는 산으로 모양이 붓끝과 같아 '문필봉'이라고도 하며 이 곳에서 꽃이 바람에 날려 떨어지는 곳에 매화낙지형국(梅花落地形局)의 명당 자리가 있다고 함.

●담-말【마을】유촌을 지나 하녀골 도랑과 가시골 도랑이 합수하는 지점 오른쪽(남쪽)에 있는 마을.

●옻-샘【샘】불당골 중간 지점에 있는 샘으로 옻이 올랐을 때 씻으면 낫는다고 함.

●유-촌(柳村)[버들거리]【마을】송정 남쪽에 있는 마을로 버드나무가 많아서 '버들거리'라고도 하였음.

●평-촌【마을】유촌 남쪽에 있는 마을.

●하녀-골[상촌, 윗공이실, 향화곡]【마을】공이동의 자연마을 중 가장 위에 있는 마을로 상촌, 윗공이실, 향화곡이라고도 함.

 

고운리(古雲里)

⊙고운-리(古雲里)【리】상모면 법정리동의 하나. 연풍군 수회면 고운 지역이었다가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으로 고운, 시여골을 합하여 괴산군 상모면에 편입되었다가 1963년 중원군에, 1995년 시군통합으로 충주시에 편입됨. 전설에 의하면 마을 뒷산인 적보산 능선 중턱에 고운사(古雲寺)라는 절이 있었다고 하며, 그 부근에서는 지금도 기와장이 많이 나오고 있어 이 마을의 유래로 추정됨. 북쪽으로는 중산리 법수동과 장승배기에서 접하고, 동북간에는 살미면 공이동으로 넘어가는 갑둥이재가 있고, 동쪽으로 꼬부랑재를 넘어 한수면 송계리 골미(고얏골)와 접하고, 동남쪽은 안보리 곰지골과 통하며, 남쪽은 직마리재를 넘어 온천리 관동과 접함.

●가시골상-봉【산】가시골 골짜기를 올라가서 공이동과의 접경 지대에 있는 산.

●갈비-봉【산】은구뎅이 왼쪽에 있는 산으로 소나무가 우거져 갈비를 많이 긁던 곳으로 높이 412m.

●강진-말림【산】문산리 강진 사람이 소유했던 산으로 큰골 모퉁이 뒤쪽에 있음.

●골-담【마을】큰말에 딸린 마을로 양짓말로 올라가기 전에 있음.

●곳집-거리【지점】장승배기에서 마을로 올라가다가 중산천에 놓인 다리에서 오른쪽 산 밑에 있는 상여를 보관하는 곳집 주변을 말함.

●꽃-봉[문필봉]【산】갑둥이재 오른쪽에 있는 산으로 높이 461m이며, 이 산에서 핀 꽃이 공이동에 떨어져 매화낙지형국의 명당 자리가 있다고 함.

●망대-봉【산】한수면 송계리, 살미면 공이동, 상모면 고운리의 삼각 지점에 있는 산으로 높이 731.8m이며, 1984년 정상에 헬기장을 닦음.

●못-둥치【마을】숲안말 남쪽, 연못이 있던 자리를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됨.

●성-재【산】직마리재 왼쪽(동쪽)에 있는 성터로 생각되는 돌무더기로 안보리 성재와 이어짐.

●셋집-담【마을】시여골 입구, 하녀골에서 내려오는 골짜기 아랫쪽에 있는 마을.

●숲안-말【마을】마을 들어서면서 오른쪽에 있는 마을로 앞에 큰 숲이 있었음.
시여-골[윗말]【마을】중산천 가장 위쪽에 있는 마을.

●직마리-재【고개】온천리 관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서낭당(느티나무)이 있었으며, 동쪽으로 가면 고운리, 남쪽으로 가면 머리골, 서쪽으로 가면 관동이 나옴.

●진-등【산】갑둥이재 아래, 가시골과 갑둥이골 사이에 있는 긴 산등성이로 황강들로 뻗어내림.

