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충주전투를 왜 탄금대 전투라고 하는가 ? 신증동국여지승람 제14권 충청도(忠淸道) 충주목(忠州牧) 고적편에는"탄금대(彈琴臺) 견문산(犬門山)에 있다. 푸른 벽이 낭떠러지라 높이가 20여 길이요, 그 위에 소나무ㆍ참나무가 울창하여 양진명소(楊津溟所)를 굽어 임하고 있는데, 우륵(于勒)이 거문고를 타던 곳이다. 뒷사람이 인하여 그 대를 탄금대라 이름하였다." 라는 기록이 있고.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이전인 중종 때에 충주목사를 지낸 박상(朴祥)이 쓴 싯구에는 "탄금대 아래 흐르는 물 쪽빛 같네. /彈琴臺下水如藍 명문장 강수는 묘도 없고, /文章强首無遺墓 명필 김생의 암자가 퇴락했네. /翰墨金生有廢庵" 라고 서애집에 전한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가인 이만도가 쓴 싯구에는"마암에다 철관 몹시..