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름과 머무름 속에서

역사란 그늘 아래서/자취를 밟으며 199

[스크랩] 여주 파사성을 찾아서

파사성은 신라  5대왕인 파사 이사금이 만든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산성의 축조연대가 원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 가기에 이를 부정하는 이들도 있지만,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의하면 신라의 시조인 혁거세 거서간에서 부터 낙랑이 침범한 것으로 기록되고, 그 이후로도 맥국과 말갈.백제,왜 등이 침범하며, 제8대 아달라 이사금에 이르러 계립령과 죽령이 개척된 것으로 나타난다. 고구려 본기에서도 부여와 낙랑 등과 동명성왕(주몽)과 대무신왕(무휼) 등이 격전을 벌이고, 백제 본기에서는 비류와 온조가 유리왕을 피하여 마한의 영토인 한강 유역을 차지한다. 그러나, 파사성 주변의 지배자인 동이족인 동예와 마한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없다. 단지 마한이 한성지역을 백제에게  내어주고, 동이족과 말갈족이 그를 침범할 뿐이다 무..

[스크랩] 여주 파사성 마애여래입상 앞에서

여주의 파사성 옆에 위치한 마애여래 입상은 경계선으로 구분하면 양평군 개군면 상자포리에 속한다. 파사성이 있는 산줄기가 여주 대신면과 양평 개군면을 경계로 하지만 파사성 정상에서 불과 삼백여 미터에 불과한 거리에 있다. 우리나라에 있는 대부분의 마애불상들은 신라말에서 고려 초기에 ..

[스크랩] 여주 계신리 마애불 입상을 찾아서

여주 파사성 가는 길에 계신리 마애불을 돌아보았다. 이 곳에서 느끼지는 역사의 흔적들은 충주 창동 마애불과 너무 닮았다는 것이다. 충주의 중앙탑과 여주 신륵사의 탑. 월악산 덕주사의 마애불과 파사성의 마애불. 장미산성과 파사성. 그리고 봉황리 마애불 등 남한강을 따라 이어지는 불교의 유적..

[스크랩] 이천 효양산성 답사기

2010년 12월 10일 올해 들어서 처음으로 내린 눈을 보며 이천으로 향한다. 기상청에서는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육안으로 관찰되었을 때를 첫눈이라고 하지만, 일반인들은 그 보다는 눈이 하얗게 쌓여야 첫눈이 왔다는 것을 실감한다. 하얀 눈이 쌓인 산과 들을 보니, 이천과 설성이라는 지명이 머리에서 ..

설성산성 답사기

설성산성 답사기 2010년 12월 1일 오전에 이천의 설봉산성을 돌아보고 오후에는 장호원의 설성산성을 돌아 보았다. 옛 음죽현이 있던 장호원읍 선읍리는 그 옛날의 명성과 달리 초라한 시골 농촌마을이 되어 있었다. 선읍리와 설성산성을 찾아가는 길은 낮은 산구릉지에 형성된 마을길과 농로길을 따라가야 한다. 옛 음죽현의 소재지는 행정구역이 충청도에서 경기도 이천시로 변경되고, 읍성은 장호원읍으로 이전되면서 면소재지로서의 지위도 사라져버려 마을주민들은 그 옛날의 음죽현과 설성에 대한 그리움만 안고 살아가는 것 같았다. 특히 마을회관에 걸린 현수막처럼 국가와 자치단체를 대신하여 마을주민이 스스로 설성산 정상에 봉화정이란 정자를 만들고, 초라한 전망대와 이정표를 만들어 점점 사라져가는 설성과 음죽현의 슬픔을 그리워..

[스크랩] 죽주산성의 복원에 대하여

명    칭 : 죽주산성(竹州山城)  분    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성/ 성곽  수량/면적 : 일원  지 정 일 : 1973.07.10  소 재 지 :  경기 안성시  죽산면 매산리 산106  시     대 : 고려시대 소 유 자 : 사유 관 리 자 : 안성시 이 성은 고려 시대에 죽주성으로 불렸으며 몽고군과 치열한 전투가 펼쳐졌던 곳이다. 죽주는 청주와 충주의 두 길이 만나는 중부 내륙교통의 중심지였다.고려 고종 23년(1236) 몽고군이 이곳 죽주산성에 이르러 고려군에게 항복을 권유하면서 공격하였으나 끝내 함락시키지 못하였다고 한다. 이때 성을 지킨 방호별감(防護別監) 송문주(宋文胄)는 일찍이 귀주성(歸州城) 싸움에서 몽고군의 공격법을 알고 있어 대비하였기에, 백성들은 그를 귀신 또는 신명..