●큰골-모퉁이【마을】큰말과 시여골의 중간 지점에 있으며 현재 1호가 거주함. 중산천 건너에서 집터가 발견되었는데 부엌터와 기와장이 나옴.

●큰-말[아랫말]【마을】고운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직마리재에서 흘러내린 도랑과 시여골에서 흘러내린 중산천이 합수되는 곳 좌우에 있는 마을.

 

송계리(松界里)

 

[위치] 한수면 남쪽에 위치하며 1984년 인구는 983명이다.

[연혁] 울창한 소나무 사이로 내가 흐르므르 송계동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송계리라 하여 한수면에 편입되었다. 1985년 5월 23일 청풍댐 건설로 수몰되어 이주하였다.

[산업] 경지면적 중 논이 45.3ha, 밭이 159.2ha 분포하고 있다.

[자연부락]

⼑ 골미(東山) : 동창에서 6km지점에 긴골짝기가 있어 골미라하고 또는 동산천이라는 내가 흐른다해서 골미라함.

⼑ 벌들 : 벌판 가운데에 위치한다하여 벌들이라고함.

⼑ 사장(寺場) : 덕주골 남쪽에 있는 마을로 사자빈신사(獅子頻迅寺)터가 있음.

⼑ 삼신당 : 현재 공원관리사무소가 있는 곳으로 옛날에 삼신(천신, 지신, 수신)을 모시는 신당이 있던 곳이라 삼신당이라함.

⼑ 새터(新村) : 새로터를 잡아 옮긴 마을이라하여 샛터라고함.

⼑ 재돈지 : 벌뜰 북동쪽 높은 지대에 있는 마을로 재똥이라고도 불리어짐. 재말에서 유래되었음.

⼑ 절골(寺洞) : 골미 남쪽에 있는 마을로 절이 있었음

⼑ 창말(東倉) : 재똥재 북쪽에 있는 마을로 군량미를 저장하던 창고가 있던 곳이라 창말이라함.

⼑ 흑벼루(土峴) : 새말 남동쪽에 있는 벼랑

⼑ 송월로 : 송계와 월악산이 있는 중앙 마을이라 송월이라함

⼑ 동달천 : 동달천변에 위치하여 동달천이라함.

⼑ 덕주골 : 옛부터 덕주사절이 있어 덕주골이라고함.

[기타]

⼑ 계립암 : 송계리에 있는 바위(하늘재)

⼑ 구려골 : 송계리에 있는 골짜기로 임진왜란 때 구씨와 여씨가 피난하였음

⼑ 닷돈재 : 황강나루에서 짐을 지고 재를 넘겨주며 돈을 받던 고개

⼑ 몽챙이 : 송계1리 구터

⼑ 국수골 : 화전민이 많이 살던 곳

⼑ 꼬부랑재 : 골미에서 수안보로 가는 지름길

⼑ 소복길(笑福) : 옛날부터 웃으면 복이 온다고하여 소복길로 함.

⼑ 감나무길 : 감나무가 많다 하여 감나무골이라 함

⼑ 구용소(九龍沼) : 사자빈신사(獅子頻迅寺)터 앞에 있는 소로 아홉 마리 용이 등천하였다 함.

⼑ 남문 : 사장 남쪽에 있는 덕주산성(德周山城)의 남문 높이는 6m, 너비 7.5m의 두 돌기둥이 문처럼 양쪽에서 있음.

⼑ 덕주사(德周寺) : 동문 북서쪽 월악산에 있는 절로 법주사(法住寺)의 말사로서 옛날 덕주부인(德周夫人)이 세웠다 하는데 6·25 사변 때 불에 타버려 1964년에 다시 세움.

⼑ 덕주산성터 : 덕주골에 있는 옛 석성 터로 둘레는 33.670척이며 고종 29년(1892년)에 다시 성을 쌓았다가 갑오 동학란으로 그만두었다 하는데 그 때 쌓은 것으로 보이는 동문, 북문, 남문들이 남아 있음.