[스크랩] 남한강 태고산과 장태산을 돌아보며

2010년 11월 22일충주시 금가면에서 가장 조망이 좋은 태고산과 장태산은 명성은 있으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간 산으로 주변의 마을 사람들 조차도 잘 모르는 산이다. 남한강이 휘감아도는 금가면은 야산으로 형성된 구릉지라서 주변의 높은 산에서 내려다 보면 평야처럼 보여지지만, 실제로는 넓은 들판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곳이다. 태고산과 장태산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면 드넓은 구릉지가 청계산-오청산-천등산-인등산-지등산-계명산-남산-대림산 등에 병풍처럼 둘러쌓여 있고, 남한강을 따라  보련산과 국망산이 그를 주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오늘은 장태산의 유적 발굴지를 답사했다. 태고산 정상의 토성 흔적과 토성 주변의 참호들을 찾아 다니며 운동시설과 묘지 등으로 훼손되어가는 성터와 변형된 참호들을 보면서 공사가 ..

국망분맥의 끝자락 봉황골을 찾아서

국망분맥은 노은의 한포천과 앙성의 앙성천을 가르는 산줄기다. 속리산에 시작되는 한남금북정맥이 음성의 보현산에서 부용지맥을 만들고, 그 부용지맥은 가섭지맥과 오갑지맥으로 나누어지고, 오갑지맥은 수레의산에서 장미분맥과 갈라지고, 부용지맥의 국망분맥은 원통산에서 오갑산과 분기하여 국망산-보련산-쇠바위봉-국사봉- 무쇠봉을 지나 앙성면 능암리에서 한포천과 앙성천이 합류하면서 남한강으로 숨어든다. 이번 산행은 등산이라기보다는 무쇠봉 성터를 찾기 위해 중원 봉황리 마애불상군이 있는 내동(햇골)에서 시작하여 국사봉에 이르는 산능선과 골짜기를 따라 산성의 흔적을 찾아 다녔지만, 무쇠봉 성터의 흔적은 찾을 수가 없었고, 무쇠봉 주변에 산재한 지명들을 보면서 봉황성에 대한 의문만 남겼다. 이번 산행을 하면서 이 지역의 지명..

보련산 보련산성에 대하여

산골어부가 초등학교 때 부터 부르던 노래. "보련산에 정기받아 ~~~~"  -노은초등학교 교가- 초등학교 때 소풍을 갔던 보련골 절터와 솟대울 쇠똥밭 그리고 중학교 때 부터 오르던 국망산과 보련산. 그 험준한 보련산에 있는 산성터와 허물어진 화전민터. 보련산성이라고도 부르고 천룡산성이라고도 부르지만 고서에는 천룡성 또는 봉황성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보련산성은 성벽의 흔적이 거의 사라져서 등산객들은 성터였다는 사실도 모른채 지나쳐 버린다. 그 뿐만 아니라 보련산성에 대한 역사도 정립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보련산 보련산성에 대한 나의 생각을 글로 남기고자 한다.  보련산은 보련골에서 보면은 보련산이고, 천룡마을에서 보면은 천룡산이다. 보련산과 천룡산은 동일한 산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보련산성과 천룡..

[스크랩] 견학리 토성을 돌아보며 ~~~

신니면을 지나는 길에 충주 견학리 토성을 둘러봤다. 아주 작은 토성이라서 큰 역사적 의미가 있는 토성은 아니지만, 사적지라고 하기에는 너무 초라하게 방치되어 할 말을 잊어 버렸다. 공장부지로 잘려나간 서측면 성터와 성벽은 거대한 절개지가 되어 있으며, 성터에는 과수원과 개집들이 들어서..

[스크랩] 남한강 탄금호와 중앙탑을 찾아서

오석에서 바라본 중앙탑 공원 오석에서 바라본 중앙탑 공원 중앙탑 공원과 충주박물관 충주박물관 탑평리 샛강 하류 전경 가금면 소재지와 장미산 월상리 옥강정 마을 (안반내나루) 안반내 나룻터에서 본 중앙탑 공원 안반내 나룻터에서 본 가금면 소재지 안반내 나룻터에서 바라본 반천마을 안반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