⼑ 동문(東門) : 덕주골 동쪽에 있는 덕주산성의 동문으로 높이는 6m, 너비 7.5m의 돌기둥이 문처럼 양쪽에서 있음.

⼑ 동창터(東倉) : 창말에 있는 터로 옛 충주군에 딸린 동창이 있었음.

⼑ 마애불상(嵧崖佛像) : 덕주사 뒤에 있는 돌부처로 큰 바위에 새겼는데 높이는 14m, 너비 5.45m로 얼굴 길이는 3.7m, 귀길이 1.85m이며, 보물 제 406호로 지정 보호함. 덕주사를 세운 덕주부인이 새긴 것이라 전함.

⼑ 망폭대(望瀑台) : 남문 앞에 위치하며 금강산이라 칭하는 곳으로 바위와 고무서리 계곡을 굽이도는 맑은 물과 남문의 경치가 수려함.

⼑ 사자빈신사(獅子瀕迅寺)터 : 덕주골 남서쪽에 있는 사자빈신사의 터로 법화경의 제불사자구신지력이라는 글귀를 따서 사자빈신사라 하였다하는데 세운 해는 사기가 없어서 알 수 없으나 고려 현종때 세운 사자빈신사석탑이 남아 있음.

⼑ 상시골 : 송계리에 있는 골짜기로 임진왜란 때 홍씨가 이곳으로 피난하였다 함.

⼑ 와룡대(臥龍台) : 현 물레방아 앞에 있으며 용이 승천하였다 함.

⼑ 월광사(月光寺)터 : 사장(寺場) 남서쪽에 있는 월광사의 터로 신라 헌강왕(憲康王)때 주지였던 원랑선사(圓朗禪師)의 탑비가 있었음.

⼑ 원랑선사탑비(圓朗禪師塔碑)터 : 월광사 터에 있던 월랑선사탑비의 터로 신라 진성여왕 4년(890년)에 중 도통에게 원랑선사의 시호를 내리고 그의 공덕을 치하하여 비를 세움.

높이는 3.95m, 빗몸 높이는 2.26m, 너비 0.97m로 거북형상의 받침돌은 화강암으로 되었고, 빗몸의 대석에는 운문, 안상을 새겼으며 비의 머리에 용이 서린 형상을 새겼음. 비에 새긴 글은 김영(金穎)이 짓고, 순몽(淳蒙)이 씀.

오래 되어 비의 머리가 깨어지고 빗돌이 헐어진 것을 1922년 3월 서울 경복궁으로 옮겼음

⼑ 월악궁(月岳宮)터 : 송계리 759번지에 있는 월악궁의 터로 월악산 아래가 되는 명성황후의 별궁으로 고종 29년(1892)에 짓기 시작하여 31년 (1894)에 완성하였음.

1920년 10월에 헐었다가 한수보통학교를 짓는데 쓰고 나머지는 1944년 송계초등학교를 세우기 위하여 모두 헐어가고 사대문(四大門)만 남아 있음.

⼑ 월악신사(月岳神祠)터 : 송계동 동쪽 월악산의 밑에 있는 사당 터로 신라 때부터 사당을 세우고 제사를 지냈다 함. 고려 23대 고종 14년 (1254년) 몽고 군사가 월악산성에 침입하였을 때 별안간 천둥 번개가 치며 비바람이 쏟아지니 적병들이 놀라 월악산신의 영험이라 해서 도망갔으며 임진왜란 때도 이곳은 안전하였다 함.

⼑ 자연대(自然台) : 송계 3리 입구에 있으며 현재 야영장으로 이용됨.

⼑ 정번데기골 : 송계리에 있는 골짜기로 임진왜란 때 정씨가 이곳으로 피난하였다 함.

⼑ 팔랑소(八娘沼) : 월악산에서 수안보로 가는 길에 공주가 목욕을 하였다 함.

⼑ 학소대(鶴巢台) : 덕주산성 동문과 망폭대와 어울려 월악산을 오가는 학이 이곳에서 머물던 곳임.

⼑ 한훤치(寒暄峙) : 덕주사 남쪽에 있는 고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